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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만히, 또또 들여다보게 되는 가슴 찡한 그림책이다. 이태준이라는 이름 석 자만 보고 알라딘에서 고른 중고 서적인데, 뜻밖의 감동과 김동성이라는 그린이를 함께 얻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그린이의 해석과 감성에 찬탄이 절로 나왔다. 추운 날, 귀를 덮은 모자를 쓰고 두툼한 옷을 입은 아기의 모습에서 내 딸의 영상이 자꾸 겹쳐졌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렸나 보다.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하고 안전 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져 가만히 서 있습니다.

 글이 이렇게 끝나서 너무 슬펐다. 뭔가 잘못된 거야, 동화책이 이렇게 슬퍼도 되는 거야, 왜 엄마를 못 만난 거야, 라고 구시렁대며 책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들여다보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지막 장에 이르니 아하, 그럼 그렇지, 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그림이 숨어 있었다. 그린이의 그 센스라니. 이 그림책은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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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네버랜드 클래식 13
케니스 그레이엄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내게 책을 읽어준 적이 없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책 한 권 사준 적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으라면서 왜 책을 사주지 않는 걸까.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된 것은 우리 집은 책을 살 여유가 없었고, 그보다 우리 엄마는 독서는 학교에서 해결해주는 것으로 믿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교에서 뭘 배우길래 그런 것도 모르냐?”는 말을 허구한 날 하셨을까.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동화책만 보면 흥분되곤 한다. 그림책을 보면 더 가슴이 뛴다. 그림과 글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책을 보면 내 어린 날을 그런 책들과 벗하며 지내지 못한 사실에 가슴 한 켠이 싸하니 시려지곤 한다. 그 때문에 나는 가끔 동화책을 읽는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나보다 책을 더 좋아하고 더 많이 읽는 한 선배가 권해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정말이지 흥분과 입가에 배시시 떠오르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숲 속에 사는 동물 네 마리가 주인공인 책이다.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흥분하고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는 두더지 모울, 자신이 사는 와일드우드 마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리하고 재치 있는 물쥐 래트, 무슨 일을 하건 싫증을 곧잘 내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허풍이 심한 두꺼비 토드, 여럿이 어울리는 걸 싫어하지만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주변의 모든 동물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명한 오소리 배저 아저씨. 이야기는 땅 속에서 혼자 살고 있던 두더지 모울이 봄맞이 대청소를 하다 땅 위의 무슨 소리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 데서 시작된다. 땅 속에서만 틀어박혀 있다 보게 된 세상은 모울에게 천국과도 같다. 발 닿는 대로 어슬렁거리던 모울은 강물이 불어난 강기슭에 이른다.


모울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강을 본 적이 없었다. 강은 매끄럽고, 구불구불하고, 통통한 동물 같았다. 이 동물은 꼴꼴거리며 무언가를 쫓아가서 콸콸거리면서 붙잡았다가 쏴쏴거리면서 놓아 주었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새 친구들의 뒤를 다시 덮쳤다. 강의 새 친구들은 붙잡혔다가 놓여나기를 되풀이했다. 이 동물은 반짝거리면서 번쩍거리면서 팟팟거리면서 찰찰대면서 윙윙대면서 졸졸거리면서 보글거리면서 몸서리를 쳐댔다.(12)


모울이 세상을 보는 눈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세상을 얼마나 설렁설렁 보아 왔고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은 개성이 저마다 다른 동물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 준다. 말썽을 잘 일으킨다고 해서, 성격이 무뚝뚝하다고 해서, 단정 짓길 좋아한다고 해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격은 달라도 착한 심성을 가졌기에 네 동물은 이런저런 사건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며 더욱 친해진다. 그런 사건의 중심에는 늘 두꺼비 토드가 있다. 토드가 벌이는 짓거리는 때때로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긴다. 이런 친구가 주위에 있다면 골치야 좀 썩겠지만 삶이 심심하지는 않겠다 싶더라. 말썽장이 토드를 언제든 보듬어 안는 두 친구와 배저 아저씨의 마음 씀씀이에는 감동이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보다 두더지 모울이 정말 좋았다. 모울이 땅 속을 박차고 세상을 나오는 순간부터 느끼는 온갖 벅찬 감정들은 내가 삶의 순간순간마다 느끼는 것들이었고, 모울이 혼자만 살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기쁨과 힘겨움은 나 또한 느끼던 것들이었다. 숱한 경험 속에서 모울은 현명해지기로 한다. 기특도 하지.

