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보관함에 담아 놓은지 어언 1년. 이제서야 보았다.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보고 충격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레스타인>을 다시 집어들기가 한편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이왕 구입한 것이니 빨리 봐야지.

<안전지대 고라즈데> 만큼 힘겹지는 않다. 조 사코는 비정하다싶으리만치 냉정을 유지한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감옥에 갇히고 총에 맞고 구타당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일상이다. 그걸 듣는 조 사코에게는 그저 양동이에 보태지는 눈물 한 방울일 뿐. 작가는 반복되는 인터뷰에 지겨워하기도 하고 더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만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 시니컬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구라도 별 수 없었을걸. 팔레스타인인들이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이런 얘길 취재해 가서 뭐가 달라지는가.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당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제와 어제, 저녁까지는 <팔레스타인>을 보다가 자기 전에는 지미의 그림책들을 보았다. 지미의 그림책들은 그 예쁜 그림에 비해 따뜻한 내용만은 아니다. 소외와 의사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예쁜 그림들이라니. 군중 속에서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본다. 그래도 그들은 만났다. 만났으니까, 달도 제자리를 찾았으니까, 일단은 안심. (안심이라니, 나, 외로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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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7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6-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에겐 팔레스타인은 충격이었습니다. 그쪽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게 아니었다는 충격이었죠. 이 세상 누가 감히 집안에서 아이 젖을 먹이다가 날아든 총알에 맞아 죽을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가슴이 아파서 보는데 너무 오래걸렸던 책이었네요.

urblue 2005-06-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물론 전혀 편안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조 사코가 말한대로 역시 자꾸 보면 무뎌지는거겠죠. <안전지대 고라즈데> 볼 때는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어 한 호흡씩 가다듬곤 했는데,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뭐 무력감만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에요.

**님, 그 책 꼭 읽어보도록 하죠. 근데 외로움 타는 편이 아니에요 원래. 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2005-06-07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06-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괜찮습니다~ 서점에서 볼 거니까.

2005-06-07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8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서울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도서전에서 한두시간 놀고 브레송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이었으나, 집에서 늦게 나가기도 한데다 도서전에서 한참을 놀다보니 브레송전을 보러 갈 여유가 되지 않았다.

서울 국제 도서전의 특징은 단연 아동도서가 메인이라는 점이다. 일반 출판사로 눈에 띄는 것은 범우사, 민음사 정도. 대개는 아동 출판사이거나, 종합 출판사라고 해도 아동 도서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다. 아동 도서를 팔지 않으면 출판사들은 밥먹고 살기 힘든 모양이다.

시공사, 한길사 등은 부스를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놨다. 역시 돈 있는 것들은 다르군, 하며 괜히 볼멘 소리.

특별전으로 <우리 작가 친필 원고전>이 있다. 윤동주, 김소월, 황순원, 기형도 등 작고한 작가들부터 박완서, 박경리, 조세희, 김주영, 최인훈, 신영복, 이윤기, 김훈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가장 멋지다. <신영복의 엽서> 표지에 쓰인 글씨체가 실제 신영복 선생의 필체다. 조세희 선생의 흘려 쓴 글씨는 로드무비님의 글씨와 비슷하다. 조정래, 박완서, 박경리 등 주로 장편을 쓰는 작가들의 글씨가 알아보기 쉽고 깨끗하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북디자인 공모전>에 전시되어 있는 표지들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저런 디자인이면 책이 팔릴까 싶은 엉성한 것들. 전시장 뒷편에 북아트 코너도 그냥 휙휙 지나쳤다. 책은 읽기 편한게 최고지, 그걸로 뭔가 작품을 만드는 건 재미없다.

