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최화정의 유튜브에서 바로 위층에 산다는 동료 탤런트 윤유선의 집을 방문하는 내용이 있기에 한 번 눌러 보았다. 윤유선이라면 아역 연기자 출신으로 성인 배역까지 안착한 사례로서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현역이 아닐까 싶은데, 뽀빠이 이상용이 사회를 맡은 <모이자 노래하자> 시절부터 봐 왔으니, 사실상 임성훈 못지않게 오래 본 얼굴이라 해야 맞겠다.


예전에 어느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서 운전 중 교통 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끊게 되어서 투덜투덜 했더니, 판사인 남편이 '하여간 범죄자는 자기 죄를 시인하는 법이 없다'며 나무라기에 머쓱해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던 것도 기억난다. 최근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도 잠깐 맡았었는데, 반갑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행이 썩 매끄럽지는 못해서 듣기가 좀 불편했다.


그나저나 윤유선의 집 거실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물건이 놓여 있었으니, 바로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화집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화집이 아니라, 한때 '책을 사면 받침대를 끼워준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가로 70센티미터, 세로 110센티미터의 초대형 화집이었는데, 특유의 삼색 삼발이 받침대 위에 얹힌 상태로 윤유선의 집 거실 한쪽에 놓여 있었던 거다.


호크니 그림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으니, 대신 화집을 놓아두고 하루에 한 작품씩 감상한다는 것이 윤유선의 설명이다. 그림 애호가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 싶은데, 재미있는 사실은 2016년에 간행된 그 초대형 화집조차도 판매 가격이 무려 400만 원이어서 일반인은 감히 쳐다볼 엄두조차 못 났다는 거다.(지금은 알라딘에서 무려 850만 원에 팔고 있다!)


호크니 화집을 간행한 독일 출판사 타셴은 이와 유사한 초대형 한정판을 여럿 간행했다고 알고 있는데,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면 가장 비싼 것은 역시나 호크니의 MY WINDOW라는 한정판 화집(610번)이다. 가격이 무려 2300만 원이어서 3% 마일리지만 해도 69만 원에 달하는데, 해외 가격이 3500달러(현재 4800만 원)였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해야 할까.


그 다음으로 비싼 책이 MURALS OF TIBET(티벳 불화)인데, 이건 겨우(?) 1800만 원밖에는 안 한다. 호크니 초대형 화집처럼 받침대를 끼워주는 상품 중에는 애니 라이보비츠의 우피 골드버그 사진집이 1100만 원으로 가장 비싸다. 물론 그 가격만 놓고 보면 받침대가 아니라 아예 호크니 저택의 방 한 칸이라도 잠깐 빌려주어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데 타셴에서는 화집 말고 받침대만 팔기도 한다. 묵직한 화집까지 충분히 지탱하는 두툼한 투명 플라스틱 재질의 튼튼한 물건인데, 알라딘에서도 다양한 크기와 색깔에 따라 7만 원대에서 20만 원대까지 다양한 종류로 판매하니, 각자의 용도와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구입하면 되겠다. 이거에 비하자면 알라딘 굿즈로 나오는 독서대는 정말 장난감 수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X자 형태의 투명 아크릴 타셴 받침대가 알라딘 중고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저게 중고면 도대체 어떤 상태일지, 또 어떻게 포장해서 배송할지 의문이라 구입하진 않았는데, 구글링해 보니 납작한 상자에 들어 있는 납작한 판대기를 X자 형태로 교차시켜 완성하는 방식이다. 물론 멀끔한 외관에 비해 활용도는 떨어지는 듯해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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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책을 새로 냈다고 알라딘에서 광고하기에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는데, 광복절 특사로 윤미향과 함께 사면되었다기에 씁쓸했다. 이른바 '법잘알'이면서도 '법꾸라지' 행보를 보인 점에서는 현재 구치소에서 속옷 시위 중이라는 윤석열과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것은 아닌가 싶고, 그 지지자들 역시 윤석열 지지자들과 별로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만.