모울은 현명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자기 미래가 걸려 있는 즐거운 곳을 지켜야만 했다. 모울은 그곳에서 충분한 모험을 하고, 자기 방식대로 삶을 펼쳐야 했다.(106)

이 책은 날 때부터 시력이 약해 앞을 잘 보지 못한 가엾은 아들은 위해 케네스 그레이엄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매일 밤 아버지는 아들에게 두더지와 물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휴가 동안에는 두꺼비의 모험담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고. 저자의 진한 부성애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도 언젠가 내 딸에게 이런 멋진 동화를 지어내서 읽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력에 나는 때때로 숨을 멈추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곤 했다. 그러나 바람만 클 뿐 현실의 나는 모자란 상상력과 언어의 빈곤에 시달린다. 꺼이~

- 배는 뒤집혔고, 모울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 세상에, 물이 얼마나 차갑고, 얼마나 끔찍이도 축축하게 느껴졌는지!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을 때에 얼마나 귀가 울렸는지! 어푸어푸하고 콜록콜록하면서 물 위로 떠올라서 바라본 햇살은 얼마나 밟고 정다웠는지! 다시 아래로 가라앉을 때에는 얼마나 캄캄한 절망을 느꼈는지!(32)

- 돌아보면 지난 일은 무척 화려하고 다양한 그림이 곁들여진 멋진 책의 한 페이지와도 같았다.(63)

- 냉혹하고 매서운 하늘이 귀를 쫑긋하고 있는 어느 추운 날 오후, 모울은 따뜻한 응접실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잎사귀 하나 없이 황량했다. 모울은 여태까지 자연의 여신이 일 년에 한 번씩 옷을 몽땅 벗고 깊은 잠에 빠지는 그 겨울날처럼 자연의 모습을 이렇게 깊이, 또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신비로운 탐험지였던 잡목 숲, 골짜기, 채석장, 그리고 감춰져 있던 모든 곳들이 이제는 가슴 아프게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지니고 있던 비밀을 모두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낡은 속임수로 모울에게 장난을 치고 술수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자신들의 초라한 몰골을 봐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안 된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신나고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 모울은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아무 꾸밈없이 순수한 모습을 드러낸 자연을 보는 게 좋았다. 모울은 벌거벗은 뿌리로 다가갔다. 그것들은 섬세하고 강하고 순수했다.(65)

- 솔새 한 마리가 어두운 강둑 가장자리에 몸을 감추고 작고 가는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밤 열 시가 지났건만 하늘은 아직도 주춤거리며 이별을 고하는 낮 빛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찌뿌드드한 오후 열기도 한풀 꺾여서, 짧은 한여름밤의 서늘한 손가락이 닿자마자 흩어지듯이 사라져 버렸다.(161)

- 아름다운 꿈에서 갑자기 깨어나면 누구나 그 꿈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웠다는 희미한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나면, 몽상가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을 씁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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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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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매스너는 산악인인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 급 14좌 완등,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세계 역사상 가장 탁월한 등반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나는 산을 오르고부터, 이른바 산행기를 쓰면서부터 이 사람의 이름을 심심찮게 들었다. 산을 오르기 전까지 나는 산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14좌 완등자 중 한 명인 엄홍길의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을 시작으로 나는 몇 권의 산악서들을 읽었다. 라인홀트 매스너의 책은 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는 거칠고 한 성격 할 것 같은(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외모와 달리 날실과 씨실을 정성스레 교차해 멋들어진 옷을 짜는 듯하다. 게다가 그 날실과 씨실 사이에는 우리가 살면서 해볼 만한 수많은 단상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아주 촘촘하고 섬세하다.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산악문학상(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던가?)을 세 번이나 수상한 이력이 괜한 공치사가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검은 고독 흰 고독》은 《벌거벗은 산》이후 내가 두 번째로 읽은 라인홀트 매스너의 책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책 모두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한 기록들이다. 《벌거벗은 산》은 동생과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 도중 눈사태로 동생을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밝혀 놓은 책이다. 《검은 고독 흰 고독》은 그로부터 8년 후 라인홀트 매스너가 디아미르 벽을 경유하여 낭가파르바트를 완전 단독 등반을 해내고서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8,000미터 급의 눈 덮인 산을 혼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오른 최고봉은 고작 1,915미터의 지리산이었다. 한여름에 오른 지리산에는 만년설 따윈 없었고 들이쉴 산소도 충분했다. 그런 산을 오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산소도 희박하고 눈과 얼음과 험준한 바위로 점철된 8,000미터 급의 산을 혼자 오를 생각을 하고 실제로 올랐다니, 나는 그 사람의 그 힘이 궁금했다. 

