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만델라 법정진술 뒷부분. 사회주의권 국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것에 대해 정권이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할 것을 우려, ANC의 자금 문제를 해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술의 마지막 부분은 만델라가 생각하는 '인종주의를 넘어선 이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백인 '민족주의' 정권은 숫적으로 우세한 아프리카인(흑인)들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이들의 공포는 또다른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만델라는 철권통치를 휘두르면서 내면에서는 공포에 사로잡힌 백인들을 향해, "우리의 이상은 인종주의가 아니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한 가지 피부색이 다른 색깔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일은 이제 끝날 것이라고.

199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만델라가 90%가 넘는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흑인의 수적 우세와 흑인들 사이에서 만델라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컸다는 점, 둘째로 백인들조차도 '흑백 통합'이 갓 시작된 시기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할 인물은 만델라 밖에는 없음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
만델라 정부는 집권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무지개 국가(Rainbow Country)'로 정의했다. 흑인, 백인, 흑백 혼혈계, 인도계, 중국계 등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를 가진 집단들의 연방, 게다가 흑인들이라 해도 !쿵족(부시맨)과 같은 토착민과 14세기 이후 북쪽에서 도래한 반투족 등 여러 종족들이 섞여 있다. 남아공은 이렇게 다종다양한 '혼합집단'들이 모여 만들어진 국가임을 인정하고, 이 다양성을 발전의 토대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지개 국가'를 필두로 보츠와나 등 주변국가들이 공존공영하는 '아프리카 르네상스' 운동을 일으켰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운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할 터이지만, 여기서는 생략.)

참고:

만델라의 이 법정 진술 원문은 여기(http://www.anc.org.za/ancdocs/history/rivonia.html) 에.
만델라의 biography는 여기(http://www.anc.org.za/people/mandela.html) 에.

 

+++

나의 생각은 서구와 동구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그 모든 것에 힘입어 나는 정치적 타개책을 찾을 때 절대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는사회주의를 제외한 어떤 특정한 사회체제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서구로부터도 동구로부터도 최상의 것을 차용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치투쟁이 언제나 내부의 금전적 지원으로 수행되어 왔다는 점, 즉 우리 동포와 우리의 지지자들이 모은 자금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운동을 벌이거나 중요한 정치재판, 가령 내란음모사건 같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감하는 서방 국가들의 개인과 조직들로부터 금전적 원조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자금 제공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하지만 1961년에 '국민의 창'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단계의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그 투쟁이 우리의 빈약한 재원에 과중한 부담을 줄 것이며 부족한 자금 때문에 활동 규모가 제약받게 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1962년1월에 해외로 나갈 당시 내렸던 지침들 중 하나는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아프리카의 정치운동 지도자들과 토론을 하면서 당시까지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지역의 지도자들은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서방 국가 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도 온갖 형태의 지원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몇몇 非공산국가인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리고 심지어는 반공산주의 국가들까지도 그와 비슷한 원조를 모두 받아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흔히 남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 산다는 식으로 비판에 답하곤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나라들의 생계비 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연 어떤 비교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우리 아프리카 동포들에 관한 한 그 점은 부적절합니다. 우리의 불만은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하여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에 사는 백인들과 비교하여 가난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법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이 겪고 있는 인간 존엄성의 상실은 백인 우월주의 정책의 직접적 산물입니다. 백인 우월주의는 흑인 열등주의를 내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백인 우월주의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법률로 인해 더욱 확고해집니다.

아프리카인들이 원하는 것은 남아프리카 전체를 공유하자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안정과 우리의 몫을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등한 정치적 권리들을 원합니다. 그런 권리가 없다면 우리가 영원히 무력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등한 정치적 권리라는 이 말이 이 나라의 백인들에게는 혁명적으로 들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흑인이 다수 유권자가 될테니까요. 바로 이 점 때문에 백인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 모두를 위한 인종적 조화와 자유를 보장해 줄 유일한 해답에 이르는 길이 가로막혀서는 안 됩니다.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면 인종적 지배라는 결과를 낳을 거라는 추측은 사실이 아닙니다. 피부색에 바탕을 둔 정치적 구분은 그 모두가 인위적인 것이며 그것이 소멸하면 어느 한 가지 피부색이 다른 색을 지배하는 것도 끝이 날 것입니다. ANC는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며 반세기를 보냈습니다. ANC가 승리한 후에도 그 정책은 변치 않을 겁니다.

ANC의 싸움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통과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 동포들의 투쟁입니다. 그것은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입니다. 나는 평생을 아프리카 동포들의 이 투쟁에 바쳐왔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고, 흑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 함께 조화롭게 사는 자유민주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목적으로서 내가 삶 속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입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칠 이상이기도 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5-01-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3이 빠지면 안되잖아~ (뭐하는 거야 지금 ... 썰렁하군요.^^)

딸기 2005-01-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안 썰렁해요, 재밌어요 발마스님 ^^
 

어제에 이어서... 만델라의 법정 모두진술. 앞부분에서 만델라는 자신과 ANC 지도부가 생각했던 '폭력전'의 형태를 네 가지(사보타주/게릴라전/테러리즘/공개 혁명)로 요약하고, 첫번째 사보타주 단계에 들어간 배경을 설명했다.

