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하룻밤의 지식여행 1
존 마허 지음, 한학성 옮김, 주디 그로브스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촘스키의 책을 몇권 읽었더니...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촘스키 특유의 어법에 많이 익숙해진데다가 내용도 대동소이해서 좀 시들해지던 차였다. 바로 얼마전에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읽으면서 형편없는 번역 때문에 신경질이 많이 나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돌이켜보니, 정작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촘스키의 '본업'을 모르고서 촘스키 책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촘스키라는 사람의 논리구조에 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생판 문외한인 내가 촘스키의 언어학 저술을 읽기엔 버겁고, 언어학 개론서부터 시작하기도 답답하고 해서 이 책을 골랐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하룻밤을 투자해서 촘스키라는 인물과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패권인가 생존인가'의 영향이 컸다. 그 책에 대한 모 신문사 서평을 읽어봤는데, 칭찬 일변도인 것도 문제가 있거니와(적어도 그 개판 번역을 생각하면 -_-;; 그리고 내용도 촘스키의 전작들에 비하면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봄), '언어학자 촘스키가 사회운동가 촘스키로 다시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촘스키가 언어학자를 넘어 반미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아마도 그 기자는 '언어학자 촘스키' 말고 '행동하는 지식인 촘스키'의 책을 처음 읽었던가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 책 참... 꽝이었다. 하룻밤의 지식여행으로 촘스키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나? 아니다. 이런 류의 시리즈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다. 따라서 기획 자체가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니다.
책은 '언어학자 촘스키'와 '비판적 지식인 촘스키'를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 3분의2는 촘스키 언어학을 설명하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언어학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면, 이 책을 어케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예를 들면 '프라하 학파'에 대한 각주를 보자.

*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프라하 학파는 음운을 변별적 자질의 집합 내에서 분석하는 음운이론을 만들어냈다

누구를 위한 각주인가. 참 내, 황당해서. 책이 몽땅 저런 식이다. 작가의 짓인지 역자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만행이다... 촘스키 언어학의 의미를 '간단히'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책보다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나 '게놈'에 나온 촘스키와 관련된 몇줄의 설명이 훨씬 나을 거라고 본다.

게다가 말이다...

책에서 딱 한가지 맘에 드는 것이 있었다.

"촘스키는 사회 문제들의 어떠한 개인화도 거부한다. 이 때문에 그는 그의 언어적 견해와 사회적 견해 간의 필연적 연계를 부인한다. 이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 둘이 서로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촘스키의 언어학 작업을 굳이 사회운동과 연관시키지 말란 얘기다. 바로 나같은 독자를 겨냥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동티모르에서의 잔학 행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비난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언어학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말하느냐라든지, 그들의 배경이나 그것을 말하기 위한 자격 같은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말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촘스키 스스로 저렇게 말하고 있다. 촘스키의 학문적 업적을 몰라도, 미국 패권에 대한 촘스키의 비판이 맞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면 됐다는 것이다!

헌데 촘스키가 직접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뭐라고 하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와 인간의 자유 간에 중요한 관계를 볼 수 있다...(중략) 언어의 동일성은 변하지 않는 생물학적 원리들에 기초한 인간의 유전적 자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자유롭게 서서 환경의 강력한 압력을 버티어 낼 수 있다. 또한 그래서 가장 깊은 층위에서의 인간성은 사회적 폭압의 강풍에 저항하는 것이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심둥? 촘스키가 주장한 것이, "환경에 억압에 굴하지 않는 유전적 언어본능"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 작자에게 유전자결정론/환경결정론에 대한 최근의 유전학 성과들을 다룬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언어체계를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언어장애 집단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분명 촘스키는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 '환경(외부 자극)과 상관없이 언어는 타고난다'는 얘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저 작자의 주장처럼 비약된다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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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5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시리즈. 서점에서 실물 보면, 절대 안 사고 싶죠.

딸기 2005-01-1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역시 서점에서 실물로 구경을 해줄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마냐 2005-01-1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balmas 2005-01-1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중에는 괜찮은 책들도 있는데, [촘스키]는 별론가 보죠? 그런 걸 보면 이런 대중적인 개론서들에서도 저자의 역량에 따라 질적인 차이가 많이 나는가 봐요.

