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2disc) - 디지팩
신카이 마코토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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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앞에는 너무나 거대한 인생이 아득한 시간이 감당할 수 없게 가로놓여 있었다. 단 1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고, 시간은 분명히 악의를 품고 내 위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벚꽃초>

상상을 초월하는 고독한 여행이 될 것이다. 진정한 어둠 속을 한결같이 한 개의 수소원자조차 만나는 일 없이 단지 심연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세계의 비밀에 가까이 하고 싶다는 신념. 우리는 그렇게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주비행사>​

영화 애니 소설 만화 그 모든 작품을 통틀어 이런 점수를 준 건 사토 유야의 소설 이후로 오랜만인 듯하다. (플리커 스타일이라는 책이 있다.)

 점수를 안 주기도 뭐한데 그렇다고 점수를 줄 수는 없으니 '최악의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래뵈도 나름 이틀동안 쓴 긴 글이다.​ 봐주시길 바란다.

 

 

1. 부왁. 역시 나랑 엄청나게 안 맞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좀 더 자극적이 되기를 바라고 추구하는 작품들의 향연이 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볼 때 상당히 퇴화된 작품이라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울음이 나오는 슬픈 줄거리도 아니고. 그냥 솔로가 술 한병 앞에 놓고 나와 마주보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짝사랑 시절을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진 모르겠는데 난 언어의 정원 때라면 모를까 전혀 이 스토리에선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건 공감이 갈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작품같다. 특히 벚꽃 이야기와 초속 5센티미터 이야기는 최소한 20대가 되어, 연애는 해본 후에 봐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나중에 공개하기로 하겠다. 뭐 토오노 타카키가 채인 건 안된 일이라 생각하지만 결말이 깔끔해서 작품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까는 이유는 '다루기 힘든 주제'를 그것도 너무 생략해서 다룬 탓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영화의 주요 주제는 사랑이 아니다. 

 

 

 2.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현재 대한민국 20~30대들을 언론에서는 삼포세대라 부른다. 일본에서 비슷한 단어로 사토리 세대가 있다. 일단 아카리와 타카키는 도쿄의 학교로 전학을 왔다가, 서로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전에 SNS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서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아무리 사회가 진보해도, 왠지 미성년자를 어른의 보호 하에 두어야 한다는 사회의 꼰대 의식은 바뀌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도시에선 마치 유목민처럼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님이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가게 되면 소년소녀들은 군말없이 학교의 좋아하는 친구들과 쿨하게 헤어져야 하는 입장이다. 

 

 타카키는 처음엔 그 상황을 나름대로 즐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조차 정겹게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으로 전철을 타고 갈 때의 상황은 처참했다. 부모님이 왕복하는 데 기름값이 비싸다고 반대했는지 아니면 집에 자가용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택한 교통수단은 집의 자가용이 아닌 전철이었다. 한밤중. 폭설 때문에 전철은 지연되고, 추워서 무언가 따뜻한 걸 먹고 싶지만 식사를 먹을 돈은 없고, 그녀의 편지마저 잃어버리면서 그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지쳐간다. 그 모습이 담담히 지나가는 장면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글쎄. 2년 전 여름에 대전으로 갔을 때가 기억난다. 서울까지 버스를 탄 다음 대전까지 전철을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시원한 것을 마시면서 갔고 전차는 약간 지연되긴 했지만 잘 갔다. 휴무를 어떻게든 4일로 잡아서 여유롭게 같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우리나라 남쪽 지방과는, 아니 어떤 지방이던 상관없이 꽤 멀어졌구나 하고. 무언가를 박탈당한 기분. 나만 정지되어 있지 않나 하는 초조감. 그리고 그것들이 절정으로 달할 때 오는 피로감. 아마 그것 때문에 타카키는 편지를 분실했는데도 아카리의 집주소를 물어보지 않은 채 그냥 헤어졌을 것이다. 아카리도 무슨 사정으로 기다리는 데 지쳐서 집주소가 편지에 적혀있었는데도 직접 가지 않은 거겠지.

 

3. 그런 타카키와 어찌보면 매우 상반된 입장에 있는 게 ​우주비행사에 나오는 카나에이다. 결말을 명확히 보여주진 않지만 난 이 우주비행사 스토리에 나오는 이 타카키와 카나에가 훗날에도 다시 만나서 커피 한 잔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여자아이는 꿈을 향해 한 발짝씩 움직이고 있지만 태생이 섬 출신의 우직한 여성이라서 설령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남자 주인공을 기다릴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카나에가 리뷰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캐릭터이기에 나는 이쪽에 2.5점의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역시 이 남자애는 틀렸다고,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1부와 3부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다. 그렇다.  -2점이다. 막말로 이 영화는 개허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4.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초속 5센티미터 리뷰들에 대한 리뷰.

