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목소리 - [할인행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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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루군. 우리들은 굉장히 굉장히 멀리 또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지만 마음만은 시간과 거리를 초훨할 수 있을지 몰라.

1. 상당히 오랫동안 떠안고 온 고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후반기 때 약간 큰 사건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 일은 자업자득이었고, 나머지는 인간관계가 개선이 안 된다거나 정체성 문제라거나 대학교를 가서 공부를 할지 사회로 나가 돈을 벌지에 관한 시덥잖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가고 정말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이 지은 건지 의심이 가는 영미시들을 접하고, 나보다 더 심각한 개인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들에 참석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 고민같은 건 세상 속에선 정말 사소하고 아무렇지 않구나.'라고. 그 땐 솔직히 다소 실망의 감정도 섞여있었다. 쳇, 내 삶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잖아. 그러다보니 동화나 시 한편이라도 써보겠다는 작은 꿈도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지구만큼의 거리로 멀어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슬플까 생각하게 된다. 숙연해진다.

 

 

2. 내가 세카이계 애니메이션을 작화 상관없이 좋아하게 된 건 '내 고민은 사소하다.'라는 생각이 '아니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품고 있는 마음의 무게를 재면 각자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라고 바뀔 무렵인 듯하다. 전쟁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마음 하에서 시작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미카코는 단순히 일과 연애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데 말이다.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 맘에 안 들어... 결말이 왜 그러냐고. 미카코 어떻게 된거니 ㅠㅠ 왜 신문에서 살아 돌아올 것 같다는 떡밥을 던져놓고 그 장면에선 박살을 내는 거니 ㅠㅠ 떡밥을 던지질 말던가 아니면 그런 장면을 내보내지 말던가 하... 다시 마음이 찝찝해진다.

 

 

3. 이 애니가 정말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카코가 자신 혼자서 중대한 일을 떠맡았다고 해서 투정부리거나 노보루와의 거리가 멀다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좋아한다는 싸인을 보냈다는 점, 두번째로는 노보루의 결심을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전개라면 나중에 노보루가 미카코랑 잘 되던 안 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보루는 혼자서라도 올바르게 성장해서, 15살의 미카코가 '그렇게 되어 있겠지' 상상하고 있을 그런 24살의 인간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아닐까... 하고 풀어서 써본다. 

 

 

4. 생각해보면 신카이 마코토는 정말 비오고 눈오는 날씨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 나처럼. 예전에는 비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눈을 좋아하거나 했는데, 지금은 비도 눈도 다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사는 여기는 정말로 비가 안 온다. 그래서 그런지 벚꽃이 피었는데도 기운이 없다. 다른 지방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여기의 날씨는 따지고보면 수도권과 그리 멀지 않은데도, 많이 다르다. 내가 사는 시대가 그래도 여행을 쉽게 할 수 있고 카톡이나 SNS 등으로 텍스트를 빨리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쉽게 폭발하는 성격인데다 참을성이 모자란 나로서는 미카코처럼 비오는 창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절망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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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16p 설정집) - 한국어 더빙 수록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리노 미유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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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도 그렇긴 하지만, 일단 일본의 연(恋)이 연애라는 단어로 발전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요즘 들어 흔히 사용하는 자유연애, 즉 love라는 개념은 애초에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다. 외국의 문화가 알려지고,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되자 그 대안으로 여학교 내의 백합이 유행하고 심지어 장려되기 시작하면서(이에 대해선 나중에 퀴어인문잡지 삐라 창간호를 다룰 때 상세히 다루겠다. 물론, 레즈물과 백합물이라는 장르를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 애니뉴스에다가도 올릴 생각이다.) 자유연애가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love는 ラブ라는 가타카나로 정착되었다. 즉, 대다수의 일본인들(특히 신카이 마코토.)에게 아이()는 아직도 요원하다. 사실 그래서 나는 '카미카제가 있었던 그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관이 싫다. 내 생각에 대해서 이참에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들의 연애관은 아직도 너무 일방적인 데다,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의 모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진정한 love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도 없다. 헌신도 없다. 그저 좋으면 좋은대로 상처받으면 상처받은대로의 모습에 열중할 뿐. 그러니 감정이 터지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쉽게 흩어져버리는 거다. 어쩌면 불쌍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서 미안하지만, 앞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계속 리뷰할 생각이니 이 말을 중복하진 않겠다. 그렇다고 수정하거나 철회할 생각도 없지만.

