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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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력은 언제든 환영이다. 어떤 병이든 일단찾아들면 완치는 없다는 것이 내 몸이 깨달은 바다. 스물여섯 청년의 아픈 몸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면면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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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 매일 시읽기 43일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 시인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는 2020년을 달군 시집 같다. 4월에 첫 출간 7월에 8쇄를 찍었다. 내가 구매한 시기가 10월이니 8쇄 이후로는 판매량이 주춤해진 모양이다. 북플에 많이 소개되는 시인이어서 궁금해서 구매했다.

이원하 시인은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젊다. 싱그럽다. 이력이 특이하다. 미용 보조, 단역 배우, 카페 바리스타로 일했다. 시를 쓰고 싶어 제주로 내려갔다는데, 재미나면서 기특한 이유다. 내 지인들이 제주에 사는 까닭은 고향이어서, 직장이 거기여서, 아이들 정서 발달을 위해서이다. 시를 쓰기 위해 제주에 내려간 이십대 예비 시인은 6개월 만에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바로 그 어렵다는 ‘등단.‘

시인은 수험생이 수능 시험 준비를 하듯 매일 시를 썼다. 어떤 때는 밤에 불을 켜두는 것이 무서워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시를 썼다고 한다. 밤의 전등불보다 등단 실패가 더 무서워 정말로 열심히, 아주 부지런히 썼다고. 나는 시인의 이 각별한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졌다.

시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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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매일 시읽기 42일 

서울의 달 
- 김건모 작곡 / 최준영 작사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텅 빈 방안에 누워 이 생각 저런 생각에
​기나긴 한숨 담배연기 또 하루가 지나고
​하나 되는 게 없고 사랑도 떠나가 버리고
​술잔에 미친 저 하늘에 달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이 밤이 가는구나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가끔 비가 내리면 구름에 니 모습이 가려
​어두운 거리 더 쓸쓸해지네
​텅 빈 이 거리 오늘도 혼자서 걸어가네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슬픈 추억 안고 사는구나
​텅 빈 가슴 안고....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2005년 6월 발매된 10집 앨범 <Be Like...>의 타이틀곡이다. 김건모 본인이 작곡하고 김건모의 오랜 음악동료인 작곡가 최준영이 작사를 했다. 앨범 정보에는 이런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3,40대의 상실감을 소재로 한 ‘서울의 달.‘˝

달에게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처량한 것은 달이 아니라 화자의 ˝텅 빈 가슴˝이다. 화자는 까만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왠지 쓸쓸해 보이고, 왠지 허전해 보이는 달을 빌어 자신의 헛헛함을, 외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오늘 우연찮게 내 핸폰에 저장된 이 노래를 듣게됐는데,
반복되는 ˝텅빈 가슴 안고˝라는 가사에 어제 만난 후배가 떠올랐다.

이럴 리 없는 나와 내가 그렇지 뭐, 사이. 

후배 모친상으로 장례식장에 갔다 거의 이십 년 만에 한 후배를 만났다. 대학 시절 곧잘 나를 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도 잘 치던 사이였다. 사회에 발을 디딘 후론, 대부분의 관계가 그러하듯 각자의 생활에 충실했고 만남은 끊어졌다. 대부분의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이제는 장례식장에서나 본다.

누구나처럼 그 후배도 꿈이 많았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교우 관계도 좋았기에 앞날이 밝아 보였다. 목표한 꿈을 좇아 산 지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자신이 바랐던 만큼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다(나도 그렇다). 술도 한 잔 걸치지 않았는데,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후배는 제삼자처럼 말했다.

˝누나,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래. 이럴 리 없어. 내가 50이나 먹었단 말이야. 이럴 리 없어. 아무것도 못 이뤘는데. 어쩌라고~~~~~. 그러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잖아. 그럼 이렇게 자조하게 돼. 니가 그렇지 뭐.˝

˝니가 그렇지 뭐˝라는 말에서 우리 둘은 소리 내어 웃었다. 맞아. 우리가 그렇지 뭐.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이럴 리 없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가슴에 구멍 하나 가지고 사는 거라고 얼마 전 썼더랬는데, 벌써 중년이 돼버린(말도 안 돼) 후배 녀석도 가슴에 생긴 구멍으로 스산한 바람이 드나드니 삶도 스산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다. 구멍은 생겨버렸고, 바람을 불어대쌌고, 세월은 재깍재깍 가고, 피부는 축축축 처지고, 흰머리는 우후죽순 돋고. 그러나 뭘 어쩌겠는가. 허니 노래나 듣자. 덧붙여 기시 마사히코의 글이나 또 되새겨 보자.

˝되풀이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누구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적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오히려 우리 인생은 몇 번이나 기술한 것처럼,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단지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그런 인생이다. 우리 대다수는 배신당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이다.˝(<<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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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매일 시읽기 41일 

그때는 미처 몰랐제 
- 박제영 

젊었응께 어렸응께 
정말로 그때는 미처 몰랐제 
서른둘에 이장이 되어서 내가 처음 한 게 
나무를 벤 기라 
마을 어귀 삼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를 베어낸 기라 
길을 내야 했거든 
봐라 저 휑한 길을, 저 흉한 걸 내가 만든 기라 
어르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공약을 지킨 거 그땐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는데 
젊었응께 어렸응께 
저 신작로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날 줄 몰랐제 
이리 될 줄은 이리 텅 빌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네 

내가 사람을 벤 기라 
나무를 벤 기 아니라 사람들을 벤 기라 


박제영 시인의 <<식구>>를 한 번 더 펼친다. 발문을 쓴 정제영 시인은 박제영 시인의 시가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 더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로 확장된다˝고 썼다. 그의 시가 내 식구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건 시집을 읽으면 저절로 느껴진다.

‘그때는 미처 몰랐제‘는 꾸밈없는 사투리 입담 덕에 발랄함이 풍기건만, 이장 경력을 가진 화자의 마지막 말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젊어서, 어려서, 뭘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이 어디 한둘일까. 때론 인생이 아쉬움과 후회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함께 좋자고, 더불어 잘살자고 한 일이 너나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돼버렸을 땐, 그 일을 도모한 내 손을 베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내 경우엔, 나의 말이 혹 누군가를 베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져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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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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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관심 있는 입문자들에게 유용할 책. 나처럼 번역 괸련 서적을 몇권 읽어본 이들에겐 비추. 번역이 연애와 같다고 제목을 달았지만 저자도 시인하듯, 번역은 골 빠지는 노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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