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또 한 번 '갖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느낀 책이다. 계간지에 실린 모든 소설을 읽고 있다는 평론가 김윤식의 2011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의 월평을 모은 책이다. 내가 얼렁뚱땅 묶은 리뷰집과는 격과 차원이 다른 정말 '아!'하고 감탄사만 뱉어지는 그런 서평들이다.

 

이 책 이전에 강 출판사에서 월평집이 나왔었으니 두 권을 같이 가진다면 다른 어떤 '책에 관한 책'들보다 든든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대신 집에 있는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를 김연수 편만 발췌독 하였는데 달리 할 말이 없다. '캬!'라는 감탄사 밖에는.

 

 

 

 

 

 

 

 

 

 

 

 

 

 

문체도 맘에 든다. 모든 소설가를 김씨, 강씨, 이씨라고 부르며 '-하오'체로 종결하는 문장은 김윤식 평론가이기에 더 매력적일 수 있지 싶다. 발췌독 하였음에도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오늘 반납을 하여야 하는데 너무 늦게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책꽂이에 반드시 꽂혀있게 될 책이라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작가 이름의 가나다순에 의거하여 목차 정리된 바, 강영숙의 <불안한 도시>에 대한 비평이 맨 처음이다.

 제목이 너무 범속하지만, 그 범속함을 유려하게 넘어서고도 남을 만한 섬세함이 빛나는 작품. 글쓰기의 고도의 세련성이 그것. 이런 경우, 줄거리란 중요하지 않은 법. (13쪽)

그의 말처럼 이후 알려주는 줄거리란 중요하지 않았다. 비평 말미에 '고언'이라는 이름 하에 놓인 작품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찬사라니! 비판에는 비판을, 찬사에는 찬사를 해주는 그 태도에 신뢰감이 생긴다.

 

김경욱의 <인생은 아름다워>

 헤세도 아니면서 이런 범속한 제목으로 한 자루 소설 쓰기란 고수의 솜씨가 요망되는 법. (47쪽)

 

균형 감각이 요망된다는 점을 작가 김씨는 문체로 드러내 보이고 있소. 투명한 이분법. (51쪽)

김경욱에 대한 믿음이 김윤식으로 인해 더욱 굳건해짐.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

소설에서의 작가란 주인공과 같은 것, 그들끼리 대화함이 원칙이니까. 독자 따위야 안중에도 없는 것. 어찌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쓰겠는가. 그렇다면 왜 글을 쓰고 마는가. 주체성의 '나'를 잊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나'를 잊고자 하는가. '나'라는 의식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라는 주체성이 사람을 불안케 하는가. 그것은 '나'라는 의식이 '나' 자신의 어긋남에서 오는 것이기에 그렇다. 문제는 결국 현실의 나와 소설 속의 '나' 사이의 '어긋남'에서 오는 것. 작가는 이 어긋남을 달랑 떼어내 그 단서들을 조각보 모양 이어 놓았군요.(98쪽)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둘째로 치고, 소설 속의 '나'와 현실의 나에 대한 설명이 고개가 끄덕끄덕! 김애란 작가에 대해서는 사실 다들 찬사만 하는 지라 그런가 했는데, 이 책에서는 찬사 일색이 아니라 균형감있게 작품을 보게 됨.

 

김연수의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중견 작가 김씨의 솜씨가 하도 투명하여 월평자가 무슨 해석을 할 수 있으랴. 호머의 세계처럼 대낮이기에 그림자가 없을 수밖에. 가히 천의무봉이라 할까. 꾸민 데가 전혀 없는, 이른바 조립품 따위와는 격이 다른 물건. 이 자연스러움을 위해 작가 김씨는 아마도 무수히 문장을 고치고, 부사와 동사를 빼고 박고 또 숨소리를 고르며 모국어에 밀착코자 애를 썼을 터. 그 노력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끔 하는 데가 바로 승부처. (112-113쪽)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도 김연수 작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는데 이 책에서 마저!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

왈, 자기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것다. 그래, 한번 그래봐라, 라고. 이 초조감이 작가 김씨의 글쓰기의 에너지원인 셈. 이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줌에 이 작품의 그다움이 있습니다. (123쪽)

잘은 모르지만 작가의 마음까지 꿰뚫어본다는 느낌이 든다.

 

김중혁의 <크라샤>, <요요>

작가 김씨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몸짓은, 지난날 독고준의 몸짓, 포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철 지난 잉어의 모습이라고나 할가. (148쪽)

 

아날로그스런 사고가 아니라면 여기에 이를 수 없는 것. 왜냐하면 소설은 아날로그스런 사고의 산물이니까. (152쪽)

김중혁 작가님의 글이 남성적인 것이었구나! 그래서 내가 끌린 것이었구나!

 

여기까지이다. 김씨 작가님들까지 밖에 못 읽었다. 이 글에 실린 소설들 중 많은 수가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읽는 재미가 더 좋을 듯 싶다. 내 맘대로 읽겠다 하면, 또 그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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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2-0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샌 이상하다. 김윤식 평론가의 글이 막 좋아졌는데 페이퍼에서 김윤식 표절 사건을 읽게 되었다. 새벽에 잠이 안와 티비를 켰더니 <우리가 간다>는 도전프로그램이 재밌어 찾아보니 시청률 저조로 폐지된 프로그램이란다. 에잇 뭘 새로 좋아하기가 힘이 드는구나....굳이 표절 사건 아니셔도 훌륭하신데 왜 그러신 거예요?ㅠㅠㅠ 시청률이 뭐라고 폐지시킨 거에요???누구에게 묻는 건지도 모를 원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