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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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잉도 팔로워도 별로 없는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 불세출의 팔불출이 둘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와 서효인 시인이다. 처음엔 몰랐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혹시 싶은 마음이 들었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시인이 트위터에 쓴 글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야 은재가 다운증후군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아이를 잘 키운단 말인가!' 싶은 마음에 어느 부분에선 미안하게도 그는 시인 서효인 보단 은재 아빠 서효인이 더 잘 어울렸다.

 

은재가 태어나기 전에 시인은 은재를 맞을 글을 쓰고 있었다. 아마 병원에서 양수 검사를 받자고 했을 때부터 의식하지 못해도 어쩌면 아이의 상태를 염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글에서 묻어난다. 보통 의사의 양수 검사 제안을 거부하는 부모가 흔치 않은데 이들 부부는 애써 그 제안을 무시했다. 아이의 상태를 염려했던 것만큼의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아이가 어떠하든 그 아이를 잘 키우기로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난 그게 이들이 은재를 이토록 건강한 마음으로 키우는 첫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보면 적지 않게 장애 아동들을 만나고 그의 부모들을 접한다. 안타깝게도 장애 아동들의 환경이 일반 가정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은 부모에게 충분한 보살핌도 지원도 받지 못한다. 또 극으로는 부모가 너무나 잘나고 대단하여 아이나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가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은 아이를 처음 만난 이후 여전히 부모의 마음이 다독여지지 않은 상태라 그런 거였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은재는 은재의 아빠와 엄마, 할머니와 외할머니, 고모와 이모를 모두 잘 만났다. 축복이다. 은재가 그들에게 축복이듯이!

 

사실 연애 이야기나 은재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는 여느 연애담이나 육아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은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책에서도 빛이 난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런 힘을 가졌을까? 스스로 빛을 내는 힘 말이다! 그 빛은 때로는 함박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게 반짝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의 빛, 그것을 은재 역시 갖고 있었고 그 빛을 보는 눈을 시인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더 빠르고 더 따뜻하게!

 

울다가 웃다가

 

아내와 둘이서 부둥켜안고 운다.

등을 맞대고 운다.

모른 체하며 운다.

서로 쓰다듬으며 운다.

울다 잠들어 꿈에서 운다.

꿈에 나ㅏ난 너를 보고 놀라 깨어 운다.

운다.

멈추고 목을 축이고 다시

운다.

 

아내와 둘이서 쳐다보며 웃는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다.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후후 불어 입에 넣어주며 웃는다.

소고기가 너무 많다며 웃는다.

고깃국 같다고 웃는다.

우물우물 씹다가 웃는다.

웃다가 운다.

운다.

(134-136쪽)

 

그러하기에 시인은

 

멈추고 목을 축이고

다시

이제

그만.

 

떨어지는,

그치는,

눈물.

 

(134-136쪽)

 

시인 아빠 서효인이 좋은 아빠이고 멋진 아빠인지 아닌지는 내 아빠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건강한 아빠라는 점은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확신할 수 있다. 제 아이를 이뻐하지 않는 아빠가 몇 이나 있겠는가마는 그 이뻐함이 튼튼함이기가 쉽지 않다. 아빠들은 가끔만 좋은 아빠 멋진 아빠이고 대다수의 시간을 그저 생물학적 아빠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 하면 전국의 아빠들에게 항의받을라나? 그러면서 좋은 아빠 멋진 아빠 대접 받으려고 한다고까지 하면? 보통의 엄마의 시선으로는 대부분의 아빠들은 그렇다.(여기저기서 엄마들의 동의가 느껴진다.) 그건 엄마들의 육아에 대한 아빠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은재의 엄마가 어떤 자리인지, 은재의 아빠로서 존재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이해하고 인정하고 표현했다. 그건 모든 아내들의 바람이다. 아이를 낳고 생각없이 말하는 남편들의 한 마디에 얼마나 자주 상처를 받는지, 얼마나 많은 다툼을 했는지, 그 여파로 혼자 남은 시간을 슬퍼해야 하는지를 남편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건강한 남편인지 멋진 남편이지는 내 남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그가 좋은 남편이라는 점은 남편을 키워본 아내로서 확신할 수 있다.

 

정성스레 그리고 조심스레 하면 좋다. 가끔 아내는 말도 못 알아들을 아이에게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도덕군자 흉내를 내는 꼰대가 되어 "애한테 왜 그래?"라고 말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거나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다. 지금은 새벽이고 우리는 잠을 못 잤고, 아내는 애를 낳고 시약해졌다. 나는 푸석해진 아내의 곁에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여러 번 말한다. 무얼 하든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연애 초기보다 더 정성스레 아내를 위하는 게 좋다.

(191-192쪽)

 

 

길을 가는 엄마와 아이 혹은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를 심심찮게 보고 그들의 대부분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설령 그 아이가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떼를 쓰며 엄마 뒤를 쫓는 중이라도 보는 마음은 흐뭇하다. 아이들은 그런 흐뭇함을 전해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부모는 지켜줘야 한다. 아이의 빛, 그것은 엄마의 빛이고, 아빠의 빛이고, 할머니와 고모의 빛이고, 옆집 아줌마의 빛이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빛이 된다. 그 빛을 건강하게 키워주는 부모가 이 책에 있고, 나 역시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오늘 아침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는 일부러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아이와 노래를 부르고 말도 안되는 개그를 주고 받으며 그 짧은 길을 다녀왔는데 그렇게 아이가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사랑해 아들, 이라는 말이 숨을 쉬듯 툭툭 내쉬어진다. 잘 왔어 우리 아들.

 

* 시인은 이 책에서 농담을 많이 하는데, 주로 그런 농담은 농담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농담인 줄 충분히 아는 농담들이다. 그때 푸흡! 하하하!를 할 수 있으니 읽기 전에 시인이 농담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 지 세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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