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SE (2Disc)
정재은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엔터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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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해 사전지식이라고는, 스무살 여자애들(난 얘들보다 나이가 10살 씩이나 많으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문에 실리는 영화평이 꽤나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봐서 (영화를 안 보는 나이지만, 정말 칭찬인지 아니면 '홍보용 문구'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제법 기대를 해도 될만한 영화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만에 보는 수작이었다 (내가 보는 눈은 별로 없지만 워낙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칭찬하는 걸 보면 대단히 감동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영화 줄거리 소개할 생각은 없고, 실상 또 '줄거리'라 할만한 것이 없기도 하다.
스무살 여자애들 다섯명이 나오는데, 대한민국에서 스무살이란 어떤 나이냐. 스무살의 티티엘에 나오는 그 모델은 정말 뽀시시하게 이쁘더라만, 핸드폰 많이 쓴다고 스무살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대학 1학년'에 해당되는 나이다. 모든 것이 대학 기준으로 측정되는 사회에서, '새내기'니 '신입생'이니 '몇몇 학번'이니 하는 말을 봄철부터 듣고 사는 나이. 그럼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 후'. 그것이 이 영화의 감독이 설정해놓은 스무살이라는 나이인데, 방황도 많고 욕망도 많고 피부는 뽀얗고 꺄악꺄악 소리도 잘 지르고 하루 온종일 핸드폰이 울리는 그런 나이다.

스무살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은데-우리 나이로 스무살 때에는 대학 1학년이었고 만 스무살일 때에는 대학 2학년이었으니까 대학생활이 한창 재미있고 또 어마어마하게 '바쁠' 때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체, 대학에 가지 않은 그 많은 아이들,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국민학교 때 늘 같이다녔던 삼총사 중의 2명(나를 제외한)은 대학에 가지 않고 여상에 갔는데, 얼마전에 만나보니 은행 취직한지 10년, 11년씩 된 고참 여행원들이 되어 있었다. 이 애들 말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빠 대학에 가지 못했던 애들은 대체 어떻게 됐느냐는 얘기다. 얼마전, 여고시절 미모를 자랑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갓 스무살에 결혼해서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한 동창생의 이메일을 받았던 것 외에는, '그 때 그 아이들'에 대한 소식도 기억도 없다.

세상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모처럼만에 찾아간 고등학교, 선생님들과의 '추억담'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 '여고괴담'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잊혀져버리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 나오는 먼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도 그렇고, 또 내 주변의 '물건 같은 사람들'도 그렇다.
뼛속 깊이 박힌 차별의 선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쳐 있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기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꿈이나 희망이나 감정 따위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좋아하고 또 무서워하는 작가인 박완서 할머니가 '흑과부'라는 단편에서 소시민근성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을 보면서(한국일보의 장명수씨 별명이 '장칼'이라는데, 박완서선생의 칼에 대면 어린애들 장난감이다. 이분이야말로 '박칼'이다) 가슴이 섬뜩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고양이를 부탁해', 신선한 감각과 깔끔한 영상,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를 자랑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또렷한 신세대 감각에 감탄했다기보다는  가볍잖은 여운을 남기는 약간의 '칼질'에 놀라고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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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제가 알고 있던 선입견을 깨버리는 평이었습니다.
주말에 비디오점을 찾아가봐야겠군요...

딸기 2005-03-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건 사실 영화평이 아니라 저의 일기 같은 거였어요. :)

하루(春) 2005-03-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처음에 나왔을 때 꽤나 신선했습니다. 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죠. 화면분할도 그렇고, 여러 시도들이 성공적이었죠. 하지만, 흥행에 참패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던 영화입니다. 정재은 감독은 단편영화 만들 때부터 유명했어요.

로드무비 2005-03-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란더스의 개'도 보셨나요?^^

딸기 2005-03-19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 만든 사람이 정재은이라는 감독인가보지요. '플란더스의 개'도 그 사람이 만든 건가요?

하루(春) 2005-03-2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란다스의 개'(주연배우 - 배두나, 이성재)는 '살인의 추억' 만든 봉준호 감독이 만든 거죠.

