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귀님의 시각에서 보자면, 흔히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역대 군주 중에서도 가장 매력이 없었던 인물은 한 고조 유방이다. 왕조의 창업자로서의 성과는 인정하더라도 능력 면에서는 딱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사기> "본기"에 기록된 행적만 살펴보면 확고한 주관도, 압도적 무력도, 뛰어난 인품도 없이 오락가락했었던 것만 같다.
훗날 소설 <삼국지> 속 등장인물을 통해 대중화된 영웅상과 비교해도, 대범한 듯하다가 편협하고 너그러운 듯하다가 잔인한 유방의 면모는 어딘가 불량스럽게도 보인다. 일본 역사가 사타케 야스히코의 평전 <유방>을 보니, 심지어 종종 욕을 남발하거나 발을 씻으며 중요 인물을 접견하거나 등의 무례함을 출세 전에 체득한 건달 습관의 발현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평전에서도 "생애"와 별도로 "됨됨이"라는 장을 두어 해당 인물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 저자도 나귀님과 비슷한 의문을 품었을지 모르겠다. 그의 결론은 비록 유방에게 건달 특유의 허세며 무례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와 의리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부하들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삼국지>의 주인공인 세 나라의 군주만 해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반면 유방의 경우에는 그들만큼의 매력도 찾기 힘드니, 결국 본인의 능력보다는 참모와 장수의 '템빨'로 행운을 얻었다는 박한 평가를 해도 무리는 아닐 법하다. 물론 유비 역시 비슷한 '템빨' 덕을 본 사람이기는 하지만, 답답할만큼 의리를 강조하는 점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었다.
한데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에 나왔듯이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것도 능력이니, 이런 점에서라면 유방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해야 맞겠다. 그의 장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 회음후 한신인데, 본래 항우 밑에 있다가 등용되지 못해 유방 밑으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등용되어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물론 한신도 항상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꾀를 부리기도 했는데, 이때마다 유방은 기분 나빠 하면서도 상대를 잘 구슬려서 써먹었다. 하지만 전쟁의 달인 한신도 천하를 제패한 유방에게는 허를 찔려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때에 가서야 '토사구팽'(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이란 격언을 인용해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지난 주에 새삼스레 한신의 일화를 떠올린 까닭은 최근 논란이 된 검찰청 폐지 결정과, 곧이어 나온 특검 파견 검사들의 복귀 요구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는데, 한창 파견 근무 중에 모기관이 사라진다면 누구라도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하지만, 검사야 군인과는 다르니 여차 하면 사표 쓰고 나가면 그만 아닐까.
결국에는 이것도 여당의 자칭 '검찰 개혁' 가속화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비유하자면 빈대가 있다고 초가삼간 태운 격인데, 알고 보니 당장 써야 할 세간살이도 초가삼간 안에 들어 있었다고나 할까. 여러 방면에서 답답하게 진행되는 특검 조사나 다 끝나고 하면 모를까, 역시 뜬금없던 방통위 폐지처럼 지나치게 서두르다 보니 불만이 나오는 듯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검찰이라는 밑동을 흔드는 상황에서 특검이라는 가지가 멀쩡할 리 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검찰 개혁보다 내란 특검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 것이야 사냥꾼 마음대로지만, 문제는 아직 토끼를 다 잡지도 못한 상황 아닌가. 지나치게 성급하고 거친 행보이니, 자칭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될 수밖에.
사실 '토사구팽'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생기는데,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 파면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운 털이 박혀 좌천된 검사를 굳이 검찰총장으로 등용했는데, 이후 갈등이 벌어졌지만 곧바로 쳐내지 못하며 결국 야당 대선 후보까지 되고 말았으며, 그렇게 출범한 정권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당시 법무장관 추미애와 징계와 소송을 주고받으며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대통령 문재인은 혼자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위선적 면모를 보였고, 윤석열은 마치 '도깨비 사과'처럼 때리면 때릴수록 인기가 커진 끝에 여당과 원수지고 야당으로 가서 대선 후보까지 되어 보란 듯 원한을 되갚았으니, 앞서 설명한 회음후 한신의 행적과도 유사한 바가 없지 않았다고 하겠다.
이후에 드러난 논란을 보면 윤석열은 검찰총장 등용 이전부터 허물 많은 사람이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특검 이후에도 써먹을 칼잡이가 필요해 건사하다 결국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다. 비유하자면 토끼를 잡고 나서도 사냥개를 삶지 않아 생겨난 문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듯 세상 모든 개의 씨를 말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검찰 대신 경찰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에 대한 의문도 없지 않다. 경찰도 검찰 못지않게 크나큰 비판과 불만의 대상인데다가, 양쪽 모두 역대 정권에서 '주구' 역할에 충실해 왔음을 감안하면, 이제 와서 제멋대로이고 입질 잦은 이 사냥개를 버리고 역시나 제멋대로이고 입질 잦은 저 사냥개를 택한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검찰청이 없어지고 검사의 역할이 변해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 일을 담당해야 한다. 흔히 말하듯 칼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부가 잘못했다고 조직을 없앤다면, 사실 대통령실과 국회야말로 제일 먼저 없어져야 할 조직이 아닐까. 역시나 갑작스러운 '배임죄 폐지' 제안처럼,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와중에 뜬금없이 방통위를 폐지하고 눈엣가시 위원장을 쫓아냈지만, 이진숙이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의 윤석열과 유사한 '도깨비 사과' 효과 덕분에 야당의 새로운 영웅으로 대두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개고기 금지법이 생겨서 그런가, 어쩐지 지금은 사냥개는 고사하고 그냥 개 삶는 방법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