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Prologue 좋은 책은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을 때, 사실 나는 10문장에 5문장은 괴로워했고, 사실은 내가 난독증이었나?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고, 책갈피 꽂아놓는 것을 잊고 대충 기억을 찾아 읽어들어가다가 한페이지 가량 읽은 후에, 아 여기 읽었던 데잖아, 하며 좌절도 했고 얼른 읽고 다른 책을 읽고 싶어, 라는 생각도 스무번쯤 한 것 같다. 스스로가 본인은 나름 어려운 책도 잘 소화한다는 어이없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사실은 이런 내 모습에 조금 적응이 안되기도 했으나 이 책은 정말 꼼꼼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므로, 꾹 꾹 참고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책을 덮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한 머릿속,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이 책속 구절들, 인물들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작가가 읽는사람 마음에 남기기 원한 것들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것과는 상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형태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누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중 하나가 그 사람이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을 읽고 나는 이 책에서 '고로'라는 인물로 묘사되는 이타미주조 감독의 삶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아... 역시 생각했던대로 대단한 감독이었구나,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언급이 되는구나... 하고, 읽어내려가는 순간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10편의 연출작 중 9편을 흥행에 성공시키면서 일본의 대표적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날린 이타미 주조는 1997년 한 잡지사가 자신의 여성스캔들을 폭로하려 하자 빌딩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말 단호하고 확정적인 저 한마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단정형으로 딱 잘라버린 저 한마디를 보며 사람들을 보고, 나를 보고, 나는 참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저 일축해버리는 한마디에 고로 사후 고기토는 얼마나 힘들고 혼란스러웠을까 절대 그랬을 리 없는, 150%라도 확신할 수 없는 친구의 어이 없는 자살 원인, 수많은 사람의 추측과 단정들, 그리고 규정지어버림- 이런 것들이 정말 고로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했고, 그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풍문, 생각없는 지껄임 등을 들으며 더 알아보려 하지 않고, 고민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규정지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가두어둔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 누군가의 삶에 그저 단순히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접근하고, 호기심 충족을 목적으로 주어진 사실 몇 가지를 받아들이고 마치 다 알아버린 양 행동했던 나 자신이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짐하고 결심해 본다,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규정하는 '잔인한 폭력'은 행사하지 말자고

#2 죽은 자의, 이해를 구하는 변명, 예의 - 물장군

사실 '물장군'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한다는 시스템 자체가 참 독특하다

고로는 왜 자살을 결심했으면서도, 고기토에게 그렇게 많은 물장군들을 남겼을까, 이건 그렇게 황망하게 가버림으로써 친구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못한 고로의 고기토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단정과 규정 속에서 자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믿을 수 없는 이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점점 혼란스러워져만 가는 고기토는 물장군이 있었기에, 그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

사실 물장군은 고로의 죽음에 대한 끝없는 암시가 들어 있었지만, 어쩌면 살려줘- 라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장군을 통해, 또 그 외에 다른 것들을 통해 고기토는 고로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적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통속적인 이유는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어쩌면 그 물장군은, 그저 죽은 자의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참 고마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말없이 죽어버린 친구가, 사실은 본인에게 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는 사실 ^^

#3 '그것'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던 사건

이 책을 읽다 보면, 고로와 고기토의 청소년 시절,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던 '그 사건', 혹은 '그 일'로 표현되는 일이 나온다. 책을 읽으며 내심 도대체 '그 일', '그 사건'이 뭔지 궁금했다. 저자는 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다만 앞뒤 전후 문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그 일을 문맥을 통해 짐작하도록 했던 것은 문학적 장치라기보다는 아마 본인이 그 일을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데 대한 괴로움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경의 세월을 읽다 보면 그녀 역시 본인을 평생 괴롭혀 온 일에 대해 쓰는 것을 너무나 괴로워하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 역시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 참 괴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괴로움만큼이나 우리가 추측하는 그 일은 그리 대단케 느껴지지는 않는 일이다. 오히려 문학 작품을 통해서 더한 사건(?)도 겪었기에, 사실은 조금 김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한다고, 본인은 죽을만큼 힘이 드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객관화시켜버린 경우에는, 참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고, 그것 또한 참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겠다고

#4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방법

'아름다웠다'라고 표현되던 사람, 고로의 죽음 이후 그를 소중히 여기던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힘들어하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죽음이 가져다 주는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간다