한쪽에 동화책 원화도 몇 점 전시되어 있는데, <이상한 화요일>의 데이비드 위즈너,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샌닥과 그 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몇몇 작가들이다. 아마 원화를 파는 모양인지 어떤 그림들 밑에는 <Sold out>이 붙어 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책을 한권 얻었다. '애기 있으세요?'라고 묻더니, '아뇨'하고 웃는데도 괜찮다며 동화책 한 권과 포스터가 담긴 가방을 내미는 것이다. <나라를 구한 난쟁이 재상의 재치>라는 한자동화인데, 알라딘에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동화책을 여러권 보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까만 소녀 니나의 비밀>. 책을 보고 있는데 출판사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백인인 작가가 흑인 여자와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자기는 왜 오빠들이랑 피부색이 다르냐고 자꾸 묻더란다. 동화에서 주인공 니나는 아주아주 까맣다. 흰 토끼는 그런 니나가 부러워 계속 묻는다. 니나야 니나야 넌 어쩜 그렇게 까맣고 예쁘니? 대답은? 까만 토끼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된다는 것. 귀엽다.

돌로 만든 바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부들부들 새로운 것을 찾는 우가의 이야기를 다룬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도 재미있다. 모계 사회라 엄마가 새로운 시도를 억누르고 남들처럼 살라고 윽박지르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시장에서 본 책들. 제목을 적어놓지 않아 기억 안나는 것 다수긴 하지만.

 

 

 

 

3시간 넘도록 걷고 또 걸었더니 완전 녹초. 지하철에서 자고 집에 와서 또 자고.

오늘은 집에서 뒹굴뒹굴 책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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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6-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내일 가봐야겠군요. 감사!

울보 2005-06-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 보고 싶은데,.
류랑 둘이 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네요,,
꼭 가보고 싶었는데..

perky 2005-06-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작가 친필 원고전 보고 싶어요. 엉엉

히피드림~ 2005-06-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인터넷서 보구 가고싶다 그랬는데 지방살아서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여기서나마 보니까 좋네요.
참 유익하고 알찬 페이퍼였습니다.

水巖 2005-06-0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은 가려고 합니다, 삼성의료원앞에선 코엑스앞까지가는 차편도 있고 해서 내일 오후에 들릴 예정입니다. 신깍두기님 만나질런지 ....

urblue 2005-06-0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구연 동화 하는 곳도 있고 커다란 인형들도 나와 있고, 아이들이 꽤 좋아하던걸요. 류랑 가 보시면 좋을텐데요.

깍두기님이랑 수암님이랑 만나실지도 모르겠군요. ^^

차우차우님, 친필 원고들은 신영복 선생만 제외하고 전부 원고지에 쓴 것들이더군요. 작가들마다 한 두 페이지 정도밖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다들 글씨체들도 어찌나 다른지.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게 아쉬웠습니다. 이럴 때 사진이라도 예쁘게 찍어 보여드리면 좋았을걸요. ^^; 아, 깍두기님께 청해보시면 어떨까요?

punk님, 역시 지방 살면 이런 게 문제죠. 사진과 함께라면 더욱 알찬 페이퍼일텐데. ^^

따우님, 저런~ 여전히 바쁘신가 보군요. 내년에 가면 되죠 뭘. ㅎㅎ

아영엄마 2005-06-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 갈까 생각중인데...아이들은 가기 싫어해서 오전에 홀딱~ 갔다올까봐요...

urblue 2005-06-0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이들이 왜 가기 싫어할까요. 재미있던데...

세실 2005-06-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아까워라~ 전 해마다 갔었는데, 올해는 다른 출장이랑 맞물려서 못가요.....
urblue님덕에 간접경험은 했습니다~~~

조선인 2005-06-07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보고 싶었는데, 연휴 동안 감기몸살로 꼬박 드러누워 있었어요. 오늘은 종일 회의. 내일부터는 출장. ㅠ.ㅠ

urblue 2005-06-0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와~ 해마다 가셨어요? 전 올해가 처음입니다. ^^;

조선인님, 에구구...이런 연휴에 감기 몸살이라뇨.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는지?
 

홍대앞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만화방으로 향했다.

