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리즈' 라는 시인들이 자발적으로 주최한 낭독회에 참여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모임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어제도 10월의 낭독회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우리 네 사람(원래는 5명인데 5명이 다 모인 적은 한 번 있다.)은 늘 그렇듯 6시 50분에 만나 국수를 먹고 나서 씨클라우드에 도착했다.  오늘은 김선재 시인, 백가흠 소설가, 가수 시와의 공연이었고 멤버1을 제외한 우리들은 크게 누군가를 좋아하기 보다는 그 낭독회를 좋아해서 참석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우린 시계를 보지 않았다. 도착했을 땐 이미 시간이 늦었다. 우린 입장하지 못했고, 그럼 우리가 가야할 곳은 '여기가 아닌가? 그럼 어딘가?'로 잠시 행사의 제목을 빌려 멘붕이 되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근처 술집으로 갔다. 그때부터 이어진 우리들의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들.

 

그 이야기들의 요지는 이렇다. 사실 이렇게 나이들어(평균연령 45세쯤?) 낭독회에 참석하면서 이런 데 다니기엔 나이가 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소심함, 이 들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이기는 우리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낭독회에 부지런히 참석한다. 농담삼아 사생팬이라는 표현까지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애정을 애써 숨기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자학적인 개그를 했다. 우리가 늙어서 아무래도 저쪽에서 몰래 보고 있다가 우리가 뜬 걸 확인하고 스탭을 풀어 뒤에 다 세워놓았다는, 소설에서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자학 개그 중엔 젊은 학생들은 왜 놀지 않고 거기서 그걸 듣고 있는가!에 대한 규탄부터, 가짜 포스터를 뿌려서 혼선을 주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우리는 기가 막히게 행사가 끝난 시간을 알아챘다. 애써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다며, 담부턴 가지 말까보다 하는 말까지 나왔지만 지하철 역 입구에 있는 양말 장수에게 가장 어려보이는 양말들을 선택하며 담엔 이거 신고 꼭 들어가자는 다짐을 했다. 그때도 못 들어가면 뽀로로 양말을 신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책을 사랑한다. 출판사에서 책에 관한 일을 하는 멤버0과 1이 있고,  우리가 심빠라고 부르는 가장 적극적인 팬인 멤버2가 있고, 책을 어마어마하게 사고 그것을 거의 다 읽는 멤버3이 있으며, 책을 좋아하지만 썩 많이 읽지는 않고 낭독회에 올때마다 아들을 설득해야하는 멤버4인 내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시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물론 소중하고 즐겁지만 책을 좋아하는 '우리'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한 기쁨이다.

 

다른 멤버0~3까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굳이 우릴 거부(?)한다면 식사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낭독회에 입장하지 못해도 좋다. 낭독회를 목적으로 만나 자학 개그만 두 시간 해도 충분히 좋다. 개인적인 사정(추위와 육아?)으로 참석하지 못하지 않는한 그들을 만나는 그 시간들이 좋다. 이젠 우리끼리 술 마셔도 시계를 보지 않을 테다!!!!

 

 

부록 : 사생팬의 대상들 

멤버 0이 사랑하는 시인 - 담에 만나면 꼭 물어보겠음.

멤버 1이 사랑하는 시인 - 강정, 그러나 어제는 백가흠 소설가 보러 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 시인 뒤통수만 보고 옴.

멤버 2가 사랑하는 시인 - 심보선, 심빠인 듯하니 심보선 시인의 경계가 요구됨.

멤버 3이 사랑하는 시인 - 김소연, 유일하게 여자를 좋아하심.

멤버 4가 사랑하는 시인 - 오은.

 

 

 

 

 

 

 

 

 

 

 

 

* 본 내용은 은희경 소설가의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와 내용상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 읽은 그 소설은 참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은희경 소설가의 1990년대의 소설들을 참 좋아합니다. 섬세한 날들의 섬세한 문장은 저를 잘 안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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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2013-10-2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심보선 시인의 경계가 요구됨!!!! ㅋㅋㅋㅋ

난 아님. (응?!) ㅋㅋㅋㅋㅋ

멤버2 2013-10-24 17:2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러면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13-10-26 11:08   좋아요 0 | URL
와~~똑똑하다!!

멤버2 2013-10-2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는 분명 심보선 시인이 안 왔을거라 믿으며...편히 잠들 수 있었어요. ㅎㅎㅎㅎ
다음달에는 도시락이라도 챙겨 씨클라우드 계단에서 저녁을 해결할지도..ㅋㅋㅋㅋ
선물해주신 양말 신고 출근했어요. 그래서인가 오늘 유난히 발이 이뻐 보여요. ^^

그렇게혜윰 2013-10-26 11:08   좋아요 0 | URL
동안 아니 동족이 되었겠군요 ㅎㅎ

미망 2013-10-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글 구성이 어찌 이리 재미 있나요?
멤버들 모두모두 멋지신 듯...
작가님이 아니라 멤버들 모두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

그렇게혜윰 2013-10-26 11:09   좋아요 0 | URL
재밌었나요? ㅎㅎㅎ 그날의 이야기는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그렇게혜윰 2013-10-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멤버0은 문어발이라고 함.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