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독재 - 삼성권력 80년, 민주주의를 지배하다
이종보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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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이 나라를 살린다. 삼성이 해체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삼성독재(빨간소금, 이종보)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재벌개혁이 절실한 몸의 떨림과 느낌으로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책을 내준 저자와 출판사대표에 감사를 전한다. 다음은 책이 소개하는 적폐의 극히 일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삼성의 유착관계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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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은 1936년 마산에서 정미사업을 시작했고 마산일출자동차를 인수했다. 이병철을 명실상부한 부자로 만든 것은 땅 장사였다. 땅장사로 돈을 모으려면 단단한 연줄이 필요했다. 조선식산은행의 마산지점장 하라타가 그의 연줄이 되었다. 그는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쉽게 돈을 벌었다. 땅 장사 1년 만에 이병철은 연 수입 1만석에 달하는 2백만평의 대지주가 되었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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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물자를 수입해 간단히 가공한 뒤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기술보다는 원조물자 배분 권한이 있는 정치권력과의 커넥션이 필요했다. 이병철은 일찍이 그 방면의 선두주자였다....삼성은 원조물자를 가공하고 생산해서 손쉽게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잔면, 농민의 삶은 나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삼성의 성장과 빈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의 출발점이었다.....원조물자와 원조자금을 배분하는 권한은 (이승만) 정치권력에게 있었고 정경유착은 필연이었다.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한 구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인물이 바로 이병철이었다.(p.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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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던 (박정희)쿠데타 세력은 선거자금을 재벌로부터 걷는 대가로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세 품목의 정부고시가격을 풀었다. 그러자 식량파동이 일어나 19634월부터 7월까지 설탕값은 5, 밀가루와 시멘트값은 2-3배 뛰었다. 이 물품들을 매점매석했던 재벌은 막대한 폭리를 취했다.(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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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전두환이 시구한 프로야구 출범 첫 경기에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 “삼성은 대구 제일모직과 경산 제일합섬의 여공 700명을 버스 17대로 실어 날랐다. 여공들은 1주일 동안 하루 5시간씩 맹연습한 카드섹션 응원을 펼쳤다.” 삼성과 전두환 정권은 손발이 척척 맞는 파트너였다.(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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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정권과 재벌의 유착은 부동산투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부동산투기는 재벌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사용한 전통적 방식이었지만, 1980년대에는 더욱 활발해져 노태우 정권에서 정점에 달했다....정부는 개발정보를 재벌에 제공하고 재벌은 개발 예정지의 토지를 사들여 수익을 올렸다.(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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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는 금융시장을 관리하기는커녕 각종 인·허가권을 풀며 재벌과 결탁했다. 정경유착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과 과다한 차입, 무분별한 다각화, 무리한 과잉중복투자를 조장했다. 기업은 부실해졌고 연쇄부도 사태를 낳았으며,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다.(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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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삼성경제연구소를 싱크탱크로 삼아 국정을 운영했다. 취임 이후 제기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론,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산업클러스트 조성방안도 삼성이 선도적으로 제기한 정책구호였다....노무현 정부의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면 삼성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지난 2003년에서 20045년까지 참여정부 출범 3년 사이에 무려 35명의 관료가 삼성에 들어가거나 사외이사로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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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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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를 하던 시절, 아들이 두세 살 무렵의 일.

 

새벽 두시에 아이가 운다. 잠에서 깨어 대체 왜 아이를 울리느냐고 타박을 하니 아내는 대체 무슨 사정으로 아이가 우는지 아느냐고 따진다. 모른다고 하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차가 집 앞에 서있는지 엔진 소리 말고 들리는 소리가 없어, 차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아내는 저 차 소리 때문에 아기가 운다는 거였다. 아니 차 소리 때문에 우는 아기도 있냐고 하니 그렇다며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해준다. 저 창 밖의 자동차 소리를 아이는 아침마다 자기를 데리러 오는 어린이집 자동차 소리로 생각하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운다는 것이었다. 그런 설명을 전해주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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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지구상의 외계인, 갓난아기의 유일한 소통수단은 울음이다. 목이 말라도, 졸려도,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축축해도, 몸에 열이 끓어도, 아이는 운다. 울음은 양육자, 엄마에게 보내는 구원의 요청, 내게 손을 써달라는 협조의 요청이다. 아이가 구원과 신호의 요청을 보내오면 양육자인 엄마는 응답을 보낸다. 젖을 먹이든지, 기저귀를 갈아준다든지, 안고 어른다든지, 해열제를 먹인다든지 하는 조치를 취한다. 양육자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신호를 교환한다. 몸과 몸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이런 의사소통 과정을 겪으면서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만을 듣고도 저 울음이 어떤 협조를 구하는 신호인지를 간파하게 된다. 아빠는? 아빠의 귀는 아기의 모든 울음소리를 잠을 방해하는 하나의 ‘소음’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의 귀는 신의 창조물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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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능력을 평가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수능 국어에서 여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매년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류의 논리는 ‘산술적 평균’만을 말할 때에만 유효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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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의 원작,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외계인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 루이스는 여성이다.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외계인, 아이와의 소통의 경험이, 루이스에게는 언어학자로서의 어떤 이력보다 중요한 이력이 아닐까. 양육자에게 소통능력은 훈련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먼저 본능이다. 어떤 훌륭한 남성 언어학자도 소통에 관한한 루이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나의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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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루이스는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외계인과 맞대면 한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외계인이라면 모든 인간들은 외계인의 신호를 온몸으로 경청하는 루이스에게 한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자들이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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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역(役)에 여자 배우를 할당한 것은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우회가 길어져도 너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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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fair7 2019-02-21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네요 이런 책 소개 글은 처음 봅니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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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르면서’의 작가 남덕현은, 장르는 모름지기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규범에 자신을 얽어맬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장르의 본질을 규정한 후, 시는 이래야 한다, 소설은 저래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나 간섭을 그는 거북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닐까. 왜 ‘나’ 이전의, 어떤 틀에 ‘나’를 옭아매야 하는 것인가. 왜 타인이 만든 규정에 ‘나’를 복무시켜야 하는가. 나는 내 안의 자발성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대체 무슨 벼슬을 하겠다고, 대체 어떤 타이틀을 획득해 어떤 영화를 누리겠다고?