고로의 조카이자 고기토와 치카시의 아들인 아카리는 '고로'라는 제목의 음악을 만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치유한다. 고로의 'girl for everything'이라 표현되던 그녀, 특별한 연인이던 그녀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이를 다시 태어날 고로라 여김으로 그 아이를 낳아 정성을 다해 보살피겠다는 결심으로 고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한다. 고로의 여동생인 치카시는 누구보다 오빠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 17세 '그 일' 이후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오빠를 되돌리고 싶어, 자신의 아들을 낳으며 다시 고로를 낳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로 오빠를 소중히 여겼다. 그림을 좋아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꼭 닮은 그림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 기르겠다는 그녀, 우라를 지원함으로써 산 자를 향한 마음으로 죽은자를 향한 슬픔을 승화시킴으로써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고기토는 그러한 마음들을 담아, 또 자신의 고로에 대한 마음을 담아 책을 쓴다. 고로는 죽기 전, 고기토가 자신을 글로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이 '체인지링'이라는 책은 이타미 주조의 죽음에 대한 가장 오에 겐자부로다운 극복법인 것이다

이렇게 각자 죽은 사람은 마음에 묻고,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보다는 산 자, 산 자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 대해 마음을 쏟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이타미 주조의 죽음이 우리에게 끝내 남겨준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다

#5 내 삶은 얼마나 진실한가

어떤 책이든 결국 내 이야기로 귀결시키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웬디씨는 (ㅎㅎ) 결국 이 역시 나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고로의 죽음 앞에서...

열 여섯 살짜리 고기토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일러왔네.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혹은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계속 말해왔지. 바로 얼마 전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대 자신이 '거짓을 양식 삼아 내 몸을 먹여온 것'은 사실이었어. 우리 두 사람 모두 말야.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출발'이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번 경우 '출발'은 나 혼자서 할게. 그리고 우리들 나이가 되면 오직 혼자만의 출발을 각오하고 나면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어. 타인에겐 물론 방법이 없어. 본인 자신에게조차! (중략)

그러니 고기토여, 나에게 고별이라는 시가 이해되는 것은 실은 여기까지라네. 삶의 연속선상에서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의 후반부는 출발한 후에야 비로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내게는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

고로의 죽음은 결국 거짓을 양식삼아 본인을 먹여온 데 대한 죄책감에 있는 것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면, 졸업하는 학생들을 향해 선생님께서 그들의 지식을 그들이 입을 이익을 위해 쓰지 말 것, 간사한 곳에 지식을 쓰지 말 것이라는 당부를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이를 얼마나 다짐하고 곱씹었던지... 마치 고로가 랭보의 시를 곱씹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 역시 조금은 간사해지고, 나의 이익을 위해 나의 지식을 사용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합리화시키고 있는 모습이 많고, 이런 모습은 고로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거짓을 양식 삼아 제 몸을 먹여온 것'에 크게 다르지 않다

65세의 고로씨는 죽음을 택했다, 그것이 그가 랭보의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하지만 스물 일곱 웬디씨는 좀더 진실한 삶에의 의지를 택한다. 비록 평생 결심과 의지로 끝나버릴 일이라 해도, 이 결심과 의지는 멈추지 않기로 ^^

참 많은 생각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느라 괴로워하고, 끊임없이 자책했던 독서의 시간들일지언정,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할 뿐 ^^

Epilogue... 그나마 위로

사실 책을 읽으면서 참 위로 받았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고기토가 쓰는 글이 쉽지 않음을 고로가 지적하는 부분

그런데 고기토는 말야, 생각해보면 노랄 일이지만 최근 30년 정도 독자를 생각해서 주제나 글쓰기 방식을 택한 흔적이 없어! 자네는 소설의 초고를 쓰고 나서 계속해서 날마다 하루 열 시간씩 일을 하면서 그걸 완전히 고쳐 쓰지? 당연히 문장은 읽기 힘들어져서 분명히 연마되어가긴 하지만 자연스런 호흡이 아닌 인공의 음악이 되거든. '이화'라고 하는 자네가 자신있어하는 수법도 말야, 페이지마다 낯선 이미지와 맞닥뜨려야하는 어떤 독자가 같은 작가의 책을 한권 더 살 마음이 들겠냐고. 이것도 자네의 용어법이지만 노작이란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 독자에게 시킬 건 아니지.

음하하하 역시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전 세계 독자가 어려운 거였어! 뭐 어려우면 어려운 만큼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역시 난독증은 오버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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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꼼의 웬디양님이신가요? 추천하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08-05 00:55   좋아요 0 | URL
앗, 반가워요 쥬베이님! 북꼼의 웬디양 알라딘에 둥지틀어보려고 기웃기웃하는 중이에요 ^^

karma 2008-04-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솔직하고도 진솔한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저녁엔 2008-08-2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어젯밤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