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모리 준이치 감독, 마츠오카 마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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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말을 하는 키가 큰 남자에게는 약한 것 같다.

 

 1. 일단 내 엄마아빠의 나이에서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이름만 듣고 다른 영화로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으니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이치코 어머니가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그 어머니와 같이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뭐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시골 사람들이 순박하고 이치코 어머니 또한 혼자 농사지어 자급자족할만큼 생활력이 있다보니 피해를 주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냅두는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가 이치코가 고등학생이 될 때 홀연 집을 나가버리고, 이치코도 집을 나와서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사회의 냉정함과 거듭되는 연애의 실패를 견디지 못해 코모리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2.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도망치듯이 코모리 마을로 왔기에, 아무 생각도 없다고. 그녀를 지켜봐온 유타라는 남자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성격이라고. 주위의 사람들은 이치코에게 묵언으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길' 촉구한다. 코모리 마을에서 떠나던가 아니면 확실히 정착을 하라는 것이다. 이치코는 밤중에 집에서 틀어박혀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지만, 한편으로는 깜깜한 밖에 신경을 온통 기울인다. 난 이 영화에서 이런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갖혀있는 여자다. 문학에서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페미니즘에서 수많이 거론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이다. 혹은 마녀라고도 한다. 이 작품을 쓴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명 중 하나가 <마녀>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마을 이름을 보면 히키코모리의 '코모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지만, 한편으론 사회와 자연 둘 다에 포위되어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그러나 이치코의 생각만큼은 자유롭다. 그녀의 생각은 독백으로 하염없이 흘러간다. '사람들이 껍질을 버리는 걸 보니 아깝다. 저 껍질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몸에 좋게, 맛있게 만들 수는 없을까?', '양배추로 케이크를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그녀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혼자' 먹으면서 몸을 치유한다는 것도 신선하다. 수많은 음식문학들이 '음식은 정성'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서 몇몇 독자들이 눈초리를 찌푸릴 수밖에 없는 건, 그는 '타인을 위한', '문화가 들어있는' 음식의 개념을 작품 속에서 너무나 강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꼭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의 몸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음식의 형태라던가, 특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개념 자체가 너무 좋았다.

 

 

  3. 그러나 나는 담배를 피우는 이치코의 엄마가 왜 자꾸 눈에 밟힐까? 고등학생 시절 이치코는 엄마에게 머위된장을 만들어달라고 명령투로 말하고 학교로 간다. 엄마가 사라졌던 날이다.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마치 이치코가 건방져지니까 귀찮아서 집을 떠난 듯한, 그녀가 비정상이라는 듯한 암시가 들어있어서 화가 났다. 귀농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로 귀농하는 건 그냥 수도권 내부에서 이사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고, 준비도 많이 필요하다. 이치코의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 부지런히 살지 않았더라면,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로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코는 그 속마음도 모르고 '엄마는 내가 가족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걸까?'라는 철없는 생각을 한다. 원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뒷수습이 부족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귀농 차원에서 좀 더 들여다보자. 월든에서는 '꼭 양서를 읽어야 하며 책을 너무 다방면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이지만 굉장히 원리원칙적이고 무엇보다 양서의 개념이 상당히 제한적인 소로우의 글은 읽는 사람을 약간 피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치코는 엄마의 서가를 발견하고, 책을 읽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책은 자신이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치코를 제재한다. 그래서 이치코는 '크게 휘두르며'같은 요즘 만화도 잘 읽는 유연한 성인으로 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치코는 엄마의 편지에 머위된장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아쉬워하면서, 정작 엄마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잔인하게도 '이치코의 엄마'로만 남게 되었다. 불쌍한 여자. 그러나 그녀를 전혀 불쌍히 여겨주지 않고 심지어 엄마 이전에 여자로 보지 않는 영화는 결국 가족애를 강조하며 식상하고 뻔뻔하고 재수없고 모든 솔로여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극악한 엔딩으로 치닫는다.