뒤이은 부분에서는 공산당과의 연합에 대한 ANC의 공식 입장,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만델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 만델라가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과 오랜 세월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만델라와 카다피의 관계를 비난했을 때, 만델라는 이렇게 응수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밑에서 힘겨운 투쟁을 벌일 때 우리를 도와준 것은 미국보다는 리비아였다"고. 

물론 만델라 할아버지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연설문에서 보이듯, 만델라는 사회주의자/공산당과의 연합을 어디까지나 전술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통일전선을 벗어난 사상적 일체감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만델라의 시선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그 애정의 바탕은 카다피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드러냈던 것과 같은 '동지적 친밀감' 혹은 '연대감' 같은 것이다.

특기할 점은, 이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반공적' 성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국내에서는 흑백 차별로 악명높은 정권이었지만, 냉전 체제 내에서 보자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불어닥친 사회주의적 흑인 민족주의 바람에 맞서 미국을 대신해 '반공주의의 보루'로도 기능했었다(미국-남아공-이스라엘의 삼각 협력구도). 백인정권은 반공을 내걸고 보안기구들을 강화해 흑인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일쑤였고, 따라서 공산당과 흑인 운동가들의 이해관계는 '정권에 의해'서도 일치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

정부가 제기한 주장 중 또 하나는 ANC와 공산당의 지향과 목적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점과 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부측은 틀림없이 내가 ANC에 맑스주의를 도입하려 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은 거짓입니다. ANC의 이념적 신조는 예전부터 늘 그래왔듯이, 아프리카 민족주의입니다. 그것은 "백인을 바다 속에 처넣어라!"라는 절규에 표현된 극단적 개념이 아닙니다. ANC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모든 이들의 자기실현과 자유이며,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의 청사진이 아닌 우리의 자유헌장에 소중히 담겨 있는 그대로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토지의 재분배를 요구할 뿐 국유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국유화의 대상은 광산, 은행, 독점기업입니다. 이는 현재 한 인종이 거대 독점기업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정치권력이 분산된다 하더라도 이 기업들의 국유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종적 지배가 영구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내가 그들의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맑스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의 건설을 표방합니다. 공산당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문제들을 해결할 단기적 처방으로서 자유헌장을 위해 일할 태세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유헌장을 자기 강령의 시작으로 여길 뿐 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ANC의 주요 목적은 아프리카 동포가 완전한 정치적 권리와 단결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반면, 공산당의 주된 목표는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을 대체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계급간의 차이를 강조하려 했지만, ANC는 계급간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이 점이 특히 중대한 차이점입니다.

ANC와 공산당이 종종 서로 긴밀히 협력했던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협력은 공동의 목적-이 경우에는 백인 우월주의의 철폐-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뿐, 이해관계가 같은 완전한 공동체였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세계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예들은 수도 없습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히틀러에 맞서 함께 싸웠던 영국, 미국, 그리고 소련간의 협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그러한 협력에 대해, 처칠 혹은 루스벨트가 공산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어버렸다거나, 영국과 미국이 세계 공산화를 앞당기려고 노력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협력의 또다른 예를 바로 '국민의 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창'이 창설된 직후 나는 일부 조직원들로부터 공산당이 우리 조직을 지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사실로 나타났고, 시간이 더 흐른 단계에서는 공개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식민지 국가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언제나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믿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의 단기적 목표들이 자유운동의 장기적 목표들과 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공산주의자들은 말레이 반도, 알제리,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들 중 어느 나라도 지금 공산주의 국가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공산주의의 가장 지독한 적 중 한 명이라 할 장제스조차도 지배계급에 맞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싸웠고, 그 투쟁으로 인해 1930년대에 중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비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협력 양식은 남아프리카의 민족해방 운동에서도 되풀이되었습니다. 공산당이 보안관찰 처분을 당하기 전에는 공산당과 ANC가 모두 참가한 공동 운동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프리카 공산주의자들은 ANC의 회원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되었으며 일부는 민족위원회, 지방위원회,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민족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이들로는 공산당 서기를 지낸 아버트 은줄라, 마찬가지로 서기를 지낸 모지스 코타네, 그리고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던 J.B. 막스가 있습니다.

