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치킨집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의 이재용, 현대자동차의 정의선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화제였다. 이후로 셋이 앉았던 자리에 나도 한 번 앉아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해당 좌석의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했다고도 전한다. 세 사람이 사용한 식탁에 각 기업 로고와 이름 명패도 붙였으니, 이쯤 되면 현대판 성유물인 셈이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저 세 사람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주도적인 기업들의 대표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현대 기술의 상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받겠다는 미신적인 이유로 그 좌석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니, 새삼스레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달까.


다만 셋 중 두 명은 자기 능력보다 혈통 덕분에 그 자리에 갔음을 감안한다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저 '기운'의 실체도 대략 짐작된다. 개인 역량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우연을 통해 부잣집에 태어나 3대째 재벌로 행세하는 사람들이니, 그 행운이 전염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주 잘못까진 아닌 듯하고, 미신적 추구의 대상인 현대의 성유물이 충분히 될 만해 보인다. 


성유물이란 불교의 사리처럼 명성이 높은 종교인의 사후에 남은 유해나 유품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모양인데, 특히 중세에는 '짝퉁' 성유물이 하도 많아서 예수의 '진품' 십자가만 수십 개에 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종교개혁가 칼뱅의 "성해론(성물론)"은 이런 부조리에 대해 합리적인 차원에서의 반박을 시도한 글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수도사가 사망하자 모두들 그 시신이 썩지 않고 향기를 풍길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반나절도 되지 않아 시신이 썩으며 물이 줄줄 흐르자 '그렇다면 저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선자였던 건가?' 하고 다들 '현타'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나 성유물에 대한 미신적 집착을 꼬집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법력이 높으면 사리가 많다'는 믿음이 팽배해서 성철 같은 저명한 고승이 사망하면 그 사리 수습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불교계에서도 이를 미신이라 간주해서인지 법정의 사례에서처럼 지금은 사리 수습 없이 다비식을 마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리가 많이 나왔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퍼지는 듯하지만).


칼뱅이 비판했던 예수의 각종 '진품' 성유물과 비슷하게, 불교에서도 부처의 시신 일부인 '진신사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진신사리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사찰이 여러 군데인데, 이 경우에는 진짜 부처를 모신 까닭에 불상을 놓아두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마침 바깥양반도 얼마 전 여행 중에 그런 절에 다녀왔다기에 의외로 많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화제가 된 저 치킨집의 성유물은 과연 진짜일까. 만약 앞서 다녀간 세 사람의 능력과 행운 덕분에 누구나 그 자리에 앉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치면, 당장 치킨집 주인부터 그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가 자기 집에 놓고 혼자만 이용하지 않을까. 아니, 당장 치킨집 본사에서 가져다가 사장실에 놓아두고 정말 뽕을 뽑으려 하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그 치킨집이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 식탁과 의자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미국 기록보관소에서 가져다 보관한다는 태프트의 대형 욕조처럼 이것도 21세기 한국과 세계 경제의 결정적 장면의 소품으로 인정되어 삼성전자 박물관이나 현대자동차 기록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될까? 아니면 그냥 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장 신세로 전락할까?


