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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동시집 37
류선열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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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중에서

참새 굴이
거기 있지?
그럼 손을 넣어 봐.

참새 두 마리
매끈한 알이 다섯 개
만져지지?

그럼 됐어.
그냥 놔두는 거야
담에 또 잡으려면.

  

그리자이아 애니를 보자 사치가 나왔다. 전형적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그녀는 마치 아이처럼 윤리에 반하는 엉뚱한 짓도 친구가 부탁한다면 서슴지 않고 한다. 남주는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좀 더 어리광부려도 된다고. 불행하게도 그녀는 일찍부터 부모를 여의었다. 남주가 있는 학교가 없었더라면, 남주가 그녀의 과거에 어느 정도 연관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멘토가 될 만한 그 누구도 찾지 못했으리라.

 

 이 시에 나오는 아이는 그 학교에서 꼴찌를 하는 문제아다. 꼴찌이기 때문에 그는 학교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고(선생님이 먼저 낙인을 찍는다.) 어린 나이에 그는 적당히 눈치보고 살아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하소연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공부 안 한다고 요즘처럼 구박받을 레벨이 아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일하는지 이 시집에서는 거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술에 만취해 언제 간경화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 심통이 난 아이들은 자연에 화풀이를 한다. 잠자리 시집보내기와 개구리 똥꼬에 바람 불어넣기는 시인 자신은 물론이고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본인도 자주 했던 장난이었다. 그러나 약간 변명해보자면, 역시 장난의 심각성과 잔혹성은 남자애들이 최고였던 듯하다. 그들은 체력이 부족했던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항상 지기만 했으며 지기를 싫어했던 나는 알아서 강해져야 했다.

 그러나 아이가 한 번 본 적이 없을 돈 있는 어른들과 사회는 훨씬 더 잔혹했다. 요술공주 밍키가 트럭에 치여 사망한 결말처럼, 이 시도 암시적이긴 하지만 마을이 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고 누이는 집에서 버티고 있다가 강물의 범람에 휩쓸려간 듯하다. 갑자기 너무나 철들어버린 아이는 노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강을 보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시인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급속도로 노화되어 30대 후반에 죽는다. 그 나이에 없어져 물에 묻힌 고향을 그리워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래서 그의 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섬뜩하다. 악동들이 등장하지만 항상 시인은 그들과 그들의 부모를 능가하는 무언가 무시무시한 게 존재함을 강조하고 있다. 참새 두마리와 알 다섯개를 내버려두라고 그는 단말마로 절규한다. 요새의 아이들은 어떤가. 모래 놀이터는 오염이 된다며 물렁물렁한 콘트리트로 바뀌고 있다. 그나마도 학원과 피씨방이라는 대안 장소(?)로 인해 갈 시간이 없다.

 

  

결국 희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동무들은 하얀 눈에 사라지고, 만년꼴찌에 게임조차도 매일 동무들에게 지던 시인만 남는다.

 그는 행방을 모르거나 혹은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친구들을 꿈에서라도 목놓아 부른다. 그는 북두칠성에서라도 물 길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누이를 만났을까.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사를 적당히 하는 세상이 왔음 한다.

 

 

그나저나 옛날엔 강원도가 얼마나 깡촌이었으면 뱃사공을 하필이면 '강원도' 떼사공이라고 놀려댔을까... 그때문인지 강원도 사람들은 서울에서 있는 거라면 똥이라도 뭐든지 자기네 고장에 두려고 하는 판에 아주 요즘 환경오염이 말이 아닌 것 같다.

 

강원도 떼사공

사공 떼사공
강원도 떼사공

초여름 장마로 강물이 불면,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범여울 물이 콸콸 불어나면, 강원도 정선 땅에서 뗏목 배가 내려와요. 앞 사공 뒤 사공 사이좋게 뗏목 배가 내려와요.

사공 떼사공
돼지우리 지어라.

어쩌다 풋나기 앞 사공이 범여울 한복판으로 배를 몰면, 황소바위도 못 가서 몇 동강이 날 텐데, 길다란 뗏목배가 여울 복판으로 가면 우리들은 목청껏 놀려 대지요. 돼지우리나 지으라고 신나게 놀려 대지요.

강원도 떼사공
돼지우리 지어라.