만화사의 명장면이라는, 헬렌 켈러를 연기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유리가면>을 봐야겠다 했는데, 만화방에서 찾아보니, 허걱, 550여 페이지짜리가 14권이나 된다. 그러고도 완결이 아니라는 말씀? 일단 1,2권을 뽑아들고 자리를 잡았는데 책이 너무 두꺼워서인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3시간여 동안 1권과 2권의 1/3쯤, 그리고 데스노트 4권 보는 것으로 끝. 으윽... 저걸 언제 다 본다냐. -_-

 

 

 

 

결과적으로 헬렌 켈러를 연기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어느 부분 쯤 있을까요? -_-a) 만화 자체는 뭐 그럭저럭 재미있었는데, 드래곤볼의 구조가 눈에 띈다. (물론 이 만화가 먼저 나왔으니 '드래곤볼 구조'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그게 가장 익숙할 것이므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주인공이 서서히 연기에 눈떠 가면서 학예회에 출연하고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고 전국 대회에 나가고, 다음은 세계로 진출인가? 슬램덩크도 똑같았지. 2권 초반에서 벌써 전국 대회인데, 14권이면 대체 어디까지 가려나.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아이가 주인공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잘 생긴 두 남자로부터 사랑받고, 뭐 전형적인 순정만화네. 아무리 본인이 원했다지만 때리고 창고에 가둬가면서 연습을 시키다니, 아동 학대 아니야, 이러면서 궁시렁거렸다. 어쨌거나 좀 더 보기는 할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과연 명작인가 하는 의심 상태.

<데스 노트> 4권은 아직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았다. 제 2의 키라 문제는 이상하게 해결이 되고, 마지막 장면에선 키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의아하다. 노트를 버릴건가. 아, 궁금.

만화방에서 나와 헌책방으로 향했다. 1시간 반동안을 구경하면서도 겨우 두 권 밖에 고르지 못했는데, 계산할 때 카운터에 지미의 책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야호. 하지만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는 '아차, 또 네 권이나 사버렸어. 책 안 사려고 했는데. 에휴.' 한다. 언제 다 읽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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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6-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러길래, 중학교때부터 보셨어야지.. 여고생의 감성으로 봐야한다구요.
데스노트 4권 나왔군요. 설정이 너무 쎄고 초반부터 보여줄거 다 보여줘서 저대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sudan 2005-06-0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유리가면이 그래도 대단한게, 벌써 30년 연잰데 처음부터 그걸 예상하고 주인공의 옷을 유행 안타는 스타일로 계획하고 그렸다는군요.

실비 2005-06-0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사셨네요^^ 괜히 제가 더 뿌듯한^^

chika 2005-06-0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생의 감성... ^^
그래서 만화 아닐까요? 저는 그런거보다는 마야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무대에서 보여주는 반전같은 스토리가 엄청 좋았어요. 전 초등학생때 봤던 마야가 장미꽃을 입에 물고 있는 장면, 아유미와의 대결이 젤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어요.

로드무비 2005-06-05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 저도 재미없었어요.
너무 늙어(!) 봐서 그런가? 아무튼.
지미의 그림책 재밌겠네요.^^

비로그인 2005-06-0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서른 살 되던 즈음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는데... 여고생감성이라니... 흑흑흑...하여튼 그만큼 빠져들지 않으면 아예 보지 마시라니까요!!!!!
 

 

 

 

 

 

우리는 펌프가를 뒤덮은 겨우살이 향기에 이끌려 오솔길을 걸었다. 누군가 펌프에서 물을 긷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꼭지 아래에다 손을 갖다대셨다. 차디찬 물줄기가 꼭지에 닿은 손으로 계속해서 쏟아져 흐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다른 손에다 처음에는 천천히, 두번째는 빠르게 이라고 쓰셨다.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운 나는 마치 얼음조각이라도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잊혀진 , 그래서 가물가물 흐릿한 의식 저편으로부터 서서히 생각이 모습을 드러내며 돌아오는 떨림이 감지됐다. 언어의 신비가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금 위로 세차게 내리꽂히는 차가운 물줄기가 이라는 것의 정체임을 알았다. 살아 숨쉬는 낱말의 입맞춤을 받은 영혼은 잠에서 깨어나 그가 가져다준 빛과 희망과 기쁨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물론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장애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것들이었다.

 

*******

 

어느 나는 좌우로 나누어 무리지어놓은 각기 다른 크기의 구슬들을 , 그보다 작은 걸로 하는 순서로 꿰고 있었다. 나는 자꾸 틀렸고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친절하게 잘못을 바로잡아 주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어디서 자꾸 틀리는지 알게 됐고 작업에 정신을 집중하게 됐으며 어떻게 해야 틀리지 않겠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마에 대고 생각하다라고 결정적인 단어를 쓰셨다.

