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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호르헤 셈프룬 지음, 윤석헌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고독하다는, 다르다는 것에서 나오는 오만함은, 우리를 우습게 만들기도 한다, 종종.
누가 나같은 인간이 좋아할 거라며 강력 추천한 책인데 초반부터 팬티 이야기가 나온다(남성인 화자 꺼지만). 학교 기숙사 같은 곳에서 수녀가 짐 검사를 한다고 학생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는 눈앞에서 화자의 팬티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아무튼 이걸 추천한 친구는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화자가 공산당이기도 하고.
그러나 차별이 군데군데 스며든 내용에는 도저히 집중하지 못하겠다. 동성애자 코스프레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저렇게 은근히 능구렁이처럼 동성애자를 성추행 가해자에 빗대어 표현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정말로 성추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회개를 했다가 동성애자로 취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나. 본인도 스페인 사람이라고 인종차별당했던 사실은 비판하면서 여자나 소수자들은 마구 차별하네 ㅋㅋㅋ 이분도 프리모 레비 류의 꼰대인가. 내가 좋아하는 시절의 철학자의 이름이라던가 유명한 프랑스 유적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와서 좋지만, 이 정도면 그 시대 거의 모든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여성을 우습게 봤다 해도 좋을 것 같다. (뭐 굳이 이런 글 읽다가 왜 페미니즘과 관련된 비판을 어거지로 찾아낼 이유가 있느냐 긍정적으로 읽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왜 긍정적이어야 하지? 여자를 공격하듯이 몰아세우는 게 그저 이 시대 작가들이 공통이라는 소리다. 비판 비평을 하는 듯이 보인다면 그저 그 자신이 찔려서 그러는 게 아닐까? 분명 자기보다 센 사람에겐 알아서 설설 기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겐 노오력 부족이고 능력 부족이라 공격하며 그걸 합리화시키며 실컷 즐기는 중증일 것이다. 심지어 2017년 한국에서 내가 독서모임 중에 '프리모 레비가 은근 여성차별 하는 거 같지 않아요?'라고 이야기 할 때,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 회원까지 마치 워마드 메갈 보듯 날 쳐다봤으니까. 그놈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는 소리도 질렸다. 여태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으니 내가 살아있지 ㅋㅋㅋ 알지도 못하면서 남 비난하는 건 한국 인간들 따라잡을 생명체가 없다.) 인격적인 모독을 안하고자 조롱을 가급적이면 멀리하고 있는데 한 마디만 하자면, 내 입장에서 댁들이 얼마나 우스운 인간인지 하는 생각이 들고 유치하단 생각이 들고. 그나저나 동성애자는 니네들이랑 같이 수용소에 잡혀 들어간 사람들 아닌가? 같이 감금되어 사는 신세면서 내부차별 쩌네용.
미안하지만 호르헤 셈프룬 씨한테 또 지적질? 질문?을 할 게 있다. 이 분은 계속 속옷타령을 하다가 말미엔 자신의 여성관계에 관해서 회상한다. 매춘에 대한 입장과 첫 경험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은 확고히 부르주아의 세계 내부에서 어두운 부분에 자리한 매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반적으로 이 사람은 관대한 편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공산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지 않은 편인데, 이 책으로 봐서는 여성에 관한 그의 편견이 문제인 듯하다. (그렇지만 본인은 공산당에서 한 발 뺀 걸 퍽 자랑스러워하는 듯해서 뭐 어드바이스 해줘도 소용 없을 듯하다.) 사실 여성이 책을 읽고 배울 사회적 여력이 그닥 없었던 게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책 구절 하나 암송하는 여성을 만나보지 못한 게 여성들의 문제인가. 지적인 여성이 혹 작가가 맘에 안 들면 책 구절 암송을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항상 말하듯이, 스스로가 여성의 팬티라던가 가슴이라던가 엉덩이에 너무 집착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가 공산당은 잘 모르겠지만, 사회주의는 프톨레타리아의 혁명을 주장한 이론 아닌가? 여성도 프톨레타리아만큼이나 차별받았을 텐데, 왜 여성들에겐 이리 비판적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남성들의 매춘 거리는 가봤지만 들어가보진 않았다 이런 드립 너무 진부해보인다. 뭐 그래도 악의 꽃 시구절을 늘어놓아서 반박불가의 아름다움을 제시한 점에선 고단수랄까. 랭보 시구절 해석도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상당히 잘 묘사해 놓았고. 그치만 호르헤 셈프룬 작가의 책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이 굉장히 재밌어진다. 특정한 여성의 누드에 대해 찬양을 하면서 보들레르의 코르셋(?)에 대해 회의를 제기한 점이 꽤 독특하다. 페미니즘까지 끌어오는 것도 그럭저럭 유머러스하다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거론해서 까대도 참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묘사를 참 잘 하는 걸 가지고 중반까지 계속 빙빙 돌려가면서 여혐해댔는지 의문이다. 마지막을 빛내기 위해서였을까.
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첫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페인어를 꽤 능수능란하게 말할 줄 아는 그 혀가 좋았다. 순진하게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라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이 책을 보면 그 나라의 정서가 대강 그런가 보다. 책의 군데군데에 등장하는 스페인 시는 그 발음만큼이나 좋았다. 지나가버린 10년 전이 아련히 생각나는 책이었다.
그런데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아이러니한 아를레티의 시선을 느끼며 비를 피하고 있을 때-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시절 영화 속 대사 대부분을 외울 수 있었고, 그 대사 중 파리 사람 특유의 조롱조, 헤이그에서 만난 그 '꽃무늬 거들'을 바라보던 우아한 여자가 사용했던 말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강렬한 불편함이 나를 엄습했다. 참을 수 없는 육체적 슬픔이었다.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전사." 빅토르 위고의 말, 생미셸 대로의 빵집 여주인이 환기한 이 말은 나를 지독한 비탄에 빠뜨렸다.
아 화자 대신 빵집 주인 때리고 싶다 퉤 귀 멀었냐 애가 크로와상 쳐달라고 하는데 왜 못 알아듣냐 ㅠㅠ
아를레티는 프랑스 배우 이름이라고 한다.
교수님이 퀴어와 관련된 이슈는 민감하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음...?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도 그렇고 난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정상인이라면 들어도 무심코 넘어갈 말들에 이방인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차별을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설령 욕을 먹는 게 일상화되어서 감정은 둔해질 수는 있겠지만, 차별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자신이 무시받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여러 해가 더 지나서 1967년, 그러니까 내 인생의 절반쯤 온 시절에, 다리오의 시를 선별해서 수록한 파란색 작은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다. (...) 어쨌든, 1967년까지 아직 갈등은 불거지지 않았다. 적어도 카스트로 체제와 작가, 시인들 사이에서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제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쿠바의 모든 책임자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무리는 그곳을 가리켜 재교육을 위한 수용소라고 말하곤 했다.
피델 카스토르가 그렇게 한 일이 있었군요. 동성애자는 동네북인가 ㅠㅠ 왜 자꾸 전쟁 일어날 때마다 감금해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