딸기 2005-03-2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렇군요. 봉준호 감독.
 
무간도 1 [dts]
유위강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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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는 동안 내내 숨 죽이고, 가슴 졸이고 있었다. 팜플렛에 신감각 느와르(느와르 누보?)라고 돼 있었는데, 사실 나는 '옛날 느와르'도 별로 보지 않았다. 얼마전 TV에서 <영웅본색> 해주는 거 얼핏 보긴 했지만, 역시나 그것이 유행했을 당시의 감성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고교 시절에 그토록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영웅본색, 천녀유혼 둘 다 보지 않은 희한한 '고집'이랄까.

그런데 한 사람의 스타가 있었다면, 유덕화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지존무상>을 봤었는데 얼마나 재미있고 서글펐는지. 알란 탐(지금은 뭐하는지 모르겠군)과 유덕화, 진옥련, 관지림. 진옥련은 뒤에 보지 못했고, 관지림은 동방불패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동방불패 한 서너번 봤을걸). 압권은 유덕화였다. 독이 든 술잔을 골라 입에 털어놓고(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살인의 방법) 적의 집을 걸어나오던 장면. 진옥련이 알란 탐의 방 앞에 반지를 놓고 엘리베이터 문 뒤로 사라지던 것도 기억난다.

사실 이 영화를 보겠다는 큰 결심을 한 것은 유덕화가 나온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내 기억속의 유덕화는 <지존무상>에서 멈춰 있다. 이제 40대 중후반이 되어 있을 나의 스타가 어떻게 변해 있는지 보고 싶어서 극장을 찾은 것이다. 유덕화는 여전히 멋있었다. 너무 멋있었다. 대체 그 나이에 그 몸매가 나온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구...

양조위와 유덕화가 처한 긴박하고도 엿같은 상황, 두 인물의 고통과 희망, 아주아주 약간의 유머와 극도로 절제된 감정, '일상'이라고는 나타나지 않는 cool하고 세련된 화면 속에 삼합회(최첨단 깡패새끼들)를 우겨넣은 감각. 나는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 따위는 전혀 모르고, 영화평같은 것 할줄도 모른다. 다만 감동이 넘쳐나서 주체할줄 모르고 있다는 말만. 물론 이 감동은 어디까지나, 유덕화를 좋아했던 80년대의 소녀가 아줌마가 되어 느끼는 감동임을 밝혀둔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나의 '명작' 리스트에 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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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03-1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간도를 못 보긴 했으나, 유덕화와 양조위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한 표!
저는 헐리우드 배우들보다 오히려 이 사람들보면 가슴이 더 벌렁벌렁합지요~ㅋㅋㅋ

marine 2005-03-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딸기님!! 유덕화가 세 개의 술잔 중 독이 든 걸 마시고도 아닌 척 당당하게 악당의 집을 걸어 나가더니, 밖에서 쓰러진 그 장면, 미치죠, 미쳐 ^^ 자기 여자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녀는 형님의 여자였는데 목숨을 바친 셈이죠 (물론 유덕화가 마음 속으로 짝사랑) 저도 무간도 보면서 황당했어요 대체, 저 사람은 왜 나이를 안 먹는 거야?? 그거 아세요? 황국장으로 나온 황추생이 유덕화 보다 한 살 아래랍니다 유덕화 올해 43세, 황추생 42세 ^^

딸기 2005-03-1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나나님! 그 장면을 기억하고 계시군요! ㅠ.ㅠ
세상에, 황국장이란 사람이 유덕화보다 나이가 아래라고요.
유덕화 그 몸매는 정말 시간을 거슬러 가더군요.
 
간장선생 - [초특가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에모토 아키라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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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영화 본지 꽤 오래됐습니다. 비디오로 봤었습니다. 중국을 좋아하던 남편이 빌려왔는데, 제목이 네 글자라서 중국영화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디오 예고편 지나가고 나니까 화면에 '東映'이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어, 일본 영화잖어...이 영화 보기 전 비디오로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고나서 엄청나게 실망했으며 또한 '올빼미의 성'이라는 재미없고 엽기적인 영화를 본 뒤 일본 영화에 대한 꿈(?)을 잠시 접은 차였는데...