내가 ANC에 가담한 것은 1944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ANC가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행하고 특정 이슈들에 대해 이따금 공산당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결국 남아프리카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희석시키고 말 거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ANC 청년연맹의 일운으로서 ANC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하자고 제안한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 제안은 압도적 반대로 거부당했는데, 반대표를 던졌던 이들 중에는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지닌 분파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존의 정책을 옹호한 이유는, ANC가 애당초 같은 경향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단일 분파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수용하면서도 민족해방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아프리카인의 의회로 건설되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뼛속 깊이 편견을 지니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백인들로서는 경험이 풍부한 아프리카 정치인들이 대체 왜 그리도 기꺼이 공산주의자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지를 아마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억압에 대항해 투쟁하는 이들 사이의 이론적 차이란 구입하기 부담스러운 사치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들만이 지난 수십년간 남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인간 대접하고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즉 우리와 함게 앉아서 먹고,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몫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집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남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유와 공산주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믿음을 고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민주 정부와 아프리카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버리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들 중 상당수를 공산주의버으로 탄압하여 보안관찰 처분을 내리는 입법부입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우리의 대의를 지지하는 이들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만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보아도 공산 국가들은 늘 우리를 도와왔습니다. 유엔과 그외 국제조직에서 공산권은 식민주의에 대항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투쟁을 지지해 왔고, 일부 서구 강국들보다 우리의 어려운 처지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전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난합니다만, 공산권은 대부분의 백인 국가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솔직하게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고 잇습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적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1949년의 나처럼 경솔하고 성급한 정치가 뿐일 것입니다.

이제 제 입장에 관한 애기로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나는 그간 내가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은 내 정치적 신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아프리카 애국주의자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사회의 매력은 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 서적을 읽은 경험에서, 또 부분적으로는 이 나라에 있던 초기 아프리카 공동체들의 구조와 조직을 향한 내 존경심에서 솟아난 것입니다. 그때는 주요 생산수단인 토지가 부족의 소유였습니다. 부자와 빈자가 따로 없었고 착취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맑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간디, 네루, 은크루마, 나세르등 다른 지도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약간의 사회주의적 형태를 통해 우리 국민이 세계의 선진국들을 따라잡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극단적 빈곤을 극복할 필요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거나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는 공산당이 우리의 특수한 현 정치투쟁 단계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자유헌장을 토대로 민주적 권리들을 획득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공산당이 그 과제를 촉진하는 한, 나는 그들의 도움을 환영합니다. 나는 모든 인종을 우리의 투쟁에 나서게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공산당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문헌을 읽고 맑스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바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서양의 의회체제를 비민주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체제를 옹호하느 사람입니다.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그리고 권리장전 등은 전세계 민주주의자들이 숭상하는 문헌들입니다. 나는 영국의 정치제도와 그나라의 사법체계를 대단히 존경합니다. 나는 영국 의회를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로 여기고 있으며, 내게 그 나라 사법체계의 불편부당함과 독립성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미국 의회나 그 나라의 권력분립 원칙,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도 역시 내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5-01-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을 퍼갔으니 2도 퍼가야지, 암 ...

딸기 2005-01-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면, 만델라 할아버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미래형이냐면 아직 내게 그렇게 물어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데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이 책이 중간중간 '슬플' 것임을 알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슬픔의 과정은 기쁨의 결말로 바뀔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서 비코의 이야기는 희망이 예정돼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선 '슬픔의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 흑인, '검둥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언한, 젊은 나이에 숨져간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의 압도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를 위협하고 있단 말이다. 강력하고 흥분되는, 좀 들뜨게 만드는 위협이다.

책 중에 할아버지의 연설문(최호정 번역)이 나온다. 1964년 4월20일자 법정진술. 할아버지는 1962년 구속돼 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으며, 이듬해 반역죄 등으로 재차 소추됐다. 할아버지와 동료들에 대한 반역죄 재판이 이른바 '리보니아' 재판이며, 이 재판에서 할아버지는 종신형을 언도받고 로벤 섬 교도소에 투옥돼 1990년까지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연설(법정진술)은 28년에 걸친 수감생활을 앞두고 만델라가 남아공 국민들을 상대로 했던 사실상 마지막 발언이었다. 진술 첫머리에서 만델라는 ANC의 '폭력노선'에 대해 설명한다. (만델라가 처음 ANC를 주도할 당시에는 폭력투쟁을 선호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1960년 샤프빌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백인정권의 흑인 학살사건을 계기로 비폭력 노선을 포기하고 무장투쟁 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나는 학사학위를 땄고 요하네스버그에서 올리버 탐보와 동업하여 여러 해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허가없이 이 나라를 떠났다는 죄목과 1961년 5월 말에 사람들에게 파업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5년형을 살고 있는 기결수입니다.

