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일수록 현실의 고통이 깊다. 아이들에게 과자 한번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 병든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해드리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안분지족安分知足, 가난을 편하게 여기고 족함을 알라고 했지만 가난은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쓰라린 현실이요 아픔이다. 현실의 가난은 결코 미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의 빈곤 앞에서는 당장 한줌의 쌀이 시급한 것이지 성인들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병이 깊을수록 회복에 대한 갈망도 커지듯 현실의 고통과 가난이 깊을수록 판타지의 공간에 대한 갈망도 커간다. 판타지는 가난이 꾸는 꿈이다. 없는 것(재물, 빵과 행복 등)을 있게 만들고, 있는 것(배고픔, 질병, 불행)을 없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판타지에는 가난한 자의 절실한 꿈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가난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을 찾아보자.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의 한 빈민지역인 '괭이부리말'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부모없이 자라는 불쌍한 고아들, 남들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서 진실한 삶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의 가출로 동생과 둘이 사는 동준과 동수, 쌍둥이자매 숙자와 숙희, 아버지의 매질에 못이겨 집을 나온 명환, 이들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인천 만석동 달동네 아이들이다. 그들은 사람의 따듯한 정을 그리워하는 소외받은 인생을 살지만 그들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녹여주는 영호와 명희. 그들을 통해서 사랑이 어떻게 희망을 만들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프란시스코의 나비의 작가는 실제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경력을 갖고 있다.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꼬마 판치토의 가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 캘리포니아로 간다. 판치토 가족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목화와 포도, 딸기수확을 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텐트촌, 오두막, 창고 등지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만 한다. 힘겨운 삶이다. 그럴수록 판치토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돕고 사랑한다. 너무 작아 일하러 나갈 수 없어 혼자 남아 목화를 따던 판치토는 목화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해 목화더미에 흙을 섞는다. 이런 판치토에게 양심을 속이는 일은 나쁜 짓이라며 꾸짖는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삶이 각박해져도 유머를 잃지 않는 판치토의 가족들은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를 보여준다. 돼지가 한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삶이 아들의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지침이 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주인공 로버트는 아버지가 많은 걸 가졌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따뜻한 이웃이 있었고, 성실한 삶이 있었고, 자기 몸을 뉘일 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소년은 아픔을 딛고 홀로 일어서 아버지가 감당해왔던 삶의 무게를 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아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아버지는 진정으로 아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하여 생각해보자.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이 어떻게 인간성을 고양시켜주는지, 가난이 어째서 형제애를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 되는지,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다면 그들에게 가난의 의미를 알릴 의무는 문학에 있다. 궁핍을 소재로 한 문학은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교사, 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