문득 언젠가 어느 KFC 지점에서 커널 샌더스 입상을 내다버린 모습을 본 것이 기억난다. 지점 앞 길가에 세워 놓고 등짝에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을 본 바깥양반이 노인 공경을 하지 않는다며 분기탱천했는데, 여기저기 낡고 도색이 벗겨진 모습을 보니 제아무리 친근하고 상징적인 물건이라도 용도가 다하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에 불과함을 느꼈다.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세월호 사고 직후 체육관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의 일화도 떠오른다.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빨리 찾으려는 마음에, 옆사람이 시신을 수습해 나가면 얼른 그 자리로 옮겨 앉으며 행운을 바랐다는 일화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 역시 존 디디온의 말처럼 '마술적 사고'의 한 가지 눈물겨운 사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이 '무안공항 참사'인지 '제주공항 사고'인지의 1주기였다. 마침 지난 주에 김건희 특검의 결과 발표도 있어서 시간 참 빠르다 싶었는데, 특검 시작보다 더 먼저인 이 비행기 사고만큼은 어째서인지 수사도 처벌도 영 지지부진해 보이니 희한한 노릇이다. 유족의 애끓는 심정으로야 저 치킨집에 있다는 '행운의 자리'라도 빌려오고 싶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장을 정리하다 지난번에 구입한 시어도어 그레이의 <세상의 모든 원소 118>를 다시 꺼내 뒤적여 보니 의외로 오역이 많아서 놀랐다. 제목 그대로 원소 118종의 실물과 가공품을 다양한 사진으로 소개한 화보집이어서 구매 직후 그림만 대강 살펴보고 집어넣었는데, 이번에야 해설과 캡션을 꼼꼼히 읽어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속출하기에 이상하다 싶었다.


아직 완독한 것까진 아니지만 '마이트너륨은 리제 마이트너가 발견했다' 같은 확실하고도 멍청한 오역 몇 가지만 눈에 띄는 대로 원문을 찾아서 대조해 보았더니 문제가 꽤 심각했다. 툭하면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생각 없이 옮긴 모양인데, 공짜 알바할 생각은 없으니 알라딘 미리보기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두 개만 지적해 보자.


"수소" 장에서 이 원소를 채운 비행선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고를 설명한 다음, "그후 연료는 덜 위험한 가솔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15쪽)고 썼는데, 저 비행선에서 수소의 역할은 연료가 아니라 풍선을 채워 양력(揚力)을 제공한 것이므로 완전 잘못된 설명이다. 정확히 옮기면 "휘발유를 채운 차량보다는 수소를 채운 차량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는 뜻이다.


비행선 관련 오역은 "헬륨" 장에도 있다. 수소를 헬륨으로 바꿀 경우 "가격이 비싸다는 점과 이 때문에 사용 빈도가 낮다는" 게 문제라며, "이 인기 없는 모델로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사람?"(17쪽) 하고 뜬금없이 묻는데, 정확히 옮기면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점과 양력(揚力)이 덜하다는 점이다. 높이 날지 못하는 비행선을 굳이 탈 사람이 있을까?"란 뜻이다.


결국 번역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소설을 써놓은 셈이다. 왜 수소 이야기를 하다 휘발유 이야기가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아가 수소와 대조적인 헬륨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라도 했다면 의외로 쉽게 정답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결국 숙고도 부족하고 정성도 부족한 채로 부실하게 번역된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2010년에 초판이 간행된 이래 2012년과 2023년에 '개정판'이 두 번이나 나왔다. 하지만 위에 지적했듯이 페이지마다 오역이 한두 개씩 나오는 상황이니, 도대체 뭘 개정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기껏해야 구판의 "2개"를 "두 개"로 바꾸고 "우리가 오늘날"을 "오늘날 우리가"로 수정한 정도이니, 결국 '개정판'은 가격 인상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 보인다.


번역자는 한 명이 아니라 '꿈꾸는 과학'이라는 단체이다. 과학자 정재승이 주도한 과학 애호가 모임이라는데, 결과만 보면 사실상 실력도 없는 아마추어들이 좋은 책 하나를 망쳐놓은 셈이 되었으니 괘씸한 일이다. 실력도 정성도 없는 번역자도 문제이지만, 과학 전공자도 아닌 나귀님조차도 쉽게 눈치챈 오류를 15년째 방치한 출판사도 괘씸하긴 마찬가지고...