이마무라 쇼헤이. 히히히...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긴 한데...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꽤나(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유명한 감독이군요.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모두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 작품인 걸 보면요. 황금종려상...이것도 유명한 상이죠, 아마.

전쟁, 공습, 폭격, 등화관제. 좋지 않은 단어들인데 여기에다 '천황'과 '원자폭탄'이라는 말까지 붙이면...그런데 무슨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영화이건 소설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재치'와 '페이소스'입니다.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이유도, 그 만화같은 작법에도 불구하고 재치와 페이소스가 넘쳐났기 때문이었죠.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도 마찬가지고요.

1. 재치

의사와 창녀. 신파조의 궁합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으로 맺어진 부녀간 같은(가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관계. 주인공 '간장선생'과 '동네 창녀' 소노코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어느 작은 바닷가마을에서 '창녀'의 존재는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아들놈이 창녀랑 결혼을 한다니, 스님이 좀 말려주세요"(어떤 엄마)
"창녀가 어때서, 나도 창녀랑 살고 있잖아"(스님)
"절대 공짜로는 해주면 안돼, 네가 좋아하는 딱 한 사람한테만 공짜로 해주는 거야'(창녀의 엄마)
"엄마가 절대 공짜로는 해주지 말랬어요"(창녀)

아, '창녀'라는 것이 저런 어감으로 쓰일 수도 있구나, 어쩌면 저것이 진실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일텐데, 저런 얼굴을 포착할 수도 있구나...여러번 '흔쾌히' 웃었습니다.
미인대회에서 뽑혀 전격 발탁됐다는 '창녀'역의 아소 구미코라는 배우의 예쁜 얼굴과 천연덕스런 연기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2. 페이소스

보통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인간들(모르핀 중독 의사, 알콜중독 스님, 공금횡령 공무원, 동네창녀 간호사)이 만들어내는 코믹 휴먼드라마라고나 할까요. 그 군상들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소설책 몇권 분량 씩의 사연들이 쏟아져나올법한 인생들인데, 무겁고 슬픈 인생들을 파스텔화같은 터치로 감독은 스윽스윽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 영화에서 손꼽을 주옥같은 장면..워낙 많지만...중의 하나는, 주인공 간장 선생이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는 장면입니다. '아카기 이치로의 전사를 애도합니다' 짧은 문장이 쓰여진 하얀 종이를 반으로 찢고, 다시 반으로 찢고, 또 반으로 찢고...작은 종이조각들이 간장선생의 몸 위에 눈처럼 쌓입니다. 증권가 연말 풍경도 아니고 무슨 카퍼레이드도 아니고, 슬픔이 반짝반짝...

맨 마지막 장면도 압권입니다. 미군 조종사들의 대화로 시작되는 '구름 속의 첫 장면'은 다소 만화같으면서도 생경하지만은 않은 희한한 느낌을 주는데요, 끝장면의 '바닷가 풍경'은 정말 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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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3-1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나기는 정말 좋았던 영화였죠. 간장선생도 언젠가 본 기억이 나는데, 가끔은 전혀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기도 하죠. --;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 겠네요.

마태우스 2005-03-1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타입의 영화라고 생각해 보다가, 잤습니다.... 역시 자지 말고 끝까지 봤어야 했군요!!

딸기 2005-03-1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

바람구두 2005-03-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 얘기했던가요? 이 영화가 멋있었던 건 무엇보다 에모토 아키라의 힘이었어요. 예전에 이 양반이 나온 영화로 "으랏차차 스모부"란 영화가 있었는데, 스모부 지도 교수던가 그랬을 겁니다. 장 콕토가 스모에 대해 쓴 시를 이 배우가 내래이션하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그 부분만 아마 스무 차례 정도 리와인드해서 들었어요. 왜 대개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 보면 목소리 엄청 깔고, 왁왁대면서 힘 주는 스타일 있잖아요. 그것과 정반대로 아주 낮게 깔리면서 목소리에 음영이 드리워진 뭐 그런 느낌인데... 그후로 이 배우의 열렬한 팬이 되었거든요. 흐흐. 내가 좋아하는 또 한 사람의 배우가 다니엘 오떼이유인데, "제8요일"하고 "걸온더브릿지" 그리고 "마농의 샘"에 나왔던.... 두 사람 다 나의 아니마를 건드린다니깐요.

