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忽视的家庭關系-同胞關系對個體心理和行爲發展的影响 (平裝, 1st)
董颖红 / 中國社會科學出版社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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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문 분야에 특화된 AI를 기반으로 하는 챗봇들도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Amazon Lex나 IBM Watson Assistant, Google Dialogflow 등이다.

(...)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가수 김광석에 대한 시를 써 달라고 요청했더니 놀랍게도 챗GPT는 이렇게 응답했다.

김광석의 노래에 담긴 그 감성

시인의 손에서 우러난 그 깊은 사색

노래에 실린 이야기, 마음을 울린다

그의 멜로디, 마치 강가에 흐르는 노래

먼지가 되어 그 흔적을 따라

시간은 흘러도 간직한 기억은 남아

작은 가슴 속, 그의 노래가 흐르면

추억의 문이 열리고,

눈가에 이슬이 번지네

김광석의 손길로 피어난 노래들

작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간직한 소리

새로운 날,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그의 정신을 이어가며 노래하는 시간



근데 이 시를 보면 이걸로 인해서 인간 시인이 없어진다거나 시인이 굶어죽는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 옛날에 사랑같은 걸로 남들 하던 이야기를 다 하던 양산형 시인들은 위기를 겪는다는 거지. 예를 들어 지방에 사는 시인이라면 좀 더 자신의 지역에 있는 사투리를 연구하는 게 좋겠고.

페친 시인들 몇몇이 생각나는데, 그들의 시는 일단 챗GPT에서 여러모로 검열삭제될 듯한-_-;

술 안 먹기로 해서 지금은 안 될 것 같고 다음 명절 때 하나도가의 농태기 술 한 번 사봐야겠다. 탈북민이 사업을 하는데 한부모가구이시고 거기서 일하는 분들도 대부분 한부모가구라고 한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관심도 자꾸 그런 방향으로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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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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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는 컴퓨터 코드처럼 디지털 코드이다. 그리고 DNA는 부모의 디지털 정보를 자식과 그 뒤의 수많은 세대로 전달한다. 하지만 전달되는 그 정보는 청사진이 아니다. 그 정보는 어떤 의미로든 아기의 지도가 아니다. 부모의 몸을 스캔한 것이 아니다. 유전학 실험실에서 그 정보를 읽을 수 있지만 아기를 출력할 수는 없다.



1. 생각보다 번역이 괜찮아서 좋았다. 하도 이전 책 번역들이 욕을 먹다보니 출판사들도 조금 주의를 기울인 것 같다. 책 내용도 일단 만들어진 신보다는 쉬워서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무신론자의 생각만 보려 한다면 만들어진 신 말고 이 책만 읽어도 될 것 같다.

2. 사실 리처드 도킨스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F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피눈물 흘리는 마리아상 같은 거 이야기 들으면 녹물은 아닌가, 혹은 칠이 벗겨진 것은 아닌가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러는 건지 부숴서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딱히 신기하다거나 성스럽게 여겨진다거나 두렵지 않다 여기는 게 무신론자들의 특성이다. 되려 정말로 진심으로 기적이 궁금해서 깨뜨릴 듯. 신기하게 느끼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라 본다. 오히려 신빙성으로는 역사학자들보다 괜찮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에 매우 가까운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로마 병사와 불륜 혹은 근데 그들의 신분과 지위를 보건대 모종의 압력이 생겨 예수가 생겼다는 의견을 펼친다. 일종의 사생아라는 의견이다. 이게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현실성을 떠나 무례한 발언같다고도 생각함. 어쨌든 상징을 역사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그러니 무신론자들에게 처발리지.

3. 흔히 자기네들이 가족을 지키는 신성한 무언가인 마냥 서로를, 특히 지도자를 띄워주는데, 인간을 신성시해서 태어난 게 한 번 성교할 때조차 다른 여자들에게 차례로 박는다는(성병걸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 끔찍한 분이다.​ 주어 없다.

4.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반박을 좀 해보겠다.

첫째, 가족을 만드는 게 꼭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라 본다.

