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zygy 문학과지성 시인선 446
신해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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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자리

 

 

검은 개가 똥을 먹었다.

 

 

검은 개의 혓바닥이 나의 영혼을 핥았다.

 

 

검은 개의 눈이 나를 피했다.

 

 

그것이 일종의

사랑이어서

 

 

나는 슬프고 더러웠다.

 

 

추문이 깊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비밀을

개와 나눌 수는 없었다.

 

사실 난 포즈 시가 좋았는데 네이버 블로그에 이 시가 좋다고 올린 사람이 따로 있다.

일단 시인이 고생했구나 하고 두번째로 절절히 느껴지고 두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개의 자리를 올리기로. 근데 개의 자리가 더 유명한 시였다(...)

지금은 탈코르셋이라며 브라자를 안 하거나, 머리를 밀거나 하여 사람들이 야단을 치지만 옛날에는 여성들이 되려 치장을 하여 일탈을 즐길 때가 있었다. 당시의 여성은 하이힐과 길고 뾰족한 머리핀을 무기로 사용했다. 특히 아름다운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와 부츠를 신고 남성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들을 '깔봤다'.

요즘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보험금을 펑펑 쓰고 다닌다, 요즘 여성들은 자신이 남친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잤다며 유투브 크리에이터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요즘 여성들은...

하지만 '요즘 여성들은 부츠를 신고 다닌다'라는 말은 어떤가? 일탈은 편하게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씹고 맛보면 그 효과가 배가 되겠지만, 소송 같은 걸로 열내는 걸 보면 요새 젊은이들은 끌끌... 나도 나이가 들었나?

 

지구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갈 다른 인간 종류에게 위로에 가까운 말을 해보자면.

그날일 때는 생리대를 갈다가 피가 손에 묻을 때가 있다. 워낙 끈덕진 피라서 왠만큼 깔끔히 씻지 않으면 지우기 힘들다. 비릿한 냄새가 오랫동안 가시지 않을 때도 있다.

생리와 임신 가능성은 여성이 정신차리고 살게 해준다. 위생의 첫번째가 손씻기임을 감안해볼 때, 위생을 철저하게 지키는 탓에 감염병도 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들 뿐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손을 잘 씻으면 되는 것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둘 있는데 중복과 누락이다. 언뜻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더 많이 주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딱딱해보인다. 통계는 실상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들이 겪는 현실의 무게는 오히려 무거워진다. 통계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사람의 어려움을 공감할 줄 아는 감정이 없이는 우리는 점점 공식에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이 시인의 대단함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시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인은 '눈이 흰 쌀밥으로 보인다'라는 흔한 문장으로 배고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눈을 잔뜩 먹어 배가 부르다고 표현한다. 그런데다 '옷을 더럽혔으니 나는 악마자식이라고 불릴' 거라는 반전까지 갖추고 있다. 사실 그 시가 제일 마음에 들었으나 일부러 개의 자리라는 시를 명문으로 공개한다. 모든 시가 마음에 들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시집의 정확한 발음은 시저지이다. 영어는 반복을 싫어해서 y가 두 번 연속으로 들어가면 어 발음으로 바뀐다. 세번째에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네번째는 어찌될지 모르겠네. 일단 y가 세번 연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드물어서. 이 시에서 그렇게 중요시하는 이미지, 즉 imagery는 이미저리라고 발음이 된다. 사실상 ma는 정확하게 발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현실이 고달파 공상 속에 살 수밖에 없는 미저리한 사람들을 그려냄으로서 가난의 현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말미에 시집에 대한 서평이 없는 것도 충격적이다. 하긴 다방 레지와 노는 시를 쓰거나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재밌다는 듯이 동시로 적어내는 시인들의 시집에선 꼭 그럴듯한 변명조의 서평이 실리곤 했다. 변명이 없어서 오히려 더욱 좋은 시집이었다.

 

비둘기와 숨은 것들 중에서

 

 

이게 아니었는데.

 

 

속초의 돌을 주워 여수 앞바다에 던지려다

팔이 빠졌는데.

 

 

영원한 포물선을 그리는 건

나의 소원.

 

 

나의 어깨에서 분리된

나의 그래프.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꿈을

나는 막아볼 수가 없고.

 

 

이걸 해본 게 저 뿐만이 아니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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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후회없는 선택 1 진격의 거인 시리즈
스루가 히카루 지음, 이사야마 하지메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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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득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써본다.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닌

냉철한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과 결정이다.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랬음 어땠을까 저랬음 어땠을까 하는 가설이 자주 나온다. 학자들이 하는 말은, 그런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는 이런저런 추정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 왜곡과 망설임을 가져오고, 스스로를 파멸로 가져온다. 자신의 파멸은 결국 자신에겐 세계의 파멸과 다름이 없다. 죽으면 그것으로 나에겐 세상이 끝이기 때문이다. 리바이는 결국 살아남았으며, 부대에서는 가장 존경스런 인물로 남고, 결국 진격의 거인 내부에서 역사가 될 것이다. 나중엔 리바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부하가 나타나지만 말이다(...) 그것도 결국 역사의 흐름 중 하나일 것이다.