범여울 칼바위에 뗏목은 갈가리 찢겨 돼지우리가 되어요. 두멍소 나팔 돌림에 빙글빙글 돌아요. 강원도 떼사공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우리들은 그만 줄행랑을 놓지요. 붙잡히면 경을 칠 테니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놓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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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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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대학 동창이기도 한 어느 소설가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로 검은 차를 몰고 온 사나이들에게 끌려갔다는 것도, 이제는 문학인들의 집이 된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내리 사흘 동안 "청동상"처럼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려진 일이었다.
이후 박정만은 이 사흘간의 고문에서 비롯한 정신적 번민과 육체적 고통으로, 그에 따른 연이은 폭음으로, 7년여를 신음하던 끝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
우리들의 평화주의 5

박정만

어둠 속에서도 한 덩이의 숯과 소금이 눈을 뜨는 것을 보았다. 불의 장미는 미인의 꿈속으로 파고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한 그릇의 장국 속에서도 그의 견해를 올바르게 피력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끝에는 으레 공작의 뿌리같은 무지개가 피었으며 그 혈통을 잔인하도록 선명하게 주장했다. 난만하게 퍼지는 것은 빛깔이 아니라 공기 중의 풀잎의 순도 때문이다. 미인은 한 가닥의 순은처럼 꼭 그러한 길에서만 나타난다. 청명 때였다. 먼 산이 갑자기 내 이마에 와 멎고, 홀연히 어디선가 청아한 꾀꼬리 울음소리가 한마장의 거리를 달려와 내 이마에 멈추었다. 아무래도 시국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모두들 절대음감인 줄 알았고, 최소 데미안은 다들 정독한 줄 알았고, 다들 인권의 기본은 알고 있을 줄 알았고, 다들 피아노 정도는 좋아할 줄 알았음.

 

 결국 기대치가 너무 큰 걸 알고 실망해서 초딩때부터 히키코모리가 되었지만. 그러니 첫 출발부터 틀려먹은거지. 다른 사람은 절대 본인이랑 같아질 수가 없음.

 

일단 이 책의 저자를 내가 싫어하는 이유부터 시작하겠다.

 첫째, 꼰대다. 좋은 꼰대건 나쁜 꼰대건 간에 그가 꼰대라는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유는 신춘문예를 찬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도 신춘문예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엔 찬성한다. 가뜩이나 연줄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인데다 보수적인 문단계다. 신춘문예가 없어지고 추천으로 문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또 여성 문인들이 얼마나 '문단 내 성폭행'으로 상처를 입어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어중이떠중이인 인간들이 시인입네 행세하고 다닐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신춘문예가 '순결'한 정신을 위해서라니... 토가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순결한 정신들이 순결해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몇몇 인간들이 미성년자나 문인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다니시나? 그리고 등단 제도 아래 감추어진 문제들은 정기적으로 성찰할 문제가 아니라 볼 때마다 즉시 없애야 할 문제다.

 

 두번째, 계속 저 세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문장 하나하나마다 계속 저 세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심지어 '시인은 저 세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세상과 다른 저 세상을 만들고 그로써 사회에 저항한다'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굉장히 반박할 말들이 많이 떠올라서 읽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엔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 세상을 부정하면서도 관념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미래파 시인도 있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시인 본인들 중엔 저자가 틀렸다고 펄펄 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박정만 시인이라던가. 내가 그 시절 태어나보진 않았어도 이 정도는 안다. 그 시대엔 운동권 사람이랑 술 한잔 하는 것이나 시를 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무기였다. 그는 결코 이유없이 남산에서 얻어맞은 게 아니고, 날벼락같은 그 사건에 분해서 마구 시를 써댄 게 아니다. 아마도 운명적인 만남이 얼마만큼이나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지 그는 모르는 것 같다. 그건 슈타인즈 게이트나 리제로 같은 애니메이션을 봐도 알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계속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 이야기하시는데, 문학에서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이야기도 있다. 아리랑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집요하게 가난한 남자와 부유한 여자의 한 과제에 천착하느라 아리랑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용운 두 번 다룰 걸 한 번 다루면 될테니 충분한 여백도 있었다. 최소한 황진이에서 이를 충분히 다루어도 되었을 텐데, 황진이의 실연과 상처는 몇 문장 안 되는 암시로만 끝났다. 게다가 황진이를 자유로운 여성으로 완결지은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황진이는 조선의 극단적인 여성 차별시대에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싶어서 할 수 없이 그런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김소연의 시집 말미에서 그의 문장을 처음 만날 때 난 그가 미래에 이어령이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문학을 접하려면 거의 반드시 통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졸업해야 할 차기의 빛나는 문학 꼰대이다. 그나마 그 시집의 서평은 문장이 아름답기나 했지, 이 책에서는 오로지 '내 말이 맞아'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처음부터 이육사의 초인을 가지고 이리저리 말장난을 하셔서 무지 초집중을 하고 읽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결국 모두가 이육사의 그 시를 읽고 하는 생각과 일치해서 허탈했다. 이런 상업성만 탁월한 책에 말려들지 말고 제발 이 책에서 나오는 시집을 사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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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311
장석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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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위하여

