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아픔
소피 칼 지음, 배영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처음엔 예뻐서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데 회색 바탕의 빨간 글씨 그리고 소피 칼. '소피 칼'이라고?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아, 리움 미술관! 그게 언제더라? 무려 5년도 더된 어느 날 대학원 수업 중에 처음으로 방문한 리움 미술관에서 그녀의 작품을 보았다. 그때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괜히 반갑다. 그런데 왜 나 요즘 예쁜 책을 좋아하는 건가? 책 읽기 싫은건가?? 아무튼 이 책, 집에 오자마자 집중해서 다 읽었다. 책정보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길어보이지만 긴 책이 아니라 좁은 책이다. 길이는 일반 책과 다르지 않다. 두께도 그렇고....안되겠다 얼마나 이쁜지 보여줘야겠다! 이런 거 사진을 썩 잘 찍지 못하는 게 함정이지만^^;;

회색 직물느낌 나는 표지에 금빨간(빨간색인데 금바른 것처럼 빛난다는 뜻의 급조어^^;;)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 표지와 책등. 책배에는 금빨간칠이 번쩍번쩍!! 내부엔 파리를 떠난 날부터 일본을 떠난 날까지 92일 간의 사진이 짧은 글과 함께 실렸다. 매일매일 그를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여행을 하는 소피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떠올리메 당당했다. 92일간의 일본길을 뒤로하고 그를 만나기로 한 날, 그에게 이별을 통보받기 전까지는.

 

마지막 사진의 왼쪽 페이지는 그녀가 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첫날부터 100일 되는 날까지 '그날'의 상황을 거의 내용 변화없이 반복적으로 기록한 글과 그날의 숙소와 빨간 전화기의 사진이 실려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녀가 그녀의 아픔을 풀어놓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 상대들의 아픈 사연들이 실려 있다. 남의 아픔으로 나의 아픔이 반감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겠지, 실제로 소피 칼은 석 달만에 완전 치유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난 오른쪽의 사연들은 제각각 다 다른 아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읽어넘겼다. 대신 왼쪽 소피 칼의 반복되는 상황 기술에서 조금씩 보여지는 감정의 변화를 집중해서 읽었다. 22일부터 그녀는 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31일부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이후엔 점점 글도 짧아지고 단순하게 그때의 상황을 주요사실만을 기록할 뿐이다. 91일엔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덤덤해지고 99일부턴 쓸 말이 없다. 참 매력적인 방법 아닌가? 난 왜 이별을 극복할 때 이 방법을 알지 못했을까? 다시 이별을 한다면 이 방법을 꼭 써먹고 싶은데,  아~ 사랑도 이별도 남의 일 같아......

 

예쁜 걸로 치자면 근래에 본 책 중 가장 예쁘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썩 관심 없던 사람도 사진의 매력을 알게 되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별을 극복하는 누군가에게 정말 매력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아, 써먹고 싶다 이 방법......수년 전의 충격적인 소피 칼의 모습은 이렇게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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