딸기 2005-01-1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거의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

nemuko 2005-01-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저 시리즈 중에서 '진화심리학'을 샀었거든요. 제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하룻밤에 끝나지 않던데요. 저 역시 실물을 봤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했답니다.

딸기 2005-01-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저만 바보인 건 아니라고요 ㅠ.ㅠ

비로그인 2005-01-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시리즈가 수박 겉핥기라는 건 동의하지만, 사상가들의 저서를 읽기 전에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좋은 거 가타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보다는 나은 거 같아서...

딸기 2005-01-24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수도 있겠네요. 저는 수박겉핥기는 좋아하는데, 이 책은 번역자가 좀 신경을 써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사파사님, 반갑습니다. :)

바람구두 2005-03-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연구 분야는 워낙 조악하기로 소문난 분야라서 그런지... 난삽한 것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더군요. 흐흐.

ange 2005-06-0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저는 비록 돈은 안 쓰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긴 했지만 예로 드신 저 각주....음운까지는 알겠으나 그 다음 말부터는 강력한 어퍼컷으로 저를 100m는 떨어져 나가게 했죠..원서도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정말 궁금해서 원서를 찾아보기도 했다는...;; 역자의 문제인지 정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해서 도대체 어떤 의도로 만든 책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죠...
 
어깨너머의 연인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신영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출판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일본 소설만 잘 팔린다는 통계조사가 나온 모양이다. 하긴, 한국 소설 읽은지 오래된 나도 최근 몇년간 일본 소설은 읽었으니까.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요시모토 바나나, 아사다 지로 같은 소설가의 책들. 
다만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저 소설가들을 줄줄이 묶었지만, 실상 저들의 소설은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소설들이 주는 재미도 작가에 따라 다르고, 주제나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나름의 재미가 있고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러니 일본 소설이 이러저러해서 재미있다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

소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드라마인데, 책방에서 드라마 얘길 하려니 좀 우습지만-- '맘에 드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MBC에서 방영했던 '아줌마'와 SBS에서 몇년전 내보냈던 '퀸'이다. 여성성이라는 것, 혹은 젠더라는 문제를 경쾌하면서도 새롭게 다룬 드라마들이었다. '아줌마'의 원미경이 못나 터진 남편과 헤어져서 장사를 시작하고, 곁에 있어줄만한 남자를 만났는데도 결혼보다 장사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더불어 남편을 빼앗아가려했던 연적 심혜진과도 묘한 우정을 나눈다는 결말. 
'퀸'도 마찬가지였다. 노처녀 이미숙이 결혼이 아닌 사업을 선택하고, 당차고 자의식 강한 김원희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애교 만땅이던 윤해영이 봉사활동 나서고,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자라난 이나영(그땐 연기 진짜 못했는데) 또한 자기의 길을 찾는다는 내용.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연애 이야기로 끝나되, 그 끝은 연애/결혼이 아닌 새로운 인생.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동시에, 사람을 성장하게 해주는 학교이기도 하다. 사랑을 차버리지 않으면서 쿨하고 경쾌하게 성장과 꿈, 새로운 모색까지 이야기하는 드라마들. 영화 '싱글즈'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줌마'보다 두어해 먼저 방영됐던 '퀸'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드라마가 있다니! 나중에 보니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원작 소설인 '여자들의 지하드'는 못 읽어봤다. '싱글즈'도 일본 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깨 너머의 연인'은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다. 가볍다면 가벼운 연애소설. 두 여자, 그리고 몇명의 남자들, 그들이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 
사랑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이다.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니다. 소설의 결말 부분은 '싱글즈'하고 거의 똑같다. 사랑의 결말에는 단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의 형태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사회의 자유도/성숙도를 판가름케 해주는 지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성애를 인정하느냐, 동거 커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느냐, 결국 '사랑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아직은 자유도가 굉장히 낮은 사회다. 
  