[*] 시오도어 그레이의 약력을 보니 물리학자 스티븐 울프럼과 함께 울프럼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였다는 내용도 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역사를 서술한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을 보면 울프럼은 약관의 나이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천재 소년으로 묘사되는데, 이후 울프럼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 연구용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 쪽으로 진출했다고 알고 있다. 무려 1200쪽에 육박하는 저서 <새로운 종류의 과학>이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확인해 보니 그것도 이제 사반세기 전의 일이고, 저자도 모두의 흥분과 기대만큼 혁신적인 돌파구는 아직 만들지 못한 채 60대 노인이 되었으니 사람 앞날은 모를 일이다. 그레이는 이후 울프럼 연구소를 떠나 과학 저술과 원소 수집으로 소일하는 모양이니 재미있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취미로 원소를 수집하는 사람이다' 정도인 셈인데, 자기가 수집한 물건을 책이나 기타 콘텐츠로 재가공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수집가의 바람이자 목표이자 이상이자 '환상의 마로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원소 책부터 번역이 이렇게 개판이니, 줄줄이 번역된 나머지 책을 펼쳐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가격이나 싸면 한 번 속아보는 셈이라도 치겠지만, 하나같이 화보집이니, 이건 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안 바빠서 잘 들르지 못하던 알라딘에서 2025년 '서재의 달인'을 선정했다는 사실을 지난 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귀님도 선정되긴 했는데, 문제는 지금껏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메일이나 문자로도 통보받지 못했고, 툭하면 장바구니 담은 상품이나 적립금이 삭제될 예정이라며 호들갑인 알라딘 앱 알림으로도 역시나 통보받지 못했다.


혹시 이메일로 보냈는데 나귀님이 무심코 넘겼나 싶어 받은메일함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휴지통이나 스팸메일함으로 자동 분류되었나 싶어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 '이달의 마이페이퍼 당첨' 공지나 '개인정보 이용내역' 공지는 멀쩡하게 들어와 있으니, 아무래도 나귀님 쪽에서 뭘 잘못해서 못 받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러다 보니 '서재의 달인'에게 주는 기념품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건 선정자가 알라딘의 안내에 따라서 '기념품 받을 주소'를 별도로 입력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12월 21일까지 신청해야 한다던데, 나귀님은 그 다음날인 22일에 가서야 정말 우연히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미 버스 떠난 정류장에 혼자 남은 셈이었다.


이왕 '서재의 달인'을 선정하려면 제대로 통보라도 하든가, 또 기념품을 주려면 평소 알라딘 상품을 배송받던 바로 그 주소로 그냥 보내든가 하지, 애초부터 통보도 제대로 안 하고 마감 기한까지 정해서 "해당일까지 정보가 입력되지 않은 경우, 당첨이 취소되어 발송 대상에서 제외되며 발송이 불가능합니다"라는 조건까지 걸어 놓은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전에는 이런 번거로운 주소 입력 없이도 각종 기념품과 사은품이 잘만 배송되었다. 심지어 때로는 왜 주는지 알 수도 없는 선물이 날아오는 바람에 오히려 번거로웠을 정도인데, 초기의 '알라딘 굿즈' 가운데 하나인 텀블러가 그러했다. 너무 많이 만들어 처치곤란이었는지, 나중에는 책만 사면 무조건 넣어줘서 나귀님도 열댓 개쯤을 받았다.


물론 알라딘 굿즈가 대부분 그러하듯 실용성 따위는 완전 결여한 물건이어서, 바깥양반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아 있는 몇 개를 실제로 써 보았더니, 플라스틱 뚜껑이 완전 밀봉되지는 않아서 내용물이 새어나오기 일쑤였고, 테두리도 쉽게 갈라져 오래 못 쓰고 금세 버리고 말았다. 벽장을 살펴보니 아직 세 개나 남아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치우나 싶다.


이보다 더 꼴불견인 사은품도 있다. 역시나 초창기 알라딘 굿즈인데, 엉성하기 짝이 없는 투명 플라스틱 물병에다가 알파벳으로 'BORGES'라고 적어 놓고 '보르헤스 물병'이라고 우긴 것이어서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지금은 이보다 더 발전해서 책 표지나 각종 그림까지도 활용하는 듯하지만, '예쁜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본질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하다.


