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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왕 투트(투탕카문)가 돌아왔다"



지난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문 유물전시회가 막을 열었다. 개장 전후로 뉴욕타임스, LA타임스, 시카고트리뷴, ABC방송, CNN방송 등 주요언론들은 모두 나서서 이 전시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애시당초 미국의 왕도 아닌데 '왕의 귀환'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투탕카문 전시회가 이미 70년대 말 미국에서 `투트 붐'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 1976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순회 개최된 투탕카문 전시회는 총 800만명이 몰리는 대성황을 거뒀었다. 현지언론들은 이번 전시회에는 더욱 많은 관객이 몰릴 것이라면서 "박물관도 블록버스터 시대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투탕카문과 파라오의 황금시대'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투탕카문 묘에서 나온 유물 130여점과 고대 이집트 18왕조(기원전 1555~1305년)의 유물들이 관객을 맞는다. 투탕카문의 황금가면과 관(棺)을 비롯, 상아조각과 장신구 등이 망라된 전시 규모를 볼때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LA카운티박물관(LACMA)과 전시기획사 AEI가 주관하는 이 전시회는 LA를 시작으로 27개월간 미국 4개 도시를 돌며 열리게 된다.


투탕카문의 무덤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굴했다. 이 발굴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이래 세계 고고학계를 가장 들뜨게 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이 숨지면서 `파라오의 저주'라는 미스테리가 세간을 떠돌기도 했다. 카터는 무덤의 봉인을 연 17년 뒤 66세로 숨졌으며 이집트 남부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는 카터가 거주했던 집이 아직도 남아있다.
발굴 기록은 많지만 투탕카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기원전 1336년 아케나톤(아멘호테프4세) 왕과 키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대이집트 최고 미녀로 불리는 네페르티티 왕비의 의붓아들이다. 아문 신(神)을 주신으로 하는 다신교 신앙이 지배적이던 시기 아케나톤은 특이하게도 아톤 신을 섬기는 일신교를 숭배하고 노예해방, 평등주의 정책을 펼쳐 신관-귀족층과 대립했다. 덕택에 어린 투트 왕자의 이름은 투탕카문(살아있는 아문 신의 후예)에서 투탕카톤으로, 즉위 뒤 다시 투탕카문으로 바뀌었다.
8세에 즉위해 18세에 숨진 투탕카문은 자식이 없었고 왕비 앙케세나문과 재혼한 총리대신 아이에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앙케세나문은 아이에가 투탕카문을 독살했다고 주장,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투탕카문 암살설'의 원인을 제공했다.
재임기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투탕카문이 현대에 유명해진 것은 순전히 무덤 때문이다. 고대이집트를 최강의 제국으로 만들었던 람세스 2세의 경우 무덤이 수차례 도굴꾼에 털리면서 미이라가 이 무덤 저 무덤을 떠도는 수모를 겪었지만 투탕카문은 상대적으로 무덤이 작았던 덕에 도굴을 피할 수 있었다. 덕택에 그의 무덤은 후대인들에게 고대 이집트를 보여주는 보물창고가 됐던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 미이라로 만들어진 소년 파라오의 시신은 후대인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3300년이 지난 뒤에 세계를 떠돌고 있다.

70년대 투탕카멘 미국 전시회는 박물관 문화를 변화시켰다. 박물관은 처음으로 특별전 추가입장료를 받았고 기념품가게가 박물관 운영의 핵심 분야로 떠올랐다. 이집트풍 키치미술이 미국을 휩쓸었으며 큐레이터들은 학문을 떠나 이벤트 기획자로 변신해야 했다. 78년 전시를 주최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단일 전시 입장객 125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LACMA측은 이번 전시회가 당시의 열풍을 가뿐히 누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집트 정부도 막대한 돈을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가 입장료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전시회가 `대박'을 노린 장사로 전락하면서 박물관의 공익적, 학문적 기능이 약화됐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언론에는 상업주의의 범람이야말로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은 LACMA가 전시회 입장료를 1인당 25~30달러로 책정키로 결정하자 "시민들을 위해서라면 1회 15달러 이상으로 올릴 수는 없다"면서 순회전시 참가를 포기했다.

tip.

'투탕카멘'인가 `투탕카문'인가. `투탕카문'이 맞다. 투탕카문 왕의 이름의 어원이 된 아문(Amun) 신은 과거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 `아멘'`아몬' 등으로 불렸고, 투탕카문도 `투탕카멘' 등으로 표기됐다. 그러나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와 카이로국립박물관은 현지 발음대로 `투탕카문(Tutankhamun)'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구미 학계에서도 70년대 이후로는 이 표기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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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6-2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투탕카문이 맞군요.. 저도 보러가고 싶습니다. ;;

딸기 2005-06-2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봤습니다~~ (자랑질;;)

panda78 2005-06-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엑! 염장질!