- 사람들은 낭가파르바트를 ‘운명의 산’이라고 부른다. 나는 낭가파르바트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제야 알았다. 낭가파르바트는 내가 오를 최초의 8,000미터 봉이라는 것을. 인간 대 산, 즉 한 인간과 8,000미터 봉이 서로 조우하는 것이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고 싶다.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등반에서 내 영혼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인간 능력의 한계까지 오르기로 마음먹었다.(40)
- 나는 내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고 싶다.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은 등반가들이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커다란 숙명 같은 것이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오르려고 생각할수록 나는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61)

라인홀트 매스너는 그 고독을 가뿐히 넘어섰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와 함께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하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무겁기만 하던 두 다리가 어느 순간 가벼워지는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산을 오르는 건지, 산을 나를 끌어당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두 발이 공중에서 약간 떠서 나는 듯이 움직인다. 그때는 피로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던 라인홀트 매스너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대산악인과의 일치감에 한껏 우쭐하여 희희낙락거렸다. 

- 쾌적한 피로감. 갑자기 몸이 둥둥 뜨면서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피곤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긴장이 풀어져 그런 것일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다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두 다리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91)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한 이런 등반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죽음이 두려웠다면 처음부터 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어디서든 죽는다. 라인홀트 매스너 같은 사람은 그곳이 산일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되,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서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자살과는 거리가 멀었다. “짐은 가볍게, 걸음은 빠르게, 가벼움과 신속함”으로 그는 안전 산행을 도모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냈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만인에게 펼쳐 보였다. 극한의 높은 곳에 선 자의 고백을 이 낮은 곳에서 듣는 동안 나는 내내 즐거웠다. 

-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165)
- 극한 상황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은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줄 뿐이다. 그것은 평소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어떤 의식의 상태를 일깨워 주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한다.(241)
-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집중하며 이렇게 혼자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자를 사용하지 않고 발과 눈으로 거리를 재는 것과 같다. 바로 여기야말로 내가 살 곳이라 여겨진다. 이곳은 나를 구속하는 것도 없고 고통스러운 과거도 없다. 어딜 가든 내 집이다. 반대로 어디에도 내 집이 없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 . 그 무엇이 나를 어떠한 선 너머로 끌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내 힘이, 고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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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 -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 북라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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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북라인(2007)

이 책은 부모가 되었거나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니, 책을 읽고 나니 내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아직도 책 읽기를 기피하고 있는 내 주위 부모들에게 손수 사주고 싶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멋진 밥상을 차려준 후배의 집에서 우연히 추천 받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책을 좋아하는 나는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어디에 좋고, 언제까지 읽어주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목차(목차가 정말 훌륭하다)를 보고 자신에게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내 경우엔 ‘TV와 인터넷은 독인가 약인가’라는 6장이 먼저 눈에 들어와 그 장부터 읽었다. 그것은 나란 인간이 책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도 좋아하는 터라 가끔씩 아이와 함께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돌을 갓 넘긴 내 딸이 돌을 전후하여 TV에서 광고만 보면 꼼짝도 않고 앉아 텔레비전 모니터를 멍하니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의 이런 증상을 내가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싶을 때 나는 선전이 길게 이어질 채널을 골라 아이를 TV 앞에 앉혀 놓는다. 약간의 죄의식을 느끼면서 말이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나는 지금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 두 돌 이전까지는 되도록 TV를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법, 나는 ‘되도록’이란 말에 안도를 하며 많이만 보여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저자 또한 아이가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경계선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규칙만 있다면, 아이들이 컴퓨터로 놀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제한된 시간 안에서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용이라고. 실제로 핀란드 아이들은 TV의 캡션기기를 통해 글을 읽힌다고 한다. 이 장을 읽고 나는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 돌을 넘긴 우리 딸에게 하루 30분 정도 광고 방송을 보여 주고 있다.  


나머지 장들도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읽었지만, 전혀 무리가 없었다. 글이 시원시원하고 사례들이 많아 아주 술술 읽힌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한 대목은 책읽기를 통한 치유였다. 많은 학습장애아들이 가족들의 책읽기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준다. 책읽기가 능사는 아니겠지만, 그들을 돕는 하나의 치유책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에게 책은 언제까지 읽어주는 것이 좋을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동네 엄마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라고 하자 글을 뗀 아이에게 뭐 하러 책을 읽어주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 주었다. “아이들이 혼자서 읽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할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서는 이해할 수 있다. . . 혼자 읽을 줄 아는 아이에게도 계속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 . . .(99). 책을 읽어주어야 할 시기를 저자는 중학교 2학년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정도 나이쯤 되면 혼자 읽기에 벅찬 글도 한 번쯤 읽어볼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나로서는 여력만 된다면, 즐길 수만 있다면 아이와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내 아이도 좋아할지는 의문이지만. . . 
 