물론 알라딘 기념품 중에도 자체 제작 굿즈까진 아닌 물건은 쓸만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노란색 배트맨 마크 머그컵이라든지, 블루투스 미니 키보드가 그러해서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었고 아직 잘 갖고 있다. 물론 양쪽 모두 왜 받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에만 해도 알라딘에서는 별도의 신청 과정 없이도 기념품을 알아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번 '서재의 달인' 기념품도 결국에는 어찌어찌 오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 보기도 했다. 말로는 신청하지 않으면 안 준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래도 애초에 선정자 몫으로 배정된 수량이 있을 터이니,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창고에 도로 넣기 귀찮아서라도 결국 알라딘에서 연락을 해 오거나, 알아서 발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다른 '서재의 달인' 선정자들은 기념품을 받았다는 인증 글을 줄줄이 올린 것으로 보아 배송도 끝난 듯하니, 결국 나귀님 몫은 영영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음 주에 갑자기 '퇴사자가 착오로 알라딘 에코백에 넣어 청계천에 갖다 버린 나귀님 사은품'이 발견되었다며 물에 젖은 다이어리와 캘린더가 뒤늦게 날아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 그런데 과거 머그컵과 블루투스 키보드 같은 유용한 기념품까지 받아 본 나귀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기념품인 다이어리와 캘린더는 솔직히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평소 그런 물건을 쓰지 않는 나귀님이나 바깥양반에겐 누가 선물로 줘도 솔직히 처치곤란 상황이니, 차라리 이번에 기념품을 신청하지 못해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르겠다. 심지어 알라딘에서는 '서재의 달인'과 '북플의 달인' 동시 선정자에게도 달랑 한 가지 기념품만 보내는 인색한 태도를 드러냈고, 축하 카드를 동봉하지 않고 별도 배송하는 바람에 선물 상자는 두 개인데 막상 열어보니 하나는 공갈이라서 사람 황당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멍청한 실수까지 저질렀다고 전한다. 이쯤 되면 나귀님처럼 애초부터 '서재의 달인' 선정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것이야 애교 수준이라고 해야 할 법하니, 이래저래 인심을 쓰려다 뒷말만 무성해진 2025년 '서재의 달인' 선정 행사인 듯하다. 물론 나귀님이 보기에는 이렇게 찝찝하고 어설픈 사은품 배송 역시 알라딘 사측의 지속적인 '알라딘 서재' 홀대의 연장인 듯하니, 이제 와서 딱히 이상하거나 억울하다고 여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라딘 첫화면에서 뭘 또 잘못 눌러서 한동안 잊었던 "투비컨티뉴드" 메뉴로 들어가 보니, 거기 올라온 게시물 중에 눈에 익은 그림체의 만화가 보인다. 바로 네이버 웹툰에서 <모두에게 완자가>라는 일상툰을 연재했던 작가가 <너에게 완자가>라는 제목으로 신작을 연재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연인도 바뀌어서 '야부'("야채 부리토"의 준말?) 대신 '챔새'가 나온다.


이 만화의 특징은 저자가 동성애자이다 보니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소재의 특성상 저자의 사생활 노출부터 타인의 '아웃팅' 위험까지 포함해서 연재 중에 이런저런 논란도 다양하게 있었던 모양이다. 완결 이후 신작이 없어 궁금하더니만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셈인데, 이건 또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귀님으로서는 딱히 공감할 만한 데가 거의 없다시피 한 만화를 여지껏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비교적 나중의 회차 가운데 상당히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 하필이면 엄마가 아기를 낳게 되어, 아빠는 병원에 가고 완자 혼자서 학교에 간다. 입학식이 끝났지만 보호자가 없었으니 선생님마저 퇴근한 교실에 꼬맹이 혼자 남는다.


