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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군중
데이비드 리스먼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너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라
구식 휴대전화 이용자는 가끔 유행을 따르지 않은 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당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마음에 드는 옷 앞에서도 젊은 여성들은 망설이며 ‘이 옷을 남들이 과연 어떻게 볼까’ 하고 고민한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남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가 어느 시대보다 강하다.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에 대해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1909~2002)은 그의 역작 '고독한 군중'에서 ‘타인지향성’이란 이름을 붙였다.
리즈먼은 전통사회ㆍ초기 자본주의ㆍ자본주의 고도화 단계에서 군중들의 사회적 성격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통찰했다. 리즈먼이 말하는 ‘사회적 성격’이란 예의범절처럼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양식, 이른바 ‘동조성의 양식’이다. 저자는 이 사회적 성격을 전통지향형ㆍ내적지향형ㆍ타인지향형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 같은 전통지향형 사회 구성원은 관습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지신’보다는 ‘온고’에 의미를 부여한다. 개인의 창의력이나 전통에 어긋나는 이질적 목표 추구는 환영받지 못한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같은 존재가 껄끄러운 ‘이단아’로 받아들여진다.
'타인 지향성'을 지닌 현대인들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그래픽은 자신의 진정한 욕망은 살피지 않은 채 남들의 욕망을 모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상징한 것.
한편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전통은 느슨해지고 분업과 계층화는 증가했다. 더불어 개인의 선택 폭도 넓어진다. 이때 등장한 것이 내적지향형 사회다. 내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행동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원천이 인생 초기에 주입돼 내면화한다는 뜻이다. 부모나 권위 있는 연장자가 초기 주입을 담당한다. ‘성실함으로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자’와 같은 문구가 ‘내적지향성’의 시대를 대변한다. 근면검소를 강조하며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이끈 청교도 정신이 대표적이다.
타인지향형’은 대중소비 사회로 넘어오면서 나타난다. 대중소비 사회는 자신의 주체적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남들의 욕망을 모방한다. 이 같은 모방 심리를 부추기는 것이 대중매체가 쏟아 내는 광고 메시지다. 광고들은 ‘당신은 뒤떨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를 자극한다. 군중들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유행을 소비하며 타인의 욕망을 지향한다.
타인지향형 사회 구성원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촉각을 세운다. 남들과 다르면 집단에서 배제되고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이들을 지배한다. 주변의 신호를 포착하는 레이더마냥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동향을 주도면밀히 관찰하는 데 주의를 집중한다. 대중소비 사회의 도래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고독한 군중'을 통해 리즈먼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말고 진정한 너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