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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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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를 하던 시절, 아들이 두세 살 무렵의 일.
새벽 두시에 아이가 운다. 잠에서 깨어 대체 왜 아이를 울리느냐고 타박을 하니 아내는 대체 무슨 사정으로 아이가 우는지 아느냐고 따진다. 모른다고 하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차가 집 앞에 서있는지 엔진 소리 말고 들리는 소리가 없어, 차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아내는 저 차 소리 때문에 아기가 운다는 거였다. 아니 차 소리 때문에 우는 아기도 있냐고 하니 그렇다며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해준다. 저 창 밖의 자동차 소리를 아이는 아침마다 자기를 데리러 오는 어린이집 자동차 소리로 생각하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운다는 것이었다. 그런 설명을 전해주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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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지구상의 외계인, 갓난아기의 유일한 소통수단은 울음이다. 목이 말라도, 졸려도,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축축해도, 몸에 열이 끓어도, 아이는 운다. 울음은 양육자, 엄마에게 보내는 구원의 요청, 내게 손을 써달라는 협조의 요청이다. 아이가 구원과 신호의 요청을 보내오면 양육자인 엄마는 응답을 보낸다. 젖을 먹이든지, 기저귀를 갈아준다든지, 안고 어른다든지, 해열제를 먹인다든지 하는 조치를 취한다. 양육자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신호를 교환한다. 몸과 몸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이런 의사소통 과정을 겪으면서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만을 듣고도 저 울음이 어떤 협조를 구하는 신호인지를 간파하게 된다. 아빠는? 아빠의 귀는 아기의 모든 울음소리를 잠을 방해하는 하나의 ‘소음’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의 귀는 신의 창조물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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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능력을 평가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수능 국어에서 여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매년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류의 논리는 ‘산술적 평균’만을 말할 때에만 유효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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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의 원작,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외계인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 루이스는 여성이다.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외계인, 아이와의 소통의 경험이, 루이스에게는 언어학자로서의 어떤 이력보다 중요한 이력이 아닐까. 양육자에게 소통능력은 훈련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먼저 본능이다. 어떤 훌륭한 남성 언어학자도 소통에 관한한 루이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나의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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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루이스는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외계인과 맞대면 한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외계인이라면 모든 인간들은 외계인의 신호를 온몸으로 경청하는 루이스에게 한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자들이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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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역(役)에 여자 배우를 할당한 것은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우회가 길어져도 너무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