딸기 2005-03-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배우 이름이 에모토 아키라였군요. 다니엘 오떼이유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어요. 마농의 샘을 봤었거든요.
 

미치겠네...

이러다 또 질러버리면 절대로.절대로. 안되는데 말이다.

바사라 완전판(애장판을 요샌 이렇게 부르나?)이 나와있다는 첩보;;를 입수.

  

 

 

 

만화방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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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3-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어제 갔다 왔어요.

날개 2005-03-1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삭제된 것들 모두 다 살렸다고 완전판이랍니다..^^* 다시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이라지요..

비로그인 2005-03-18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사라, 재밌지요, 꼭 지르시기 바래요, ㅋㅋㅋ

서연사랑 2005-03-1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뭔지도 모르고 일단 보관함에 넣었어요. 여러 분들이 A4보다 재미있다고들 하시니 어찌 모른척하리.......

딸기 2005-03-1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바사라를 세 번이나 봤거든요. 그런데도 애장판이 갖고 싶지 뭡니까.
그런데 A4는 뭐예요? F4는 아는데...

날개 2005-03-1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4가 아르미안의 네딸들 아닐까요? 그것밖에 떠오르질 않는군요..^^;

딸기 2005-03-1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럴 수 있겠군요 +.+

서연사랑 2005-03-1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고!
아르미안~ 너무 기니까 이렇게들 줄여 부르기도 하죠. 저는 다 아실 줄 알고...헤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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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이 아이의 가슴팍에 불을 붙였죠. 그 괴물 같은 놈들이 아이를 죽였어요.”
“그들의 손에는 쇠몽둥이와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잔디 깎는 기계가 지나간 것처럼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책은 옛 유고연방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에서 시작된다. 수비에 능한 슬로베니아계, 공격성이 강한 크로아티아계, 날카롭지만 전술적인 예리함이 모자라는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지금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수도로 되어있는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은 문자 그대로의 전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문명사회의 치욕’이라 불렀다던 훌리건들의 이야기는, 90년대 베오그라드에선 ‘훌리건의 탈을 쓴 민족분쟁’의 리얼한 전투담으로 돌변한다.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둔 두 팀, 레드스타와 파르티잔의 경쟁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과 크로아티아계의 충돌을 대변하는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다가 결국 진짜 유혈분쟁으로 격화됐다.
축구와 정치, 축구와 폭력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실상 유럽과 중남미 명문 축구클럽들의 역사는 축구라는 이름의 전쟁, 축구를 통해 표현된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시사잡지 뉴리퍼블릭의 정치담당 기자인 저자는 세계를 다니며 ‘훌리거니즘’으로 표현되는 축구팬들의 폭력적 행동의 배경을 관찰, 이 책에 담았다. 축구팬이라면 대부분 알 법한 유명 클럽들의 뒷얘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종교갈등, 아약스의 친유대주의, 훌리건 난동을 뿌리 뽑으려던 대처의 축구장 시설개선 정책이 역으로 축구클럽들에 대자본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던 일, 첼시 훌리건과 신나치즘, 폭력을 예찬하는 훌리건문학에 ‘훌리건활동 컨설턴트’.

이미 유럽에선 인류학의 연구대상으로까지 떠오른 축구폭력의 실태는 ‘붉은 악마’처럼 얌전한 팬들만 알고 있는 국내 독자들에겐 자못 소름끼칠 정도다. 저자는 “축구의 정치학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세계화”라고 말한다. 축구의 어두운 단면은 세계화의 그늘이고, 대륙을 넘나들며 관중을 열광케 만드는 축구선수들은 우리시대의 유목민들이라고. 세계화는 국경 없는 거대 자본의 제국을 만들어냈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작용하는 ‘훌리건 정치’는 세계화의 뒤안길을 보여줄 뿐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극단적 민족주의가 사라지지 않듯 세계화된 축구 또한 종파주의와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상업화’는 지역주의와 결합된 훌리건들에게 폭력 충동을 발산할 기회를 만들어 줄 뿐 이라는 것이다.