 

 

 4.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사기를 쳐놓을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한 뒷감당은 어찌할 것인가? 귀농이 저렇게 행복하기만 한가? 결코 아니다. 그것도 지고 가야 할 하나의 삶이다. 여자의 삶이 저렇게 아기자기하기만 한가? 유타라던가 저 남자 마을 주민들 중 하나만 흑심을 품었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내용이 결코 저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주류의 삶에 서슴없이 침을 뱉고,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런 힐링 영화들에는 질릴대로 질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도 먹고 살 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데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술 쪽으로 밥먹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냉정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뭐하러 돈에 목숨을 걸고 뭐하러 상업적인 쓰레기 작품을 쓰는가? 그래서 나는 리틀포레스트에 대한 우리나라의 유독 심한 혹평 속에서 조금 관대하게 리뷰를 쓰려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거론했다. 심지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4시간씩이나 되지만,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하고 여태까지 본 영화 중에 제일 시골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코모리의 풍경은 아름다우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보면 너무 재밌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와서는 꼭 이런 영화나 책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비소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 존 쿳시의 추락 http://vasura135.blog.me/80179239627

 만화: 알콩달콩 깨알같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귀촌과 귀농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리뷰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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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기생수 파트 2 : 렌티큘러 800장 넘버링 한정판 (2disc)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 아사노 타다노부 외 출연 / 더블루(The Blu)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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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게 신이치 여자친구 무라타 사토미. 하시모토 아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등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기억나는 게 씬밖에 없다니 ㅋㅋㅋ 아마 또 다른 (기생수) 여주인공인 료코의 이미지가 강력해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료코가 총을 맞아가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 결국 남주인공의 손에 그 아이를 넘겨주는 장면은 감동과 섬뜩함을 같이 표현해야 하는데, 그 어려운 감정처리를 잘 해냈다. 하지만 그런 식이었다면 과감하게 여자친구와의 씬을 지우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원작에선 지구가 기생수에 반쯤 둘러싸이는 세계 안에서, 오른손이와 세포가 섞인 남주 그리고 여주가 애도 낳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리고 있는데(혹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솔직히 영화에선 그런 암시가 반만 들어가 있어서 어딘가 이상했다.

 

 

 2. 특이한 점은 은연중에 고토(왼쪽)보다는 히로카와 다케시(오른쪽)를 원작에서보다 더 강조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이 인물을 보고 나서 '원작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라고 한참동안 생각할 정도였다. 만화, 애니 그 어디를 봐도 제일 샤프하고 잘생긴 인물로 나온다. 보통 사람이 냉정하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쏟아냄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시장까지 올라간 걸 볼 때 확실히 이 정도 매력이 있어야 현실적인 듯하긴 하다. 자세히 보니 배우가 2013년 영화 고양이 사무라이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키타무라 카즈키이다. 방송과 영화에선 여기 출연한 배우 그 누구보다도 상당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 이 역할을 맡은 걸 보면 감독이 어지간히 다케시라는 인물에 빠졌나보다. 확실히 연단에서 금방 자신을 총으로 쏴죽일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장엄한 데가 있었다. 하지만 원작의 핵심 코드는 인구 수를 줄여야 한다는 파시즘적인 이론은 아니었을 텐데...?

 

 

 3. 차라리 주제를 오른손이와 신이치의 우정에 맞춰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런데 쇼타가 멋있는 연기만 엄청 하는 인물이다보니, '신이치'가 볼썽사납게 울어야 하는 부분에서 삐끗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오른손이를 잃고 슬퍼하는 장면만 롱테이크로 찍기엔 무리가 있었겠구나 싶기도... 경력은 많은 배우인데, 감정연기가 부족한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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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화장 : 700장 넘버링 풀슬립 한정판 (36p 포토북) - 컬러 & 스페셜 블랙 버전 본편 수록
임권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스튜디오 A(STUDIO A) / 2015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1. 이 영화를 다 봤을 때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처음 볼 때 느꼈던 그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 상당히 분노했다. 그나마 반전이 두 가지나 존재하는 반전영화라는 게, 반전영화라면 물불 안 가리고 챙겨보는 나에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반전 중 하나는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에 비해 매우 건전한 영화이며 은근히 기대했던 정사씬이 도무지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 영화의 원작인 김훈 소설을 보고 나서 봤다면 충격이 좀 덜했을까? 솔직히 원작까지 볼 수 있을지 자신은 없는데, 칼의 노래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래도 한 번 믿어본다. 그렇다. 사실 김훈이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썼을 거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영화에서 보고 내가 이해한 그 내용을 쓴 건지' 궁금해서 억지로라도 읽어보려고 한다. 