그러고 보니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도 사면으로 풀려났었는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정치적 탄압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본인이 죄를 안 지었다고 주장하면, 사면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았을까. 조국의 경우는 김훈의 지적처럼 '내새끼 지상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데, 본인은 무고하다고 항변하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조국의 신간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출판사가 바로 김영사라는 사실이었다. 이 출판사는 이미 이재명과 문재인의 책을 간행했으니 조국의 책도 충분히 간행할 만해 보이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안철수와 이명박의 책도 간행했고, 심지어 최근 김건희 특검에서 문제의 핵심으로 대두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과 한학자 부부의 책도 간행한 바 있었다.


어찌 보면 한 가지 분야나 노선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 출판사라 할 만하고, 또 어찌 보면 일단 돈만 되면 뭐든지 내고 보는 상업주의로 일관하는 출판사인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작가만큼 뻔뻔한 사람은 없다. 물론 출판인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이라던 프랑스 출판계의 전설 가스통 갈리마르의 일침이다.


나귀님이야 예전부터 김영사의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독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김영사의 사주 김정섭은 불교학자 백성욱의 제자로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한편 재가 불자로서 수련원도 운영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초기에는 <리그베다>, 구르지예프의 <위대한 만남>, 간디의 <비폭력 저항> 같은 영성 분야의 번역서도 여러 권 간행한 바 있다.


초기의 역작으로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행되는 책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의 <불타의 세계>인데, 이후 선어록 등 불교 서적도 여러 권 간행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80년대에 소설 <비밀일기>로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되고, 90년대에 김우중과 스티븐 코비의 책 같은 밀리언셀러를 연이어 내놓으면서부터 성향이 확 달라졌지만.


김영사의 놀라운 성장세와 연관해서 항상 언급되던 사람이 전성기에 사장으로 재직한 박은주이다. 본래 편집부 직원 출신이어서 <바이오리듬>이라는 초기의 편역서에는 저자로도 이름을 올린 바 있었는데, 이후 자수성가한 여성 대표라는 희귀성 때문인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물론 그 와중에 김희선 화보 사건으로 명성이 많이 실추되었지만).


그랬던 박은주가 마지막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김영사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며 사주 김정섭을 횡령 혐의로 고발했던 사건에서였다. 심지어 이 출판사가 사실상 사이비 종교 단체에 불과하고, 자신은 월급까지 상납하며 착취당했다는 놀라운 폭로까지 내놓았다. 이에 김정섭도 박은주를 횡령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후 재판에서는 김정섭이 무혐의 판결을 얻어낸 반면, 박은주는 유죄가 인정되어 구속되었다. 횡령 혐의 중에는 김영사에서 자서전을 간행한 A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것도 있기에 이니셜만 보고 안철수인가 싶었는데, 김규환이라는 또 다른 정치인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박은주는 2018년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전하는데, 이후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니, 2023년 김영사 사주 김정섭(훗날 '김강유'로 개명)이 사망하며 나온 기사마다 박은주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언급한 것이 전부이니, 한때의 스타 출판인으로서는 씁쓸한 몰락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김영사는 박은주의 퇴장과 김정섭의 사망과 사이비 종교 단체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를 줄줄이 내며 잘 나가고 있는 듯하다.


김영사는 1976년에 설립되어 무려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인데, 그간의 행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논란을 비롯해 이래저래 실망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베스트셀러도 많이 내놓았지만 출판사를 대표하는 명저가 무엇인지 꼽아 보라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같은 해에 설립된 한길사가 베스트셀러와 묵직한 인문서 모두를 내놓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판테온북스의 앙드레 쉬프랭은 모회사 랜덤하우스의 공동 설립자 베네트 서프와 도널드 클로퍼가 좋은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관한 출판인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두 사람 이후의 랜덤하우스가 상업주의에 빠져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득 김영사도 차라리 정신세계사처럼 작고 소듕한 컬트 출판사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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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모기 때문에 깨어 부산떨다 보니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바깥양반도 물파스 바르고 화장실 다녀오고 하다 보니 더는 못잘 것 같다며 낮에 읽다 만 책을 집어들기에, 얼떨결에 새벽에 나란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 내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존 업다이크의 초기 단편을 완독하게 되었고.


