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책읽기에 가속도가 붙어서 많이 읽었다. 다음 주엔 템포를 좀 늦춰야겠다. 책읽는 것도 너무 욕심을 내서는 안되는데, 한달에 10권은 넘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하는데 아래에 소개할 4번과 5번의 동화책을 제외하고도 벌써 12권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수에 신경쓰지 말고 대신 천천히 즐겁게 읽어보자. 다음 주 목표는 그거다. 천천히 즐겁게 읽기!

 

 

1. <물처럼 단단하게>

  처음 읽은 옌렌커의 소설이자, 내가 읽은 중국 소설 중엔 가장 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나라 역사도 체감 인식으론 근대사는 구석기 시대보다 더 멀리 있는데 중국의 근대사는 오죽하랴. 궁금했다. 지난 번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를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우리 나라의 근대사만큼이나 중국의 근대사가 궁금해진다. 궁금하면? 읽어야 하는데 아마 게으른 성품에 미루다 다음 소설을 읽고 또 같은 생각을 하지 싶다.

 

 

- 알라딘가 16,600원

 

 

 

 

 

2. <십자가>

 

아주 예민하고 불편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왕따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겠지만 방관자일 가능성은 꽤 높은 것 같다. 그런 사례들은 참 많지 않은가. 나를 탓하는 것만 같아 이런 이야기는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해도 진실은 진실이다. 나의 비겁한 행동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남겨진 가족에겐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하지만 작가는 그들 외에 방관자로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이의 삶에 주목한다. 그 점이 색다르다.

 

- 알라딘가 11,700원

 

 

 

 

 

3.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이 책을 읽으며 책꽂이를 보니 어느새 이상권 작가의 책이 다섯 권이나 된다. 이쯤 되면 다 읽어줘야하는데 사실 첨 읽는 소설이다. 동화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이 소설은 자음과 모음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어 동화의 옷을 벗어 새롭게 출간되었다. 생태 작가라 불리는 이상권 작가가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더불어 사는 공간을 그린다고 할 때 이 책의 위치와 비슷한 것 같다. 인간이란 종의 천박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알라딘가 11,250원

 

 

 

 

4. <딱걸렸다 임진수> <황반장 똥반장 연애반장>

 어제 페이퍼를 올린 관계로 소개글은 생략.

 

단 2학년 3반인 어린이들에게 강추한다는 말은 남겨요^^

 

 

 

-알라딘가  각 7,920원

 

 

 

 

5. <나도 예민할 거야> <나도 편식할 거야>

 

이 두 권의 책을 읽다보면 정이 같은 아들(?) 낳고 싶다. 순하고 잘 먹는 아들. 물론 정이는 딸이다. 그런데 부모에게도 딸에 대한 로망은 좀 있어서....^^

 

 

 

 

- 알라딘가 6,300원 / 5,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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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제목을 보고도 처음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집오리가 하늘을 난다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나는(나라고 쓰고 우리라고 읽는다) 자연에서 멀어져 있다. 아주 멀리. 그러다 이 책의 첫 단편인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읽어보니 참 마음이 편해졌다. 요사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나를 조금은 피로하게 하였던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했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는 늘 피곤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읽게 된 이 책을 고맙게 읽기로 마음 먹었다.

 

이상권 작가의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생태작가라는 별칭에 맞게 6편의 자연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집오리, 수달, 족제비, 살쾡이, 들쥐, 개로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로부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던 동물들이다. 물론 사람은 사람의 삶으로, 동물은 동물의 삶으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단편에 이런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문장은 서로 달라도 뉘앙스는 같은데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된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의 문장을 옮겨 적어본다.

 

짐승들 대부분이 그랬다. 배가 부르면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괜히 다른 동물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사람하고는 달랐다. 사람들은 많이 모을수록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육식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다리를 절면서 비틀거리는 동물을 보아도 잡아먹지 않는다. 반드시 배가 고파야만 사냥을 한다. 그래서 대자연은 조화를 이룬다. (22쪽)

 

