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여자라는 것에 늘 자긍심을 느끼고 살았다. 이다혜 기자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성실하지는 못했고 가정에 소홀했지만 다행히 나를 사회적 틀 속에 가두진 않았다. 어릴 때 나를 '말괄량이 삐삐'라고 부르셨고 그 별명을 나보다도 본인이 더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쏟아지는 페미니즘 도서들 사이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동시에 낮추기도 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시류에 편승한 책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다독가인 작가의 책소개글을 페미니즘에 끼워넣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글을 보고 신청해서 받아읽게 된 것은 그 의구심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을까, 아니면 전복하는 일이 되었을까?

 

  이다혜 기자의 글은 솔직했다. 자신이 기자로서 쓴 과거의 글을 소개하고 그 글이 얼마나 문제가 있던 글이었는지를 10년이 지난 후에 정정한다. 그녀 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도 과거 웃고 넘긴 일들, 못들은 척 지나버린 일들이 지금 되새겨보면 무척 문제가 많은 일화들로 정리된다. 다행으로 치면 이건 나와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는 의미이고, 불행으로 치면 과거 우리는 그렇게 무지한 채 여자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낮췄었다는 뜻이다. 마치 나는 예전에 그런 일이 없이 늘 페미니스트로서 행동했다는 가능성은 나와 동시대를 산 여성이라면 희박하다. 그러하기에 우선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는 저자의 행동은 독자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책에는 이렇듯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존재적 가치에 대하여 수시로 이야기하고 그 중심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읽었던 책과 영화와 사건을 버무린다. 개인적으로는 빨간책방에서 듣던 그녀의 목소리보다 더 단단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나 역시 남성 중심의 소설을 읽고 재밌어 했으며, 남자 작가의 소설과 글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많기에 그녀가 경고하는 많은 사례들에 해당한다. 아마 알면서도 못들은 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흔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게 정말 옳은 일이 아니다. 당장 가정 내에서도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언쟁을 벌이고 에너지를 소모했어야 하는지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어느 순간 이제는 됐다 싶다가도 갑자기 툭 다시 돌아가는 남자의 오래된 사회적 본성에 좌절했던 순간이 수시로 있으며 언제 이게 제대로 균형있게 될지 기약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안다. 그렇게 자꾸 부딪혀야 해결이 된다는 것을. 수많은 계란이 깨지면 언젠가 바위도 부서지지 않겠는가 하는 끈기를 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도. 혹시 아는가 어느 순간 계란 화석이 우두두 쏟아져 바위를 부셔 버릴지.

 

  아직은 내가 미스 와플 외에는 딱히 여성 탐정을 알지 못하지만 좀더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겠다. 내게도 추리 소설은 최애 장르이니까. 처음 알게 된 나폴리 4부작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가정 내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나는 왜 멀리했을까? 왜 난 읽어보기도 전에 그 소설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소개한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서두에서 질문한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에는 충분한 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마 나와 다른 답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때 그렇게 여자로서 불이익을 많이 겪지 않았기에 커서 그 부조리에 더 갑갑함을 느낀 기혼여성'의 한 사람인 나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뜻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 혼란을 조금씩이나마 극복하려는 태도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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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man 2017-09-20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9월 26일에 이다혜 작가님 저자강연회 한대요~
강남역 근처 서이도서관에서 한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