이 작가의 단편 번역서가 있다는 사실은 한동안 잊고 살았다가, 얼마 전 "토끼" 시리즈의 재출간 소식에 그간 모아 놓은 절판본을 한 번 정리하려 책장을 뒤지면서 비로소 상기했다. 70년대 세계문학전집 유행의 끝자락에 등장해서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진 금성출판사의 120권짜리 시리즈에 <달려라 토끼>와 함께 무려 열두 편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존 업다이크는 무려 반세기 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장편 소설 23종, 단편집 18종, 시집 12종, 아동서 4종, 논픽션 12종을 펴냈다고 전한다. 금성출판사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1959년에 간행한 첫 단편집 <같은 문(The Same Door)>에 실린 총16편 (흥미롭게도 하나같이 <뉴요커>에 먼저 게재되었던 작품들이라고 한다)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다음 12편이다.



1. 필라델피아의 친구들 (Friends from Philadelphia)

2. 에이스 인 더 홀 (Ace in the Hole)

3. 내일이, 또 내일이... (Tomorrow and Tomorrow and So Forth)

4. 치과 의사의 의혹 (Dentistry and Doubt)

5. 소년의 휘파람 (The Kid's Whistling)

6. 불이 켜질 무렵 (Toward Evening)

7. 그리니치 빌리지의 눈 (Snowing in Greenwich Village)

8. 누가 노란 장미를 노랗게 만들었는가? (Who Made Yellow Roses Yellow?)

9. 그의 전성기 (His Finest Hour)

10. 1조 피트의 천연 가스 (A Trillion Feet of Gas)

11. 근친상간 (Incest)

12. 악어 (The Alligators)



오 헨리나 모파상의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단편들과 비교했을 때, 진지한 주제와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기는 했지만 뭔가 살짝 애매하거나 미진한 느낌도 솔직히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었던 "근친상간"조차도 막상 읽어보니 제목에서 가리키는 상황이 도대체 어디 나오는가 싶어 의아했으니까.


일각에서는 훗날 더 거대하게 자라날 작품 세계의 씨눈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숨어 있다고도 평가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에이스 인 더 홀"은 운동부 스타 출신 주인공이 직장을 때려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마주한다는 내용이라 "토끼" 시리즈의 원형으로 평가되고, "그리니치 빌리지의 눈"은 훗날 별도의 단편집으로 나온 "메이플" 연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최초로 발표된 단편 "필라델피아의 친구들"이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소년이 저녁에 갑자기 여사친 집에 찾아온다. 여사친은 그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어 왔나 싶어 반색하지만, 소년은 의외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용건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손님이 오셔서 술 심부름을 가야 하니, 읍내까지만 차로 좀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여사친의 아버지는 의외로 순순히 부탁에 응하고, 아예 값비싼 자기 차를 소년이 직접 운전하게 허락도 하지만, 고학력자인 소년의 부친이 저학력자인 자신보다 돈을 못 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꼬집는 말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힌 면모도 보여준다. 읍내에 도착하자 소년은 여사친과 함께 차에서 기다리고, 미성년자인 소년 대신 여사친의 아버지가 술을 사러 간다.


무슨 술을 살까 묻자, 소년은 '값싸고 좋은 술'로 부탁한다며 2달러를 건넨다. 잠시 후 술을 사온 여사친의 아버지가 거스름돈도 주지 않자 소년은 너무 비싼 걸 샀나 싶어 불안해 하고, 뒤늦게야 거스름돈치고는 너무 많은 금액을 건네받자 완전 싸구려로 샀나 싶어 또 불안해 하는데, 부녀와 작별 후 살펴본 술병에는 '샤토 무통 로칠드 1937'이라 적혀 있었다.