 

 딱 이 작품은 '스키'에서 '코이'로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글을 보고 계실 분들은 대게 10~20대일테니 어찌보면 필요없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는 폐쇄된 곳이다. 비좁은 장소에 역시 일본식으로 똑같은 건물에 똑같이 배치되어 있는 반, 권력이 있는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 새장 안에 갖혀있는 느낌. 마치 그 세계만이 전부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게다가 요즈음엔 교사와 학생 모두를 감시하기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지만, CCTV에 찍히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분위기 조성과 언어적인 폭력이다. 가뜩이나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곳에서 빅데이터를 가지고 극도의 감시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니, 사실 미치지 않는 게 대단하다. 난 요즘의 10대들을 상당히 장하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부대끼다보면 민감해지고 작은 싸움 하나마저도 인간의 내부 뼛속 깊은 곳에 깊은 파동을 일으킨다. 게다가 베란다에서 상냥하게 전화하는 그 전남친. 아마도 그녀일 듯한, 저녁을 만들고 있는 듯한 사박사박거리는 소리.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환경이었긴 했다.

 

 촛불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하나 둘 씩 꺼져간다. 이미 피워졌었던 불로 인한 짙은 연기가 암흑을 감싼다. 밑에는 나를 받아줄 그물망조차도 없다. 나는 허공에서 맨발로 외줄을 타고 있다. 줄은 예리하다. 금방이라도 발을 베어버릴 듯이. 너무 아파서 그만둘까 싶어지다가도 멈추면 나 홀로 정지되어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모든 장마와 폭풍이 다 지나간 다음엔 소름끼치는 정적과 고요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 찾아온다.

 

 선생의 맨발 클로즈업은 발 페티쉬가 아니다. 발병까지 걸릴 각오를 하면서도 힐을 신어야 하며, '여성'이 아닌 '여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사회를 헤쳐나가는 그 상황에 대한 매우 적절한 비유다. 

 

3.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녀가 한 상황이 적어도 이 남주에게 납득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나중엔 사랑의 힘으로 겨우겨우 이해한 것 같다만. 맥주와 초콜릿. 단맛과 쓴맛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남주에게 그대로 사용했다. 일명 사회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여자, 비밀스러운 여자로 남기 위해. 이제 15살로 그녀가 읊은 단가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남주는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도다.) 여느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꿈에 대해서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단순히 복작거리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바래서, 빗소리와 새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만끽하고 싶어서 인적없는 고요한 곳을 찾는 중2병 소년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남주가 만들고 있고,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구두는 그녀의 떠나감을 암시했다. 결국 남주는 그녀에게 구두를 전달해주지 못했다. 서로에게 이끌리기 위해 거짓말로 진실된 말로 스스로를 옭아맸지만, 그녀는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좀 심한 말이지만, 죄책감을 비싼 선물로 무마하려는 건 꼰대의 특징이다.)

 

 

4.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맹렬한 기다림'에서 결국 '자기계발적인 기다림'으로 나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지금은' 노력만으론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희망고문은 '운명'이란 단어처럼 사람을 한없이 무기력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난 이 둘이 차라리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과 더 발전적인 '사랑'을 했으면 하는 바이다. 랄까 사실 사람 인생이 그렇게 쉽게 되겠느냐마는. 그렇게 안 되니 이 둘이 후에도 서로 편지를 쓰고 있지. 이 영화를 보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젠장.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찝찝한 기분 어떻게 할꺼야 언어의 정원. 내가 이래서 세월의 돌 이후로 이런 작품 안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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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흘러가는 시간들
사카모토 카즈야 감독, 아사누마 신타로 외 목소리 / 알스컴퍼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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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냄새에 빠진 듯한 몸의 그녀와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과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과 나의 기분과 우리들의 방. 눈은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다.

 누군가의 시선.

 헤에 작품인 줄 알았더니 부동산 광고. 그리고 왠지 고양이를 광고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언어의 정원에서 나오는 배경과 똑같은 거 같은데 저거.

 

 

크로스 로드.

 누군가의 시선과는 달리 확실히 학습지를 광고한다는 느낌이 난다.

 내용도 전자는 6분이었는데 이쪽은 2분 정도로 간격이 짧아졌고. 단지 좀 더 내용을 붙여줬으면 싶다(...)

 

 

 고양이의 집회.