밑줄을 치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동물의 한 종으로서 겸손하지 못하게 사람들은 너무나도 동물들을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대한다. 인간이라는 종의 천박함이 느껴져 부끄러웠다. 족제비보다 영리하지도 못한 주제에 문태형은 족제비를 학대하였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선생이라는 자가 수달을 잡아 돈 몇 푼을 챙겼다. 죽음을 각오하고 닭서리를 하다 잡혀 죽음보다 못한 치욕을 느끼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살쾡이에 비하면 사람답다는 말이 참 낯부끄러운 말이다. 하나의 종이 하나의 종에게 먹히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 행위의 의도와 심보가 천박하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온 동물 중에 실제로 본 적이나마 있는 것은 집오리와 개 뿐이다. 그 외의 동물들은 이름만 알 뿐 외양도 특성도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동물들이 예전엔 사람들의 입에 쉬이 오르내리는 동물들이었다고 하니 수십 년 새에 우리네 삶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이 동물들이 고개를 들이민다고 생각하면 참아보려 해도 분명 경기를 일으키듯 놀랄 것이 뻔하다. 비닐 봉지 하나에도 개인가 고양이인가 하여 겁을 먹는 내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이 못내 못나 보였었는데 문태나 진우, 나산강 마을 사람이나 시베리안허스키의 주인 할머니처럼 동물을 얕잡아 보거나 동물에게 오만한 태도를 가지는 것보다는 떳떳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집오리가 한없이 약한 자신을 탓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집오리도 사랑하여 주는 야생 청둥오리가 있어 야생 오리를 낳고 키워 하늘로 날려 보내는 꿈을 이루었다. 우리가 양갑수씨처럼 동물을 동물로 존중하여 준다면 동물들도 자신의 꿈을 이루려 노력할 뿐 마당의 닭이나 토끼를 마구잡이로 잡아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동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이 넓고 쿨하기 때문이다. 그저 쿨하지 못한 것은 인간일 뿐이다. 집오리야, 수달아, 족제비야, 살쾡이야, 들쥐야, 들개야 쿨하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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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 아이 유치원을 데려다주고 도서관에 들러 잠깐 아이책을 빌린다는 게 오전 내내 책꽂이 사이에 자리잡고 앉아 내리 한 시간 가량을 동화책을 읽어버렸다. 아이가 어려 그림책 위주로 보던 차에 그냥 단순히 궁금해서 동화책 코너를 기웃거리다 마주한 것이 송언샘의 도사샘반 아이들 이야기였다. 앉은 자리에서 <딱걸렸다 임진수>를 읽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연달아 그 옆의 <황반장 똥반장 연애반장>을 킥킥 대며 읽었다. 평일 이른 오전이라 책 읽으러 온 사람도 나 하나였던 터라 웃음도 참아가며 웃었다. 읽다가 이 책들 외에도 두 편의 시리즈가 또 있으며 그 책들도 앞의 두 책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배경, 같은 인물로 진행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 알라딘가 7,920원 / 7,920원 / 6,600원 / 5,950원

 

 

그야말로 백오십 살 먹은(물론 선생님 말씀에^^) 도사샘반 아이들이 번갈아 주인공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다. 임진수가 주인공일 황반장이나 썩은 떡, 오광명은 조연으로 임진수의 말썽 활약상에 재미를 더하지만 또 황반장이 주인공일 땐 나머지 아이들이 그렇고,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어 구성이 매력적이다. 맞아, 누구나 자기 삶에서 바라보며 다 주인공이거든! 말썽쟁이 금메달과 은메달인 오광명과 임진수의 말썽 대 활약상, 그들과 좀 다른 류(?)의 인물인 황반장의 어설픈 잘난 척 이야기, 썩은 떡이라는 별명과 달리 순수한 면이 보이는 슬비와 멋진 도사샘의 뭉게구름 같은 모습들을 마주하다보면 아이들 하나 하나가 어쩜 그리 다 빛나 보이는지. 그건 예쁜 옷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가짜 빛남이 아니라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 진짜 빛남이라는 걸, 그래서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아주 아주 아주 큰 웃음들과 함께. 애들은 엄청 웃긴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몫은 도사샘의 것이다. 때로는 요즘 시대와는 달리 벌도 주셔서 어색하단 느낌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진정 아끼시는 그 모습은 아이들이 백만원짜리 사탕이란 구라(?)에도 알면서 그저 속아넘어가주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면에서 도사샘과 함께 하는 2학년 3반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보인다. 지쳐보이지도 않고 무한 경쟁 모드로 날카롭지도 않다. 많은 아이들이 이 책들을 읽고 그 나이답게 귀엽게 지내면 좋겠다. 하긴 그러려면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겠다. 2학년 아이에게 이 책을 와장창 선물할테야! 그 아이가 2학년 3반이면 더더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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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는 안만들면 좋겠다. 아니면 읽는데 방해안되게 만들던지. 버리면서 얼마나 많이 버려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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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실 우리 나라 역사 중에서도 근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깝다. 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그런 처지이니 중국의 근대화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것보다더 더 적은 것이 적어도 내 개인에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는 척 해봤자 아는 바가 없기에 이럴 땐 모른다고 말하고 시작하는 편이 낫다. 더불어 옌롄커라는 소설가도 처음 알게되었다는 것을 함께 밝힌다.