얼마 전에 펴낸 그의 시집, ‘유랑’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는 어떤 ‘장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시가 어떨 때는 청승어린 넋두리 같아 보이는 것도 ‘감정의 객관화’, 어쩌구저쩌구 하는 ‘근사한’ 이론들을 일찍이 개에게나 주어버린, 그의 불온성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제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것이면 몰라도 세상...에는 그렇게, 누가 무얼 하라고 하면 엉덩이뼈를 뒤로 바짝 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장르의 규칙, 장르의 요청이란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번 책, ‘한 치 앞도 모르면서’는 장르적으로 소설에 가장 근접해 있다. 무엇보다 이번 책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의 시선이 ‘밖’을 향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들을 향할 때, 이야기는 해학과 능청으로 가득 찬다. 한 마디로 웃기고 재밌고 골 때린다. 촌로들의, 내외간의, 공양간 보살님과 스님과의 이야기는 깨를 볶는다. 그러나 웃음의 뒤끝은 달달하지만은 않다. 작가의 개명(改名)을 둘러싼 이야기 ‘작전실패’는 전형적인 블랙코미디, 소위 ‘웃픈’ 이야기다. 한 청년의 신세 ‘조지는’, 비장한 실패담을 촌로들의 토속적인 너스레에 섞어 넣을 수 있는 서사 능력, '충청도의 힘'은 남덕현만의 희귀하고 탁월한 능력이어서, 책을 덮고도 오랜 울림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선이 ‘안’을 향할 때,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초점이 작가의 내면을 향할 때, 그의 이야기는 쫀득쫀득한 매력을 잃고 아연 청승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스님은 개만두 못혀’에서 공양간 보살님과 스님과의 찰진 대화가 전개되다가 엔딩 장면에 가서 ‘아, 나는 어쩌다가 팔자에 없이 잠귀 밝은 암자 식객이 되어 저 얘기를 듣고 있는가’라고 급하게 마무리하는 대목이 그렇다. 작가가 타인들의 이야기를 주도할 때는 능수능란하다가도 막상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때가 되어서는 서툴기 짝이 없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데 수줍은 성격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글은 고백에 서툴다는 점에서 산문에서 멀고, 이야기에 능하다는 점에서 소설에 가깝다.

 

소설이면 어떻고, 산문이면 어떻고, 또 그 ‘중간’이면 어떻고, 또 다른 그 무엇이면 어떠랴. 그의 글은 그냥 웃음이고 한숨이고 넋두리다. 삶이 무엇에 규정당할 것 같으면 삶이랴. 삶은 그냥 삶이다. 그의 글이 그냥 그의 글이듯.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주저리주저리 무엇을 떠들어댔다. 하나를 빠뜨렸다. 그는 ‘모’가 아니면 ‘도’인 사람,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개’와 ‘걸’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 속에 답이 있다. 눈깔 쪽 찢어지구, 광대 톡 튀어나오구, 주둥이 대빨 나온, 사람의 책,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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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가는 길 - 인도에서 스웨덴까지 자전거 타고
페르 안데르손 지음, 이하영 옮김 / 그러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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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현금보유량이 넉넉하지 않아도 무작정 낯선 곳으로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페르 안데르손의 논픽션, ‘그녀에게 가는 길의 피케이처럼 그림실력이 뛰어나다면 말이다. 잘 그려진 초상화에 반색을 할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다. 하모니카, 기타, 첼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면 당신은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음악, 미술은 번역이 필요 없는 만국의 언어. 당신이 뉘엿뉘엿 지는 황혼을 배경으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에서 대금이나 피리를 멋지게 불고 있다면 당신은 멋진 파트너와 친구가 되어 그의 저녁 식탁으로 초대될 확률은 높아진다. 심지어는 침대에까지도. 젊은이들이 스펙쌓기보다 열심히 예능과 기예를 익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민담은 개똥이면 개똥이 쇠똥이면 쇠똥이, 비루한 신분의 사나이가 고귀한 것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의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은 승리를 쟁취한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 페르 안데르손의 그녀에게 가는 길은 전형적인 민담형 서사다.