 

 

 2. 이 영화의 주인공(안성기)은 화장품 회사의 상무로 왠만한 직위에 오른 장년기의 남성이다. 암이 계속 재발하는 아내를 두고 사는데, 덕분에 약자에게 퍽 상냥한데다 병간호에 제법 익숙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아내의 뇌종양은 꽤 커 보인다. 그는 처음이 아닌 아내의 병간호에 다시 나선다. 회사일도 같이 병행해서 하는지라 피곤한 모습을 보인다.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그에게 잘도 아픈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들. 게다가 그 힘든 순간에 새로 입사한 젊은 여직원이 너무나도 이쁘게 보인다. 그는 그녀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과의 혹독한 사투를 벌인다. 정말 때아닌 삼중고이다. 굉장히 아침드라마같은 설정이라서 정말 별로였는데, 이 영화가 철저히 바람피는 남자의 1인칭 시점이다보니 나이들어서 바람피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3. 이 영화를 욕하는 사람들이던 아니던 간에 본인을 포함한 관객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이 암에 걸린 여인이다. 한 때 상당히 부자였던 것 같고, 자신을 미적지근하게 좋아하는 주인공을 잡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했던 듯하다. 하지만 결국 암에 걸리니 자부심이나 자신감은 길거리에 내팽개쳐진다. 샤워기를 잡을 힘조차 없어서 결국 주인공이 그녀의 알몸을 씻기고, 그녀는 결국 절망적인 울음을 터뜨린다. 으으... 저거 무서워서 병원가서 건강검진하기 싫어진다니까. 결국 저 부인은 자다가 편안히 가셨지만, 이상한 병 걸리면 고통스럽게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젊었을 때 건강을 챙깁시다 여러분.

 

 

 4. 실제로 겪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아서 곁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고, 사랑해서 옆에 있지 않고 떠나주는 경우가 있다. 만약 나의 사랑이 사랑하는 상대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다면, 나는 가차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몇 번이고 잔인한 말을 할 수 있고, 몇 번이고 잔인하게 잘라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게 사랑의 완성이다. '널 사랑해서 떠나보내는 거야' 같은 식의 이별이 오히려 훨씬 더 잔인하다. 사랑하기에 그는 침묵하고, 사랑하는 그녀의 문자를 조용히 지웠다. 그의 옆을 쌩하고 지나친 그녀는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한 채로 떠나간 것일까? 아무튼 그는 나름대로 사랑했던 아내를 죽음에게 빼앗겼고, 첫사랑처럼 가슴떨리게 사랑했던 그녀를 잃었고, 아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개를 안락사시켰다. 모든 걸 토해내고 완전히 혼자가 된 그는 담담하게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난 이런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만약 그가 그녀와 와인을 마시면서 이틀을 같이 보낸 후 그녀를 중국으로 떠나보냈으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뭐 어차피 여주인공이 그런 걸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만. 그래서 난 이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 여자가 약해도 너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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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브레드
미시마 유키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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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보면서 애니보면서 음악까지 들으려니 정말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간략하게 한 마디만 하려고 한다.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 누구나 시골로 내려오기를 원하는데, 이 분들은 정말로 그냥 무작정 내려왔다. 손님이 많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드문 오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날씨가 좋지 않은 때도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너무나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일본을 가보진 않았지만 저 곳의 경제도 사실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나? 특히 후쿠시마 사건 이후로는. 워낙 대사가 많지 않다보니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도쿄에 올라가기 힘들다는 시골 청년의 푸념은 그냥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또 대뜸 등장하는 신파적인 이혼가정, 즉 아버지가 딸아이를 혼자 키우는 이야기는 하품이 나올 만큼 지루하다. (살짝 졸았다.) 계속 어머니가 만들어 준 호박수프 타령하고 있길래, 카페 마니에서 직접 메뉴에서도 없는 호박수프를 만들어줬다. 근데 이 기집애는 먹지도 않고 일어서서 학교로 간다. ... 뭐야 이 짱미오같은 설정. 만일 귀여운 여자애가 그 말을 안 했다면 나 그냥 이 영화 꺼버렸다. 니 엄마가 니가 그렇게 클 때까지 호박수프 줄곧 만들었으니 이젠 니가 해먹을 때가 되지 않았니 얘야? 