번들번들한 살갗에서 시작된 그것을 나는 모른다

누구의 눈물과 누구의 체액이 나를 슬프게 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나의 일부였던 것이 사라지고 있다
시원은 어두운 주름이었다

그것이 나를 왜곡시키고 나를 해석한다
나는 노예이므로 굴종에 쾌감을 느낀다
미래에 사랑이 이루어지고 행복엔 날개 돋을까?

개좆 같은 진보, 개좆 같은 진보주의
미래라구?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I'll be crying......)

과거에 묶이는 일이 죄인가
몸 바쳐 사랑할 수 있다면 권력의 노예가 되어도 좋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일이 벌 받을 일인가(사랑이 하룻밤의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심봉사라면 눈을 뜨리라 공양미 삼백 석 그것도 자본이란 말인가
사랑 앞에서 눈 감는 자 나는 부속품이다 나는 기계의 일부이며 지금 녹슬고 있는 과거의 일부이다

무릎 꿇는 자의 행복을 거부하지 않겠다
천천히 부서지겠다
5월의 아카시아처럼

추억을 향해 후진하는 탱크로리, 운전석의 사내, 과거가 조립한 사내, 어디선가 본 듯한, 현재 속의 과거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의 흰 바람

그림자 없는 아득한 옛 땅, 이득이 없는 옛날
찬란하여 부서지기 쉬웠던
어떤 날의 불안, 부란
태양의 시절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 위에 해가 있다, 해 위에 풀이 있다, 풀 위에
빨간 피막을 걸치고 뒷걸음치는 석양
촛불 꺼지기 전에
금지되기 전에
황금의 기율 무너지기 전에
긴 사랑을 나누어야 할 밤



사람 위의 해, 해 위의 풀, 풀 옆에
길게 눕는 달그림자
바람의 손가락 피막을 찢는다



물 밖에 사람과 해와 풀
나무가 녹아내리고, 빌딩이 엉겨붙고, 아스팔트는 물컹거린다
점막은 따갑고, 눈은 충혈되고, 입속의 모래가 뜨거워진다
모래 혓바닥 위에는



지금의 나와 옛날의 나 사이에 사막 같은 동형성
복제 인간의 벌어진 입을

오동나무 잎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면
미역 같은 혓바닥으로 조롱할 수 있다면
차라리 질병으로 도피할 수 있다면

선언하리라 나를 파괴할 권리
셀프 킬러, 킬링 필드, 올드 필드

그곳에 옛날의 나
오늘은 오늘의 병든 나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내리꽂히는 불꽃
예광탄처럼 빠져나가는 타액, 정액, 림프액
그리고 신선한 분비액
한 방울 남지 않았다

내 몸의 크레바스, 빙하의 눈썹
그 순결한 틈으로
어둠이 빨려든다

새로운 돌연변이가 태어나는 구멍
잡종이여 번성하라
광합성하는 동물이여 지복을 누려라
나의 미토콘트리아는 외계가 고향
나는 흑체, 나의 흑체 복사, 플랑크의 상수
불변하는 나, 불꽃 속의 과거, 내 안의 불꽃

그대 따스한가, 그대 어디에서나 나를 느낄 수 있는가, 빙하 속에 어둠이 있는가
결빙된 어둠의 결의처럼 내 혀는 아직 따스하다

날이 밝아온다
사랑이 끝난 후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질이 말했다 : white male anerican
울부짖던 에디가 말했다 : white male american