숨은아이 2005-06-2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소년중앙에서 파라오의 저주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 "투탕카문", 기억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딸기 2005-06-2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라오의 저주... 발굴에 돈 대줬던 카나본이 발굴이 끝나는 걸 보지도 못하고(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말라리아 걸려 죽으면서 시작됐을 거예요. 그리고 3년새 22명인가가 죽었다고 하는데, 정작 카터 박사가 17년이나 더 살았다는군요. ^^
 

 

유가 조절을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를 앞두고 유가가 다시 뛰어올랐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가 지난주 말보다 2.08달러(3.9%) 급등한 배럴당 55.62달러에서 거래가 마감됐다. 영국 런던 국제석유거래소 7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도 지난주 말보다 2.11 달러 오른 배럴당 54.78달러에서 장을 마쳤다.

국제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석유 증산과 유가안정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급등세를 보였다. 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예정인 OPEC 회의를 앞두고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국제유가 상승은 원유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세계의 정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도 "OPEC가 증산을 결정해도 유가가 진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OPEC은 이번 회의에서 1일 생산쿼터를 50만 배럴 늘리는 데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세계 석유소비량을 하루 8430만 배럴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달 하루 평균 석유생산량은 8460만 배럴. 난방수요가 줄어드는 시기인데도 이미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일 생산량이 100만 배럴만 오르락내리락해도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세계 산유량의 40%를 차지하는 OPEC가 이미 가격조절 능력을 잃었다는 분석도 많다. OPEC 국가들이 이미 생산능력을 풀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 조정을 통한 유가조절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석유수입국 쪽에선 에너지기업과 OPEC 국가들이 생산설비 투자를 게을리 한다고 공격하는 반면, 산유국들은 소비국들의 정유능력이 문제라며 서로 책임공방만 벌이고 있다. AFP통신은 IEA 자료를 인용해 "선진국들이 오일쇼크에 대비, 석유재고를 틀어쥐고 있는 점도 고유가를 부추기는 요인"이라며 유가 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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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유 야그만 나오면 불질러 버리고 싶은 OPEC 입니다.

딸기 2005-06-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유를 팔아 잘먹고 잘살겠다고 하는 거라면 우리가 머라 할 수는 없지요.
석유 판 돈으로 사우디같은 나라에선 왕족들만 호의호식하고, 국민은 빈곤&억압에 시달리니 그것이 문제겠지요.
프란체스카가 그러더군요.
"대략 즐쳐드셈"
 

"2006년 뮌헨은 세계의 축구 수도가 된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월드컵 경기입장권 판매, 그리고 이달초 뮌헨 슈타디온(경기장) 재개장으로 월드컵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특히 개막식이 열릴 예정인 뮌헨은 시민들이 진작부터 기대에 부풀어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4200억원짜리 경기장

지난 2일(현지시간) 월드컵 개막식이 열릴 예정인 뮌헨 슈타디온(경기장)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뮌헨을 연고지로 하는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클럽 바이에른 뮌헨과 1860뮌헨 간의 경기를 개막전으로 선보인 이 경기장은 4200억원이 건설비로 투입된 최첨단 축구장.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건설비가 20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셈이다. 금융회사 알리안츠의 후원으로 지어져 `알리안츠 아레나(알리안츠 경기장)'라고도 불린다.
경기장은 바이에른뮌헨과 1860뮌헨의 공동 소유로, 두 팀이 각기 경기를 치를 때마다 외벽 색깔이 빨강과 파랑으로 바뀐다. 컨크리트 대신 다이아몬드 모양의 광(光) 투과성 자재로 외벽을 둘러, 경기장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되게끔 했다. 현지 언론들은 경기장이 `마술적인 아우라'를 풍긴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관객석도 호화롭다. 6만6000개 관중석이 모두 경기장을 바로 내려보도록 설계, `모두가 일등석'인데다 전 좌석에 커버를 씌웠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뮌헨경기장에서 5월31일 열린 개장기념 페스티벌 /REUTERS