 2. 아무튼 '빵'이란 이름의 기원이 깜빠뇽이고 깜빠뇽이 동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여태까지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봐도 좋다. 

 프롤로그 부분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겠다. '달과 마니'라는 그림책에 푹 빠진 리에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야 하는 도심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마침 남편 미즈시마가 시골로 내려가자고 해서 훗카이도 츠키우라에서 숙박시설 겸 카페를 오픈한다. 그녀는 그 카페의 이름도 마니라고 지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녀는 남편 미즈시마를 그 때까지는 전혀 마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그럼 왜 결혼했어? 거기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그에 대해서 썼다간 또 이 리뷰가 삼천포로 빠질 것 같으니 나중에 다른 데서 쓰기로 한다.

 아무튼 그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귀가 더럽게 밝은 유리 공예가 요코 정도가 약간 시골의 암막같은 존재로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월든에서 저자의 말에 의하면 시골 아낙네들은 자신이 사는 집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오두막의 침대 밑까지 샅샅이 뒤진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으로도 그 말은 맞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존재로구만.), 그녀마저도 깜짝 선물로 카페의 분위기를 밝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중에 하나였던 훈남 토키오는 카페 마니에서 인연을 만나 직장도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한다. 아니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ㅋㅋㅋ 정말 꿈이 없는 청년이었구만! 분명 해피엔딩인데 어처구니 없다고만 생각되고, 깔 부분만 이곳저곳 발견되는 걸 보면 난 의외로 상당히 세속에 찌든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3. 각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카페 앞 버스 정류장에서 쭈뼛쭈뼛거리며 서 있다가, 무슨 결심이 섰다는 듯이 돌연 이를 악 물고 카페 마니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을 위해 카페 마니는 메뉴에도 없는 빵을 만들어주던가, 와인을 제공해주면서 그들을 반긴다. 그러고보니 해피해피 와이너리에서도 빵이 나왔었지. 각본을 쓴 사람이자 감독인 미시마 유키코가 어지간히 빵과 술, 그리고 나란히 서서 행진하는 음악단을 좋아하는 여자인가 보다. 빵 이야기가 한창 나오다가 오키나와 인형 이야기가 튀어나오지 않나, 갑자기 건배는 많이 할수록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질 않나, 스토리가 뒤죽박죽이다. 이혼가정 에피소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자면, 호박수프를 앞에 두고 침묵하고 있는 부녀 앞에서 아코디언을 켜고 있는 아저씨가 상당히 억지춘향으로 보일 것이다. 보통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화를 내겠지. 하지만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워낙 돌발적인 데다가 로맨티스트들이고, 카페도 워낙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설정이라, 어쩐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해피해피 와이너리에서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정말 여기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녹색당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라 미묘하다.


 4. 아무튼 자살하러 고향이자 인적이 드문 츠키우라 마을로 찾아온 노부부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었기에 간신히 이 영화에 4점을 줄 수 있었다. 이 부부가 사실 주인공 부부보다 더 연기를 잘 했는데, 평소 빵이 입에 맞지 않았던 할머니가 콩빵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와이너리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효과음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 바삭바삭 소리가 났던 빵이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고 할까. 상당히 짦은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보다보면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계속 변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그러나 그녀도 그녀를 변함없이 지켜보고 사랑해주며, 그녀의 변화를 인정하는 할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멋진 여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리에도 그 노부부를 보고 나서야 미즈시마를 마니로 인정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렇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이랑 원하는 걸
 동료와 함께 하라.
 그러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두 시간동안 열변하기엔 굉장히 간단하고 식상한데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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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와이너리
미시마 유키코 감독, 안도 유코 (Ando Yuko)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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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크램블 에그로 할까?
아니면 수란으로 할까?
(는 동생 로쿠(쇼타)가 하는 말이니 2000% 누님들을 노린 듯(...) 그리고 전 저격당한 듯?!
널 원한다 인석아 ㅠㅠ 나에게로 오면 키아누 리브스보다 더 사랑해줄텐데 엉엉...)