- 이 영화는 중요 주제가 사랑도 아니요 연애도 아니다. 깔끔한 이별과 추억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여기엔 '옛날 애인들과 차 한잔 마시기도 겁나 힘들다 젠장' 같은 감독의 투정도 담겨있다. 난 이렇게 답하겠다. "감독님. 시인 류근씨처럼 사세요. 그거 어려운 거 아님."


-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말을 여기다가 대입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다. 내가 첫사랑을 물고기 30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어장관리인과 어마무시하게 해봐서 그런지(...생각해보면 내 주제에 그게 연애로 이어진 것만 해도 대단.) 몰라도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 첫 직장을 구하는데 직장에서 '우리는 경력자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딱 짜르면 그건 그냥 그 직장이 선입견이 엄청 쎄거나 그냥 님이 맘에 안 들어서이다. 아무튼 내 감정 컨트롤이 힘들어서 그렇지 기술만 있으면 연애 쪽은 쉬우니 힘내라. 책을 많이 읽어라.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지만 이론이 아예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난 그래... 첫째 영화는 그렇다치고 셋째 영화 완전 이해가 안 간달까 우습달까 좀 그렇다. 최소 자기 관리는 좀 하고서 기다리는 게 맞지 않나? 내 생각엔 이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같이 좀 잔인한 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너랑 몸이 또 섞이느니 차라리 죽겠어 ㅇㅇ" 루트를 택한 여주.) 그나마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성이라도 있었지... 캐릭터 가치관도 확고했고. 게다가 틀린 말 한 건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하고 헤어지고 나서 상대방이 술 쳐마시면서 담배를 다시 폈다느니 하면서 처 꼬나물고 밤새 질질 짜고 있어봐라. 좋아하다가도 확 식지. 남주 솔직히 완전 별로인게, 아니 사랑 없는 연애까지 한데다 지가 안 차고 그걸 못 버틴 여자가 찼다고. (문자 어감이 그럼. 3년간 무슨 고생을 했을지 나님 짐작도 안가네.) 분명히 사과도 안 했을 거다 그 인간 으으... 그렇다고 다른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지, 첫사랑과의 추억이 있는 거리 얼쩡거리고 옛 여친이 일하고 있는 빌딩 얼쩡거리고. 찾아가지 말고 제발 좀 그런 거 일기에 쓰던가 속으로만 생각하라고. 아무튼 요즘 무서운 세상인데,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평상시 그랬다면 모를까 안하던 짓하고 있으면 누구든지 피하고 싶을거라 본다. 그저 슬쩍 마주쳤다고 모르나? 한 눈에 다 파악했겠지. 집주소 알고 있으면서도 여주가 안 찾아간 데서 이미 인연은 끝난거다. 제발 그런거 좀 떠안고 살지 마라. 영화에선 여주가 착하니까 그러고 끝났지 현실에선 정말 호구 취급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 영화 우주여행사의 여주는 남주를 다시 만날 희망이 있다. 저런 흑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볼때마다 왠지 불편한 아기자기한 화면과 여성의 다리 부각. 아키라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작품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참 그저 그랬다. 뭐랄까 멜로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데, 연약함과 작은 거 정말 좋아하는데, 그게 마치 아름다움의 전부인 마냥 반복해서 보여주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우주비행사가 특히 나에게 와닿는 이유이지. 역시 난 웅장하고 장엄하고 멋있는 게 좋다. 특히 남자들에게 당부한다. 멋있어져라.

 P.S 교훈은 다시 얻었다.​ 근데 난 솔직히 이걸 보고서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교훈을 얻느니 차라리 클래식 영화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쪽에 대한 주제라면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나마 그 영화에 나오는 남주는 배려심이라도 있었지, 이 남주는 정말 남에 대한 배려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수 있을까 
어느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숙이면 
그대목소리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고 지나가면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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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 [할인행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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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루군. 우리들은 굉장히 굉장히 멀리 또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지만 마음만은 시간과 거리를 초훨할 수 있을지 몰라.