 

피케이는 인도의 한 시골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점성술사는 이 아이는 장차 화가가 될 것이며, '부족 밖, 마을 밖, 구역 밖, 지방 밖, 주 밖, 나라 밖에서 온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한다. 영민한 독자라면 이 예언이 실행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의 관심은 뻔한 해피엔딩에 있지 않고 우여곡절과 눈물겨운 파란만장을 지켜보는 데 있을 것이다.

 

스웨덴에서 인도로 여행을 왔다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운명의 여인 로타는 결국 고향인 스웨덴으로 돌아가고 피케이는 로타를 만나기 위해 60루피를 주고 산 중고 자전거를 타고 스웨덴이 있는 북쪽으로 출발한다. 과연 이 사랑의 모험은 성공할 것인가. 인도에서 스웨덴까지의 길고 험한, 모험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이 이 글을 읽는 한 재미다.

 

두 번째, 이 글을 읽는 재미는 인도에서의 불가촉천민의 삶이 얼마나 곤핍한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는 것. 학교에서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회초리로 맞지만 불가촉천민인 피케이는 회초리질을 당하지 않는다. 불가촉천민을 회초리로 때리면 회초리가 오염되고, 오염된 회초리로는 다른 아이들을 더 때릴 수 없다는 논리때문이다. 불가촉천민은 사물 이하였다. 그 자체가 멀리 해야 할 독이었고 오염원이었다. 불가촉천민들을 오염원으로 바라보지 않은 자들은 의외로 식민주의자, 영국인들이었다. 만민을 평등한 존재로 보아서? 내 생각은 천만에 올시다, 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 모든 인간을 균질한 단위, 노동력으로 보는 자본주의적 시각, 때문이었으리라.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이 책은 러브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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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초등 과학 교과서 1~2 세트 - 전2권 스토리텔링 초등 과학 교과서
박연미 지음, 박경민 그림, 김현민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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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이자 진화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뛰어난 연구가이기도 했지만 탁월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게다가 엄청난 야구광이었다. 그의 책, <풀하우스에서>는 아예 한 챕터가 야구 이야기에 할애된다.

 

과학에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뒤섞는 방법, 이건 굴드의 특기였다. 그의 글들의 소재는 언어, 문학, 음악, 건축의 경계를 종횡무진했다. 굴드는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도 자연선택과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부수적으로 발생한 특징들이 생물의 중요한 기능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산 마르코 대성당의 ‘스펜드럴’을 설명의 소재로 내세웠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탁월하면서 동시에 ‘설명의 방식’으로도 탁월한 것이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뛰어난 학자였고 동시에 뛰어난 교사였다. 대개 학자는 이론에 치중하지만 교사는 설명의 방식과 그 효과에 치중한다. 추상은 멀고 구체는 가깝다. 어떻게 하면 이론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교사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가 대중... 저술가라면 이런 교사의 고민을 밀고갈 수밖에 없다. 왜 당신은 이론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대중저술을 감행하느냐는 말은 학자와 교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치졸한 인신공격에 불과하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 글의 목적은 <스토리텔링 초등과학교과서>의 어떤 한 대목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초등학생을 위한 과학책이다. 초등학생의 흥미와 호기심을 어떻게 충족시켜주느냐는 문제의 지점에서 저자는 재밌는 서술전략을 구사한다. 가령, 이런 식!

 

 

유리, 나무, 철, 플라스틱, 고무, 물질은 저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고 고유의 쓰임새가 있다. 저자는 과학 전담 교사답게 ‘물질과 쓰임새’의 이해라는 수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역할극’이라는 교수전략을 구사한다. 역할극의 모델은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다. 이것은 아주 유쾌한 설명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재밌는 수업의 방식이 아닌가. 칠우(七友)는 세요각시(바늘), 척부인(자), 교두각시(가위), 울낭자(다리미), 청홍각시(실), 인화낭자(인두), 감투할미(골무)이다. 이런 가공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사물에는 고유한 쓰임이 있을 뿐이지, 거기에 우열이 없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수업방식은, 수업 중에 학생들을 재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벤치마킹을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정상과 병리>라는 책에서 조르주 캉길렘은 멋진 말을 하지 않았던가. “철학의 반성적 재료는 낯선 것일수록 좋다”라고. 진화의 부산물로서의 특징을 건축 용어, 스펜드럴로서 풀이한 제이 굴드의 방식이 훌륭하다면 ‘물질과 쓰임새’라는 이론을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라는 낯선 것으로 풀이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그가 교사라면 이론에도 머리를 써야하지만 이런 설명의 방식도 궁리를 해야 할 부분이다. <스토리텔링 초등과학교과서>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 많은 생각의 에너지를 투자했다는 점이다. 스토리와 이론의 행복한 만남. 아이들은 물론이려니와 어른들이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수가 있다. 스토리텔러, 이야기꾼 앞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가히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론을 먹고 자라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먹으면서도 자란다. 이야기는 이론보다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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