저자는 또 터울이 있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책을 읽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관심과 이해력이 다른 두(혹은 세) 아이에게 같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책읽기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 아버지는 개별적으로 책을 읽어주라는 말에 발끈하여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느냐며 투덜댄다. 그 아버지에게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부모 노릇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시간을 더 들이고 투자하는 것이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닙니다.”(103)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지 읽기에 그쳐서는 안 되는 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부모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좋겠지만,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처음에야 힘이 좀 들겠지만 큰 아이의 주파수를 맞춰 하루 15분만이라도 책을 꼭 읽어주는 정성을 쏟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가 먼저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책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의 문제는 부모가 책을 읽어 주기만 하면 마치 우리 아이가 영재가 될 것 같은 착각을 부모에게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들마다 역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 역량을 일깨우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것이다. 결코 과소평가 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과대평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저자의 지적대로 책읽기는 단지 내 아이를 영재로 키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 간의 유대를 키움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남편이 어린 우리 딸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보는 수준이고, 어쩔 때는 거의 집어던지는 수준이지만, 꽂혀 있는 책들 중 유독 한 책만 죽으라고 집어 드는 아이를 보면 말 못하는 아기에게도 선호도가 있다는 걸 알겠고,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두루두루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분한 대목은 <보물창고>라는 작은 제목 아래 망라해놓은 ‘소리 내어 읽어주기에 좋은 책’(뉴욕알바니지구독서협의회)들이었다. 많은 책들이 우리나라에 거의 번역되어 나와 있었지만, 나는 원서를 사서 읽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들끓었다. 언젠가 내 딸에게 저 책들을 읽어줄 날들을 그려보노라니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었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거기 수록된 거의 모든 책들을 사서 먼저 읽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당장 구입해서 읽고 싶은 책은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The True Story of the Three Little Pigs》라는 그림책이다. 이 마지막 부록은 책을 좋아했지만 어린이 책을 거의 못 읽은 내게 진짜 <보물창고>가 되어 주었다. 저자에게 정말 고맙다. 이 책의 저자인 짐 트렐리즈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책을 읽어 주었던 느낌이 너무 좋아 자신의 두 아이에게도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지 않는 부모와 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비를 털어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하고 소망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을 배우도록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28)
- 글쓰기와 말하기는 ‘복제되는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단어는 귀와 눈을 통해 들어와 혀와 펜을 통해 나간다.’ 즉 우리는 들은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은 것을 말하고, 가장 자주 본 것을 적는다.(107)
- 아이가 책을 알게 되면, 또 하나의 중요한 수업을 조심스럽게 시작하자. 책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읽어 줄 때마다 책제목을 가리키고, 글쓴이, 페이지, 그림, 겉표지, 속표지와 같은 단어를 말해주는 것이다.(125)
- 정말 좋은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그 소리와 냄새와 이미지가 오랜 기간 우리 곁을 맴도는 책이다.(153)
“50세기 되기까지는 모든 책에 50페이지의 기회를 줘라. 50세가 넘으면 100에서 나이를 뺀 페이지만큼의 기회를 줘라.”(워싱턴북센터의 낸시 펄). 그녀는 이것을 ‘50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즉 독자가 작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정신적 고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책이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올림픽 경기장에 있어야지 책꽂이에 있어서는 안 된다.(155)
- 즐거움은 가르치기보다 감염되는 것이라는 점을 되새기자. 그리고 다음을 명심하자.(188)
- 어른이 역할 모델로서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 아이와 같은 시간에 읽는다면 더 좋다.
- 아주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책의 그림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독서’라고 할 수 있다.
- 아이가 스스로 읽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하자. 그것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시간을 정하자. 처음에는 짧게, 아이가 자라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면 길게 시간을 잡자.
- 신문과 잡지도 ‘독서’의 일종이다.
- 스스로의 선택, 스스로의 관심이 중요하다. 아이가 관심을 갖는 것을 읽게 하자.
- 아무도 책을 읽어주는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수잔 넬슨, 앨라배마 맥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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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나는 사십대에 갓 접어든 사람이다. 이 책은 20대, 폭넓게는 10대를 겨냥한 것이지만, 책을 읽어본 40대 주부인 나로서는 모든 세대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우리의 20대를 왜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지, 20대가 정말 그 정도밖에 돈을 못 버는지, 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희망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경제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제법 쉽게 풀어주고 있었다. 또한 재미있고 유익했다. 
모든 책이 그렇듯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이 소개글이 사뭇 흥미로웠다. 흔한 약력 소개가 아니었다. 
