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선생 - [초특가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에모토 아키라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실은 이 영화 본지 꽤 오래됐습니다. 비디오로 봤었습니다. 중국을 좋아하던 남편이 빌려왔는데, 제목이 네 글자라서 중국영화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디오 예고편 지나가고 나니까 화면에 '東映'이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어, 일본 영화잖어...이 영화 보기 전 비디오로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고나서 엄청나게 실망했으며 또한 '올빼미의 성'이라는 재미없고 엽기적인 영화를 본 뒤 일본 영화에 대한 꿈(?)을 잠시 접은 차였는데...

이마무라 쇼헤이. 히히히...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긴 한데...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꽤나(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유명한 감독이군요.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모두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 작품인 걸 보면요. 황금종려상...이것도 유명한 상이죠, 아마.

전쟁, 공습, 폭격, 등화관제. 좋지 않은 단어들인데 여기에다 '천황'과 '원자폭탄'이라는 말까지 붙이면...그런데 무슨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영화이건 소설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재치'와 '페이소스'입니다.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이유도, 그 만화같은 작법에도 불구하고 재치와 페이소스가 넘쳐났기 때문이었죠.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도 마찬가지고요.

1. 재치

의사와 창녀. 신파조의 궁합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으로 맺어진 부녀간 같은(가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관계. 주인공 '간장선생'과 '동네 창녀' 소노코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어느 작은 바닷가마을에서 '창녀'의 존재는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아들놈이 창녀랑 결혼을 한다니, 스님이 좀 말려주세요"(어떤 엄마)
"창녀가 어때서, 나도 창녀랑 살고 있잖아"(스님)
"절대 공짜로는 해주면 안돼, 네가 좋아하는 딱 한 사람한테만 공짜로 해주는 거야'(창녀의 엄마)
"엄마가 절대 공짜로는 해주지 말랬어요"(창녀)

아, '창녀'라는 것이 저런 어감으로 쓰일 수도 있구나, 어쩌면 저것이 진실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일텐데, 저런 얼굴을 포착할 수도 있구나...여러번 '흔쾌히' 웃었습니다.
미인대회에서 뽑혀 전격 발탁됐다는 '창녀'역의 아소 구미코라는 배우의 예쁜 얼굴과 천연덕스런 연기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2. 페이소스

보통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인간들(모르핀 중독 의사, 알콜중독 스님, 공금횡령 공무원, 동네창녀 간호사)이 만들어내는 코믹 휴먼드라마라고나 할까요. 그 군상들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소설책 몇권 분량 씩의 사연들이 쏟아져나올법한 인생들인데, 무겁고 슬픈 인생들을 파스텔화같은 터치로 감독은 스윽스윽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 영화에서 손꼽을 주옥같은 장면..워낙 많지만...중의 하나는, 주인공 간장 선생이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는 장면입니다. '아카기 이치로의 전사를 애도합니다' 짧은 문장이 쓰여진 하얀 종이를 반으로 찢고, 다시 반으로 찢고, 또 반으로 찢고...작은 종이조각들이 간장선생의 몸 위에 눈처럼 쌓입니다. 증권가 연말 풍경도 아니고 무슨 카퍼레이드도 아니고, 슬픔이 반짝반짝...

맨 마지막 장면도 압권입니다. 미군 조종사들의 대화로 시작되는 '구름 속의 첫 장면'은 다소 만화같으면서도 생경하지만은 않은 희한한 느낌을 주는데요, 끝장면의 '바닷가 풍경'은 정말 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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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3-1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나기는 정말 좋았던 영화였죠. 간장선생도 언젠가 본 기억이 나는데, 가끔은 전혀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기도 하죠. --;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 겠네요.

마태우스 2005-03-1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타입의 영화라고 생각해 보다가, 잤습니다.... 역시 자지 말고 끝까지 봤어야 했군요!!

딸기 2005-03-1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

바람구두 2005-03-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 얘기했던가요? 이 영화가 멋있었던 건 무엇보다 에모토 아키라의 힘이었어요. 예전에 이 양반이 나온 영화로 "으랏차차 스모부"란 영화가 있었는데, 스모부 지도 교수던가 그랬을 겁니다. 장 콕토가 스모에 대해 쓴 시를 이 배우가 내래이션하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그 부분만 아마 스무 차례 정도 리와인드해서 들었어요. 왜 대개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 보면 목소리 엄청 깔고, 왁왁대면서 힘 주는 스타일 있잖아요. 그것과 정반대로 아주 낮게 깔리면서 목소리에 음영이 드리워진 뭐 그런 느낌인데... 그후로 이 배우의 열렬한 팬이 되었거든요. 흐흐. 내가 좋아하는 또 한 사람의 배우가 다니엘 오떼이유인데, "제8요일"하고 "걸온더브릿지" 그리고 "마농의 샘"에 나왔던.... 두 사람 다 나의 아니마를 건드린다니깐요.

딸기 2005-03-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배우 이름이 에모토 아키라였군요. 다니엘 오떼이유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어요. 마농의 샘을 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