1. 상당히 오랫동안 떠안고 온 고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후반기 때 약간 큰 사건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 일은 자업자득이었고, 나머지는 인간관계가 개선이 안 된다거나 정체성 문제라거나 대학교를 가서 공부를 할지 사회로 나가 돈을 벌지에 관한 시덥잖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가고 정말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이 지은 건지 의심이 가는 영미시들을 접하고, 나보다 더 심각한 개인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들에 참석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 고민같은 건 세상 속에선 정말 사소하고 아무렇지 않구나.'라고. 그 땐 솔직히 다소 실망의 감정도 섞여있었다. 쳇, 내 삶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잖아. 그러다보니 동화나 시 한편이라도 써보겠다는 작은 꿈도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지구만큼의 거리로 멀어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슬플까 생각하게 된다. 숙연해진다.

 

 

2. 내가 세카이계 애니메이션을 작화 상관없이 좋아하게 된 건 '내 고민은 사소하다.'라는 생각이 '아니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품고 있는 마음의 무게를 재면 각자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라고 바뀔 무렵인 듯하다. 전쟁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마음 하에서 시작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미카코는 단순히 일과 연애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데 말이다.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 맘에 안 들어... 결말이 왜 그러냐고. 미카코 어떻게 된거니 ㅠㅠ 왜 신문에서 살아 돌아올 것 같다는 떡밥을 던져놓고 그 장면에선 박살을 내는 거니 ㅠㅠ 떡밥을 던지질 말던가 아니면 그런 장면을 내보내지 말던가 하... 다시 마음이 찝찝해진다.

 

 

3. 이 애니가 정말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카코가 자신 혼자서 중대한 일을 떠맡았다고 해서 투정부리거나 노보루와의 거리가 멀다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좋아한다는 싸인을 보냈다는 점, 두번째로는 노보루의 결심을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전개라면 나중에 노보루가 미카코랑 잘 되던 안 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보루는 혼자서라도 올바르게 성장해서, 15살의 미카코가 '그렇게 되어 있겠지' 상상하고 있을 그런 24살의 인간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아닐까... 하고 풀어서 써본다. 

 

 

4. 생각해보면 신카이 마코토는 정말 비오고 눈오는 날씨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 나처럼. 예전에는 비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눈을 좋아하거나 했는데, 지금은 비도 눈도 다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사는 여기는 정말로 비가 안 온다. 그래서 그런지 벚꽃이 피었는데도 기운이 없다. 다른 지방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여기의 날씨는 따지고보면 수도권과 그리 멀지 않은데도, 많이 다르다. 내가 사는 시대가 그래도 여행을 쉽게 할 수 있고 카톡이나 SNS 등으로 텍스트를 빨리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쉽게 폭발하는 성격인데다 참을성이 모자란 나로서는 미카코처럼 비오는 창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절망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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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16p 설정집) - 한국어 더빙 수록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리노 미유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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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도 그렇긴 하지만, 일단 일본의 연(恋)이 연애라는 단어로 발전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요즘 들어 흔히 사용하는 자유연애, 즉 love라는 개념은 애초에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다. 외국의 문화가 알려지고,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되자 그 대안으로 여학교 내의 백합이 유행하고 심지어 장려되기 시작하면서(이에 대해선 나중에 퀴어인문잡지 삐라 창간호를 다룰 때 상세히 다루겠다. 물론, 레즈물과 백합물이라는 장르를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 애니뉴스에다가도 올릴 생각이다.) 자유연애가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love는 ラブ라는 가타카나로 정착되었다. 즉, 대다수의 일본인들(특히 신카이 마코토.)에게 아이()는 아직도 요원하다. 사실 그래서 나는 '카미카제가 있었던 그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관이 싫다. 내 생각에 대해서 이참에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들의 연애관은 아직도 너무 일방적인 데다,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의 모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진정한 love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도 없다. 헌신도 없다. 그저 좋으면 좋은대로 상처받으면 상처받은대로의 모습에 열중할 뿐. 그러니 감정이 터지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쉽게 흩어져버리는 거다. 어쩌면 불쌍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서 미안하지만, 앞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계속 리뷰할 생각이니 이 말을 중복하진 않겠다. 그렇다고 수정하거나 철회할 생각도 없지만.