업다이크의 단편 중에는 펜실베이니아의 가상 마을 올링어를 무대로 하는 것들이 여럿이어서 훗날 <올링어 이야기(Olinger Stories)>(1964)로 별도 간행되기도 했는데, 거기 수록된 11편은 하나같이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성장 소설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금성출판사 전집 수록 단편 중에서는 "악어"와 "필라델피아의 친구들"이 <올링어 이야기>에도 들어간 작품이다.


그런데 첫 단편집에 있는 작품들을 읽고 나니 내친 김에 업다이크의 다른 단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최근 여러 번 다시 꺼내 보았던 시사영어사의 현대미국문학전집에도 몇 편쯤 있음직하기에 확인해 보니, 1962년에 나온 두 번째 단편집 <비둘기 깃(Pigeon Feathers and Other Stories)>에 수록된 총19편 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하는 4편이 제6권에 수록되어 있었다.



1. 월터 브릭즈 (Walter Briggs)

2. 도피 (Flight)

3. 마술사는 엄마를 때려야만 할까? (Should Wizard Hit Mommy?)

4. 비둘기 깃 (Pigeon Feathers)



이중에서는 "도피"와 "비둘기 깃"이 <올링어 이야기>에도 재수록되었다고 전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편집의 표제작인 "비둘기 깃"이었는데, 순진했던 소년이 독서를 통해 신앙의 위기를 겪고 허무주의에 사로잡힐 뻔하다가, 헛간을 어지럽히는 야생 비둘기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땅에 묻는 과정에서 에피파니를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비둘기 깃은 소년이 삶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비둘기의 깃털조차 오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이런 미물조차 세심하게 창조한 하느님이 나를 비롯한 인간에게 잔인할 리 없다는 확신을 품게 된 것이다.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어 하던 소년은 나름대로의 고민과 깨달음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게 된다.


물론 나귀님의 취향에는 시사영어사 전집에서 업다이크 다음에 수록된 버나드 맬러머드의 단편이 오히려 딱이기는 하다. 맬러머드의 단편은 쉽게 말해 내가 읽고 남에게 구연했을 때에도 비슷한 감동을 자아낼 만큼의 선명한 줄거리가 특징인 반면, 업다이크의 단편은 자질구레한 묘사가 강점이다 보니 읽으면서는 감탄하더라도 금세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고 만다.


맬러머드의 "요술통"에서는 미혼 랍비가 유대인 전문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지만, 허름하고 미심쩍은 중매장이 할아범이 소개하는 여자마다 성에 차지 않아 퇴짜를 놓는다. 그러다 하루는 중매장이가 건네준 봉투 속 사진 속에서 발견한 여자의 모습에 반해 만남을 신청하는데, 늘 자신만만했던 중매장이도 이때만큼은 당황하면서 사진을 빼앗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냐는 랍비의 물음에 모르셔도 된다고 둘러대던 중매장이는 상대방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사실대로 말한다. '내 딸년이오, 천벌을 받아도 아쉽지 않을 만큼 타락한 딸년이오!' 놀란 랍비는 마음을 접으려 노력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수척한 모습으로 중매장이를 찾아와 딱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중매장이도 마지못해 승낙한다.


단편 "감옥"에서는 구멍가게 주인인 중년 남자가 어느 날 단골 가운데 하나인 어린 소녀의 물건 훔치는 모습을 목격하고 고민에 빠진다. 이때부터 소녀를 유심히 관찰한 남자는 점점 대담해지는 도둑질에 착잡함을 느끼고,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을 되살려 범죄자를 교화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극적인 참회 장면을 상상하며 흐뭇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뒷방에서 역시나 흐뭇한 상상에 빠져 있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놀라 가게로 나온다. 알고 보니 문제의 소녀가 또 물건을 훔치다가 남자의 아내에게 걸린 것이었다. 도둑년 운운 하는 아내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남자는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지만, 화가 난 아내가 계속해서 소녀를 향해 언성을 높이자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뺨을 갈긴다.


