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친구 중 한 명은 소위 '잘나간다'는 성공한 여성. 도대체 얼마나 잘나가길래요? 라는 물음에 들었던 그 언니의 현재 모습은 실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정말 돈이 많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언니 고민이 있단다. 고민의 내용인 즉슨, 남자를 볼 때, 모든 남자가 다 자신의 '조건'을 사랑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아닌, 자신의 '돈'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게 그 언니의 최대의 고민이란다. 뿐만 아니라 잘나가게 된 이후 친하게 지내게 된 사람들 역시 이 사람이 내가 돈이 많아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부터 하게 된단다. 이 언니가 나와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만나는 이유는 그 언니가 중학교 때부터, 그러니까 잘나가기 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 슬픈 일이다. 누구를 만나든 자신에게 접근하는 그 저의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인생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부럽지 않다 (라고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실은 좀 부럽기도 하고 ㅋ)

그러나, 이말 뒤에 내가 들었던 말이 최고였다. 그 언니 주변에는 현재 두 명의 남자가 있는데 한명은 잘생긴 남자이고, 한 명은 돈이 많은 남자란다. 잘생긴 남자는 자신이 돈이 많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고, 돈이 많은 남자는 자신과 결혼하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단다.

자신의 조건을 사랑하는 것 같다면서 언니와 만나는 두 사람을 조건으로 규정짓는 모습에 나는 매우 깜짝 놀랐다. 결국 언니는 한 사람은 잘 생겨서 좋은 거고, 한 사람은 돈이 많아서 좋은 거니까. 언니 역시 상대방을 조건으로 규정하면서, 상대방은 언니의 조건은 전혀 보지 않기 바란다. 그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 이보다 더한 모순이 또 있을까.

나,라는 존재 자체는 뭘까? 역시 신체적, 사회적, 환경적, 성격적, 물질적, 등등 여러 조건의 결합체가 아닐까? 여러 가지 조건들이 촘촘히 나와 상대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일진대, 그 조건 중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인데, 조건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꼭 나쁘다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함부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조건을 본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조건이 신체적, 사회적, 환경적, 물질적인 것보다는 성격적이거나 가치관적인 데 맞춰져 있을 뿐. 물리적인 부분만 조건인 것은 아니다. 비물질적으로 내가 누군가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물질적인 부분을 비교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덜 세속적이거나 매우 바르고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다른 것들보다 저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를 뿐인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감사한 건, 내가 뛰어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돈 많은 집의 외동딸도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보고 좋아해줄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다는 것이다. (성격이나 가치관은 뛰어나니? -_-아니요 ㅠㅠ) 그럼에도 나는 상대가 저런 미욱한 나의 조건들이나마 나를 사랑하기 위해 고려했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바라건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이 사랑에 있어서의 최고 가치라면, 나는 존재 자체를 사랑받는 인간이 되기 이전에,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길 소망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래서 사랑은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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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를 사랑하는 것.
조건과 상황이 아닌 직관을 존중할 것에 대해서 페이퍼를 쓴적도 있죠.
웬디양님 생각 잘 읽었습니다 :)

웽스북스 2007-09-10 13:07   좋아요 0 | URL
아, 그 페이퍼도 읽어보고 싶어요- ^^ 직관~

마늘빵 2007-09-1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행히 저는 돈이 없어서, 돈 보고 올리는 없다는. 그렇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그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고. -_- 근데 생각하다보니 염려할 구석이 없다는건, 어떻게 보면 불쌍해보이기도. 연민을 얻어서 유혹해야겠군요.

웽스북스 2007-09-10 13:07   좋아요 0 | URL
갑자기 이 대사가 떠오릅니다
내가 불쌍해서 좋은가요 좋아서 불쌍한가요

비로그인 2007-09-10 14:41   좋아요 0 | URL
그 대사 아일랜드에 나온거죠?
저 무지무지 좋아하는 대사랍니다 :)

처음엔 불쌍해서 좋아했고,
이젠 좋아하니까 불쌍합니다. 맞나요?

웽스북스 2007-09-10 16: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체셔님 흐흐흐~! 저도 아일랜드 완전 좋아했거든요 ^^

순오기 2007-09-1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건...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면 득이냐 실이냐를 따져본다는 것이죠.
내가 밑질 것 같은 사람과는 절대 결혼할 수 없다던데~~~~~~요?

웽스북스 2007-09-10 16:39   좋아요 0 | URL
참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다들 손해보기는 싫어하는 세상이니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