 

 딱 이 작품은 '스키'에서 '코이'로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글을 보고 계실 분들은 대게 10~20대일테니 어찌보면 필요없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는 폐쇄된 곳이다. 비좁은 장소에 역시 일본식으로 똑같은 건물에 똑같이 배치되어 있는 반, 권력이 있는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 새장 안에 갖혀있는 느낌. 마치 그 세계만이 전부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게다가 요즈음엔 교사와 학생 모두를 감시하기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지만, CCTV에 찍히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분위기 조성과 언어적인 폭력이다. 가뜩이나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곳에서 빅데이터를 가지고 극도의 감시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니, 사실 미치지 않는 게 대단하다. 난 요즘의 10대들을 상당히 장하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부대끼다보면 민감해지고 작은 싸움 하나마저도 인간의 내부 뼛속 깊은 곳에 깊은 파동을 일으킨다. 게다가 베란다에서 상냥하게 전화하는 그 전남친. 아마도 그녀일 듯한, 저녁을 만들고 있는 듯한 사박사박거리는 소리.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환경이었긴 했다.

 

 촛불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하나 둘 씩 꺼져간다. 이미 피워졌었던 불로 인한 짙은 연기가 암흑을 감싼다. 밑에는 나를 받아줄 그물망조차도 없다. 나는 허공에서 맨발로 외줄을 타고 있다. 줄은 예리하다. 금방이라도 발을 베어버릴 듯이. 너무 아파서 그만둘까 싶어지다가도 멈추면 나 홀로 정지되어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모든 장마와 폭풍이 다 지나간 다음엔 소름끼치는 정적과 고요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 찾아온다.

 

 선생의 맨발 클로즈업은 발 페티쉬가 아니다. 발병까지 걸릴 각오를 하면서도 힐을 신어야 하며, '여성'이 아닌 '여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사회를 헤쳐나가는 그 상황에 대한 매우 적절한 비유다. 

 

3.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녀가 한 상황이 적어도 이 남주에게 납득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나중엔 사랑의 힘으로 겨우겨우 이해한 것 같다만. 맥주와 초콜릿. 단맛과 쓴맛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남주에게 그대로 사용했다. 일명 사회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여자, 비밀스러운 여자로 남기 위해. 이제 15살로 그녀가 읊은 단가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남주는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도다.) 여느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꿈에 대해서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단순히 복작거리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바래서, 빗소리와 새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만끽하고 싶어서 인적없는 고요한 곳을 찾는 중2병 소년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남주가 만들고 있고,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구두는 그녀의 떠나감을 암시했다. 결국 남주는 그녀에게 구두를 전달해주지 못했다. 서로에게 이끌리기 위해 거짓말로 진실된 말로 스스로를 옭아맸지만, 그녀는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좀 심한 말이지만, 죄책감을 비싼 선물로 무마하려는 건 꼰대의 특징이다.)

 

 

4.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맹렬한 기다림'에서 결국 '자기계발적인 기다림'으로 나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지금은' 노력만으론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희망고문은 '운명'이란 단어처럼 사람을 한없이 무기력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난 이 둘이 차라리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과 더 발전적인 '사랑'을 했으면 하는 바이다. 랄까 사실 사람 인생이 그렇게 쉽게 되겠느냐마는. 그렇게 안 되니 이 둘이 후에도 서로 편지를 쓰고 있지. 이 영화를 보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젠장.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찝찝한 기분 어떻게 할꺼야 언어의 정원. 내가 이래서 세월의 돌 이후로 이런 작품 안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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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흘러가는 시간들
사카모토 카즈야 감독, 아사누마 신타로 외 목소리 / 알스컴퍼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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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냄새에 빠진 듯한 몸의 그녀와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과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과 나의 기분과 우리들의 방. 눈은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다.

 누군가의 시선.

 헤에 작품인 줄 알았더니 부동산 광고. 그리고 왠지 고양이를 광고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언어의 정원에서 나오는 배경과 똑같은 거 같은데 저거.

 

 

크로스 로드.

 누군가의 시선과는 달리 확실히 학습지를 광고한다는 느낌이 난다.

 내용도 전자는 6분이었는데 이쪽은 2분 정도로 간격이 짧아졌고. 단지 좀 더 내용을 붙여줬으면 싶다(...)

 

 

 고양이의 집회.

 역시 강아지나 고양이나 밥만 주면 어떤 대접을 받던간에 땡인 듯하다;;;

 나도 산책하다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 발을 밟는다거나 실수로 콧등을 친다거나 하는데 빔을 날리기 전에 간식을 줘야 할듯?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인간의 시점에서 고양이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새롭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무성영화같은 진행을 하고 있다.

 자신을 줏어준 어른스러운 여성을 사랑하는 고양이 이야기.

 하지만 끝에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다니... 이 녀석 병으로 죽는 걸까.


 P.S 솔직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 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시선 정말 많이 딸리는 느낌이다.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하는데 고양이 미상의 이미지가 너무 흐릿하다. 초심을 잃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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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sycho-Pass 2: Season 2 (싸이코 패스) (한글무자막)(Blu-ray)
Alpha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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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집행하세요. 츠네모리 감시관."