모두(冒頭) 발언을 통해, 나는 재판 개정 초반에 정부측이, 남아프리카의 투쟁에 외국인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다고 시사한 내용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포의 지도자로서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남아프리카에서의 내 경험과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내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지 어떤 제3자가 말해준 것 때문이 아닙니다. 트란스케이에서 보낸 젊은 시절에 나는 나이드신 분들이 옛날 우리 부족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새겨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선조의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담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우리 동포에게 봉사하고 자유를 향한 그들의 투쟁에 나 자신을 바칠 기회가 내 삶에 주어지기를 희망했습니다. 내가 이 재판에서 받은 모든 혐의와 관련하여 내가 한 행동은 모두 그러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야겠습니다. 지금껏 법정에 전해진 것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사보타주를 계획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계획한 것은 경솔한 판단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폭력을 좋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백인들이 우리 동포에 대해 독재를 행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수많은 시간 동안 발생했던 정치적 상황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평가한 결과 그 사보타주를 계획한 것입니다.

나는 내가 '국민의 창'(ANC의 무장조직)의 창설에 조력한 이들 중 하나이며 1962년 8월에 체포되기까지 그 조직의 사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나 그리고 그 조직을 시작했던 이들이 그같은 일을 했던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아프리카 동포의 폭력은 정부 정책의 결과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책임있는 지도부가 우리 동포의 정서를 조절하고 인도하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테러리즘이 일어나 이 나라 여러 인종들 사이에 지금까지의 전쟁에 의해서도 생기지 않았던 극렬한 적대감과 비참한 감정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폭력이 없이는 아프리카 동포들이 백인 우월주의 원칙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 원칙에 반대를 표명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들은 모두 법률에 의해 폐지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열등한 상태를 영구히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정부에 맞서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에 맞서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법을 위반하였습니다. 그 방식을 처벌하는 법률이 생기고 정부가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무력을 과시하는 것에 의지하자, 그때서야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폭력은 테러리즘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창'을 조직한 우리는 모두 ANC의 일원이었고, 우리의 뒤에는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비폭력과 협상을 사용한다는 ANC의 전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가 어느 한 집단이 아니라 백인이건 흑인이건 그 안에 사는 사람 모두의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최후의 순간까지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사실은 50년간의 비폭력이 아프리카 동포들에게 가져다 준 것이라곤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법과 점점 더 줄어드는 권리 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네 가지 형태의 폭력 즉 사보타주, 게릴라전, 테러리즘, 공개혁명이 고려되었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방법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그 방법을 더이상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다른 어떤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최초의 게획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주의깊게 분석한 바에 기초했습니다.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외국 자본과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발전소들을 계획적으로 파괴하고 철도와 전화 통신에 장애를 초래하면, 겁먹은 자본이 이 나라에서 빠져나가려 할 것이고, 상품들은 산지에서 항구로 일정에 맞춰 도착하기가 더 어려워져, 결국에는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누수 현상이 생기게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재고해보지 않을수 없게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경제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은 정부 건물들 및 다른 인종분리정책의 상징들에 대한 사보타주로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한 공격들은 우리 동포들을 고무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공격들은 폭력적 수단의 채택을 촉구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출구를 제공할 것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이전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채택하여 정부의 폭력에 맞대응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중적 행동이 성공적으로 조직되고 그래서 그에 대해 대량 보복이 가해진다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 대의에 공감하기 시작할 것이고, 남아프리카 정부는 크나큰 압력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계획이었습니다. '국민의 창'은 사보타주를 실행하기에 앞서 성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작전의 계획 혹은 수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폭동이 일어난다면 정부가 우리 동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남아프리카 땅이 이미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의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무력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력 사용을 장기적 과제로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만일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우리 동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하에서 그 싸움이 진행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측에 가장 큰 승산을, 그리고 양측에 가장 적은 인명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 싸움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우리가 하게 될지도 모를 게릴라전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군사교육을 받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아무런 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릴라전이 시작될 경우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훈련받은 핵심 인물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5-01-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이미 했고 퍼가는 일만 남았군요.^^

딸기 2005-01-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팍팍 퍼가셔요 ^^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서평을 나중에 올릴지 안 올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훌륭한 책은 아니다)

멍청한 질문 같지만, 나는 이 저자가 이렇게 열심히 파헤친 카길보다는 그래도 몬샌토 쪽이 훨씬 무섭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성격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난 몬샌토가 더 무서운 걸.. 덜덜덜...

정말 안타까운 게 뭐냐면-- 지금부터 중구난방으로 늘어놓을 이야기는, 언론에서 '빼먹고 지나가는 몇가지'에 대한 나의 단상들이다.

'인간배아 연구'를 중단시키는 문제는, 여러가지 차원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자세한 얘기는 나중에)만... 문제는 정작 현재진행형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너무 없다는 거다! 줄기세포 연구 반대할 시간에, 이미 현실화된 터미네이터부터 경계하라고 목놓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참고로 터미네이터 자체는, 몬샌토에서 이미 98년에 사용치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 실제로 중단했다)

신문방송에서도(울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 언론이든) 저런 문제를, 기자들이 참 잘 모른다. 알아도, 구체적인 것들을 취재하기 어렵기 때문에(몬샌토를 어케 취재하겠나) 기사를 못 쓰는 경우도 많을 거고.

