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스토리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나름대로 써봄.
주인공 아논은 전학생인데 여긴 뱅드림 세계관이라 음악 전공하는 거의 모든 인싸들이 밴드를 하고 있는 가혹한 세계였다(...) 아논도 인싸에 속하는 종이라 적당히 기타와 보컬을 할 줄 알았던지라 반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우연히 만난 토모리와 사키코에게 각각 밴드를 만들자 청했으나 그게 또 그들에겐 지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밴드를 만들자는 권유를 외부로 하게 된 아논은 우연히 성격좋은 인싸 소요와 다혈질 타키를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토모리와 사키코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토모리는 사키코와 만나 금방 친해진 사이였다. 토모리의 작사 실력을 인정한 사키코는 이전부터 친했던 소요 및 타키와 과묵한 은발 소녀 한 명과 함께 크라이식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꽤나 결단력이 있던 사키코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결국 첫 라이브는 성황리에 끝난다. 그러나 토모리가 워낙에 4차원 삶을 살았던지라 친구가 사키코밖에 없는 입장에서 사람 많은 곳의 라이브는 거의 강요에 가까웠다. 게다가 악플(이라기보단 좋게 보면 보컬이 열심히 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데 토모리의 과거가 워낙 어두워서)로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사키코는 갑자기 밴드를 그만두겠다는(이게 좋게 들으면 토모리를 자기가 끌여들여 충격을 받게 하는 일이 났으니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토모리의 과거가...) 선언을 한다. 이 틈을 타 은발 소녀가 갑자기 한 번도 자신은 밴드를 즐겁게 한 적이 없다고(이것도 자신은 밴드를 진지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는데 타키가 사키코에게 분노해버렸던 분위기였던지라 이 대사 이후는 갑분싸였고 애초에 처음에 사키코의 강요가 워낙 쎘다 ㅋㅋ) 한 게 결정타가 되어 토모리는 밴드에 나오지 않게 되고 사키코가 전학을 가면서 밴드는 해체되어 버렸다. 상황을 다 듣고 그들의 음악까지 듣게 된 오지라퍼() 아논은 토모리의 재능이 아깝다며(목소리 약간 가넷 크로우같은 느낌이 난다) 이전 크라이식 밴드 멤버들 간 화해를 조성하려 한다.
핑두도 과거 때문인지 인싸가 되려는 강한 집착력이 있어서 결국 모두를 강제적으로 무리한 연습량으로 처박게 될 것 같았는데.. 이들의 날뜀에 그만 기가 눌려버리는데 ㅋㅋ
일단 2023년 최고의 콘텐츠라고 할만큼 긍정적으로 평가함.
뱅드림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있으므로 끊임없이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카드수집형 게임이자 밴드물인 뱅드림의 에피소드는 늘 일상으로 회귀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당연한 얘기인데 밴드의 존재 의미는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물, 배틀물, 연애물은 각 장르가 보장하는 서사적 목적이 있다. 그렇지만 밴드는 스포츠처럼 다루기도 까다롭고 사실상 정해진 결말 외에는 운신의 폭이 적은 편이다. 거기에 캐릭터 수집이라는 플랫폼이 겸해지니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아주 잠시 균열을 가했다가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패턴을 보여준다.
뱅드림의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제1 밴드라 할 수 있는 팝핀파의 결성 스토리를 다룬 1기 이후, 여러 게임 내 진행을 생략하고 바로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 2기가 전개된다. 여기서는 새 밴드가 등장해 또 새로운 결성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사실 망가아니메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금방 효력을 다하는 편이다. 거의 모든 장기 연재, 방영물에서는 이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새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긴장을 준다. 애니메이션 2기의 선택은 이미 완성된 각 밴드의 이야기를 재활용하기보다는 아예 새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택했다. 때문에 뱅드림 2기와 함께 묶이는 3기는 무수한 기존 캐릭터들의 팬서비스와 새로운 이야기 사이에서 조금 어수선하고 애매한 작품이 돼 버렸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첫 장면부터 내가 바로 넘어가고 말았다. 상상을 초월한 도입이었다. 뱅드림에 기대되는 그 무색무취하고 자극없는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다큐였다(막장이 아니다). 음악 좋아하고 밴드 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가슴 부여잡고 볼 전개가 마구 쏟아졌다. 며칠 안 나오다가 갑자기 밴드 깨는 녀석, 주목받기 위해 보컬 하겠다는 녀석, 다른 멤버 들이기 위해 거짓으로 함께하는 녀석 등등. 이건 오타쿠용 애니라기보다는 인간극장이었다. 내가 본 모든 밴드물 중 가장 하드한 이야기였다.
그뿐 아니다. 마이고는 지난 시리즈에 비해 현저하게 작화와 연출 퀄러티가 상승했다. 이 감독은 변태가 틀림없다. 인물들을 조감하는 각도, 대사와 편집의 템포, 보여주는 것과 감추는 것들 사이의 균형 등등 밴드물로서가 아니라 영상매체로서 이 작품은 어느 한 구간 쉽게 볼 곳이 없다. 어떤 이야기든 사실 보이지 않는가. 연출가가 작가주의적으로 구성의 유기성과 통일성, 균형과 조화, 대칭과 대립의 미적인 무언가를 추구할 때, 그런 사람들이 만든 거 솔직히 티가 나지 않는가. 이건 그런 작품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명작을 봤다. 시리즈 보라는 말은 않겠다. 모두들 마이고라도 꼭 한 번 시청 바람. 앞으로 이런 작품 나오기 힘들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