바로 그때 나는 머릿속에서 계속되던 일련의 과정을 가리키는 바로 단어를 섬광과도 같이 깨우쳤다. 추상적인 개념을 최초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

 

내가 나이애가라 폭포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있는 것도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있다는 건지.” 보고 들으면 것인가.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애가라, 대자연의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

 

아는 것이 힘이다.” 아니, 아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소유함으로써 무엇이 참된 목적이며 어떤 것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인지 분별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진보를 특징짓는 사상과 행동 양식의 어떠함을 안다는 것은 수세기를 관통해온 위대한 인간의 심장 고동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심장 박동 속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의 조화, 가락을 들을 귀가 멀었음에 틀림없다.

 

*******

 

그곳에는 뼈마디가 뒤틀리고 몸이 굽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딱딱하고 거친 손을 만진다. 그러고는 아뿔싸 깨닫는다. 이들이 끊임없이 치러야만 하는 투쟁이 온갖 장애물에 맞서는 헛된 노력, 싸움의 연속일 뿐임을. 결국 이들에게 있어 삶은 노력과 기회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불균형을 건너는 것임을. 우리는 말한다. 해와 공기는 만인에게 내리신 신의 선물이라고.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도시 한구석 거무튀튀한 뒷골목엔 오늘도 해가 들지 않는다. 악취가 진동한다. , 인간이여! 어찌 우리가 형제인 그들을 잊으며 그들을 유폐시킬 있는가. 그들의 손엔 아무것도 들린 없는데 어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있는가. , 제발 도시, 온갖 화려함과 떠들썩함이 출렁이는 황금의 그늘에서 벗어나 숲과 들로 단순 정직한 생활로 돌아가라. 그러면 그대들의 자식들은 고귀한 나무처럼 당당하게 자랄 것이요, 그들의 생각 또한 길가에 꽃처럼 아름답고 순결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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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6-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의 그 장면이 생각나요.

urblue 2005-06-0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제가 유리가면을 안 봐서요. 어떤 장면인지? ^^;

mira95 2005-06-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헬렌 켈러 역을 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데요.. 무슨 장면이냐면 물을 맞고 언어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에요.. 정말 연극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완결이 안 돼서 좀 그렇지만 유리가면 좋아요^^(완결만 된다면 사 보고 싶어요~~)

깍두기 2005-06-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헬렌켈러가 '물'이란 말을 이해하는 장면을 연기하죠.

sudan 2005-06-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사에 남을 명장면이에요.
(이러니, 곧 보시겠군요? 흐흐.)

urblue 2005-06-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곧 봐야겠군요.
참, 내일 만화방 가서 놀 생각이니까 내일 보면 되겠네요. ^^
수단님, 홍대앞 만화방 아는데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perky 2005-06-0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 제 생애 만화책에 들어가요. 꼭 보세요! 흐흐

마냐 2005-06-04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아니라 만화에 땡기다니...ㅋㅋ

sudan 2005-06-0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은 홍대앞 toonk. 만화방은 신촌.
유리가면, 그래서 보셨나 어쨌나? 30년째 연재중이라 전 포기하고 이젠 안봐요 사실. -_-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걸 본 친구는 돈키호테와 햄릿을 비교하는 것이 영국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돈키호테 쪽이 훨씬 매력적이고 생생한 인물이므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땐 그저 웃고 말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수긍한다. 물론 이것은 영국인들의 음모가 아니라 투르게네프의 구분이라지만 말이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에서 사색과 회의에 몰두하는 사색형 인간 햄릿과,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지만 용기 있게 나아가는 행동형 인간 돈키호테로 인간의 대표적 성향을 이분했다.─알라딘 책 소개)

 

