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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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대학 동창이기도 한 어느 소설가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로 검은 차를 몰고 온 사나이들에게 끌려갔다는 것도, 이제는 문학인들의 집이 된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내리 사흘 동안 "청동상"처럼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려진 일이었다.
이후 박정만은 이 사흘간의 고문에서 비롯한 정신적 번민과 육체적 고통으로, 그에 따른 연이은 폭음으로, 7년여를 신음하던 끝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
우리들의 평화주의 5

박정만

어둠 속에서도 한 덩이의 숯과 소금이 눈을 뜨는 것을 보았다. 불의 장미는 미인의 꿈속으로 파고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한 그릇의 장국 속에서도 그의 견해를 올바르게 피력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끝에는 으레 공작의 뿌리같은 무지개가 피었으며 그 혈통을 잔인하도록 선명하게 주장했다. 난만하게 퍼지는 것은 빛깔이 아니라 공기 중의 풀잎의 순도 때문이다. 미인은 한 가닥의 순은처럼 꼭 그러한 길에서만 나타난다. 청명 때였다. 먼 산이 갑자기 내 이마에 와 멎고, 홀연히 어디선가 청아한 꾀꼬리 울음소리가 한마장의 거리를 달려와 내 이마에 멈추었다. 아무래도 시국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모두들 절대음감인 줄 알았고, 최소 데미안은 다들 정독한 줄 알았고, 다들 인권의 기본은 알고 있을 줄 알았고, 다들 피아노 정도는 좋아할 줄 알았음.

 

 결국 기대치가 너무 큰 걸 알고 실망해서 초딩때부터 히키코모리가 되었지만. 그러니 첫 출발부터 틀려먹은거지. 다른 사람은 절대 본인이랑 같아질 수가 없음.

 

일단 이 책의 저자를 내가 싫어하는 이유부터 시작하겠다.

 첫째, 꼰대다. 좋은 꼰대건 나쁜 꼰대건 간에 그가 꼰대라는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유는 신춘문예를 찬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도 신춘문예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엔 찬성한다. 가뜩이나 연줄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인데다 보수적인 문단계다. 신춘문예가 없어지고 추천으로 문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또 여성 문인들이 얼마나 '문단 내 성폭행'으로 상처를 입어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어중이떠중이인 인간들이 시인입네 행세하고 다닐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신춘문예가 '순결'한 정신을 위해서라니... 토가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순결한 정신들이 순결해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몇몇 인간들이 미성년자나 문인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다니시나? 그리고 등단 제도 아래 감추어진 문제들은 정기적으로 성찰할 문제가 아니라 볼 때마다 즉시 없애야 할 문제다.

 

 두번째, 계속 저 세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문장 하나하나마다 계속 저 세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심지어 '시인은 저 세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세상과 다른 저 세상을 만들고 그로써 사회에 저항한다'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굉장히 반박할 말들이 많이 떠올라서 읽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엔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 세상을 부정하면서도 관념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미래파 시인도 있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시인 본인들 중엔 저자가 틀렸다고 펄펄 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박정만 시인이라던가. 내가 그 시절 태어나보진 않았어도 이 정도는 안다. 그 시대엔 운동권 사람이랑 술 한잔 하는 것이나 시를 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무기였다. 그는 결코 이유없이 남산에서 얻어맞은 게 아니고, 날벼락같은 그 사건에 분해서 마구 시를 써댄 게 아니다. 아마도 운명적인 만남이 얼마만큼이나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지 그는 모르는 것 같다. 그건 슈타인즈 게이트나 리제로 같은 애니메이션을 봐도 알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계속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 이야기하시는데, 문학에서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이야기도 있다. 아리랑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집요하게 가난한 남자와 부유한 여자의 한 과제에 천착하느라 아리랑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용운 두 번 다룰 걸 한 번 다루면 될테니 충분한 여백도 있었다. 최소한 황진이에서 이를 충분히 다루어도 되었을 텐데, 황진이의 실연과 상처는 몇 문장 안 되는 암시로만 끝났다. 게다가 황진이를 자유로운 여성으로 완결지은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황진이는 조선의 극단적인 여성 차별시대에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싶어서 할 수 없이 그런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김소연의 시집 말미에서 그의 문장을 처음 만날 때 난 그가 미래에 이어령이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문학을 접하려면 거의 반드시 통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졸업해야 할 차기의 빛나는 문학 꼰대이다. 그나마 그 시집의 서평은 문장이 아름답기나 했지, 이 책에서는 오로지 '내 말이 맞아'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처음부터 이육사의 초인을 가지고 이리저리 말장난을 하셔서 무지 초집중을 하고 읽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결국 모두가 이육사의 그 시를 읽고 하는 생각과 일치해서 허탈했다. 이런 상업성만 탁월한 책에 말려들지 말고 제발 이 책에서 나오는 시집을 사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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