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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모리 준이치 감독, 마츠오카 마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낭만적인 말을 하는 키가 큰 남자에게는 약한 것 같다.
1. 일단 내 엄마아빠의 나이에서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이름만 듣고 다른 영화로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으니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이치코 어머니가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그 어머니와 같이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뭐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시골 사람들이 순박하고 이치코 어머니 또한 혼자 농사지어 자급자족할만큼 생활력이 있다보니 피해를 주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냅두는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가 이치코가 고등학생이 될 때 홀연 집을 나가버리고, 이치코도 집을 나와서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사회의 냉정함과 거듭되는 연애의 실패를 견디지 못해 코모리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2.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도망치듯이 코모리 마을로 왔기에, 아무 생각도 없다고. 그녀를 지켜봐온 유타라는 남자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성격이라고. 주위의 사람들은 이치코에게 묵언으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길' 촉구한다. 코모리 마을에서 떠나던가 아니면 확실히 정착을 하라는 것이다. 이치코는 밤중에 집에서 틀어박혀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지만, 한편으로는 깜깜한 밖에 신경을 온통 기울인다. 난 이 영화에서 이런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갖혀있는 여자다. 문학에서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페미니즘에서 수많이 거론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이다. 혹은 마녀라고도 한다. 이 작품을 쓴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명 중 하나가 <마녀>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마을 이름을 보면 히키코모리의 '코모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지만, 한편으론 사회와 자연 둘 다에 포위되어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그러나 이치코의 생각만큼은 자유롭다. 그녀의 생각은 독백으로 하염없이 흘러간다. '사람들이 껍질을 버리는 걸 보니 아깝다. 저 껍질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몸에 좋게, 맛있게 만들 수는 없을까?', '양배추로 케이크를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그녀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혼자' 먹으면서 몸을 치유한다는 것도 신선하다. 수많은 음식문학들이 '음식은 정성'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서 몇몇 독자들이 눈초리를 찌푸릴 수밖에 없는 건, 그는 '타인을 위한', '문화가 들어있는' 음식의 개념을 작품 속에서 너무나 강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꼭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의 몸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음식의 형태라던가, 특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개념 자체가 너무 좋았다.
3. 그러나 나는 담배를 피우는 이치코의 엄마가 왜 자꾸 눈에 밟힐까? 고등학생 시절 이치코는 엄마에게 머위된장을 만들어달라고 명령투로 말하고 학교로 간다. 엄마가 사라졌던 날이다.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마치 이치코가 건방져지니까 귀찮아서 집을 떠난 듯한, 그녀가 비정상이라는 듯한 암시가 들어있어서 화가 났다. 귀농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로 귀농하는 건 그냥 수도권 내부에서 이사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고, 준비도 많이 필요하다. 이치코의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 부지런히 살지 않았더라면,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로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코는 그 속마음도 모르고 '엄마는 내가 가족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걸까?'라는 철없는 생각을 한다. 원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뒷수습이 부족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귀농 차원에서 좀 더 들여다보자. 월든에서는 '꼭 양서를 읽어야 하며 책을 너무 다방면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이지만 굉장히 원리원칙적이고 무엇보다 양서의 개념이 상당히 제한적인 소로우의 글은 읽는 사람을 약간 피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치코는 엄마의 서가를 발견하고, 책을 읽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책은 자신이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치코를 제재한다. 그래서 이치코는 '크게 휘두르며'같은 요즘 만화도 잘 읽는 유연한 성인으로 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치코는 엄마의 편지에 머위된장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아쉬워하면서, 정작 엄마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잔인하게도 '이치코의 엄마'로만 남게 되었다. 불쌍한 여자. 그러나 그녀를 전혀 불쌍히 여겨주지 않고 심지어 엄마 이전에 여자로 보지 않는 영화는 결국 가족애를 강조하며 식상하고 뻔뻔하고 재수없고 모든 솔로여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극악한 엔딩으로 치닫는다.
4.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사기를 쳐놓을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한 뒷감당은 어찌할 것인가? 귀농이 저렇게 행복하기만 한가? 결코 아니다. 그것도 지고 가야 할 하나의 삶이다. 여자의 삶이 저렇게 아기자기하기만 한가? 유타라던가 저 남자 마을 주민들 중 하나만 흑심을 품었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내용이 결코 저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주류의 삶에 서슴없이 침을 뱉고,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런 힐링 영화들에는 질릴대로 질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도 먹고 살 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데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술 쪽으로 밥먹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냉정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뭐하러 돈에 목숨을 걸고 뭐하러 상업적인 쓰레기 작품을 쓰는가? 그래서 나는 리틀포레스트에 대한 우리나라의 유독 심한 혹평 속에서 조금 관대하게 리뷰를 쓰려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거론했다. 심지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4시간씩이나 되지만,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하고 여태까지 본 영화 중에 제일 시골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코모리의 풍경은 아름다우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보면 너무 재밌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와서는 꼭 이런 영화나 책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비소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 존 쿳시의 추락 http://vasura135.blog.me/80179239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