"어쩌면 그 심판자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

"그만해. 난 네가 아냐. 이 사람 저 사람 구분 없이 남의 소원을 들어주진 않아. 하다못해 피를 흘리지 않는 길을 택했다면!" 

"그런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아."

 ........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쟤 때문에 쓸모없는 정의감이 불타올라서 화면 끄려다가 그냥 봤던 거 계속 봤다. 리뷰 길게 쓰기도 귀찮고 편집하기도 피곤하고 킬링타임도 아니고(차라리 뉴욕경찰드라마 블루 블러드를 보는 게 나았어...) 시간낭비했다는 데 지쳐서 그냥 노트에 썼던 거 그대로 공개한다.

 

 

쇼코 네가 너무 보고 싶다... ㅠㅠㅠ

  1. 1기에서 쇼코가 걸리버 여행기의 뇌수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럼 쇼코는 시빌라의 진정한 모습을 한 번 보고 그쪽까지 추론이 나아간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코를 살리자고 결론을 낸 걸 보면 옛날 쇼코의 동료였던 녀석이 무지하게 노력하는 모양이네. 궁금한데 그 노친네들이 모인 원로원에선 토의도 하나? 쇼코 살리자고 로비도 하고? 

 

2. 저 세계의 권력자들 중 과연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이 있을까 의심되는 시점. 법의 중심도 시체 범죄자의 중심도 시체. 다 시체네. 차라리 쇼코가 그리워진다. 그 녀석도 시체인 채로 어디서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님? 극장판 예고편 보면 그럴 가능성 충분한데. 묵비권 쓰는 국회의원 아저씨도 그렇고 극단적인 정치풍자 잼. 

 

 

 

 3. 그런 의미에서 아카네를 집요하게 캐냈던 신입 감시관은 상당히 재밌었다. 아카네보단 그쪽이 더 형사체질이었지. 하지만 인간관계건 정치 대 시민 관계건 말 잘 듣는 평범한 사람은 재.미.없.어. 진물을 너무 빨리 뺐달까. 다 알면 내일은 당신도 공범♥ 

 

4. 이미 거의 다 사용해서 진물이 빠진 아카네를 처리하지 않는 이유는 사이코패스 색상이 너무나 클리어해서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녀를 단죄하면 시빌라를 벌하는 것이기 때문. 따라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 때 그녀를 사용할 거란 건 중요한 계획은 아니다. 이건 늦게나마 시빌라에 발을 빼려는 아카네와 그녀를 혼탁하게 만들어 숙청하려는 시빌라의 파워게임이다. 따라서 11화만에 단숨에 결말이 날리 없다. 의자게임은 의자가 하나 부족하게 세팅해야 하는데,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등장했으니까.

 시빌라가 폭로하는가, 투명인간이 폭로하는가.

 눈치를 빨리 채고 타이밍에 맞게 자리에 앉는 인간이 승리. 일어서 있는 인간은 목이 잘린다. 근데 그 의자를 정하는 건 츠네모리 아카네였다. 근데 아카네가 꽤 단호한 구석이 있다. 신야랑 쇼코랑 범죄자(이름 기억 안남 1)는 피흘려서 안 되고. 흑발머리(이름 기억 안남 2)는 애초에 사람이 비열해서 안 되고.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는 시빌라랑 썸을 타지만 시빌라는 쇼코만큼 아카네가 맘에 들지는 않고 아카네는 시빌라에 대한 생리적 혐오감을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거절. 다중인격자랑 사귀는 거 참 힘들지 암. 그 기분 내가 안다. 의지하는 건 과거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코가미 신야의 잔향뿐인 듯. 좀 불쌍하네. 상황으로 봐선 마치 신야에게 차인 것 같아. 

 

각기 다른 이유로 나쁜 남자들 한 컷.

 5. 그나저나 사람들은 이 사건이 풀리길 바랬나? 밀입국자들이 처참하게 불태워져서 죽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살아돌아오지 않나? 하지만 투명인간은 어떻게든 살아있다. 자신의 색깔을 표명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기업과 정부의 관심도 없으면 회생되지 않는 사회다. 애초에 결말이 날리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떡밥 회수하는 거 봤나? 두시간 짜리던 다섯시간 짜리던 간에 극장판 하나로 저거 전부 회수할 수 있으면 사이코패스는 희대의 역작이 되겠지. 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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