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린이 붕붕툐툐님을 위한 특별 페이퍼^^ 등른이는 (등산과 어른을 조합한 말^^)
20211016 설악 대청봉 등정
산행구간: 한계령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중청대피소 ~ 대청봉(1708m) ~ 설악폭포 ~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산행거리: 13.2km (실제는 훨씬 길었을 것으로 추정)
산행시간: 11시간 30분 / 등산 7시간 하산 4시간 30분 (오 마이 가드)
산행걸음: 약3만 8천보
요즘 등산에 맞들린 붕붕툐툐님의 글을 읽으며 17년 전 내가 산에 입문하여 룰루랄라 산을 올랐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고 있다. 3주 전 설악산 만경대에 올랐을 때 살 것 같다는 느낌과 더불어 내 오춘기 탈출은 이것이겠다는 느낌이 번개처럼 찾아들었다. 하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겠다는 야물딱진 계획을 세우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 . . . . . 설악산 대청봉을 하루만에 오르기엔 내 체력과 속도가 대중교통 시간과 맞지 않았다. 날마다 애를 태우는 내 모습을 본 옆지기가 넌지시 제안했다.
ㅡ 내가 가주리?
ㅡ 진짜? 나야 그래 주면 고맙지.
ㅡ 새벽부터 산행하면 얼추 네다섯 시에 떨어지겠지. 10시간이면 되지 않겠어.
참고로 옆지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산을 다니기 시작하여 이십 대는 본격적으로 산을 타다 암벽의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산에서 만났다. 17년 전 산에 빠지기 시작한 내가 이 산 저 산 다니던 중 북한산 칼바위를 가고 싶어 친한 오라버니에게 길잡이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 오라버니는 길잡이 뿐 아니라 일곱 난쟁이를 데려와 중매쟁이까지 자처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지금의 옆지기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가 되고 말았다는 우픈 사연. 어쨌거나 옆지기는 한때 북한산 날다람쥐였다.
새벽 2시 기상. 새벽 5시 30분 설악산 오색 주차장 도착. 6시 한계령 휴게소에서 산행 시작. 당일치기로 대청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는 한계령에서 오색, 또는 오색에서 한계령 구간이다. 짧은 만큼 경사가 가파르고, 악산이라 바위 투성이다.
오늘의 코스
보라. 입구부터 긴긴 계단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이후론 바위 투성이의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이런 험한 구간을 오르는 동안 운무가 우리 뒤를 따라 올라왔고, 구름 사이로 해님이 고개를 내밀었으며, 깔딱 고개 넘어설 때마다 설악의 웅장한 산세가 펼쳐졌다.
그리고 산에는 거의 매번 바람이 분다. 맑고 쾌청한 날, 설악의 바람은 어마무시하게 무섭다. 17년 전 가을 설악에서 바람을 처음 접하고 나는 이렇게 표현했다. "설악의 바람은 소리로 제 존재를 먼저 알린다." 깊~~~은 골짜기를 타고 바람이 올라온다. 스스스스. 쉬쉬쉬쉬. 쉬이익쉬이익. 휘이익휘이익. 그러고는 귀싸대기를 날린다. 처~얼~썩. 시원하게 아프다. 이날 설악의 바람은 진군하는 군화발 소리가 아닌 쏴아거리는 파도 소리로 산행의 동무가 되어 주었다. 산에 들면 바다와 조우할 수 있다. 들어 보라! 고 하고 싶은데 동영상 지원이 안 되는구나. ㅠㅠㅠ
드뎌 대청봉이 보인다. 여기 이 자리. 중청 대피소와 대청봉이 한눈에 잡히는 이 자리에서 반드시 사진을 찍으시라. 어떻게 찍어도 아름다우니.
고백하노니,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들, 그들 중 한 곳이 천화대라는 불리는 곳이다. 새하얀 바위부리들이 마치 하늘에 핀 꽃송이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옆지기의 꿈 중 하나는 부부 암벽 등반이었다. 나를 클라이머로 등극시키고자 결혼하고 얼마 후 저곳으로 데려갔다. 해발 1600고지에서 나는 하늘에 핀 꽃송이에 내 오줌을 선사했고, 옆지기에게는 나를 버리고 바위를 탈래, 나를 놔두고 바위에 오를래 선택권을 주었다. 그는 후자를 택하는 오류를 범했고, 한동안 지인들과만 바위를 타다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느라 오랜 시간 클라이밍을 접고 살았다.
드디어 대청!!! 왔노라 찍었노라 보았노라. ^^ 일곱 시간만의 쾌거. 대청의 바람은 대개 가녀린 여인의 몸뚱이쯤 날려버릴 기세로 드세다. 오늘은 웬일, 저리 꼿꼿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바람이 순했다.
하산길에 만난 설악의 단풍. 올해 단풍은 예쁘지 않다고 등산객들이 너나없이 말하지만, 어떻게 물이 들든 어쨌든 물이 들며 변해가는 잎들은 그 자체로 예쁘다.
하산길에 계곡을 만나면 꼭 신발끈을 풀고 차디찬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그러면 걷느라 화끈화끈해진 발의 피로가 눈 녹듯 사그라든다. 그 상쾌함으로 다시 힘을 내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이번에는 계곡물의 약발이 오래 가지 못했다. 하산길은 통증과 울음의 연속이었다. 어깨는 욱신거리고, 허리는 뻐근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무릎은 쑤시다 못해 면도칼이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탐방지원센터에 당도했을 때, 나는 당일치기 대청봉 산행은 오늘로 쫑!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한 산행. 그럼에도, 그랬기에, 더더욱 강렬했다. 나의 산행은 계속되리~~~~ 툐툐님 같이 가요 ~~~~ ^^
그리고 17년 전 산에서 만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