나는 백인이 아니었지 미국인이 아니었지 남자가 아니었지
아니 남자였지 나는 헝그리 코리안
살아남기 위해 코메리칸이라도 되고 싶었던
어머니 표정 없이 말하네

죽을 때까지 선하게 살아라
아들아 나의 아들아
고난이 널 찾아올 테지만 이겨내라
아픈 몸과 더 아픈 몸을 네 몸처럼 사랑해라
아름다운 남자가 되어라 나의 작은 악마야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버리고 포기를 배워라
이제 잠들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69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네 정맥 속의 뱀을 느낄 수 있단다

96년의 나는 늑대인간이었을까

안락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엄마 얼굴을 들어 날 봐요
웃어봐요 담배에 불을 붙여줘요
어둠 속에서 할렐루야
한 땀 한 땀 세월을 읊조리는
엄마의 목소리 자꾸 가벼워져
나는 웃다가 울기도 하지만
똥구멍에 털이 돋기도 하지만
엄마 오늘 밤엔 울지 말아요
대신 우는 나를 쓰다듬어줘요
따스하게 발톱 내밀고 고양이처럼
상처를 핥아줘요 이건 열상이에요
내가 모르는 아주 먼 곳의 전염병이에요
나를 잣는 엄마 이제 풀어줘요
할렐루야 울지 말아요
한 번도 없었던 사랑 때문에
저 푸른 초원의 그림 같은 약속 때문에
쓸쓸하게 흔들리는 엄마

69년의 나는 늑대 새끼였을까
그때 암스트롱이 달에서 손을 흔들었다
슈메이커-레비는 흰 눈썹 같았다
눈썹 한 올 하늘에 심어두고 흰 눈물 흘리면서 그는 말해싸
홀로 있는 자 사죄하리라 결국 하나가 되리라 한 덩어리 비애가 되리라

그가 입을 다물자
하늘의 눈썹 같은 새 나에게 왔다

나는 기원했다
내 몸에 둥지 틀고
알을 낳아다오 검은 새여
사이프러스 언덕 넘어 밀밭을 휘감는 바람 밑에서
나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

(save me)

양질의 상품이 필요해요 불태환지폐는 소용없어요
목덜미를 꽉 물어줘요 바람의 턱에 돋은 수염처럼
내 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불꽃이여

(kill me)

황혼에 물든 저녁 연기, 가을비, 논 가운데의 허수아비
이 모든 이미지들의 가치를 교환해줘
예순아홉번 소멸된 후에, 선라이즈 선셋, 또 하루 지나가는데

(forgive me)

입속의 손가락이여
바람을 맛봐라
내 몸에 뿌리내린 그의 지문을 더듬어라

번들번들한 살갗에서 시작되어
텁텁한 숨결로 종말을 맞이한 나의 애인이여
나는 볼 수 있으나 내 눈은 볼 수 없고
볼 수 있으나 나는 어두워
입속의 손가락은 피 흘리는데......

옛날에 나는 한열이를 위해 혈서 썼고
불사파는 형님을 위해 단지했다네
단지 했을 뿐이라네, 단지 해 있을 뿐이었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였기에
단지 소멸할 뿐이라네
사랑뿐이네

69년에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는 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운명을 결탁했나
나는 모종의 비리 아닌가 나는 음험한 계약 아닌가
너에게 나를 주마 이리로 오라
누워 입을 벌리라
달 뜰 때 내가 보이리라

69년 5월에 암스트롱은 고중력 실험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호텔 캘리포니아에는 69년의 핏빛 와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38구경 권총, 러시안 룰렛
한 발의 총알이 바로 나였다

양막을 뚫고
탄두에 피를 묻히고 날아가는 은빛 총알

탄착점에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일기ㅡ나를 전달해줄, 나를 실어갈 콘베이어 벨트. 거리에 그대의 냄새. 광교 건너 종로 쪽으로 방향을 틀 때, 수갑과 올가미는 도처에서 나를 노린다. 그대가 쇠붙이라면 나는 숫돌이 되겠다.