 역시 강아지나 고양이나 밥만 주면 어떤 대접을 받던간에 땡인 듯하다;;;

 나도 산책하다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 발을 밟는다거나 실수로 콧등을 친다거나 하는데 빔을 날리기 전에 간식을 줘야 할듯?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인간의 시점에서 고양이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새롭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무성영화같은 진행을 하고 있다.

 자신을 줏어준 어른스러운 여성을 사랑하는 고양이 이야기.

 하지만 끝에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다니... 이 녀석 병으로 죽는 걸까.


 P.S 솔직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 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시선 정말 많이 딸리는 느낌이다.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하는데 고양이 미상의 이미지가 너무 흐릿하다. 초심을 잃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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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sycho-Pass 2: Season 2 (싸이코 패스) (한글무자막)(Blu-ray)
Alpha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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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집행하세요. 츠네모리 감시관."

"어쩌면 그 심판자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

"그만해. 난 네가 아냐. 이 사람 저 사람 구분 없이 남의 소원을 들어주진 않아. 하다못해 피를 흘리지 않는 길을 택했다면!" 

"그런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아."

 ........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쟤 때문에 쓸모없는 정의감이 불타올라서 화면 끄려다가 그냥 봤던 거 계속 봤다. 리뷰 길게 쓰기도 귀찮고 편집하기도 피곤하고 킬링타임도 아니고(차라리 뉴욕경찰드라마 블루 블러드를 보는 게 나았어...) 시간낭비했다는 데 지쳐서 그냥 노트에 썼던 거 그대로 공개한다.

 

 

쇼코 네가 너무 보고 싶다... ㅠㅠㅠ

  1. 1기에서 쇼코가 걸리버 여행기의 뇌수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럼 쇼코는 시빌라의 진정한 모습을 한 번 보고 그쪽까지 추론이 나아간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코를 살리자고 결론을 낸 걸 보면 옛날 쇼코의 동료였던 녀석이 무지하게 노력하는 모양이네. 궁금한데 그 노친네들이 모인 원로원에선 토의도 하나? 쇼코 살리자고 로비도 하고? 

 

2. 저 세계의 권력자들 중 과연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이 있을까 의심되는 시점. 법의 중심도 시체 범죄자의 중심도 시체. 다 시체네. 차라리 쇼코가 그리워진다. 그 녀석도 시체인 채로 어디서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님? 극장판 예고편 보면 그럴 가능성 충분한데. 묵비권 쓰는 국회의원 아저씨도 그렇고 극단적인 정치풍자 잼. 

 

 

 

 3. 그런 의미에서 아카네를 집요하게 캐냈던 신입 감시관은 상당히 재밌었다. 아카네보단 그쪽이 더 형사체질이었지. 하지만 인간관계건 정치 대 시민 관계건 말 잘 듣는 평범한 사람은 재.미.없.어. 진물을 너무 빨리 뺐달까. 다 알면 내일은 당신도 공범♥ 

 

4. 이미 거의 다 사용해서 진물이 빠진 아카네를 처리하지 않는 이유는 사이코패스 색상이 너무나 클리어해서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녀를 단죄하면 시빌라를 벌하는 것이기 때문. 따라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 때 그녀를 사용할 거란 건 중요한 계획은 아니다. 이건 늦게나마 시빌라에 발을 빼려는 아카네와 그녀를 혼탁하게 만들어 숙청하려는 시빌라의 파워게임이다. 따라서 11화만에 단숨에 결말이 날리 없다. 의자게임은 의자가 하나 부족하게 세팅해야 하는데,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등장했으니까.

 시빌라가 폭로하는가, 투명인간이 폭로하는가.

 눈치를 빨리 채고 타이밍에 맞게 자리에 앉는 인간이 승리. 일어서 있는 인간은 목이 잘린다. 근데 그 의자를 정하는 건 츠네모리 아카네였다. 근데 아카네가 꽤 단호한 구석이 있다. 신야랑 쇼코랑 범죄자(이름 기억 안남 1)는 피흘려서 안 되고. 흑발머리(이름 기억 안남 2)는 애초에 사람이 비열해서 안 되고.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는 시빌라랑 썸을 타지만 시빌라는 쇼코만큼 아카네가 맘에 들지는 않고 아카네는 시빌라에 대한 생리적 혐오감을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거절. 다중인격자랑 사귀는 거 참 힘들지 암. 그 기분 내가 안다. 의지하는 건 과거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코가미 신야의 잔향뿐인 듯. 좀 불쌍하네. 상황으로 봐선 마치 신야에게 차인 것 같아. 