 

2. 초반에 결정장애 걸린 듯한 앨런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의 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다. 그러고보면 리바이는 진심에서 만나지 얼마 안 된 그를 걱정하여 본심을 꺼내 말한 것이다. 그가 생각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여러 부분에서 느껴진다. A와 B 부분을 합쳐 약 5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걸 봤다고 생각된다. 꽤 좋은 에피소드였다. 역시 리바이편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신경을 많이 쓴 것인지. 솔직히 나이프 휘두르는 장면이 이렇게 현란할 줄 생각도 못했다;

 

3. 처음엔 의뢰 때문에 받아들여졌지만, 나중에는 선택의 기회 운운하는 것 때문에 열이 뻗쳐서 진심으로 엘빈을 죽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막판에는 사람 좋음이 족쇄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본편에서 엘빈을 열렬히 지지하는 걸 보고 좀 의문스러웠는데 이걸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할까. 좀 씁쓸해진다. 리바이가 다른 것에 구속된 것 같지 않으면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투쟁의 노예가 된다는 점에서 에렌이랑 대립각이 가장 잘 서면서도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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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로드 나베랄 감마 so-bin Ver. - [재판] 1/8스케일 PVC&ABS 도색완료 완성품 피규어
アルタ-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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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작가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오버로드는 생각해보면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중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현대 사람들은 어떻게 보여질까. 그것도 기술에 따른 생각과 사상을 살기 위해 총동원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같은 인간이 아닌 '마물'로 보는게 평범하지 않을까? 우리도 중세의 하급층 인간을 인간으로 보기가 몹시 힘들 것이고.

​그 중간에 끼여서 파멸한 게 알베도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 그런가. 지고의 존재들을 알고 있는데다가 (모몬가를) 사랑하기까지 하는데 자신은 그와 동등한 존재(아인즈 울 고운과 같은)에 서지 못하는 걸 직감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거 무척 괴로울 듯. 모몬가가 갈수록 괘씸해진다 ㅋㅋㅋ

 

 

흥미로웠던 건 세바스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실 이건 선함보다는 약간 악당에 가까운 주인공에 비교되어서 나온 의도된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혐 현상과 결합되다 보니, '아무리 여성이 안됐다고는 하지만 그녀를 구하느라 예산을 펑펑 쓴 세바스찬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반면 주인공은 세바스찬이 자기에게 충성하는 마음만 잃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명령에 어긋나게 행동해도 크게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전에 그를 수하로 두었던 게임 유저의 성격답게 정의에 충실한 그가 과거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것도 한 몫했다. 나도 주인공과 의견이 비슷하다. 어차피 팀으로 행동할 거라면 자신과 성격이 달라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게임 속에서 표류하기 전 회사원이었다는 설정은 유동성이 많은 요즘 사회에서 독재보단 팀의 협력이 중요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된다. 이 생각은 특히 오버로드 후반대에서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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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Atelier Escha & Logy: Alchemists of the Dusk Sky (에스카와 로지의 아틀리에 : 황혼 하늘의 연금술사)(한글무자막)(Blu-ray)
Section 23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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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반드시 다음이 있어요.

 

1. 애니에서는 '어때요? 참 쉽죠?' 수준으로 퀘스트가 뚝딱 해결되지만 원작 게임은 많이 분위기가 다르다. 마비노기에 힘입어 나온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개노가다이다(...) 어쨌던 하나카나 성우가 굉장히 열일을 해주신 애니메이션이다. 게다가 아틀리에 시리즈 분위기를 잘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작붕때문에 말이 좀 있지만 보다보면 생각보다 그쪽엔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꼬리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게 살짝 아쉬울 뿐이다.

 

2. 판타지가 배경이지만 액션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게다가 연금술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어두운 실험이라던가(...) 냉혹한 등가교환 같은 이야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애초 게임 자체가 연금술로 만들 물건과 관련된 재료를 모으는 게 거의 전부인지라. 혹시 강철의 연금술사같은 장르가 싫거나 치유물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줄 만하다. 끝에 작은 반전이 있지만, 애니에서 굉장히 세계관을 좁히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해피엔딩이다. 애초 과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 함부로 물뿌리개를 함부로 사용한 인간들'에 대해선 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는지 아쉬울 정도로.