그래도 생명공학 업계 소식지를 잘 보면, 단편적인 소식들을 열심히 모으다 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특정 작물에서 전세계적으로 유전자조작(GM)작물의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 콩 중에 한 종류는, 이미 재작년인가, GM의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 GM 비율이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넘어선 작물로는, 저 콩 종류가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어떤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지만, 실제로 GM은 너무 많이 파고들어서 이미 찬반을 얘기하기에 늦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것도 있다. 쌀의 경우-- 유전자 조작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 몬샌토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GM 쌀을 생산해왔다. 그럼에도 쌀의 경우 GM 작물 문제가 그동안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주곡작물로서 쌀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볼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GM 옥수수의 경우는 유럽쪽의 반발로 해서 엄청 크게 문제가 됐었는데 왜 쌀은? 일단,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이 멍청하다! 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겠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나라의 멍청한 국민의 한 사람인 내가 볼때-- 몬샌토에서 이런 자료를 낸 적이 있다. "그동안에는 농민들을 위해 GM쌀을 만들어왔다면, 이제부터는 소비자를 위해 GM쌀을 만듭니다". 뭔 얘기냐면, 그동안 몬샌토가 만든 GM쌀들은 제초제에 강하다/수확량이 많다 등등, 농민들의 수확을 늘려준다는 핑계로 유전자를 조작한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인가 재작년부터 몬샌토는 '영양이 풍부한 GM쌀' 종자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생산자 뿐 아니라 소비자를 위해서도 GM 쌀을 만든다'는 같잖은 소리를 내놓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런 문제는 잘 다뤄지지 않았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을 일이 없었다.

몬샌토에 대해 알아볼까 했던 적이 있었다. 우연히(는 사실 아니지만) 몬샌토 코리아의 홍보직원이라 스스로를 밝힌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뭘 좀 물어볼까, 해서 "한번 만날까요" 했더니, 자기는 몬샌토 직원이 아니라 '몬샌토 코리아'의 홍보를 맡고 있는 홍보대행사 직원이란다. 한마디로, 몬샌토에 대해서 실제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단 얘기다. (여담이지만 이런 경우는 또 있었다. 토마호크 미사일 만드는 미국의 레이시온사... 악마의 기업... 거대군수업체다. 여기서 언젠가 한번 나한테 항의성 전화가 온 일이 있었다. 한번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했더니, 역시나 '홍보대행업체 직원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러다이스트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우호적인 쪽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보의 공개'에 있다는 거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정책결정/상품화 과정에 어느 정도나 참여할 수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과학자들과 생명공학기업들이 경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언론도 의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황우석 신드롬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점은, 황우석을 영웅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나라 언론이든 그건 똑같다. 영웅을 좋아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왜냐면 그것이 독자(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여연대 등등에서 배아복제 연구 중단시켜야 한다고 난리를 쳐대고, 그래서 생명윤리... 어쩌고 하는 위원회에서 사실상 연구를 금지시키는 짓거리를 했을 때,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민족주의' 언론들의 그런 행태야말로 웃긴 거다. 언제나 '국익'을 외쳐온 우리 언론들이라면, 성장가능성 있는 분야를 팍팍 밀어줘야지! 언제부터 생명, 윤리 이런거에 관심있었다고...

그러다가, 황우석이 뜨니깐 또 우르르... 쯧쯧쯧... 그게 웃기다는 거다.

더 한심한 것 한 토막. 울나라 어느 교수가, 뭔 분야에선가 전세계 논문 인용도 1위를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2002년이었던 듯). 대략 단신(인물동정) 정도로 언론들이 취급했다. 왜냐? 뭣에 대한 논문인지 몰랐기 때문에... ㅋㅋㅋ 아마도 애기장대에 대한 논문이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애기장대는 벼과 식물일 것이다. 다시 추측컨대, 애기장대 게놈에 대한 논문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추측이 가능한가? 애기장대는 고등생물 중에 아마도 처음으로 유전자지도가 완성된 생물이었을 것이다. 애기장대나 옥수수나 벼나 그넘이 그넘이란다, 유전자를 까보면. 하기사 사람과 초파리가 그넘이 그넘이라는데... 아무튼 저간의 사정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언론은 '논문 인용도 1위'라는 것의 의미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사실 '국익' 차원에서 말하자면(과연 국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생명공학 분야에서 한국은 제법 가능성이 있는 편일지도 모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울나라가 천체물리학에서 경쟁력이 있겠냐구... 띠띠띠...