물론 자신을 좋아하고 나도 신뢰가 가는 사람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게 삶의 목적이라면 매우 긍정적이고 좋은 일임.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끝까지 선을 그은 예수는 그와는 명백히 다른 삶의 목적이 있었다고 봐도 좋을만한 사람임. 다시 생각해보자. 꼭 가족을 이루어야 착한 사람들일까? 부모가 쟤랑 사귀지 말라 하면 안 사귀고 죽으라고 하면 죽을거임?

둘째,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걸 싫다고 자기 의견을 표명했는데 그게 이후 예수가 행할 일들과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이상 취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 예수의 "알빠?"에선 그런 의미가 함축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야훼와 예수는 니 뒤를 닦아주는 보모들이 아니라봄 나는.

이게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해설하는 소설이 있는데 하객들이 전부 만취해서 예수가 그냥 물을 포도 덩어리와 희석시켰는데 그걸 술로 착각했댄다 ㅇㅇ 신빙성 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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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의 꽃은, 흐트러지고 싶다 2 - 뉴 루비코믹스 2941
사쿄 아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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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적인 것, 그리고 BDSM에 관심이 많지만 자신을 나락에 빠뜨리긴 싫은 아가씨가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본 건 나나와 카오루 이후로 처음이다.

2. 무라카미 류 책을 읽은 후 궁금해서 BDSM 커뮤니티에 들어가본 적도 있다. 의외로 입구컷이 낮다고 볼 수 있겠다. 간단히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파트너를 찾는데, 의외로 다닌 커뮤니티 중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그 커뮤니티에서 만나 달성된 커플이 있었기 때문일까.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고 모두들 부러워했다. 이 작품도 그런 분위기였다.

3. 딱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주종관계나 섹스가 좋은 게 아니라 그걸 서로 나누는 과정이 행복하다는 걸 아주 천천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나나와 카오루를 좋아했던 이유는 남자주인공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어른이 아니라 자신도 여성과 같이 성장해가는 남자였기 때문이다(그래서 순정물에서 아저씨가 등장하면 대체로 좀 역해하는 측면이 있다.). 나에게 연애는 계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나와 카오루가 떡정에서 시작했다면, 이 작품은 동경하는 사람과의 연애에서 출발한 것도 긍정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연애란 현재이자 미래란 관점이 있다.

4. 개인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실패한 게 있다면 왜 실패했는지 고민하고 상의하고 보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예를 들어 피스톤질 중간에 콘돔을 끼우라고 이야기했는데 화를 냈다면 왜 화가 났는지 대화로 풀어가고 싶다. 중간에 이성이 도망치지 않은 채 피임을 잘 지키는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절정을 보았으면 한다. 섹시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소중히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행위 속에서 소속감? 안정감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바라는 게 현실적이지 않으면 뭐 어때서. 욕심이 과한 게 뭐 어때서. 그게 바로 나이다.

5. 이틀 전 마지막 통화의 마지막 대화에 기반하여 썼는데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네. 새벽에 1시간 동안 생각하면서 이 글 쓰고 잠깐 눈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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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밤의 랩소디 - 해외동포 이민생활 산문집
아침편지 문학동호회 엮음 / 사랑닷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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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씨의 아버지는 학생 때인 1950년대 초반 부모를 따라 다시 강을 넘어와 경흥에 자리 잡았고, 결혼한 고모들은 훈춘에 살았는데 1962년 '조중 국경조약'이 체결되면서 이들 형제는 자연스럽게 북한 국적과 중국 국적으로 갈라지게 됐다. 그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지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때는 북한의 경제력이 좀 더 나을 때라 중국 사람이 된 이들은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 건너편 훈춘에선 개가 쌀밥을 물고 다녔지만, 이쪽 강변 사람들은 무리로 굶어죽었다.


이전에 헤밍웨이의 심경을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독서모임에서 단체로 서울경마공원을 간 적이 있다. 도박을 매우 싫어하는 나는 거의 반강제로 끌려가게 된 셈인데.. 얼마나 싫었냐면 거기 가서도 마권을 구매하지 않았다.

