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
유종호 지음 / 민음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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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것은 딱 질색이라고들 하지만 좋은 것들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옮아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죽은 자의 머리통을 발로 차는 데서 유래했다는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경우 14세기에 시작하여 빅토리아 시대에 명문사립학교에서 성행했지만 처음에는 골이 따로 없었고 라인 전체가 골 구실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적진에서 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반칙으로 삼는 오프사이드의 규칙이 들어섰고 단독 드리블을 보강하는 패스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경기의 규칙이 까다로워지면서 경기의 재미도 그 강도가 높아진다.


음악을 안다는 것, 문학을 안다는 것, 미술을 좀 안다는 것은 사실 섬세한 놀이의 규칙들을 배워간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섬세함에 재미가 있다. 장기보다 바둑에 열성팬들이 많은 것도 바둑이 장기보다 훨씬 섬세한 규칙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칙을 모르는 자들에게 바둑은 심심하기 그지없다. 섬세함을 분별하는 것은 즐기기 위함이지 그것으로 해서 머리 아프자는 게 아니다.


이 글 저 글로 해서 뒷전에 미루어둔 시에 대한 글들을 다시 써보기로 마음 먹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섬세함, 뉘앙스에 대한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은 더욱 즐기기 위함이다.> 골치 좀 앓아봐야겠다. 즐겁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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