그를 증오한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일기ㅡ나를 구해줘요. 그대의 사랑이 나를 만들었으므로, 잠시 후이 적막을 위해, 이제 문을 닫아줘요. 성동구 송정동과 성수동의 경계를 비추는 새벽 2시 40분의 가로등. 나는 곧 잊혀질 테지만, 성동 소방서 송정 지소의 불빛이 그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그대의 배면으로 스며드는 것,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사랑이 끝난 뒤, 날 위해 빛나던 그도 빛을 잃어버리겠지. 새벽 2시 40분의 가로등은 꺼지겠지. 당직 서는 젊은 소방교의 하품. 성동구 송정동과 성수동의 경계를 비추는 새벽 2시 40분의 가로등.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불빛, 2시 40분의 불빛. 나를 점령하고 있는 환한 악마여.

그대가 나를 순식간에 죽이리라

목적 없는 목적성이여
작고 애달픈 나의 연인이여
눈구멍에 내려앉는 나비여
흙과 번들번들한 살갗에서 시작된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여

저주 받으리 한 마리 도마뱀에게 위로 받으리

개좆 같은 추억, 진보하는 과거, 진보하는 상처와 함께

  

아나키스트들에게 정치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 즉 국가의 없어짐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꾸만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최근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서는 아나키스트가 자연으로의 회귀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놓고 아나키스트라는 제목을 시집에 내걸고 있는 이 시에서는 도심이 만발한 국가 속에서 선심 쓰듯 피어나는 초록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꽃대 속에 피어나는 무수한 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권혁웅의 제법 훌륭한 시평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다지 고독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마초들의 세계에서 남자들간의 사랑을 주장하는, 뚱딴지같다 못해 '주먹을 부르는' 다소 도전적인 인간이다. 그의 사상을, 그의 시를 비웃는 많은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얼마나 달관했으면 두 남자 간의 주먹다짐 싸움을 사랑의 체위로 만들어 매우 새로운 BL 시를 창조해냈겠는가. 그러나 진보와 간단히 공동체로 맺어지는 결말 또한 그가 바라는 바는 아닌 듯하다. 그는 자연으로 쉽게 돌아가버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도리어 시간을 돌려버리고 싶어한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허공으로 날아서 다시 본래 있던 나무에 붙고, 죽었던 사람이 죽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살아가고, 자신이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포말로 기화하여 소멸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아나키스트일지도 모르는 이 시인도 자신의 소망이 이룰 수 없는, 혹은 먼 훗날 시인의 사망 이후에 이루어질 꿈임을 알고 있으리라.

 

 

또다시 낙타라는 시로, 시집 안에 들어있는 니체를 만났다. 

 타클라마칸에 내리는 눈에서도 낙타가 다시 한 번 주요 등장인물로 출현하는데, 이 두 시가 이 시집 안의 시 중에서 유머가 가장 넘치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군데군데 들어있는 섹드립도 주목할 만하다. 마리아와 SM과 술 푸는 기생을 제법 멋드러지게 연관시켜 놓았다.

 

 

우리나라 노래의 텍스트를 풀어헤쳐서 마치 매드무비처럼 늘어놓은 건 독특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출중한 섹드립에 감탄했을 뿐, 그의 풍부한 음악 지식에 감탄하진 못했다. 솔직히 시인의 나이 정도가 아니면 그닥 공감할 수 없는 음악가들이 많았다. 김추자라거나 인순이라거나 조용필이라거나. 유일하게 공감가는 게 '낙타하면 카멜이라는 담배와 캐멀이라는 밴드가 생각난다'라는 한 마디 정도였으니. 게다가 김추자에게 보내는 연서라는 시에선 로쟈 분이 미리 서평에 쓰신대로, 마지막에 촌철살인의 한 줄을 더 집어넣어야 했었다. 겁이 많았던 건지 전반적으로 시인이 추진력이 부족했던지.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게 아나키스트의 한계라고 본다.

 

 

 

초반부터 아주 격렬하게 근육 넘치는 건축계 노동자나 술에 취한 남자들 간의 BL을 찬양을 하시기에 이 시에 나오는 유일한 애니메이션과 메텔은 강력한 위화감까지 준다(...)

 

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 중에서

1
크레모아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
우리의 만남. 부자연스러운 행위. 시와 혁명.
술과 사상. 노동자와 시인.
우리와 그들의 사랑은 소도미야.
소돔 성이 소도미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어.
사랑의 힘 때문이야. 서풍이 분다.