이날 벌어진 사건 중에는 한글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완자가 자기 이름을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름표를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일이 있었다. 문제는 이름표를 붙인 채 고개를 숙여서 보고 그리다 보니 글자가 뒤집힌 채로 (예를 들어 "는"을 "극"으로, 또는 "너구리"를 "RtA"로) 잘못 쓰는 대목이다.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는 일화였다.


투비컨티뉴드라는 것도 한때는 지금의 만권당 못지않게 광고를 요란하게 하더니만, 어느새 시들해진 듯하다. 사실 완자보다 <여탕 보고서>와 <극한견주>의 작가 마일로의 만화 때문에라도 자주 들러야 했을 터인데, 실제로는 그게 있다는 사실조차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어째서일까. 물론 조회수만 놓고 보면 나귀님이 쓴 글보다는 훨씬 낫긴 하더라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력 좋지 않은 나귀님으로서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의 작품을 구경하다 보니, <라스트 울프>라는 것이 눈에 띄기에 저게 혹시 '그 책'인가 싶었다. 지난 여름엔가 영국 작가의 동명 단편을 구글링하다가, 그게 저 작가의 장편 내용이라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구글 AI의 "환각" 때문에 짜증이 막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 발단은 추리소설 꽂아 놓은 책장을 뒤지다 예전에 구입한 단편 선집들을 꺼내본 거였다. 2000년의 저작권법 시행 이전에 나온 책이 대부분이다 보니, 외국의 단편 선집을 그대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국내 번역자나 출판사가 임의대로 엮어 만든 것도 있었다. 지금 와서 살펴보니 몇 가지 작품은 중복 수록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유명하고 재미있는 까닭인 듯하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된 꼬마가 하는 말에 소름이 돋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프레드 S. 토비의 단편 "여행 중인 아이"는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오일우 & 오수현 편역, 모음사, 1992)에도 "혼자 여행하는 아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세계 서스펜스 명작여행>(정태원 편역, 우담, 1994)에도 "어린 여행객"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두 권 모두 '초단편'에 해당하는 짧은 작품을 주로 수록했는데, 편역서임을 감안하면 어쨌거나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지금에 와서는 다시 나오기 힘든 희귀본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는 후자에 수록된 헨리 스레사의 "시험날"처럼 1980년대 <환상특급> 리메이크로 영상화되어 유명해진 (나귀님도 소설보다 저 드라마 에피소드로 처음 접했다!) 작품도 있었다. 


"시험날"은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정부 주관 시험을 앞두고 불안을 느끼는 소년과 그 부모의 이야기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해리슨 버저론"과도 유사한 내용인데, 냉전 시대인 20세기 후반에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당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묘사한 소설이 유행했다. <화씨 451>도 그중 하나인데, 흥미롭게도 여기서는 정치적 공정성이 억압을 가한다.


여하간 이번에 꺼낸 단편집 중에는 명지사의 '세계 미스테리 특선' 시리즈의 제5권 <영, 미, 캐나다 미스테리 걸작선>(정성호 편역, 1993)도 있었는데, 그중 레지날드 힐의 "마지막 늑대"라는 단편이 눈에 띄었다. 특이한 제목이라 한 번 읽어보았는데, 가뜩이나 모호한 내용에 번역도 자연스럽지 않아서 결말이 이해되지 않기에 원문을 찾아 대조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해질녘에 혼자서 산에서 내려오는 남자이다. 금세 날이 어두워져 발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수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가쁜 숨을 헐떡이고 눈빛을 번뜩이는 커다란 짐승의 형체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혼비백산한 남자는 내려오던 산길을 되짚어 도망치며 늑대가 아닐까 의심하는데, 사실 영국의 '마지막 늑대'는 15세기에 이미 멸종했다 전한다.