남편의 이유 없는 폭행에 아내는 망연자실하고, 남자도 아차 싶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가게에 모인 구경꾼을 헤치고 소녀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어머니는 주인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싹수가 노란 년이라느니, 오늘 아주 요절을 내겠다느니 폭언을 퍼부으며 딸을 끌고 나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에게 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메롱 혀를 내민다.


방금 설명한 맬러머드의 단편 2종의 줄거리는 그저 기억에만 의존해서 서술한 것인데, 워낙 선명한 줄거리와 특이한 반전으로 한 번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는 까닭이다. 물론 기껏 업다이크의 단편 이야기를 하다가 맬러머드의 단편을 예찬하니 살짝 민망하기도 하지만, 뭐, 나중에 맬러머드 이야기 하다가 업다이크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물론 업다이크의 단편 중에도 인상적인 줄거리와 반전을 지닌 것이 없지 않은데,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간행된 (물론 그림 동화의 "노간주나무"에 나오는 노랫말이기는 하지만) 고전 동화 재해석 단편집에 수록된 "아일랜드의 푸른 수염"이 그렇다. 제목 그대로 아일랜드를 여행하던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중년을 지나 노년을 앞둔 남자는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도보 여행 중인데, 여자가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바람에 점점 증오가 커져 급기야 살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소변이 급해 비탈에 쪼그려 앉은 아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마지못해 손을 붙잡아 주던 남자는 이러다가 그냥 손을 놓아버리면 간단하게 불평꾼을 제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내의 오줌 냄새를 맡다 보니 새삼스레 자기네가 처음 어떻게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가 기억났고, 그렇게 생각을 되짚던 남편은 이제껏 불평꾼으로만 알았던 아내의 주장이 하나같이 정당했음을 깨닫는다. 즉 음식이 맛없다는 말은 진짜 음식이 맛없었기 때문이고, 발이 아프다는 말은 진짜 운동화가 발에 안 맞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마음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뒤바뀐 것은 물론이고, 급기야 미움 때문에 명백하고도 정당했던 주장조차도 불평이나 짜증으로 치부하며 외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남편은 자신의 무지와 무심을 자책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애정 넘치는 부부 관계를 회복하려 다짐하는 한편으로,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에 회한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단편에 나타난 의사소통의 실패는 업다이크의 초기 작품에서 두드러진 요소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데, 특히 그로 인한 부부의 갈등과 파국이 자주 묘사되었던 듯하다. 대표작 "토끼" 시리즈나 "메이플" 연작 단편의 줄거리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감안해 보면, 20세기 후반 미국의 풍속도를 가감 없이 묘사한 작가라는 평가도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


"토끼" 3부작과 "메이플" 연작을 읽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했던 나귀님이다 보니 거기 묘사된 미국 중산층 부부의 막장 드라마가 전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낯설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주인공의 심정이며 행동에 공감되는 바가 적지 않으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업다이크 소설을 다시 읽을 적기인 것인가 싶기도 하다.






[*] 근데 이건 또 언제 읽고 정리해서 끄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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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콜더컷" 어쩌구 하는 북펀드 광고 문구가 나오기에,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름이다 싶어 뭔가 궁금해 눌러보니, 유명한 어린이 그림책 제작자인 "칼데콧"을 말하는 거였다. 어째서인가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콜더컷"(Caldecott)이 정확한 발음이라는데, 지금껏 우리나라에선 "칼데콧"으로 썼으니, 올바른 표기가 오히려 낯설어 보일 수밖에.