혁명이 뭐겠어. 우리 결혼할래.
헬로와 헬로와 꽃들이, 헬로와 헬로와 우리들에게,
청첩을 돌린다면. 너와 나의 결합.
오래된 진리와 형체 없는 유행의 결합.

내 삶은 recycled life. 폐기해줘. 철폐해줘.
모든 법칙들을, 모든 용기를, 사랑의 만용을.
질풍노도의 시대. 그 시대의 아들이.
헤이 걸. 큰 젖을 가진 아가씨. 날 위해 울어줘.
이봐. 웨이트리스. 천 하나 더.

지하철공사 노동자들. 술을 마시고 있어.
파업 철도. 강철의 힘이란 옛날의 추억이라구.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아름다운 여인 메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 역에 멈춰서면
차량 기지엔 햇빛이 가득했네.
투쟁하는 노동자의 눈동자
그런 시대. 그런 아득한 날들 앞에
항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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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쉬킨 탄생 210주년 기념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박형규 옮김 / 써네스트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젊은이의 무덤 중에서

아주 오래 전이었지, 늙은이들은
그의 발랄한 명랑함에 반하여
어딘지 슬픈 듯한 미소를 띠고
서로들 말하고 있었다ㅡ
"우리들은 윤무를 사랑하였지,
우리들의 지혜도 빛났었고,
하지만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자네도 지금의 우리 처지가 될 거야.
우리들이 그렇듯, 오, 장난기 많은 이승의 객이여, 자네도 샐녘이 차가울 거야.
지금 놀게나......" 그러나 늙은이들은 살아 있고,
그는 한창 나이에 시들어버렸다,
그가 없어도 벗들은 요란한 술잔치를 벌이고 있다,
어느새 마음에 드는 다른 벗들을 찾아내어.
젊은 처녀들의 이야기 가운데서도 거의 이름은
이제는 드물게, 아주 드물게, 아주 드물게밖에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지난날 처녓적 그를 사랑했던 사랑스러운 유부녀들 가운데서
어쩌면 딱 한 사람만이 눈물을 흘리며
사라져버린 기쁨의 기억을
여느 생각으로 불러낼는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소설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있게 말한다. 나쁜 짓이 나쁜 짓임을 알게 해 주는 게 소설이라고. 잡문집에서 그 이야기를 집어넣은 이후로 그의 소설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은 권선징악이 전부인 것도 아닌데, 이 점이 바로 비소설 위주로 독서를 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을 보면 왠지 나쁜 일이 자연스레 나쁜 일로 보인다.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기운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잘 써도 인터뷰가 왠지 요상한 사람의 글을 보면 기분이 찝찝하다. 지금 고백하자면, 그래서 내가 박범신의 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조건 소설은 고전을 많이 보고 현대소설과 비교하는 게 좋다. 시집 리뷰에서 왜 소설에 대한 글을 이렇게 길게 쓰느냐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시집보다는 소설을 많이 보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한 것.

 

 

 

시는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까?

 시는 유달리 정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평소에는 꺼려하는 사회 혁명을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속성이 있어왔다. 장편의 시들을 제외하고 SNS에 전부 담을 수 있고, 더 유감스러운 이야기지만 저작권이 허술해서 유포되기 쉽다. 그러나 그런 만큼 포스트잇에 쓸만한 조그만 글귀를 원하는 네트워크 세대들에게 잘 맞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 때엔 고은이 SNS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밥을 먹는다.' 같은 글을 써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충 보면 초등학생 일기장에다가 이렇게 써도 쉽게 꾸지람 받을 글이다. 그러나 글을 쓴 타이밍, 고은의 생애, 무덤에 묻힌 젊은이와 노인의 생존(밥)이 그 문장에 담겨있는 걸 알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 고은을 좋아하지도 않고 푸쉬킨과 고은을 비교할 생각은 없다. 사실 시로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연애사와 사생활을 역사와 결부시킨 건 푸쉬킨이 더 뛰어나다.

 

 

그리고 시가 소설을 능가하는 최대의 강점이 있는데, 진심을 담아 써야 좋은 글이 되기 때문에 태생부터 거짓인 소설에 비해 거르기 쉽다는 점이다.