이것이 바로 '마술적인 아우라'를 풍긴다는 경기장의 전경. /AFP


분데스리가의 중심인 뮌헨은 내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독일을 넘어 `세계의 축구 중심지'가 되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월드컵 개최도시 뮌헨과 뉘른베르크가 속한 바이에른주는 두 도시를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곳'으로 홍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속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손기정이 뛴 곳, 박주영이 뛴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던 곳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베를린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내년에는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다. 베를린 시 당국은 지난 200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 1934년 베르너 마르흐의 설계로 지어진 낡은 경기장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당국은 40여년간의 동-서 분리로 상처입었던 베를린이 그동안 평화와 번영의 도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세계에 알리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도시들 못잖은 관광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베를린은 "파리보다 나무가 많고 베네치아보다 다리가 많은 곳"이라는 문구로 베를린의 자연과 문화를 선전하고 있다.
엘베강과 북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신설된 축구장에 역사의 향기를 넣기 위해 애쓴 반면, 문화도시 슈투트가르트의 고틀립-다임러 슈타디온은 다양한 44개의 객실형 관람석을 비롯해 다양한 `비즈니스석'을 준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도시마다 특색을 살린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 능력을 총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장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데에는 기업들도 일조했다. 알리안츠는 뮌헨에서, 미국계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거액을 지원해주고 경기장 명칭에 회사 이름을 집어넣었다.

미해결과제, `훌리건'

독일은 지난 1974년 한 차례 월드컵을 치른 바 있지만, 경기장들 대부분이 낡고 규모가 작아 내년 월드컵을 앞두고 총 12억 유로를 들여 대대적인 신-증축 공사를 벌였다. 최대 규모인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을 비롯한 5곳은 기존 경기장을 재건축했고,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 등에는 새 경기장을 만들었다. 독일올림픽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인 볼프강 니어스바흐는 "지난번 월드컵 때 썼던 경기장들이 지금은 구석기 유물로 변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최신식으로 고쳤다"면서 "뮌헨 경기장 개장으로 월드컵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시설은 훌륭하게 갖춰지고 있지만, 문제는 유럽의 악명 높은 훌리건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이례적으로' 훌리건들의 큰 소동 없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치러졌지만, 극성팬들이 몰려다니는 유럽 풍토에서는 팬들의 그같은 `자제'를 기대하기 힘들다.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12개 경기장 중 필드와 관객석 사이에 트랙 등 `차단장치'가 있는 곳은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3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조직위원회측이 대책 마련에 부심중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tip.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파라과이 출신의 산타크루스.
(지난번 월컵때만 해도 그냥 미소년이었는데 최근 지나치게 잘생겨져버렸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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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6-1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일씨가 좋아요 -///////////-
근데 1년 남았을때부터 뭔가 들썩들썩 하는거 같애요. ^^
전 개막 1달전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저런 큰 행사가 열린다는게 믿기지 않았지만요..^^

비로그인 2005-06-1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장 모습이 참.. 놀랍네요...;;;

미설 2005-06-1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기다려집니다....

서연사랑 2005-06-11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선수, 진짜 제대로 잘 생겼군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에일레스'를 생각나게 하는 구릿빛 피부, 강렬한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 저 카리스마....에잇! 추천~!

딸기 2005-06-1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월컵 때 울나라 꽃미남 까페 같은 곳,
쟤 사진으로 도배질하고 그랬었어요. ^^
 

버마(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가 오는 19일 60회 생일을 맞는다. 영국인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독재정권 하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수지 여사의 환갑을 머나먼 서울에서 축하하며 버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한국에서 고국의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버마인 마웅저(36)씨. 국제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서울 홍대앞 카페 아게하에서 그를 만났다. 1,2년만 있으면 군사독재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고 양곤(버마 수도)을 떠나온지 벌써 11년. 그는 지금도 "1,2년만 있으면 군사독재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 신념으로, 희망을 안고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함께 낯선 땅에서 버마 알리기 등 국제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양곤 근처 시골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라난 마웅저씨는 85년부터 양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1962년 군사정권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 버마에서는 시간이 멈춰져 버렸다. 경제발전, 민주화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지금도 60~70년대를 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80년대 말에 우리는 양곤에서 62년 쿠데타 이전 쓰여진 사회주의 서적들을 읽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도 버마의 민주화운동가들은 그런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한창일 때 버마에는 `양곤의 봄'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마웅저씨는 전버마학생연맹(ABSFU) 소속으로 반독재 시위에 참여했다. 그해 가을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90년 민선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고, 수지 여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 진영은 민족민주동맹(NLD) 등의 정당을 만들어 맞섰다.