그런데 알라딘 검색창 광고에서는 얼마 전까지 "콜더컷"이라 하다가, 최근 며칠 사이엔 "최고의 그림책 칼데콧상"이라는 문구를 써서 해당 북펀드 페이지로 유도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짐작컨대 "콜더컷"이라고 정확한 발음대로 표기했더니만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바람에, 알라딘도 어쩔 수 없이 원래의 잘못된 표기 "칼데콧"으로 돌아간 셈이려나.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만 해도 외국 인명을 일본어식이나 영어식으로 표기하던 관행이 있었다가, 나중에 가서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가급적 원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으로 지침이 바뀌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고종석이 지적했던 것처럼, 아무리 한글이 뛰어나다 한들 세상 모든 발음을 정확히 적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 한계도 불가피하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 깡길렘/깡기옘, 리파드/리퍼드, 크레리/크래리, 스크루턴/스크러턴/스크루튼/스크러튼처럼 책마다 저자명 표기법이 제각각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언젠가 논란이 된 오렌지/아륀지 발음의 사례처럼, 무작정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도 달성 불가능한 목표일 수 있으니 차라리 실용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검은 오렌지건 하얀 오렌지건 쥐 잘 잡는 오렌지가 좋은 오렌지라고 생각하는 나귀님의 입장에서야, 오히려 사소한 인명 표기에 골몰할 시간에 차라리 오역이나 줄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장 '콜더컷'인지 '칼데콧'인지의 대표작을 모은 <칼데콧 컬렉션>만 해도 오역투성이였으니 말이다.(이제는 그 책 제목도 <콜더컷 클락숀> 정도로 바꿔야 하려나?)


북펀드 광고 문구에서 "콜더컷"이 "칼데콧"으로 대체된 것을 보면, 일단 알라딘도 "칼데콧"을 포기하고 "콜더컷"으로 돌아설 마음은 없는 듯하다. 당장 "콜더컷"으로 검색하면 국내도서 2건뿐이지만, "칼데콧"으로 검색하면 저서뿐만 아니라 "칼데콧상" 수상작을 비롯해 국내도서 334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일단 "칼데콧"의 판정승이라 해야 하려나.


이와 관련해 황당한 일화도 생각난다. 예전에 한 번은 테즈카 오사무 만화책을 검색하다 보니, 테즈카/테스카/데즈카/데스카 등 출판사마다 표기가 제각각이라 한 번에 검색되지 않았다. 그래서 알라딘에 하나로 통일해 달라고 건의했더니만, 저자 약력에 "이 작가의 이름은 테즈카/테스카/데즈카/데스카로 모두 표기된다"고 적어 놓았다. 그 뜻이 아니잖아!


출판사마다 인명 표기가 제각각이니 알라딘에서만큼은 넷 중 무엇을 검색해도 다른 이름까지 검색되도록 조치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지들이 국립국어원이라도 되는 듯 판결을 내리니 우스울 수밖에. 어쩌면 칼데콧/콜더컷에 대해서도 조만간 알라딘 저자 약력에 "이 작가의 이름은 콜더컷이 맞지만 칼데콧이라 써도 무방하다" 정도 구절이 추가되지 않을까. 


물론 저 그림책 작가야 자신의 이름이 정확하게 발음되고 표기되기를 당연히 바라겠지만, 외국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본인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하면, 딱히 그걸 가지고 불쾌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법도 하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 출신 감독의 이름 표기를 놓고 설왕설래하자, 영어식인 "거스"로 하자고 본인이 직접 제안했듯이.


작가 "로알드 달"은 북구 혈통을 감안해 "루알 달"로 불러주기를 바랐다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한 가지 사례를 제외하면 그 소원을 이루지는 못한 듯하다. 본인은 "유진이"로 불리기를 원하지만 세상 모두가 "안유진"으로 불러 좌절한 댕댕이도 있고, 그럼 자기는 "나오이 레이"로 해 달라다가 일이 복잡해진다며 국민 MC에게 제지당한 사례도 있다.