그래서 일본 소설을 읽는다. 가볍다고? 흔히들 일본 소설이 가볍다고 말한다. 아마도 일본 소설 전체를 평가하는 말은 아닐 것이고, 맨 위에서 언급했던 최근 국내 유행중인 '인기 작가들'(마루야마 겐지는 좀 다르지만)에 대한 평가 쯤 될 것이다. 
저들의 소설이 '가볍다'는 평가에는 쉽게 동의해줄 수 없지만 쿨하고 경쾌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자유도가 낮은 사회에서, 사랑마저 제도적 억압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 억압을 조금이라도 없애주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광고의 카피였던 것 같은데.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주 작은 차이, 예를 들면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와 역경을 헤치고 '결혼한다/안 한다' 같은 차이가 그저 평범한 연애소설과, 명품 소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질척질척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의 나라(그 나라도 그닥 경쾌하진 않지만) 소설가들의 쿨한 소설을 읽으며 잠시 대리만족을 맛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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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글즈 원작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 먼저 봤었는데, 제가 비슷한 나이여서, 막 공감하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요즘은 (가벼운?)일본소설들( 내용은 없고, 감정만 있는;;) 이 유난히 안 읽혀요. 읽다가 접어둔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네요. (미루야마 겐지와 아사다 지로는 빼고요)

딸기 2005-01-1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야마 겐지는 너무 무거워서 잘 안 읽히죠 ^^

딸기 2005-01-1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루야마 겐지 작품 별로 안 읽었어요.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였나, 제목만큼 멋진 소설이었죠. 그 다음에 단편집 하나 읽고, '천년동안에'로 넘어갔어요. '천년동안에' 읽고 나니까 저 아저씨가 멋져 보이더군요. 그 책은 참 좋았어요.
그래도 아무튼 쉽게 손에 잡히는 작가는 아니죠.

nemuko 2005-01-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저도 일본작가들인 쓴 소설은 거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갖고 읽었습니다. 딸기님 표현대로 질척하지 않은 그들의 표현방법이 맘에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대체로 나의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는 내용이 좋기도 했구요. 지금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굳이 찾아 읽게 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좀더 관심이 가긴해요.

nemuko 2005-01-1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여자들의 지하드' 읽어봤는데, 드라마보단 그래도 훨씬 설득력이 있던데요. 전 그 소설을 먼저 읽어선지 '퀸' 짜증내면서 봤어요^^

딸기 2005-01-1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전 퀸 보면서 환장했었는데... (원래 환장이 취미인 인간이긴 합니다만)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로버트 카플란이라는 사람의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중동-이슬람에 대한 책을 뒤져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국내에 번역출간된 관련 책들 중에 유명도나 책의 완성도 면에서 손꼽을만한 사람은 버나드 루이스와 토머스 프리드먼이다. 루이스는 세계적인 중동사학자이지만 서구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루이스 책을 몇권 읽어봤는데, 사실 국내 번역본들 중에선 '서구편향'이라고 꼬집어 비판할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프리드먼은 루이스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프리드먼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국제문제 전문기자이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언론인'이다. 80년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저널리즘의 공식 명칭은 '레바논 내전') 무렵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근무했었고, 현재는 주로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유태계 미국인인 프리드먼은 미국에선 주류언론의 대명사이면서 민주당 색채가 진한 것으로 유명한, 동시에 유태계 소유로도 잘 알려져 있는 뉴욕타임스의 얼굴마담격 컬럼니스트다. 우리 식으로 하면 '대기자' 쯤 되겠다.
프리드먼의 책은 국내에 3권이 나와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예루살렘에서 베이루트까지'다. 레바논 내전 이후, 주로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중동 사정을 다루고 있다. 시리아 등 중동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이 당시만 해도 프리드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정착과정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국내에선 프리드먼의 책들 중에 가장 먼저 출간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중동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제문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세계화'다. '세계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떨어진다, 선진국 후진국 다 돌아다녀보니까 세계화 안 하면 안 되겠더라, 후진국들이여, 어서 세계화의 행렬에 끝자리라도 차지하려 애써라' 냉소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물론 프리드먼은 그렇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다. 책에는 미국인이기에 가능한, 세계화에 대한 확신이 배어있다. 열정적인 기자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유력자'로 출세한 프리드먼의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90년대 후반 프리드먼의 뉴욕타임스 컬럼을 몇번 읽어봤다. 당시만 해도 프리드먼은 어느 정도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했었다. 일종의 '뉴욕타임스 스타일'인데, 중동 분쟁을 다루되 이스라엘의 잘못된 점들도 간간이 지적하면서 빌 클린턴 정부에 적극적 개입을 주문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출간된 '경도와 태도'에 이르면 프리드먼의 논조가 급반전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9.11 이었다. 당시 프리드먼의 컬럼들은, 과연 이것이 프리드먼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쉽게 말하면 보수우익화됐다. 9.11 이라는 사건은 일류 저널리스트로 손꼽혔던 프리드먼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지, 말투가 냉소적 공격적으로 변한 것 뿐만 아니라 내용도 '이슬람 테러세력'에 대한 비난 일변도로 바뀌었다. 정부에 대한 '조언'도 테러와의 전쟁 류로 전환됐다.