 

각기 다른 이유로 나쁜 남자들 한 컷.

 5. 그나저나 사람들은 이 사건이 풀리길 바랬나? 밀입국자들이 처참하게 불태워져서 죽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살아돌아오지 않나? 하지만 투명인간은 어떻게든 살아있다. 자신의 색깔을 표명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기업과 정부의 관심도 없으면 회생되지 않는 사회다. 애초에 결말이 날리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떡밥 회수하는 거 봤나? 두시간 짜리던 다섯시간 짜리던 간에 극장판 하나로 저거 전부 회수할 수 있으면 사이코패스는 희대의 역작이 되겠지. 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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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sycho-Pass: Part One (사이코 패스 파트 1) (한글무자막)(Blu-ray)
Funimation Prod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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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두 남녀가 사이코패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건 이 녀석들이 아니다. '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에서 이 둘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장면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요 핵심일 듯하다. 단순히 경찰서에서 러브러브하는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봤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진지해지는 데다, 결말을 보면 어쩐지 커플 브레이킹 같아서 살짝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긴박해질 뿐더러 특히 10~11화 땐 마치 폭풍 몰아치듯 상황에 휩쓸리기 때문에 애니에서는 시스템이 그들을 갈라놓은 것처럼 뒷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 2기에서 이걸 제대로 다루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글쎄. 저런 경우엔 어떻게 해결이 안 된다고 보는데(...)

 
 어쨌던 난 사이코패스에 나오는 모든 인물 중에서 츠네모리 아카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녀의 신념에도 공감한다.

 

 2. 일단 사이코패스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게 이 마키시마 쇼코이다. 냉철하다기보단 충동적인 감정에 잘 따르는 편이라서 실상은 벌써 죽었어야 마땅한 사람이지만, 이 애니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살아남는다. 


 - 경찰이 심판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스포일러이니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 경찰이 지급받는 총은 사람의 정신상태를 측정하여 그에 맞는 벌칙을 부과한다. 그런데 마키시마 쇼코는 유달리 정신상태가 말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비록 살인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명백하고, 신념이 있으니 곧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범죄계수를 재도 그만 안 재도 그만인 그는 사이코패스 애니 내부의 검은양이다. 차라리 머리가 비었다면 그냥 자신이 살고싶은 대로 살았을 것이다. 츠네모리 아카네처럼 경찰관이 되었던가 아님 골목의 우두머리가 되었던가. 하지만 그는 희대의 정치범이 되는 길을 택했다.


 - 종이책을 매우 좋아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지식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기에 그는 시빌라 시스템의 맹점을 알아차렸어도 세상에 폭로할 방법을 궁리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살인범들처럼 '평범'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 방법을 궁리했을 뿐이다. 포기가 너무 빨랐다.

 - 매사에 부정적이다. 성서를 보면서 그는 '가라지'에 대해 언급하는데, 가라지는 독보리를 가리킨다. 예수는 겉보기로는 너무나 비슷한 밀알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대로 냅두고 있으면 둘 다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밀알은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떨어지고, 가라지는 열매가 나도 그대로 붙어있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가라지라 생각하는지는 애니메이션에선 확실히 언급하지 않지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시빌라가 뭔지도 모른채 그것을 숭배하기 바쁜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

 -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사냥을 좋아하는 어떤 인물이 나왔었는데(이것도 스포일러라 이름은 생략하겠다.), 마키시마 쇼코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마키시마 쇼코에 대한 그의 판단은 상당히 정확했다. 가장 잔혹했지만, 역시나 엘리트 층에 속해서 그런지 사람을 보는 눈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 같다. 최구성이 그를 많이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마키시마 쇼코는 그를 파트너로 본다기보단 수하로 다룬다. 그가 죽었어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 아마 최구성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10~11화의 설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하여, 꼭 이런 혁명가들은 후계자를 남기는 데에 실패한다.

 - 극단적이다. 일단 여기서 그의 혁명은 실패했다고 본다. 그는 확실히 여태의 살인범들하고는 다르다. 물론 이 사람은 최구성보다도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리더의 자질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인간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간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느 순간에선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의 혁명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고독에 대한 그의 고찰에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고 일반화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괴로움을 풀 생각을 못한 채 그대로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그 괴로움과 고통을 타인에게 전달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빡세게 일해본 과거가 있는 사람 A가, 고객으로서 레스토랑에 가게 될 때 거기서 근무 중인 웨이터 B에게 생짜를 부리는 식이다. 물론 A와 B는 일면식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걸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게 A이다.

