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매일 시읽기 43일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 시인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는 2020년을 달군 시집 같다. 4월에 첫 출간 7월에 8쇄를 찍었다. 내가 구매한 시기가 10월이니 8쇄 이후로는 판매량이 주춤해진 모양이다. 북플에 많이 소개되는 시인이어서 궁금해서 구매했다.

이원하 시인은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젊다. 싱그럽다. 이력이 특이하다. 미용 보조, 단역 배우, 카페 바리스타로 일했다. 시를 쓰고 싶어 제주로 내려갔다는데, 재미나면서 기특한 이유다. 내 지인들이 제주에 사는 까닭은 고향이어서, 직장이 거기여서, 아이들 정서 발달을 위해서이다. 시를 쓰기 위해 제주에 내려간 이십대 예비 시인은 6개월 만에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바로 그 어렵다는 ‘등단.‘

시인은 수험생이 수능 시험 준비를 하듯 매일 시를 썼다. 어떤 때는 밤에 불을 켜두는 것이 무서워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시를 썼다고 한다. 밤의 전등불보다 등단 실패가 더 무서워 정말로 열심히, 아주 부지런히 썼다고. 나는 시인의 이 각별한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졌다.

시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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