3. 굳이 지적할 게 있다면 과학에 대한 긍정론이 강하다는 점이다. 에스카와 로지의 아틀리에의 배경은 시골이다. 그리고 중앙의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쏟아져 나온다. 중앙 사람들은 과학의 힘으로 잘 살고 있다. 아무래도 스토리가 심각하지 않다 보니 과학의 발전에 대해선 중도적인 견해로 가는 듯한데... 어차피 과학이 발전하다보면 주요배경인 그 시골도 중앙같이 개발되고 마는 게 아닌가? 물론 애니의 교훈처럼 인간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인간이 너무 많고 이기적이라는 라스트 보스(?)의 말도 아주 틀리진 않은 듯하다. 당연히 그 유적지에 가는 데 성공하고 라스트 보스의 마음을 돌려놓은 부분이 최종화이다. 그 이후 알려진 시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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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호르헤 셈프룬 지음, 윤석헌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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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다는, 다르다는 것에서 나오는 오만함은, 우리를 우습게 만들기도 한다, 종종.
 


 


 

누가 나같은 인간이 좋아할 거라며 강력 추천한 책인데 초반부터 팬티 이야기가 나온다(남성인 화자 꺼지만). 학교 기숙사 같은 곳에서 수녀가 짐 검사를 한다고 학생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는 눈앞에서 화자의 팬티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아무튼 이걸 추천한 친구는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화자가 공산당이기도 하고.



그러나 차별이 군데군데 스며든 내용에는 도저히 집중하지 못하겠다. 동성애자 코스프레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저렇게 은근히 능구렁이처럼 동성애자를 성추행 가해자에 빗대어 표현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정말로 성추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회개를 했다가 동성애자로 취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나. 본인도 스페인 사람이라고 인종차별당했던 사실은 비판하면서 여자나 소수자들은 마구 차별하네 ㅋㅋㅋ 이분도 프리모 레비 류의 꼰대인가. 내가 좋아하는 시절의 철학자의 이름이라던가 유명한 프랑스 유적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와서 좋지만, 이 정도면 그 시대 거의 모든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여성을 우습게 봤다 해도 좋을 것 같다. (뭐 굳이 이런 글 읽다가 왜 페미니즘과 관련된 비판을 어거지로 찾아낼 이유가 있느냐 긍정적으로 읽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왜 긍정적이어야 하지? 여자를 공격하듯이 몰아세우는 게 그저 이 시대 작가들이 공통이라는 소리다. 비판 비평을 하는 듯이 보인다면 그저 그 자신이 찔려서 그러는 게 아닐까? 분명 자기보다 센 사람에겐 알아서 설설 기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겐 노오력 부족이고 능력 부족이라 공격하며 그걸 합리화시키며 실컷 즐기는 중증일 것이다. 심지어 2017년 한국에서 내가 독서모임 중에 '프리모 레비가 은근 여성차별 하는 거 같지 않아요?'라고 이야기 할 때,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 회원까지 마치 워마드 메갈 보듯 날 쳐다봤으니까. 그놈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는 소리도 질렸다. 여태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으니 내가 살아있지 ㅋㅋㅋ 알지도 못하면서 남 비난하는 건 한국 인간들 따라잡을 생명체가 없다.) 인격적인 모독을 안하고자 조롱을 가급적이면 멀리하고 있는데 한 마디만 하자면, 내 입장에서 댁들이 얼마나 우스운 인간인지 하는 생각이 들고 유치하단 생각이 들고. 그나저나 동성애자는 니네들이랑 같이 수용소에 잡혀 들어간 사람들 아닌가? 같이 감금되어 사는 신세면서 내부차별 쩌네용.

미안하지만 호르헤 셈프룬 씨한테 또 지적질? 질문?을 할 게 있다. 이 분은 계속 속옷타령을 하다가 말미엔 자신의 여성관계에 관해서 회상한다. 매춘에 대한 입장과 첫 경험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은 확고히 부르주아의 세계 내부에서 어두운 부분에 자리한 매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반적으로 이 사람은 관대한 편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공산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지 않은 편인데, 이 책으로 봐서는 여성에 관한 그의 편견이 문제인 듯하다. (그렇지만 본인은 공산당에서 한 발 뺀 걸 퍽 자랑스러워하는 듯해서 뭐 어드바이스 해줘도 소용 없을 듯하다.) 사실 여성이 책을 읽고 배울 사회적 여력이 그닥 없었던 게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책 구절 하나 암송하는 여성을 만나보지 못한 게 여성들의 문제인가. 지적인 여성이 혹 작가가 맘에 안 들면 책 구절 암송을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항상 말하듯이, 스스로가 여성의 팬티라던가 가슴이라던가 엉덩이에 너무 집착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가 공산당은 잘 모르겠지만, 사회주의는 프톨레타리아의 혁명을 주장한 이론 아닌가? 여성도 프톨레타리아만큼이나 차별받았을 텐데, 왜 여성들에겐 이리 비판적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남성들의 매춘 거리는 가봤지만 들어가보진 않았다 이런 드립 너무 진부해보인다. 뭐 그래도 악의 꽃 시구절을 늘어놓아서 반박불가의 아름다움을 제시한 점에선 고단수랄까. 랭보 시구절 해석도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상당히 잘 묘사해 놓았고. 그치만 호르헤 셈프룬 작가의 책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이 굉장히 재밌어진다. 특정한 여성의 누드에 대해 찬양을 하면서 보들레르의 코르셋(?)에 대해 회의를 제기한 점이 꽤 독특하다. 페미니즘까지 끌어오는 것도 그럭저럭 유머러스하다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거론해서 까대도 참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묘사를 참 잘 하는 걸 가지고 중반까지 계속 빙빙 돌려가면서 여혐해댔는지 의문이다. 마지막을 빛내기 위해서였을까.