돈키호테가 무모한 인간인가. 글쎄. 돈키호테는 사실 상당히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고, 재치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마을의 농부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시골 귀족이다. 그러던 그가 기사도 소설에 몰두하면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짓고, 동네 아낙을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로 바꾸어 연인으로 삼고, 소설 속의 기사들이 그러했듯이 업적과 명성을 쌓기 위해 편력을 하기로 결심한다. 결심한 순간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된 것이며 그대로 진행할 뿐이다.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돈키호테는 확실히 행동형 인간이다. 그러나 사색이 결합된 행동파이며, 자신의 의식 속에 하나의 세계를 건설할 능력이 있고, 남들의 비난과 조롱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뚝심이 있다. 나는 그가 미쳤다거나 무모하다기보다는 스스로 만들고 걸어 들어간 자신의 세계에서 남들의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의지의 인간이라고 본다. (게다가 의지란 건 때로 꺾이기도 하고 살짝 굽히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돈키호테는 잘 알고 있다.) 세속의 상식을 떠나 자기만의 가치와 이상을 따르는 돈키호테의 이단자적인 모습은, 요즘 세상에서도 가끔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돈키호테 같다고 한다면 그건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칭찬이어야 마땅하다. 

 

다른 식의 구분은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돈키호테의 종자인 산초를 현실주의자로 나눈다. 물론 산초가 돈과 먹을 걸 좋아하고 영지를 받으려는 욕심에 돈키호테의 종자 노릇을 한다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허황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라 나선 사람을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운 것 없고 무지한 시골 촌부라서 그렇다고? 그보다는, 산초 역시 머리는 이상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적절하다. 다만 땅에 붙어 있는 발과 엉덩이가 더 묵직할 따름이다. 하여 이 둘을 한 인간의 양면이라고 본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두둥실 떠오르지도 바닥에 붙어버리지도 않는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만담 같은 콤비의 좌충우돌 편력기는 꽤나 유쾌 상쾌하다. 기사로서의 신조를 갈파하다가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은근슬쩍 발을 빼거나 자기를 합리화하는 돈키호테와 꽁알꽁알 투정 많고 겁 많고 그러면서도 우직한 산초를 보고 있자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17세기의 소설에서 이처럼 활동적이고 특징적이고 성격 있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놀랍다.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이전에 그는 에스파냐군에 입대하여 저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으며, 해적의 습격을 받고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생활을 했다. 38세부터 소설과 희곡을 쓰기 시작했지만 전혀 성공하지 못했기에 문학의 길을 버리고 세금징수원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돈키호테>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 외에도 그들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 소개되는데 이것들은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빼어난 남녀가 등장하는데다 사랑에 죽고 못살고 여자에게 정숙함을 요구하는 등 뭐 이런저런 한계를 보이긴 하지만, 흥미를 반감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돈키호테의 광태에 지겨워질 무렵이면 이 이야기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꾸준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돈키호테>의 1부만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2부도 빨리 완역되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가 겪은 모험의 전말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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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돈키호테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리뷰군요..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5-06-0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산초형 인간!ㅎㅎ
리뷰 빨리도 올리셨네요.^^

물만두 2005-06-0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만^^

미완성 2005-06-0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청해야겠어요 헤헤.
요즈음 스페인 문학에 푹 빠져계신 겁니까~ 흠..시공사 책만 아니면 더 좋았을텐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요.
전 스페인이란 나라, 예전에 참 동경했었는데..라틴아메리카 역사 공부 잠깐하고나서는 그냥 스페인이란 단어만 들어도 으스스해요. 심각한 편견이겠지요? ;;;;

urblue 2005-06-0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님, 저도 시공사라 떫떠름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수탈 문제라면 사실 스페인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게다가 당시 스페인 국왕과 정부 관리들이 상당히 멍청하여,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탈한 자원들은 대개 영국으로 흘러들었답니다.

물만두님, 감사. ^^

로드무비님, 미 투! ㅋㅋ

날개님, 돈키호테하면 풍차에 달려드는 장면만 떠올랐었거든요. 그런데 책 읽고 생각이 바뀌었지요. ^^

하이드 2005-06-0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 에서도 돈키호테 vs. 셰익스피어더라구요. 그 책 읽을때 돈키호테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세르반테스의 책만 실컷 샀습니다.

urblue 2005-06-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동시대 작가니까 그렇겠지요?
엥, 그런데 세르반테스 vs. 셰익스피어 / 돈키호테 vs. 햄릿 아니구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