우습게도 이렇게 보수화된 프리드먼조차도, 중동 정책에서 적어도 말빨 깨나 날릴 것으로 예상되는 그조차도, 조지 W 부시 정권 하에서는 진정한 '이데올로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부시 정권의 중동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간은 누구인가? 대체 어느 개쉐이가 멍청이 부시와 셈 빠른 그 떨거지들에게 신앙에 가까운 십자군 의식을 심어줬단 말인가? 부시를 전쟁광으로 만든 것은, 미국의 군수/에너지자본만은 아니다. 분명 부시 쉐이는 확신범이다. 부시 행태의 심리적 측면에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로버트 카플란이라는 작자다. (부시의 정신적 스승을 한 명만 꼽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카플란의 책과 소개에 따르면 그렇다)

카플란은 프리드먼처럼 유수 언론사의 기자는 아니다. 그만큼 자유롭다. 무엇에서? 저널리즘의 형식논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형식적인 윤리에조차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 쯤에서 리뷰의 본론, '타타르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로 가는 여정을 통해 카플란은 이슬람권 주변부 국가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프리드먼의 책과 카플란의 책에 공통된 장점이 있다면 '발로 뛴 기록'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현지에서 상하좌우를 세밀히 관찰하고, 저널리스틱한 문체로 그것을 포장한다. 그런 관찰기가 재미없을 리 없다. 대단히 재미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부분은, 국내에 관련 서적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새롭고 재미있었다.
카플란의 글은 논지도 명확하다. "일찌감치 사회주의 글러먹었다는 사실 알아차리고 산업화에 매진한 헝가리는 지금 잘나가는 반면 루마니아는 지금도 지지리 못난 열등생이다" "기독교 아르메니아가 열심히 자본주의 적응 훈련을 하면서 나라를 가꾸고 다듬은 반면 그 동네 각종 '~스탄'들, 이슬람 나라들은 개판이다" 
카플란의 시각은 분명하다. '공산주의-전체주의-독재-이슬람'이 팍스아메리카나 시대 대표적인 '못난이 그룹'이라면 '자본주의-민주주의-기독교'는 우등생 소질이 많다는 것이다.

프리드먼과 카플란 중에, 부시가 누구를 좋아했을지 또한 분명하다. 딩동댕~ 카플란이다. 
부시는 카플란의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했고, 부시네 이너써클에선 이 책이 필독서였단다. 카플란이 부시를 가르쳤는지, 아니면 부시의 적성이 카플란과 들어맞았는지는 따질 필요 없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것과 똑같을 뿐이다. 이 책에 C일보 국제부 기자가 아름다운 추천사를 썼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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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거군요. '흥' ( 하고 싶어졌어요!)

릴케 현상 2005-03-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정구 교수는 이 책을 '부시 같은 돌대가리가 읽기 쉽게 쓴 책'이라고 하더군요 딸기님 글 오랫만에 재밌었어요^^
 

겨울잠...

어쩐지 뱀들이 안 보인다, 싶었거든요.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요. 랄랄라.

