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퀴드 러브 - 사랑하지 않을 권리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권태우 &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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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지그문트 바우만의 너무도 매력적인 제목의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리뷰 http://blog.aladin.co.kr/tiel93/6054689)를 읽었다. 현대 사회를 '유동하는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현대 사회의 실상을 냉정히 비판하고 현실 가능한 희망을 제시했던 점이 인상깊었다. 그런 인상 깊음 때문에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이름이 쓰인 이 책  [리퀴드 러브]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부제로 붙은 '사랑하지 않을 권리'라는 데에 일차적 매력을 느껴버렸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론이 이토록 매력적인 제목을 뽑아내게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제목들이 다 끌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 옮긴이의 해설이 본문보다 앞에 있다. 이름하여 '바우만 독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란다. 역자의 자긍심이 대단하여 신뢰감이 무척 커졌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보다 내용이 어려워진 것 같지는 않은데 이해가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 알아보니 지그문트 바우만의 문체가 번역이 어렵다고 한다니 일면 이해는 가지만 독자로서는 뭔가 분명한 이해를 원했는데 그 점이 아쉽다. 물론 내 이해력의 문제일 가능성도 높다.

 

  책은 네 부분을 이야기한다. 목차로 보자면, {사랑에 빠지기와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고아가 된 성적 동물 : 사람 사귀기는 목적인가 수단인가?, '네 이웃을 사랑하기'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함께함/연대의 해체 : 인류의 운명인가?}가 그 네 부분인데 지그문트 바우만이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유동 사회에서의 함께 혹은 따로 살아간다는 것의 불안감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의 사랑은 그야말로 모든 사랑을 포함하는 사랑인 것이다.

 

  제일 먼저 사랑에 대한 어떤 정의가 필요한데, 사랑이 죽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과 욕망이 사랑과는 다르다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진리란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관계'란 영원히 불안정한 개념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사랑의 관계도 포함해서 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경우 관계가 친족(가족)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친화성이 필요한데 그 친화성이 동거나 반-동거의 방식이 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반-동거'라는 개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는데 아무래도 저자와 나의 시각차이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수시로 나의 가족과 나의 파트너 사이에서 약한 고리로 존재하는 나의 한계를 느꼈으니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친화성!

 

  어쨌든 가족이 된 우리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유동 사회의 처세술에는 맞지 않는 일이라는 지적에 동의했다. 앞에서도 보수적인 시각을 보인 노학자는 이번엔 여성의 입장을 많이 이해해주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따뜻한 보수학자 같았다.  유동 사회에서는 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위치가 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건강과 도착증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순수, 순화라고 표현된 성에 대한 지나친 가벼움과 본능화가 나로서도 못마땅하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으로 불임치료를 반대한다. 최소한 나 개인에게만이라도 말이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의 결과물로서의 놀라움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하는 성을 비롯하여 휴대폰과 돈에 집중된 유동 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마치 꼭두각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현대의 도시에 대하여 일침을 놓은 3장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시작부터 자기애를 가지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야한다는 말을 해서 놀랐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남에게 사랑을 받아봐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공감되었다. 타인의 사랑을 받을 내 안의 무엇,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다.

  현대의 도시는 언제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상층민과 머물러야만 하는 하층민이 충돌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잠재적 범죄자처럼 남겨진 사람들로 인해 사막화, 범죄화, 공포화 되는 현대의 도시들에 대한 경고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이방인에 대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보호받는 시민과 그렇지 못한 이방인의 경계가 점점 더 두드러지는 현상. 주권이 국가라는 조건 하에서만 존재하는 마치 인간-임에 대한 자격처럼 여겨지는 현상.  이런 난민들의 지금 그리고 향후의 모습은 유동적 현대가 보여줄 앞으로의 사회 모습이라는 저자의 예견은 암울하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했고 간혹은 생각이 달라 조금은 더 깊이 생각해보기도 했다만 현대 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만 해결책의 제시가 다소 미흡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 아쉽기도 했다. 당장 지그문트 바우만의 다른 책들을 찾아볼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내 마음이 피로해질 때 읽으면 오히려 시야를 넓혀서 보게 되어 우울감이 좀 줄어든다. 물론 다른 암울함이 다가오지만 말이다. 최소한 저자가 경계한 '글로벌한 문제를 로컬로 푸는' 것이 아니라 로컬의 문제를 글로벌하게 확장시키는 문제이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 밖에. 혼란한 현대 사회에 문제점을 차분차분 정리해보는 데에 좋은 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유동 사회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게 옳은지 오랜만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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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0-1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번역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니 내 이해력 문제는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