사실은 나귀님도 이름 때문에 오랜 세월 억울함을 겪어 온 사례다. "나귀님" 자체가 닉네임이니 존칭을 붙이면 "나귀님님"이라 불려야 맞겠지만, 다들 초면부터 "나귀님"이라며 반말짓거리를 일삼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나귀님이 "메이저메이저"마냥 알라딘에서 댓글도 친구 신청도 외면하고 숨어다니며 지적질만 일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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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 이야기를 하려고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사다 놓았던 책들을 줄줄이 다시 한 번 꺼내 봐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책장을 뒤졌다. 그러다 보니 원래 찾으려던 책은 못 찾고, 오히려 있는 줄도 몰랐던 책을 찾아내기만 했다.(업다이크의 "메이플 부부 연작 단편집"인 <벌거숭이들>이 원래 목표였는데, 결국 찾기는 찾았다, 엉뚱한 곳에서!)


특히 놀랐던 것은 예전에 사다 놓았던 <제5도살장>과 <제일버드>의 이본이었다. 전자는 김종운 교수의 을유문화사 번역본이 최초였다고 알고 있는데, 나귀님이 관심을 갖게 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절판되어 아쉽던 차에 청량리 어느 헌책방에서인가 (예전에는 낯선 동네를 버스 타고 지나가다 헌책방이 보이면 얼른 내려 들어가 보곤 했다!) 다른 번역본을 구입했다.


<빌리 필그림과 함께 여행을 떠납시다>(커어트 보네거트 지음, 정환호 옮김, 오른사, 1980)라는 책인데, 이후 재간행된 김종운 번역본을 구입하면서 버린 줄로 알았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아직까지 버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던 셈이다. 반면 <제일버드>(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일충 옮김, 세광공사, 1980)는 이게 최초이고, 웅진 포스트모던 선집 번역본이 나중이다.


<제5도살장>은 처음 읽었을 때에만 해도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요소에만 집중했었는데, 이후 저자의 발언을 감안해 보면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참사에 대한 여론 환기를 의도한 면이 더 컸던 모양이다. 저자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독일의 피해에 대해 연합국이 침묵하는 것이 괘씸한 모양이지만, 여차 하면 전범국에 면죄부를 줄 여지도 있으니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사례로 바꿔 말해 보자면, 과연 일본이 핵폭탄에 두 번이나 얻어맞았다는 사실 때문에 무작정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도 비슷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인명 피해야 물론 안타깝지만, 그런 비극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에게 있으며, 또한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주변국의 입장에서야 쌤통이니까.


또 하나 의아한 부분은 <제5도살장>이 미국에서는 청소년 유해 도서로 종종 지정되는 악명 높은 책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별다른 논란 없이 판매되어 왔다는 점이다. 언젠가 김훈의 소설이 일부 내용 때문에 외설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재간행된 보네거트의 소설에 대해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 것을 보며 아이러니한 느낌이 있었다.


<제일버드>는 SF의 요소가 빠진 세태 풍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닉슨 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다시 들춰보니 실제 사건과 인물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나귀님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미처 몰랐던 잔재미가 더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독서에도 다 때가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이번에 업다이크 책을 뒤지다가 발견한 '있는 줄도 몰랐는데 있었던 책들' 중에서도 가장 희한했던 것은 바로 <대서양횡단실기>(찰스 린드버그 지음, 박상용 옮김, 수도문화사, 단기 4288[1955])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헌책방 고구마에 갔다가 사장님이 창고를 새로 얻었다기에 구경하러 갔다가 우연히 보고 깜짝 놀라 잽싸게 구입했던 책이다.


제목 그대로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 비행 체험기인데, 원제인 "스피리트 오브 세인트루이스"는 당시에 그가 몰았던 비행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살짝 의외이긴 하지만, 츠루타 겐지의 만화 <스피리트 오브 원더>의 제목이 린드버그의 이 비행기/책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후일담도 있다. 여하간 별 걸 다 갖고 있었구나 싶어 스스로가 기특하고도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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