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첫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페인어를 꽤 능수능란하게 말할 줄 아는 그 혀가 좋았다. 순진하게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라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이 책을 보면 그 나라의 정서가 대강 그런가 보다. 책의 군데군데에 등장하는 스페인 시는 그 발음만큼이나 좋았다. 지나가버린 10년 전이 아련히 생각나는 책이었다.

 

그런데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아이러니한 아를레티의 시선을 느끼며 비를 피하고 있을 때-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시절 영화 속 대사 대부분을 외울 수 있었고, 그 대사 중 파리 사람 특유의 조롱조, 헤이그에서 만난 그 '꽃무늬 거들'을 바라보던 우아한 여자가 사용했던 말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강렬한 불편함이 나를 엄습했다. 참을 수 없는 육체적 슬픔이었다.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전사." 빅토르 위고의 말, 생미셸 대로의 빵집 여주인이 환기한 이 말은 나를 지독한 비탄에 빠뜨렸다.


아 화자 대신 빵집 주인 때리고 싶다 퉤 귀 멀었냐 애가 크로와상 쳐달라고 하는데 왜 못 알아듣냐 ㅠㅠ
아를레티는 프랑스 배우 이름이라고 한다.


교수님이 퀴어와 관련된 이슈는 민감하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음...?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도 그렇고 난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정상인이라면 들어도 무심코 넘어갈 말들에 이방인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차별을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설령 욕을 먹는 게 일상화되어서 감정은 둔해질 수는 있겠지만, 차별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자신이 무시받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여러 해가 더 지나서 1967년, 그러니까 내 인생의 절반쯤 온 시절에, 다리오의 시를 선별해서 수록한 파란색 작은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다. (...) 어쨌든, 1967년까지 아직 갈등은 불거지지 않았다. 적어도 카스트로 체제와 작가, 시인들 사이에서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제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쿠바의 모든 책임자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무리는 그곳을 가리켜 재교육을 위한 수용소라고 말하곤 했다.


피델 카스토르가 그렇게 한 일이 있었군요. 동성애자는 동네북인가 ㅠㅠ 왜 자꾸 전쟁 일어날 때마다 감금해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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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ousies 2018-12-18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자기에게 떠오르는 감상을 아무렇게나 얘기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대체 저 이상한 이미지들 뭔가? 그게 이 책이란 관련이 있다는 건가? 그리고 어느 대목에서 동성애를 폄하했은지 당최 이해가 안 간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여혐 감별사이라는 듯, 그런 시선으로 책을 읽은듯싶다. 물론 이 책의 화자에게 그런 모습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뭐 그저 까기 위한 글이라고밖에...

갈매미르 2018-12-19 06:50   좋아요 0 | URL
여혐감별사라기보단 저 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적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시대적인 배경도 충분히 파악했지만,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했습니다. 글도 이상하니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미지를 집어넣은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두 군데에서 동성애를 폄하했다고 봅니다. 그 중 예를 하나 들자면 동성애자들 모두가 재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본 데서 그렇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닌 동성애자는 그럼 방탕한 사람입니까? 그런 반항심이 들었습니다.

갈매미르 2018-12-19 06:51   좋아요 0 | URL
책을 욕하는 댓글은 용서없이 처분하지만, 제 서평을 욕하는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ㅎㅎ 이후론 여혐감별사같은 글이 되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은 남혐감별사도 되기도 합니다 저는 ㅋ.

jalousies 2018-12-19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걸리적거리는 게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동성애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주의 깊게 읽지 않았던 것도 인정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볼 기회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도 팬티 얘기가 나온다고, 저런 이미지를 올리는 것은 말 그대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여혐이 아닐까 싶은데요.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이미지로 인해 혹여 이 책을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독자들에게 쓸데없는 편견을 안겨줄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