 한때 미래파들이 자기 내부를 탐색하는 난해한 시들을 만들어내서 모두들 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좋지 않은 시들을 걸러내기가 쉽다. 사회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는 소수자, 힘 없는 자들의 슬픔은 어떤 장르의 시이던간에 다 나타나게 되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령 행복한 시?라고 해도 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고은의 글귀처럼 우리의 행복 밑엔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존재한다. 그런 게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좀 피하게 되는데, 한 가지 예외를 빼고는 얼추 그 예감이 맞는 것 같다. 푸쉬킨의 연애시는 대부분이 실패, 눈물,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심지어 성공을 짐작하고 행복에 넘치는 연애시 하나는 그의 착각으로 밝혀졌다.) 국가의 압박과 자신의 위에 군림하는 왕은 그에게서 자유를 박탈해갔다. 그러나 그는 자연, 특히 바다를 바라보면서 저 너머로 탈출하여 학교시절 친구들과 같이 사는 자신을 상상하며 살아갈 용기를 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많이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테러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옹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러시아에서 고립되었다. 러시아에 자유(?)가 올 때까지. 개인사는 결코 사회와 분리되어있지 않다.

 

  

 이백년 뒤에나 푸쉬킨이 러시아에 다시 나타날 거라고 고골리가 그랬다는데, 그가 탄생한지 이백년하고도 십년이 지나도 푸쉬킨만한 시인은 세계 어딜 찾아보던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 잘하자. 추방시켜 놓고선 왜 돌아가실 때 찾아 씁.

 연적도 좀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다 ㅎ 경쟁을 붙여서 쉽게 이기면 재미가 없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푸쉬킨은 불우했다. 아내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놈이 설마 자신의 처제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아내를 쫓아다닐 줄은 몰랐던 거 같고... 그토록 비열한 족속을 라이벌이랍시고 만났으니 그렇게 어이없게 죽은 거라고 생각함. 결투신청을 하고나서 총을 뽑아서 쏘다가 죽는다.

 솔직히 이 시인은 그 자신이 찬미했던 바이런보다 더 괜찮지 않았나 싶다. 요새는 시인 탓은 아니지만 충분한 슬픔을 겪지 못했거나, 혹은 슬픔을 겪고도 멀쩡한 정신으로 이겨내는 시인이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선 슬픔과의 싸움을 다룬 건 박소란 시인 정도인데 그분은 역사의식이 없고.. 이겨내야 멀쩡하게 글을 쓰는데, 김지하처럼 미치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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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 Workers 2017.06.01 - 31호
워커스 편집부 지음 / 사단법인참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가 중혼한 일본인 부인의 외삼촌은 조선에 파견됐던 A급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윤봉길 독립투사에 도시락 폭탄을 맞고 한 쪽 다리를 잃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출처: http://m.egloos.zum.com/bjb0398/v/4134257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하자면 어떤 이글루스 블로거가 대통령 남성 후보들을 여자로 그리고 여성 후보를 남자로 그렸었습니다.

 

 지금 전병헌 당시 민주당 선대위 전략본부장이 심후보를 겨냥해 사표 방지 켐페인을 벌이겠다며 망언했다는 글을 보고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다가 '인천엔 충청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아요'라는 구절이 나왔었는데, 이번에 심상정을 많이 뽑은 데가 제주와 울산 다음으로 인천이고 서울 권에서는 최고이다. 설마 싶지만 모함하는 건가..

 정리하자면 애니메이션 오타쿠가 아닌 일본 오타쿠들 중에서 대놓고 혐한 메시지가 뜨는 애니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용서를 빌지 않는가 이제 일본의 용서를 받아 주자(???)라고 근본도 없는 말을 하는 애들은 이렇게 받아줘야 겠다.
 1. 너 롯데 잘 되게 하려고 그러냐? 그럼 사드 너네 집 뒷마당에다 깔면 되겠네?
 2. 731부대 보내버려야 겠구만이기.
 3. 어휴 일본가서 사세요 그럼 왜 이런 헬조센에서 사세요?
 4. 존나 내가 다 쪽팔리니까 일본에서 조센징 티 내지 마시고 ㅛ