국익 차원에서 뭐든 허용하자, 이런 소리를 나불거릴 생각은 없다. 제대로 연구하게 하고, 제대로 감시하자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좀 알아야 한다. 근데 알려주는 넘들도 없고 제대로 알아보려는 넘들도 없다. 큰일이다, 큰일... (노벨상만 해도, 과학분야에 누가 상을 받는지를 몇해만 눈여겨 보면, '동향'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 받은 사람들 약력만 소개하는데에 그칠뿐, 정작 의미를 알려주는 신문기사는 거의 없다.)

* 정말정말 여담-- 몇년전부터 신기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제약회사들(세련된 말로 생명과학기업들) 움직이는게 석유회사들(역시 세련미를 더하면 에너지기업들) 움직이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 이유가 멀까?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 2004-12-2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GM 딸기가 나올까 걱정될 따름이지요. ^^

바람구두 2004-12-2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님! 내 이래서 그대를 미워하다가도 미워지질 않아요. 흐흐.

수상한 과학 안 읽어 봤음.. 한 번 읽어봐요. 물론 그대에겐 좀 쉬울 수도 있겠지만.. 난 참 좋게 봤다오.

딸기 2004-12-2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랍니다. ^^

숨은아이 2004-12-2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아 그런 일이... 생명과학업계 동향도 아시는군요!

딸기 2004-12-2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몰라요.

혹시 궁금하신 분이 있으시면

www.bio.com 들어가보세요. 미국 생명공학산업협회 홈페이지인데,

새로운 연구 소식이나 '산업화' 소식이 빨리빨리 떠요. 전에 애용하던 사이트입니다.

바람구두 2004-12-2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어 잘 한다고 자랑하는 거지, 시방... 흐흐.

딸기 2004-12-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케 벌써 알았어요, 그걸?

어차피 내 영어 -_- 자랑;;이 통할 사람은 바람구두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ㅋㅋ

바람구두 2004-12-2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런 아프다구욧. 난 우리말도 잘 못하는 걸...

45345 2010-05-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전자변형콩... 미국에선 유전자변형이 되지 않은 콩은 구하기 힘들정도가 되었고...
몬샌토는 이제 우리나라를 공략중이네요. ㅋㅋㅋ
 

슬라보예 지젝이 부시 개쉐이의 재선에 대해 논평한 글. 기특한 친구가 물어왔다. 어느 게시판엔가 '도끼'라는 분이 번역해놓으셨는데, 지젝의 어법이 마음에 들어서 허락도 없이 퍼왔다. 들키면 어떡하지... (굵은 글씨는 내가 강조한 거다)


자유주의의 워털루(또는 결국 워싱턴에서 날라 온 약간 좋은 소식)

부시의 재선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첫 반응은 절망, 심지어 공포였다. 지난 4년 간은 단지 악몽에 지나지 않았다. 부시가 새로이 입맛을 다시며 대법원에 보수적인 판사를 임명하고 이라크 다음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며 미국에서 한 발짝 더 자유주의를 사멸로 내몰면서 자신의 의제를 추구함에 따라 대기업과 근본주의 포퓰리즘의 악몽같은 연합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인 대응은 정확히 우리가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가?, 이다. 이건 자유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세계관을 강제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정도를 증명할 뿐이다. 만일 우리가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며 냉정하게 결과를 분석한다면 2004년 대선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많은 유럽인들은 지식인들과 대중문화 엘리트들이 반대했음에도 어떻게 부시가 승리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한다. 결국 유럽인들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동원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 자명한 우둔함 때문에 이 사실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역설적이고 정확히 말해 포스트모던 현상이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보면, 다가오는 세계종말에 관한 Tim F. Lahaye와 Jerry B. Jenkins의 12권짜리 “두고 간 것 Left Behind” 시리즈는 6천만권 이상이 팔렸다. “두고 간 것” 시리즈는 갑작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아마게돈의 공포를 겪지 않도록 신이 호명해 구원받은 영혼-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그 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젊고 능숙하며 카리스마를 가진 니콜라 카르파티아 Nicolae Carpathia 라는 이름의 루마니아 정치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뒤 유엔 본부를 바빌론으로 옮긴다. 바빌론에서 카르파티아는 모든 국민국가를 무장해제하고 미국에 반대하는 세계정부를 세운다. 이 터무니없는 음모는 모든 비(非)기독교인들 ­유대인, 이슬람교도 등­이 격동의 불바다에서 다 타버리는 마지막 전쟁까지 계속된다. 만일 이슬람 입장에서 씌어진 비슷한 이야기가 아랍 국가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서구 자유주의 매체가 무엇을 부르짖었을지 상상해 보라. 정말 놀라운 건 이런 소설들의 불충분함과 원시성이 아니라 “심각한” 종교적 메시지와 대중문화 상업주의의 쓰레기같은 관행이 묘하게 겹쳐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반성할 건 VKP(b)­-스탈린주의 성경­-의 역사에서 드러났듯이 민주주의의 기본역설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책을 대필한 사람)은 20대 말에 정당대회에서의 투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큰 표차를 보이자 대의원들은 중앙위원회가 제안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만약 투표가 만장일치라면 소수파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약간 비뚤어진 “전체주의적” 왜곡을 했다기보다 이 역설은 민주주의의 구조 그 자체를 구성한다. 민주주의는 다수majority와 “전체all” 사이의 단락 short-circuit에 기반하고 있다. 그 속에서 승자는 전체를 취하고 다수는 전체로 계산되어 모든 권력을 손에 넣는다. 심지어 이 다수가 수백만 표 중에서 단지 2, 3백 표에 불과하다해도 말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과반수의 의지와 이해가(이 두 가지는 자동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국가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법률주의 이상인가? 사회의 적대를 담보하는 형식적인 규칙체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은 정치영역으로 완전히 흡수된다. “민주주의”는 선거 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든 모든 정치인들이 무조건 결과를 존중하는 걸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정말 “민주적”이었다. 즉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전체의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사실의 명백한 무의미성에도 민주당 후보자는 패배를 받아들였다. 선거 뒤 불안정한 몇 주 동안 빌 클린턴은 적절하고 신랄한 언급을 했다. “미국인들은 말해 왔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모른다.” 이 언급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결과 이후에는 “메시지”가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이건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비전을 고수함으로써 가련한 “현존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따분한 시도를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시도에 관해 권위 있는 헤겔주의적 답변은 충분한 대답이 된다. 즉 그 개념을 살아있게 하는데 실패한 현실은 개념 자체에 고유한 취약성을 증명한다. 민주주의에 똑같이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너무 간단해서 더 진정한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현존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민주주의에 반대하지 못하는 걸까?