 1. 지휘자로 먹고 살고 싶어서 집을 박차고 나간 어느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휘자로 살면서 점차 돌발성 난청을 겪게 되고, 좌절을 곱씹으며 고향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눈앞이 짜잔하고 밝아지고, 그 빛이 눈부셔서 눈을 찌푸리는 찰나 저기 멀리서 아버지가 심은 포도나무가 보인다. 거기에 열린 포도를 먹고 나서 그는 결심한다. 포도농장을 차리겠다고. 고향에서 계속 아버지의 밀밭을 가꾸고 있었고, 내심 형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은 동생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밀밭 일도 하면서 철없는 형을 돕는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선 왠일인지 내다 팔만한 품질의 와인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실패가 계속 반복되고 있던 찰나, 이 조용한 밭에 갑자기 어떤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삽 한자루 들고 형제가 있는 밭을 찾아오더니, 대뜸 옆에 있는 황무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암모나이트를 찾기 위해 세계 전부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나.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 고집많은 형 아오와 황야의 여자 에리카가 플래그가 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2. 어떤 리뷰에서는 이 영화를 '귀농한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이고 도시에 있는 자신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번잡한 영화다'라고 소개했더랜다. 글쎄다. 귀농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좋아할지 의문이다. 저렇게 편하게 농사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중에서 농사짓는 형제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역시 저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지라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나는 일단 포도에 농약을 치는 장면이 안 나오는 데서 좀 코웃음이 난다(...)


 게다가 대체 언제적 소재인지 모를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가 관객을 몹시 질리게 한다. 해피->새드->해피로 나아가는 전개도 굉장히 식상하다. 형은 아오라는 이름 때문인지 맨날 파란색 셔츠를 입기를 고집하고, 에리카 또한 아오와 성격이 반대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계속 빨간색 옷만 입는다. 농사가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걸 굳이 강조해서 보여주려는지 주변은 굉장히 조용한데 바람부는 소리만 들리거나, 포도주가 숙성되는 소리만 들리거나 그러기를 한참 반복한다. 팝콘 들고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 사람은 상당히 눈치가 보였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아마 팝콘 우적거리는 소리도 상당히 거슬려보이거나, 혹은 소리가 완전히 뒤덮였을 것이다. 혹은 영화 중반에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던 간에 이 영화는 집에서 1~2명이 봐야지, 여러 명이서 복닥거리면서 보기엔 좀 그런 영화다. 만약 옆에 있는 사람이 도저히 못 견디고 잔다면 인내심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그냥 다른 영화를 봐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영화니까. 만약 자신이 졸게 되도 마찬가지다.


 


 3. 그러나 일단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2시간 내내 기다림에 대해서 끈질기게 이야기하는데, 대체 그게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끝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이 사람의 영화는 냉정히 이야기해서 훌륭하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도 굉장히 한정적이며 (에리카의 차림을 보고서도 이거 설마 싶었지만 영화 중반에 머리 산발에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히피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거기서 필이 오는 게 이 감독... 역시 일본 녹색당의 일원이거나 그쪽 사람들과 친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자연이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감독도 자신이 하고 각본도 자신이 썼다.) 하지만 보면서 하품나오는 걸 참았던 '블루드롭'처럼, 난 이런 장르에 걸려드는 덴 천부적인 재주가 있나보다(...) 이전 작품으로 2012년 해피해피 브레드가 있고 또 2013년에 이류소설가 시리얼리스트가 있는데, 왠일인지 그 작품은 망한 듯하다; 그리고 2014년에 나온 게 이 해피해피 와이너리.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잘 정했기에 망정이지,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포도의 눈물'이라는 굉장히 진부한 이름이다(...) 그래도 난 리틀 포레스트보단 낫다고 하고 싶다.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감독의 집념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 일본영화답지 않게 주인공 아오와 여주인공 에리카에게만 제대로 포커스를 맞춰주는 게 신선했고, 거의 영상효과를 넣지 않은 채 어느 한 장소의 배경으로만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 시도가 좋았다. 분명 포도밭에서만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이 각도로 포도밭을 보고 저 각도로 포도밭을 보니 분명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인다.


 난 세상이나 사람이나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분명 우리가 암모나이트처럼 몇 억년을 기다려 줄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이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올바르게 산다면 분명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게 있을 것이다. 일단 내 자신이 먼저 변하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은 그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더러운 물이 될 수도 있고 시원한 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게 마음에 달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이 언젠가는 자신도 흡족하고 관객도 좋아하는 영화를 쓰고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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