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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샨과 치히로 ㅣ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11
쉐타오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만 보자면 우리 그림책 [엄마 마중]이 떠오른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노오란 배경에 볼이 통통한 아이의 모습이 과거 어느 한 시절의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만샨과 치히로]의 만샨은 늠름하고 야무져 보이는데에 반해 [엄마 마중]의 아이는 보호해주고 싶고 귀엽다.
[만샨과 치히로]는 동화채이지마 어른들이 읽으면 더 공감이 되고 몰입이 될 이야기이다. 중국의 과거와 우리의 과거의 공통된 아픔이라면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던 시간들이라고 할 텐데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이 그러했듯이 중국의 항일 단체인 항련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이들이다. 어른으로서도 그런 큰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진대 우리의 꼬마 항련 만샨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일본에 저항한다.
이 동화책을 읽으며 '저항'이라는 개념을 자주 떠올렸다. 만샨이 일본이 세운 국민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울 것을 거부하는 행동, 자기의 여치집을 빼앗은 가노 역장에게 가서 따지는 모습, 매국노라면 그 사람이 외삼촌이라할지라도 그가 주는 모든 친절도 거부하는 태도 등을 통해 만샨이 일제치하에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저항적 행동과 마음이 세월 가는대로 내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 자신을 떠올리게 하곤 하였다. 사람이라면 저항을 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요사이 많이 들던 참에 만난 만샨의 저항은 좀더 나를 자극시켰다.
당시 보통의 아이들을 대표하는 샤오다오의 죽음 직전의 행동 역시 저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샤오다오 역시 만샨의 저항적 행위에 자극받은 것이므로 만샨은 이야기 속에서나 밖에서나 주변 사람들을 자극한다. 하다 못해 이야기 속에서는 참새들도 저항하지 않던가! 일본의 군견이었던 치히로도 기억을 회복하고 나서도 군견이 아닌 야생의 삶을 택한 것을 보면 이 책에서는 만샨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동물을 포함함)이 저항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들의 목적을 비록 한 때일 수는 있었겠지만 성공으로 이끈다. 저항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은 저항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기도 하고, 더 큰 한계 상황을 만들게 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가 내가 쓴 리뷰만큼 공격적이거나 전투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일제 치하에서 펼치는 한 소년의 모험담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가슴 한 켠에 불끈 힘 한 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봄날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님을, 만샨을 통해 알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