세계화된 축구의 이면을 파헤치는 책인 만큼, 같은 주제를 다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와 비교하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갈레아노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자 소설가인 반면 포어는 온건파 성향의 저널리스트다. ‘비꼬기의 대가’인 갈레아노의 책에는 역설과 해학, 그리고 축구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쳐나는데 반해 포어의 책은 훨씬 분석적이고 저널리스틱하다.
감동으로 따지자면 역시 갈레아노 쪽이 한 수 위겠지만 포어의 책도 유럽 클럽축구 팬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축구에 관심이 많지 않은 독자에게라면 아마도 이 책은 국제정치에 대한 책으로 읽힐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책 읽는 동안 내내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번역의 문제다. 이탈리아 도시 토리노와 피렌체는 영어식으로 ‘투린’과 ‘플로렌스’로 돼 있고, 베오그라드의 축구팀 오빌리치는 ‘오빌리크’로 표기됐다. 유대교 명절인 욤키푸르는 ‘욤키퍼’, 아프리카 국가인 코트디부아르는 ‘코프티부아르’로 해놨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영국의 명문클럽 아스날은 ‘아세날’, 이탈리아팀 라치오는 ‘라지오’로 돼 있다. 스페인 유명 클럽 FC바르셀로나의 애칭은 ‘바르카’가 아니라 ‘바르샤’이고, 이 클럽의 감독을 했던 ‘루이스 반 갈’은 ‘루이스 반 할’로 읽어야 한다. 영국 클럽 토튼햄 핫스퍼도 ‘토튼엄 호츠퍼’로 돼있다. 명색이 축구에 대한 책이라면 이 정도의 이름들은 제대로 표기됐어야 옳다.
이탈리아의 반부패 개혁운동을 가리키는 ‘마니풀리테’는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말인데, 원저자가 영어로 ‘클린 핸즈’라 쓴 것을 그대로 한글로 적어놨다.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의 구단주 겸 피아트사(社) 소유주를 앞부분엔 ‘아넬리 ’ 뒷부분엔 ‘아그넬’이라고 썼는데 정확한 표기는 '아†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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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3-1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별 넷이라니. 일단 갈레아노 책이나 빌려주시압.(읽을 책 산더미 쌓아놓고 뭐하는 짓이냐구? 글게 말야..-,.-)아참, 타치바나 딸기님. 추천했어용.

딸기 2005-03-1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감사한데... 갈레아노 책은 찾아봐야할 듯. 집에 고이고이 모시고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혹시 없어졌는지도 모르니깐. ^^
근데 사자의 대변인 아직도 울집에 있는 거 알고 있으신지요. ㅋㅋ

바람구두 2005-03-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절판되었는데... 잃어버렸으면 통분할 일일텐데...
흐흐, 아(르)놀드(트) 하우저도 대단한 축구광이었다는 거 혹시 아세요?

딸기 2005-03-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놀드 하우저 책이라곤 한개도 안 읽어봤어요~~
그러니 축구광이란 것도 모르지요

딸기 2005-03-1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레아노 책이 저 책보다는 역시 재미있고 감동적이지요!

매운 요리 2005-03-1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치바나 딸기님!


말글빛냄 출판사입니다.


먼저 당사의 책을 읽어 주시고 번역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해 주신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역자분께서 영어 발음에 충실한 나머지 고유명사 표기에 있어


독자분들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곧 출간되는 2쇄에는 축구를 좋아하시는 독자님들께서


편히 읽으실 수 있도록, 타치바나 딸기님의 고견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끝으로 당사의 출판물에 관심을 가져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


앞으로는 출간에 앞서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딸기 2005-03-1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출판사에서 직접 코멘트를 남겨주셨네요
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번역에서 너무 트집잡은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사실 있었거든요. 2쇄에는 바로잡아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

centerpot 2005-04-10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럼 2쇄가 나오면 그때 사서 정확한 발음 교정된 책을 읽어야 할듯..^^;;;

딸기 2005-04-1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enterpot 님,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