  기아차 1사1노조분리 사건 정리. 혹시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추가시켜주시길 바람.
  1. 발단- 특별채용 합의 이후 이견: 말 안 듣는 비정규직 짜르고 신규 고용해서 뺑이 돌리겠다는 거임.
  - 지부 파업 먼저 하는 데 대한 논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걸 굳이 추가파업이라고 함.
  2. 갈등
  - 임금 투쟁: 정규직들 마음 급해짐
  - 사내하청 조합원들의 동요: 강경노선 아니냐, 정규직과 조율하자 등.
  : but 비정규직을 단 한 명도 정규직화 안함.
  - 2심 승소: 법을 지키라는 요구 당연화
  3. 분리
  - 기아차 지부장의 감정적 결정, 기아차 조합원 간 관계
  - 가해자 바꿔치기: 재벌, 자본->정규직 노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같은 현상에 다른 의견 잘 봤다.
 근데 북한과 통일해야 한다고 평상시 그렇게 주장하던 매체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독립된 국가를 만든다는 뉴스 바로 보이니까 북한과 남한의 2국가체제 주장? 속이 너무 보이네. 유행 따라가시나? 아님 심상정이 대표인 신좌파도 그렇게 원래 좌파랑 2정치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퉁치시려고?

 성소수자, 오타쿠들도 차별받기는 하는데 소수정당이 여당되니까 자기들도 차별받던 시절을 모르는 거 아닐까욤? 그러다보니 자기네들이 차별받던 대로 똑같이 다른 소수자들에게 행하는 거?

 

 꼰대의 한줄이 또.
 이 새끼들은 신고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는거 같음. 신고하면 아예 계정 지워버렸음 좋겠다. 이성애도 사생활이에요 이 사람들아.

 몰카에 대한 글 읽다보니 왜 내 뺨때린 친척 자꾸 생각나냐. 기사에서는 딱히 엄벌에 처하란 이야기는 아니라고 그러는데 적어도 내 경험의 한도에선 엄벌 내려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놈이 나한테 그러고나서 나중에 엄마한테 돈 빌려달라해서 엄마가 나가라고 하니까는 진짜로 나가서 사업하다 망했다. 내 부모하고는 얼굴 보는데 내 얼굴은 보기 싫은지 날 피해다님 ㅋ

 여기서 처음으로 다리아 님의 생활방식에 문제를 제기해 본다. 남편 대신 방을 정리해준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남편의 약간 지저분한 방을 참아주고 산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한 방에서 같이 산다면 방을 더 깔끔히 정리하는 사람이 방을 청소하면 된다. 그게 왜 여성이 손해를 보는 일일까? 각방을 쓴다면 남편의 방은 냅둬도 된다 보지만.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명숙이 쓴 기사보고 너무 기가 막혀서 말한다.
 연애할 때 돈을 내지 않는 여성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처단해야 할 넷상 펙트공격이고, 아우슈비츠 피해생존자가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 감정적 대응을 못하게 하는 처단이냐? 연애할 때 자판기 커피 하나 안 쏘는 건 좀 문제있는 거 아니냐? 갈수록 한국 페미니즘이 바닥의 끝으로 추락하는 게 보인다. 하긴 뭐 책을 읽은 게 있어야 쓸 게 있지. 고추 안 달린 거만 믿고 현장 경험만 쌓는 그거 말짱 헛거다.

 

 

 

 물론 다양성은 존중해야 옳지만, 연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싸우며 연대에 올라가려고 자기네들끼리 몸싸움 하다보면 연대할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결국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서로 각자 사업을 하는 데엔 유리할 테지만 극단적인 변화와 자본주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피지배자를 착취하는 공식을 화염병 공식으로 깨뜨려야 하는데 뭘 그렇게 자꾸 우회해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어떤 나라가 테러로 사람 죽이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차피 지금 테러하는 그 사람들이 다 죽어도 그들이 원하는 게 실천될지는 의문이며 아마도 당신이 그 나라에 있었으면 그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아무튼 윤봉길이 도시락 폭탄을 터뜨려 일본 사람 다리 하나를 날려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일본에 위안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지지하는 지금의 흐름이 생긴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렇다고 본다. 우리도 기업이 나랑 주변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우리도 일본과 중국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넘보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꼭 주변 만만한 사람들의 미운 점만 보고 SNS에서 이를 저격한다. 심지어 이름도 정정당당히 못 쓰고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비열한 네트워크 인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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