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요즘 많이 생각한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끌리듯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당한 삶의 방식인지에 대하여. 어릴 때의 소풍은 동네에 있는 산에 올라가 수건돌리기를 하고 보물 찾기를 하는 것이었다. 선생이 되고서도 어떨 땐 왜 굳이 버스를 타고 멀리 가서 구경만 하다 오는 것에 대해서 회의가 생기곤 했지만 그저 구경이 아닌 어떤 '알참'으로 보상하려고 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굳이 배를 타고 굳이 궂은 날씨에 그 긴 시간을 들여 먼 섬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을. 누구나 떠남의 방식은 개인적이다. 그 개인적인 방식을 억지로 '함께'라는 명목으로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가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인가 말이다.

 

김영하는 이 책을 쓰기 직전 국립예술대학의 교수로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인이었고,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서의 인정도 받은 잘 나가는 소설가였다. 아마 그 즈음 김영하닷컴에서 그와 몇 줄의 글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돌연 그는 사라졌는데 바로 시칠리아로 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김영하의 초기 소설을 좋아해 집에는 그의 소설이 한 권을 빼곤 다 있다. 에세이도 몇 권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있는 줄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사실 소설가들이 에세이는 반만 좋고 반은 별로였던 터라 아마 있는 줄 알았어도 덥썩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퀴즈쇼]이후로 나는 그에게 조금은 실망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을 읽게 된 알게 모르게 미친 힘은 [살인자의 기억법]일 수도 있겠다. 그 소설로 김영하를 '역시 김영하!'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김영하의 소설은 힘이 있다. 꿈틀꿈틀대는 무언가, 그것은 긴장감일 수도 있고 역동성일 수도 있겠지만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느껴지는 차분함과 자연스러움은 아니었다. 이 상반된 느낌이 이 에세이를 더 애틋하게 한다.

 

현재 가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아내와 둘이 떠난 시칠리아행 여행길. 그것은 아무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여행이었다. 평소 계획적인 그의 아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고백이 긴 여행기의 적절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떤 사람?"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면이 있지."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라미었다.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요 며칠 간 나는 오락가락 한다. 한없이 침통해지고 울분에 쌓이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웃고 떠든다. 그런 내가 비겁해보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이 미묘하게 있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향이다. 크게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점점 그렇게 되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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