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4대 문학상이라면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노벨문학상,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말라파르테상, 이상문학상이다. 그리고 소설가 한강은 이 네 가지 문학상을 석권한 국내 유일의 작가이자, 아직까지는 세계 유일의 작가로 이미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노벨문학상은 노벨을 기념하려는 바이오, 부커상은 부커를 기념하려는 바이며, 말라파르테상은 말라파르테를 기념하려는 바이고, 이상문학상은 이상을 기념하려는 바이니, 결국 해당 인물 각각의 이상에 버금가는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거니 싶다.
그런데 이 가운데 다소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말라파르테상의 연원인 이탈리아 작가 쿠르초 말라파르테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 각지를 누비며 활동한 이 작가 겸 언론인이 사실 정치 성향으로는 무려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분노하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 나가던 사람들이라면 이 뜻밖의 제보에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자인 것도 고약한데, 심지어 파시스트이기까지 했던 사람을 기념하는 상을 받은 한국 작가라면 그 성향 역시 의심스러울 테니.
실제로 말라파르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한 로마 진군에도 동행했다. 비록 나중에는 파시스트 정부에게 외면 받아 입장을 선회하게 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예명인 '말라파르테'(Malaparte)조차 "나쁜 편"이라는 뜻으로, "좋은 편"이라는 뜻인 나폴레옹의 성 '보나파르트'(Bonaparte)를 뒤집은 것으로서, 저 유명한 군인 출신 황제의 가문이 과거 '말라파르테'에서 '보나파르트'로 성을 바꾸었던 것에 역행한 행보였다.
이처럼 수상쩍고도 위험천만한 인물인 말라파르테의 대표작이 바로 <쿠데타의 기술>인데, 단순히 문헌 자료만 뒤적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례를 직간접으로 체험한 현장감이 특징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쿠데타 직관한 썰 푼다'쯤 되려나.
이는 또 다른 대표작 <망가진 세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외관상 논픽션에다가 체험과 상상, 또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 말라파르테 특유의 창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서까지 찬반양론이 나온 것도 그래서이다.
<쿠데타의 기술>은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로 평가된 1799년 나폴레옹의 정권 장악부터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1920년 폴란드의 5월 쿠데타, 1920년 독일의 카프 폭동,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로마 진군 같은 실례를 통해서 쿠데타의 실제 전술을 분석한다.
급기야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트로츠키가 이 책의 내용에 '긁힌' 나머지 망명 중에 어렵사리 얻은 라디오 방송 연설 기회에서 할당된 시간 대부분을 말라파르테의 책 내용을 비난하는 데에 사용했고, '그만 하라'는 저자의 전보에 '너나 그만해'라고 응수하기까지 했다.
말라파르테는 이 책에서 히틀러를 '여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나치를 폄하한 것 때문에 뒤늦게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탄압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여성 폄하 발언이야말로 히틀러 본인의 악의적 발언보다 더욱 문제가 될 법하다.(그래서 절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기술>은 쿠데타를 모의하는 쪽에게는 물론이고, 반대로 쿠데타를 방지하는 쪽에게도 유용한 자료로 간주되어서, 급기야 일부 국가에서는 책을 비판하고 금지하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 말라파르테의 저작 전반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배치되는 내용을 다수 찾아내고 있으니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방향을 여러 번 바꾸었던 100년 전의 유럽에서 이 책이 큰 관심을 끌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쯤 되면 얼마 전 뜬금없는 비상 계엄 때에도 누군가는 이 책을 참조할 만도 했을 법한데,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였던 그날의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참조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국내 유일의 번역본이 이미 절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수 정권으로부터 불온 사상 유포자 취급을 받는 소설가에게도 시상한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 기념상의 유래인 작가이다 보니, 누가 굳이 소개했더라도 애써 외면해 버렸을 법하다.
그렇다면 이번 비상 계엄의 실패 역시 소설가 한강의, 또는 그가 받은 상의 유래인 말라파르테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귀님 눈에는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인다. 물론 무지한 사람들은 그 헛소동도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인 대통령의 오만함이 낳은 실책이라 보는 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