이 점은 부시의 승리가 우연한 착오, 또는 사기나 조작의 결과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헤겔은 적절한 시기에 나폴레옹이 두 번 패배해야 한다고 편지를 썼다. 워털루 이후에야 자신의 패배가 군사적인 사안이 아니라 더 심오한 역사적인 변화의 표현이라는 점은 나폴레옹에게 분명해졌다. 부시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우리 모두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자유주의자들이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두 번 이겨야 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이 파괴되었다. 12년 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1월 9일 “행복한 ‘90년대’”를 선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꿈꿨고 자유민주주의가 원칙적으로 승리했다고 믿었으며 이 초헐리우드적인 행복한 결말을 막을 유일한 방해물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지도자들이 있는 작은 저항지대일 뿐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9/11은 클린턴적인 행복한 90년대의 종언을 상징하며 이스라엘과 요단강 서안지구 사이에, 유럽연합 주변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새로운 장벽이 들어서는 시대를 알렸다.

최근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렌스 캐플란은 “이 사명은 바그다드에서 시작하지만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의 첨단에 서 있다.…이것은 결정적인 순간이다.…이것이 이라크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은 아주 분명하다. 심지어 이것은 중동의 미래와 테러와의 전쟁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미국이 21세기에 어떤 종류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는가와 관련된다.” 그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지금 위태로운 국제공동체의 실제적인 미래-그것을 조절할 새로운 규칙, 새로운 세계질서가 나아갈 바-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질서라는 새로운 비전은 최근 미국정치의 효과적인 틀로 나타나고 있다. 9월 11일 이후 미국은 나머지 세계를 기본적으로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여기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적은 더 이상 보편적인 자유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후쿠야마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미국을 나머지 세계와 분리된 고독한 초강대국, 자신의 중요한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새로운 군사력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요새 아메리카”로 바꾸는 것이다.
이 새로운 군사력은 세계 어느 곳에서 신속하게 배치하는 군대만이 아니라 펜타곤이 우주에서 지구상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우주무기의 개발을 포함한다. 이 전략은 미국과 유럽의 최근 갈등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미국을 “배신하고 있는” 건 유럽이 아니다. 미국은 더 이상 유럽과의 전폭적인 동반자관계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부시의 미국은 새로운 지구제국이 되려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오히려 부시의 미국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무정한 국민국가를 계속 유지한다. 이제 미국 정치는 잘 알려진 생태주의자의 구호를 이상하게 뒤바꾼 구호로 이끌리고 있는 듯하다. 즉 지구적으로 행동하고 지역적으로 사고하라.