  이 책을 처음 보고는 그 두께에 압도당했고 그 다음엔<물처럼 단단하게>라는 제목에 반했다. 시적이다. 압도당한 두께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19금 장면 묘사와 사건 전환으로 인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제목은 소설을 읽을수록 뭔가 느껴졌다. 그 뭔가가 뭔지 알아내는 것 그것이 이 리뷰를 쓰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소설의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서도 소설의 주인공인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의 안쓰러울 정도로 몰두하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문화혁명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당시 중국의 시대상을 응집하여 보여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들의 행동은 매우 급진적이고 과장되며 전투적이다. 아마 당시의 시대상도 이런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

  사랑조차도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혁명의 감정이라고 부르는 이 한쌍의 연인이 벗어나려고 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구시대의 낡은 것들이었다기 보다는 금지된 사랑에 대한 비난이었을텐데 자신들의 사랑을 혁명적 감정이라 정당화함으로써 단번에 벗어나려 했던 것이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아마 이런 조마조마함을 작가는 노린 것일 테지만.

 

흔히들 하늘이 아무리 커도 사랑을 안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넓어도 정을 담을 수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의 감정뿐입니다. 혁명가의 감정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한눈에 반해버린 혁명가의 감정보다 넓고 깊지는 못하지요.  (34쪽)

 

혁명이 토대라면 사랑은 토대 위에 세워진 집이고, 혁명이 근본이라면 사랑은 근본 위에 핀 꽃이니까요. (107쪽)

 

   바로 이 감정이 이 두 사람이 시대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뭔 사랑이 이리 이유도 크단 말인가. 뭔 사랑이 '오직'이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있단 말인가. 혁명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또 혁명을 함께 하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된다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개인이 제도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재산을 파괴하고 목숨을 없애는 것이 어느 시대엔들 용서받을 수 있으랴만은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건 그래왔던 역사는 존재했다. 그들 모두는 가오아이쥔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의 혁명을 이름삼아 욕망을 배설한 것뿐이다. 그러나 가오아이쥔에게 내가 어떤 동정심이랄까 안타까움이랄까 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가 너무나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맹목적인 그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로봇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때때로 그들은 바로 그 맹목성 때문에 내게 이해받기도 했고, 가끔은 아프면서 아름다워보이기도 했다. 자신도 사랑이 먼저인지 혁명이 먼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시대이다.

     돌이켜 보건대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는 혁명가로서의 삶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둘다 그저 혁명 기능이 장착된 그리 중요하지 않은 혁명로봇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애정 기능이 훨씬 중요하게 장착된 로봇이었지만 말이다.  관서기처럼 조금만 더 혁명적 삶에서 수직상승했더라면 그 자신도 자신의 욕망을 알고도 묵인하는 다소 비열한 혁명가라도 될 수 있었을텐데(물론 우리는 그들을 진정 혁명가라고 부르진 않는다.) 아쉽게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들이 혁명을 위해 사랑했노라 생각했을 혁명 로봇으로 살았다(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혁명가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전되었다. 지금도 어느 혁명의 시대에 작은 마을에서 혁명 로봇이 탄생하여 맹목적인 전투력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이런 로봇같은 혁명가들을 반겨야 하는지 경계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대량 생산형 혁명가는 아무래도 경계하는 편이 낫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리뷰의 제목을 '물처럼 단단하게, 얼음처럼 뜨겁게'라고 해 보았다. 겉보기에 물은 덩어리처럼 보이나 그것은 결코 단단해질 수 없는 물질이다. 마찬가지로 얼음에서 김이 난다고 하여 그것이 뜨거울 수는 없다. 이는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의 모든 사상과 행동이 혁명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였으나 결코 그것은 개인의 욕망을 넘어서는 것일 수 없는 것을 비난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의 사상과 행동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허무한 노릇이라는 허탈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사랑을 위해 혁명도 내던졌더라면 그들은 좀더 편한 삶을 살았을텐데 그놈의 혁명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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