헤밍웨이에 대해서 뭘 느꼈는지는 둘째치고,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선택적인 분노조절장애 이야기이다. 경마하는 인간들(옛날옛적엔 마쟁이라 부르지만 지금은 말딸이라 부르고.. 뭐 아저씨든 할아버지든 청년이든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이 내가 학생알바인줄 알고 욕을 오지게 박아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이리저리 밀치고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 자기네들끼리 주먹질을 했다. 그들의 충혈된 흰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또 하나는 마트에서 일했을 때이다. 정규직 파견직 구분없이 일했지만, 정규직들은 파견직보다 월급을 더 받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걸핏하면 파견직들에게 정규직으로 취직하라고 권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규직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 이건 사실상 정규직더러 근로를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뒤늦게 투잡을 하라고 회사에서 권유했지만 어디서 사람을 구해야 투잡을 하지.. 어이가 없던 건 파견직의 월급도 같이 줄었단 것이다. 본사에 전화하니 매출 탓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트 정규직들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 때부터 파견직들을 보는 정규직들의 눈이 싸늘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정규직과 파견직이 퇴사했다. 나름 그 시골에서 굉장한 광경이 벌어졌다. 여자들은 크게 울면서 어떻게 가족을 먹여살리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중에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모 회사가 아예 정리해고를 한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이제 노조가 시위하고 대한민국이 들썩일 것이냐? 난 아니라고 본다. 기껏해야 책임자에게 하소연하다 끝나겠지.

이 두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그들이 삶의 부조리함에 대해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살면서 침묵하는 법, 모르는 척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침묵이라고 해서 편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항은 더더욱 괴롭다.

한 번 용기를 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나 그렇다. 삶은 그 다음이 있다. 그럼에도 저항할 땐 굉장히 극단에 몰려있는 경우다. 시장길 한복판에서 사람이 굶어죽어 아무렇게나 나뒹굴 때, 안전하다고 느껴진 성당 등의 공간에서 남자 등이 여자아이를 화장실로 끌고 가 겁탈하거나 혹은 군인이 민간인을 사람이 아닌 개처럼 부릴 때, 우리는 위기를 느낀다.

탈북민들은 북한의 입장에선 당에 대한 배신자나 다름이 없다. 탈북민을 싫어하는 한국 민간인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과격하다.', '너무 북한을 싫어하는 것 아니냐.' 쓴 웃음이 지어졌다. 도로에 돈이 떨어져있는지 찾아볼 때, 직업도 구해지지 않고 먹을 것도 다 떨어져 이전에 전화했던 그 남자에게라도 몸을 팔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 우리는 악밖에 남지 않는다. 예술적으로 시위할 때가 아니라고 도련님들아. 바다에 살든 대도시에 살든 일주일 굶으면 누구든 그렇게 된다. 꼴사나운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모여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개나소나 우울증 걸렸다고 주장하지 말라던 어느 심리학자의 처절한 일갈이 생각난다. 어떤 것이 선하고 악한지 구분하기 어려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이다. 이 사상의 최대 약점은 특정 집단이 매우 강력하게 한쪽 사상을 형성해낼 때, 외부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운빨이다. 그걸 쉽게 입밖으로 낼 수 없는 이유는, 그걸 쉽게 입밖으로 내는 부류가 이 정도까지도 생각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비겁하게 도망친 자신의 전날에 대해 스스로 거론하기 부끄럽거나.

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도 열심히 일하면 OO할 수 있어요!"같은 같잖은 개소리에 절대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적당히 서로를 속여나가면서 건강하게 살아남읍시다, 제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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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문학상 공모작품집 - 동포문학 5호
동포문학 편집부 지음 / 바닷바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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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서 일하면 경력도 쌓이고 연봉도 오르고 여러 가지로 유리합니다. 하지만 한 곳에서만 일하다 보면 한 가지만 보게 되죠. 반면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 보면,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곳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일자리를 옮기면 다른 곳에서도 적응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결국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고, 여러 상황에 자신을 두어봐야 한다. 공포나 재난 영화 속에서 흔히 보는 캐릭터가 있다. 그 어떠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은 어떻게든 평정심을 잃지 않을 것이란 강한 척하는 캐릭터.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금방 직감하게 된다. 이 놈들이 곧 사상 최악의 민폐 캐릭터로 등극하게 될 것임을 ㅡㅡ;

나는 직장이 꼭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근로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상, 공통된 화제를 찾으려면(월요일 좋아라던가) 직장도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구해야 한다. 아무리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한 불만이 많더라도, 지금의 부적응이 자신의 역량 부족에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책에서 인생을 통달한 사람이 이야기할 법한 깊은 구절이 나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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