NLD의 학생조직에 해당되는 신사회민주당(DPNS)에서 활동해오던 마웅저씨는 94년 보안당국이 추적을 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말을 듣고 해외 도피를 결심했다.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사실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한국 김대중 전대통령의 수난사와 북한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에 가면 민주화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연한 생각에 건너온 한국,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말해 무엇하랴. 인천과 부천에서 2003년까지 `불법체류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어야 했던 괴로움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렸다. 버마를 떠나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이들은 지난해말 현재 75명. 그 중 7명은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9명은 거절당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다시 떠나거나, 한국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마웅저씨는 난민 승인을 못 받았기 때문에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한국 인권단체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활동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회대 아시아NGO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인턴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버마에 남아서 활동하거나 이웃한 태국으로 넘어가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동지들과 연락하면서,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와 시민운동에 대해 배워가면서 그는 희망을 찾는 동시에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를 또한 절감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올 땐 군부정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영국 식민정부가 의도적으로 민족분열을 조장한 탓에 버마는 복잡한 민족문제를 안고 있다. 1947년 수지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설득으로 산악지대의 카렌족과 샨족 등 소수민족과 주류 버마민족 간 통일 독립국가 건설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웅산 장군은 이듬해 독립을 못 보고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후 카렌족과 샨족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게릴라투쟁을 벌였고, 버마인들은 한 사람의 명망에 의존한 통합 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다행히 최근 태국에 망명해 있는 정치인들과 소수민족 대표들 간에 연방정부 구성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이들은 다시 버마 내의 수지 여사측과 민주정부 구성에 대한 의견 접근을 보고 있다. 수지여사를 구심점으로 민족간 화해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각 정치세력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지만 발전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마웅저씨는 생각한다.


`곧 민주화될' 조국에 돌아가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예전같은 정당 정치운동이 아닌 NGO 활동이다.

"소수민족 아이들은 교육도 못 받은채 태국으로 넘어갑니다. 마약, 성매매, 아동노동, 어느 한 가지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없어요. 그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민족화해라는 것도 없습니다. 게릴라만 양산하는 꼴이죠."

버마 친구들의 오해까지 받아가면서 그는 2003년 NLD 한국지부를 탈퇴했다. 그 대신 `버마 어린이 교육지원모임'이란 것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힘겹게 모은 돈을 쪼개 국경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는 12일 저녁 마웅저씨와 버마인 동료들은 카페 아게하에서 `버마의 자유를 위한 밤(Free Burma Evening)'이라는 행사를 연다. 또 수지여사의 생일인 19일에는 부천에서 NLD한국지부, 미얀마공동체 등이 함께 하는 수지여사 석방 기원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버마 군사독재정권을 인정, 군부가 바꿔버린 `미얀마'라는 국호를 인정하고 있지만 유럽국들이나 주요 외신들 사이에서 버마는 여전히 `버마'다. 마웅저씨는 식민지 억압과 군부독재, 민주화 운동 등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버마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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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5-06-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의 엄청난 내공에 감탄!하며 서재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몰래 엿보기만 하다가 반가워서 인사드립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마웅저씨와 버마민주화운동가 난민인정 불허에 지지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http://www.burma.or.kr/ 로 가보시면 자세히 아실 수 있습니다. 현재 탄원서 서명도 받고 있습니다.

딸기 2005-06-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라이크어마이크...님이신 건가요 ^^
지금 글 쪼끔 수정하고 있었는데. 접속중이신가봐요.
 

새들이 사라진다.

숲이 줄어들고 외부 포식자가 늘어나면서 지구촌 새 종류의 5분의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영국의 조류보호단체 `버드 라이프 인터내셔널(Bird Life International)'이 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단체는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지구상에서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새는 1212종에 이른다"면서 "곧 멸종 위기를 맞을 것으로 우려되는 종류까지 포함하면 전세계 조류 9775종의 5분의1이 넘는 2000여종이 사라질 처지에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올해 이 단체 보고서에서 멸종 위기 조류 목록에 오른 대표적인 새는 유럽산 롤러카나리아. 터키와 러시아에 주로 서식해온 이 새는 최근 개체 수가 급감했다. 터키에서는 관광 붐으로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새 외에도 붉은 솔개 등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300 마리밖에 남지 않은 아조레스 멋쟁이새(사진)를 비롯한 179개 종은 멸종이 그야말로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반면 환경운동가들의 치열한 싸움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멸정 위기에서 벗어난 새들도 몇몇 있었다. 아이보리색 딱따구리는 10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1965년 12~15마리로 줄었던 카리브해 셰이셸군도의 까치는 아프리카 동부 섬으로 `이식'된 뒤 130여마리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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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6-0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제목 뽑는 솜씨가...

릴케 현상 2005-06-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파란여우 2005-06-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개발(경제논리)와 환경보존지구로 요즘 이 동네 소란스럽습니다.
당장 내가 밥을 먹기 위하여 새들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고민.

Phantomlady 2005-06-0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 잘 뽑으셨네요..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날이 어서 빨리 왔음 좋겠습니다..

릴케 현상 2005-06-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황인숙

딸기 2005-06-0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인숙...??

릴케 현상 2005-06-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황인숙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 ! 팅 ! 팅 !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