우석훈 . . . 〈한겨레〉에 ‘여기는 명랑국토부’를 연재하던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며, 고액 연봉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하고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 . .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박권일. . . . 야참 라면이 더 이상 꿀맛이 아니라는 걸 느낄 나이가 되었다. . .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섬세한 문학청년이며, 많은 50대들이 얼굴만 보아도 이유 없는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혈관에 비주류 정서(어떤 건지 몹시 궁금했다)를 채우고 살아간다. 미니멀리즘을 살아하고, 부산의 롯데 야구단 대신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면서 선배들과 갈등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경제성보다는 예술성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이다. 
저자 소개 밑에 88만원 세대에 대한 정의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없다. 이 20대가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 것인가, 아니면 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른바 386 세대에 속하는 나로선 우리의 20대가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한두 번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2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 바리케이드와 짱돌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애쓰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긴 했다. 물론 그 20대가 승자독식만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버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 책은 20대보다 386이라 칭해지는 세대가 더 공감할 만하고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 후반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다 쌍권총에 연발총에 기관총이 등장하는 학점을 받고 겨우겨우 졸업한 사람들도 좋은 대학만 나오면 취직을 ‘골라가며’ 했다고. ‘골라가며’까지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류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큰 기업에 들어간 한 선배는 영어도 좃나리(선배는 늘 그렇게 말했다) 못하는 자기가 이 기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이른바 명문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고, 행여 학교 명예를 더럽힐까봐 학교 다닐 때는 안 하던 영어 공부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좋던 시절이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많이도 변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명문대라는 딱지만으로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청년 실업 50만 시대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저자는 지금의 20대가 ‘세대 간 경쟁’과 ‘세대 내 경쟁’ 속에 있다고 말한다. 관록으로 뭉친 40대와 50대가 버젓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채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뚫고 들어가려면 그들을 앞지를 수 있어야 하고 자신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승자독식 게임이 된다고. 지금의 20대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저자는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 ‘죽을 사람은 내버려두고 일단 살 사람이라도 살자’는 신자유주의라는 흐름 때문이라고. 이것은 다시 말해 ‘독과점화의 강화’이며 대기업은 살고 중소기업은 죽는 없는 질서인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봉 차액, 그로 인한 훗날의 삶이 빤해 보이는 것을 아는 20대라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 되지 않는 대기업에 구직자가 몰리니 경쟁은 더욱 극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립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 청소년 노동 착취, 공교육의 하락과 사교육의 열풍, 그에 따른 인질 경제, 지나친 엘리트주의, 대기업의 공룡화와 중소기업의 붕괴 등을 저자는 어렵지 않게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균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20대, 10대, 그 후세대의 암울한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외국의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을 요약하고 있는 말은 다안성(diversatability)이다. 다양성과 안정성을 갖춘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끝으로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저자의 제안에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공교육의 확대였다. 68세대로 불리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룬 대학교육의 공립화를 예로 들며 현재의 사립대를 차츰 국립대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한 학기 등록금 1천만 원을 넘는(앞으로는 더 넘겠지만) 지금, 후세대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알바의 세계에 이른바 ‘꺾기’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근무시간 중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기껏해야 한두 시간)에 알바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요구하고서 이 시간 동안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기가 차서.
- 유럽 국가에는 ‘구청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지역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후견인 제도로, 구청장이 주례를 해주고 이들에게는 임대주택과 주택보조금과 일자리에 대해 우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 스웨덴에 유학 가는 사람들은 입학 허가서와 함께 입학 허가서를 받게 되는데, 스톡홀름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없으므로 만약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면 미리 충분히 마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자상한 조언이 들어 있다고. 스웨덴은 자국의 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프랜차이징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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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12-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20대인 저도 이 책을 읽고 정말 많이 공감했습니다. ㅋㅋ 글 정말 쉽게 잘 쓰시는 듯 ㅋㅋ
사실 대학등록금을 모두 무료화 했던 유럽도 요새 들어서는 차츰 등록금을 걷기 시작한다는 말을 호주에 가서 독일애들한테 들은 기억이 나는 군요. 게다가 프랑스 같은 경우 그랑제꼴을 만들어서 아예 대학내의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역시 그래도 유럽인 게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으니깐, 어떤 일을 해도 왠만큼은 먹고 살 수 있고, 적어도 인간다운 생활은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빚을 지지 않는 이상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하니깐 그 정도 차이랄까요? 정말 엄청난 차이이지요;;
유럽의 제도를 벤치마킹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유럽의 복지제도는 자국 내에서도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니깐요. 제가 원하는 것은 생각있는 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길이 지금은 너무 요원해 보일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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