어쩌나, 자는 걸 깨워서 쇼를 시킬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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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1-1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마태우스님이 목에 회충인가 두르고 계시던데 한마리 구해드릴까요?

뱀쇼가 안되면 기생충 쇼라도..

아니면 마데사의 안어벙처럼 청소기로 뱀쇼를 해보심이..ㅋㅋ

숨은아이 2005-01-1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balmas 2005-01-1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하하

<뱀딸기>가 뭡니까? 하하하 뱀딸기, 뱀딸기, 뱀딸기 ...

이미지도 너무 웃기는 데요.^^

그리고 뱀 많은 곳 나 아는데, ㅋㅋㅋ

(너무 비웃었나???)

딸기 2005-01-1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울어요...

urblue 2005-01-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쇼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애들 자도 깨워야죠. 아님 동물원에서 안 자는 애들로 빌리세요. ㅎㅎㅎ (너무 재밌어요~)

진진 2005-01-1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와 아이디가 최곱니다. ㅋㅋ

딸기 2005-01-14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으...

딸기 2005-01-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해짐님, 반갑습니다. :)

깍두기 2005-01-14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딸기님, 님이 꽁무니를 빼면 뺄 수록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그려^^

딸기 2005-01-14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여기는 땅굴이 아니라 서재예요, 서재...

압박이 심해지면 잠수함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흑흑.

물만두 2005-01-1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리띠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주세요. 상시 대기주인 허리띠를 이용하시길^^

마태우스 2005-01-1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렁이로 대체해도 됩니다^^

미설 2005-01-1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 바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시더니.. 님의 선택 탁월하십니다^^ 뱀딸기.. 서재 이미지도 직입니다..ㅋㅋㅋ

하이드 2005-01-1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3953

 

이..이것도 압박?

흐흐흐 이제 안할테니깐, 잠수하지 마셔요~


로드무비 2005-01-1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딸기...이름 너무 멋져요.
스트롱베리도 괜찮았는데......^^

마냐 2005-01-1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어디서 저런 이미지를 가져온거요? 딸기마을 팬이 제작해준게 아닐까? ㅋㅋ

딸기 2005-01-1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맘에 들죠? 히히히
 

 

 

 

 

 (참고도서)

Jeffrey Gould, <평등을 향하여 To Lead a Equals: Rural Protest and Political Conciousness in Chinandega, Nicaragua>(1990)

Jose Serrgio Leite Lopes, <굴뚝의 도시에서 계급투쟁 짜기 A Tecelagem dos Conflitos de Classe na Cidade da Chamines>(1988)

Marilena chauri, <문화와 민주주의: 권능을 지닌 담론과 그 밖의 이야기들 Cultura e Democracia. O dicurso competence e outras falas>

June Nash, <우리는 광산을 먹고 광산은 우리를 먹는다 We Eat the Mines and the Mines Eat Us>(1979)

Patrick Joyce, <노동의 역사적 의미 The Historical Meanings of Work>(1987)

Angela Maria Castro Gomez, <노동자주의의 발명 A Invencao do Trabalhismo>(1988)

Jone French, <노동자의 ABC: 근대 상파울루에서의 계급투쟁과 연합 The Worker's ABC: Class Conflicts and Alliances in Modern Sao Paulo>(1992)

Alice Kessler-Harris, <일하러 나가기 Out to Work: A History of Wage-earning Women in the Unites States>(1982)

루스 밀크먼, <젠더와 노동>(1985)

Ava Baron, <젠더화된 노동 Gender and Labor History: Learning from the Past, Looking to the Future>(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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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세기>를 읽다가, 재밌을 성 싶은 참고도서들을 저렇게 많이 발견했는데... 국내 번역된 책은 밀크먼의 <젠더와 노동> 하나밖에 없다. 그나마도 번역 안좋기로 소문난 이화여대출판부 간행... 흑흑... 지난번에 <총.균.쇠> 보고나서도 스포르차와 맥닐 등등의 책을 읽고싶다고 생각했었지만 국내에 없고 말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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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2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화여대출판부가 번역 안 좋기로 유명하나요? 이것도 정보로 입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