이런 좌표 내에서 생각이 있는 진보주의자라면 모두 부시의 승리를 반겨야 한다. 다가올 적대의 윤곽이 이제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에 부시의 승리는 전 세계에 좋은 것이다. 케리의 승리는 진정한 분할선을 흐리는 일종의 역사적인 변칙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케리는 부시의 정치에 대해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세계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부시의 승리는 역설적이게도 유럽인과 라틴 아메리카 경제 모두에게 더 좋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기 위해 케리는 보호주의적 장치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득은 국제정치를 포함한다. 케리가 승리했다면 그건 자유주의자들이 이라크 전쟁의 결과에 직면하도록 강요하고 부시 캠프가 자신들의 내린 비극적인 결정의 결과를 가지고 민주당을 비난하도록 했을 것이다. 진 커크패트릭은 1979년에 나온 자신의 유명한 논평집 <독재자와 이중적인 기준>에서 적극적으로 공산주의 정권을 전복시키는 한편 우파 독재자들과 협력하는 미국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권위주의” 정권과 “전체주의” 정권을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 독재자는 권력과 부에 관심을 가지며 심지어 몇 가지 큰 대의에 관해 입에 발린 말을 할 때조차 이데올로기적인 이슈들에 무관심한 실용적인 지배자이다. 반대로 전체주의 지배자는 사심없고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 모든 걸 거는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광신도이다. 그래서 권위주의 지도자가 실질적이고 군사적인 위협에 합리적이고 예측하며 반응하는 것으로 다뤄진다면, 전체주의 지도자는 그 위협을 더 위험하게 하고 직접 맞서야만 한다.
아이러니는 이 구분이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일치하지 않는 점을 완벽하게 요약한다는 점이다. 사담은 권력을 추구하는 부패한 권위주의 독재자였고 잔인한 실용적 고려(80년대 동안 미국과의 협력으로 이끌었던)에 따랐다. 그러나 사담을 제거하는 미국의 간섭은 어떠한 실용적인 타협도 배제하는 “근본주의적” 적대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끌었다.

부시의 승리는 선진 서구국가들 사이의 이익의 일치에 대한 환상을 제거할 것이다. 이 승리는 유럽연합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Mercosur같은 새로운 동맹을 강화하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과정을 이끌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균형잡힌 복지국가라는 환상에 집착하는 “낡은 유럽”에 맞서는 미국 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던” 동학을 칭송하는 건 언론의 진부한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정치조직의 영역에서 지금 유럽은 지리나 문화와 관계없이 어떤 이에게 한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유례없이-아마도 “포스트모던한”- 국경을 초월한 집단으로 스스로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절망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의 전망이 어두울지 모르나 위대한 부시주의의 어록 중 하나를 기억하라. “미래는 더 나은 미래가 될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4-11-1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딸기'로 돌아오셨네요.

balmas 2004-11-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딸기'로 되돌아오셨네요. 왜 그걸 몰랐지???

지젝의 순발력은 역시 알아줄 만하군요. 지젝의 순진한 낙관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읽을 만한 글이군요.

지젝을 좋아하는 분과 약간 설전을 했는데, 쑥스럽게 바로 지젝의 글을 퍼가야겠군요.
저도 들키면 어쩌죠?? ㅋㅋ

로쟈 2004-11-1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키켰군요. '일관된' 입장을 지키시킬 바랍니다^^...

딸기 2004-11-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발마스님과 로쟈님, 좀더 치열하게 싸우십시오! ㅋㅋ

우루불루(라고 불러야 하나요)님, 다시 딸기로 돌아와버렸어요. ^^

딸기 2004-11-1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지젝을 좋아하는 분, 그리고 그분과 설전을 벌이신 분께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지젝의 저 글이 맘에 들었습니다. 깊은 사고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한 '약간의 통찰력'(왜냐면 저 글은 맛뵈기 글이니깐), 쌔끈한 비꼬기... 그런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지젝의 저 글, '순진한 낙관주의'입니까, 아니면 '유쾌한 반어법' 입니까?

urblue 2004-11-1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가 더 좋습니다. ^^

전 you are blue 랍니다.

딸기 2004-11-1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유아블루님이셨군요. ^^

저는 '딸기'가 된지 하도 오래돼서, 이젠 진짜 제가 과일인 것만 같아요. 저의 실명이 더 어색할 지경이라니깐요. ^^

비로그인 2004-11-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은 ' http://www.inthesetimes.com/site/main/article/1662/ '

에 있습니다. 몇군데 사소한 오역이 있네요. 말이 안되는 것 처럼 보이는 건 대부분 오역이라고 볼 때 다섯번째 줄, "하지만 이런 감정적인 대응은 정확히 우리가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가?,' 이건 " 하지만 이런 감정적인 대응은 정확히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로 봐야 할 것 같고... 이런 식의 오역이 많아요..뭐, 대충 날림으로 번역하신 듯.^^요점은 전달 됐으니까, 뭐라 말하면 실례겠죠?

가을산 2004-11-1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이래서 여기가 좋아요.... ^^

딸기 2004-11-1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퍼오면서 보니깐, 번역하신 분도 '급해서 대충 옮겼다'고 쓰셨더라고요. 원문까지 가져오셨네요. 고자님(이름 참 특이하시군요 ^^) 반갑고 고맙습니다. 가을산님도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