 

3. 이런 마키시마 쇼코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준 사람이 바로 코가미 신야이다. 그는 마키시마 쇼코에 의해서 동료를 잃었고, 그에 복수할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마키시마 쇼코를 직접 보고 나서는 복수의 목적이 흐릿해져버리고 말았다. '동료를 죽인 놈'이 아니라 '사악한 놈'으로 인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빌라 시스템으로는 그를 처벌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시빌라 시스템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악당을 처벌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신념에 의해 구식 총을 든다. 물론 시빌라 시스템이 맹점을 지닌 건 사실이니 그의 방식 자체가 나쁘다고 하진 못한다.


 그러나 카가리는 마키시마 쇼코의 패거리들에게 시빌라 시스템에 맞서서 악의 신이 될 작정이냐고 반박했다. 이 경우는 코가미 신야에게도 적용된다. 사회와 시스템에는 분명 차별과 맹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을 더럽혀가면서까지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이전에 자기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신념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더불어 마키시마 쇼코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려서, 목적을 잃은 이후인 2기엔 또 무슨 목적을 찾을지도 상상이 안 된다. 아무래도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그는 다시 상당 기간을 방황해야만 할 것이다.


 - 신적 존재 외의 누구도 밀알과 가라지를 가릴 순 없다. 날 때렸다고 하여 남을 때리면 나도 폭력꾼이요, 내게 소중한 사람을 죽였다고 하여 남을 죽이면 나도 살인자다. 내가 사형을 반대하고 전쟁에 회의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무의식으로 빠져든 건 좋다. 하지만 적당한 때 빠져나오지 못했다.

 - 증오이던 사랑이던간에 인간 자체가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혁명을 보아야 한다. 애플의 정신과 혁명은 좋지만, 그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혁명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고독은 일시적으로라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긴다니 그 얼마나 독한 사람인가. 인간이라기보단 야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늑대는 무리지어 산다. 애니에선 그를 늑대로 비유하지만 그 비유는 정말 잘못되었다. 고독에 집착하게 되면 그 심연 속으로 빠진다. 그럼 결말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다.

 

4. 이 애니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이 바로 이 츠네모리 아카네이다. 그녀는 정신감정도 상당히 좋은 상태이고, 종이책을 잘 접해보진 않았지만 상당히 머리가 총명하여 테스트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그녀가 정해진 '지식'만을 섭취했더라도, 통찰력이나 관찰력으로 그 이상의 지식을 섭렵했음을 잘 보여준다. 시스템을 잘 따르고 그 내부에서 잘해나가는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중에서도 집행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코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간다. 이는 그녀가 상당히 자존심이 높으며, 주도권을 잘 잡을 줄 아는 건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암시한다. 코가미 신야를 상당히 좋아하고 신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눈치챌 정도로 그에게 호감을 쏟지만, 신야의 자기 학대()에 결코 휘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고독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괴로움을 타인에게 갚지 않으려 할 뿐더러,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한다. 방황하고 갈등하되 결코 법과 도를 넘지 않는다. 시스템에 조종당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 거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증거는 그 자신이다. 자신의 신념이 죽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타인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그녀는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신야는 그녀의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좀 더 귀여워지면 좋을텐데." 아카네는 그에 대해서 침묵한다.

 아카네가 자신을 그렇게 보이게 하면서까지 몰아붙이는 이유는 그녀가 시빌라 시스템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시빌라 시스템이 워낙 거대하고, 전 일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니 츠네모리 아카네가 그것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코가미 신야를 죽게 하지 않기 위해(혹은 그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총을 논리설 패럴라이즈로 고정시킨 건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좋게 보면 아카네가 시빌라 시스템과 타협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조작이다. 분명 이전에 시빌라 시스템은 마키시마 쇼코를 살리고 코가미 신야를 죽이기 위해 한 번 범죄계수를 조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아카네는 시빌라 시스템의 조작을 묵인했다. 항상 말하지만, 실수는 한 번 묵인하면 신나서 두번 세번 반복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명백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카네의 선택은 과연 이성적인 타협인가, 아니면 감정적인 외면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마저도 마키시마 쇼코의 혁명에 말려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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