그를 놀래킨 수수께끼의 존재를 실제 늑대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불안한 심리에서 비롯된 헛것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 작품은 공포 소설일 수도 있고 심리 소설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의외의 반전을 거쳐 범죄 소설일 수도 있다. 나귀님이 원문을 보고 싶어 하는 까닭도 바로 그런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에 따라서 작품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Reginald Hill + The Last Wolf"로 구글링해 보니, 일반적인 검색 결과 대신 'AI 개요'가 맨 위에 나오는데,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마지막 늑대'란 것이 없고, 그건 다른 헝가리 작가의 작품"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서슴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헝가리 작가'가 바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해당 작품의 번역서가 <라스트 울프>이다.


십중팔구 제목이 같은 두 작품을 혼동한 모양인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이번에는 "Reginald Hill + short story + The Last Wolf"로 구글링했더니, 이 작가의 이 작품이 실제로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한 설명에서는 헝가리 작가의 동명 장편만 줄줄이 언급하고 있었다. 첫 단추는 어찌어찌 끼웠지만 다음부터는 역시나 삼천포로 빠져버렸달까.


이쯤 되니 바깥양반이 챗GPT를 사용하면서 종종 '얘가 거짓말을 잘 한다'고 투덜거렸던 내용이 무엇인지 알 만했다. 다수가 검색하는 흔한 영화에 대해서는 적중률도 높을지 몰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검색하자 그런 영화는 없다는 둥, 다른 영화와 혼동했다는 둥, 제목은 같지만 내용이 다르다는 둥, 완전히 사실과 어긋난 주장만 서슴없는 늘어놓더라는 거다.


바깥양반도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 물어보니까 챗GPT가 용어부터 엉뚱하게 사용하기에, 야단치며(?) 일일이 교정해 주어서 이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게 길들였다(?) 자랑하던데,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 바깥양반이 인공지능에게 무료 과외를 해준 셈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귀님도 구글 AI에게 그게 아니라고 야단쳤다면, 결국 정보만 제공해주는 셈일까.


차라리 예전 구글 검색처럼 "Reginald Hill"과 "The Last Wolf"가 겹치는 검색 결과부터 차례대로 보여주었더라면, 나귀님이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해당 단편은 생각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는 것이라든지, 어느 헝가리 작가의 동명 장편도 있다는 것이라든지 등등의 정보를 스스로 종합해서 알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글 AI의 거짓말이 혼란만 키운다.


이것이야말로 테드 창이 "챗GPT는 웹의 흐릿한 JPEG이다"라는 기고문에서 지적한 문제점의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면 되는데 마치 아는 척하면서 엉터리 정보를 줄줄 늘어놓으니, 나귀님이 그 작품을 실제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깜박 속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과연 인공지능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을 해 봐야 할 것만 같다.


검색해 보니 구글AI나 챗GPT의 거짓말처럼 '실제로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을 가리켜 '인공지능 환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조세호의 '가짜의 삶'처럼 자기 능력을 벗어나더라도 일단 주어진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다 보니, 사실이건 아니건 되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일까. 모르면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학습'의 기본일 텐데.


이제는 <라스트 울프>의 저자가 급기야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앞으로 "마지막 늑대"라는 소설에 관해 검색하면 십중팔구 이쪽에 관한 결과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레지날드 힐의 단편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변이 점차 굳어지지 않을까. 결국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뭐가 더 유명한지에 따라서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셈이라 하겠다.


다만 한 가지 의외의 가능성도 남아 있으니, 바로 "마지막 늑대"를 검색하던 나귀님에게 전혀 생소한 작품인 <라스트 울프>의 가치를 애써 일깨워주려던 AI의 예지력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몇 달이나 앞둔 시점에서도, 혹시나 구글 AI는 특유의 알고리즘과 메커니즘과 기타 등등을 통해 그 결과를 미리 알고 나귀님께 넌지시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AI는 정보를 취합하고 정련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예언자이며 점쟁이로서의 위상을 이미 확보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도 같다. 물론 그보다는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 중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AI야, <라스트 울프>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어떨 것 같아?" 하고 미리 물어본 것 때문에 결과가 누설되었을 가능성이 더 그럴싸해 보이긴 한다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