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지만 깊이가 없는 내게

철학에 관심 있지만 아는 바가 없는 내게

이 책은 어느 정도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여성 언어라는 개념, 에 대하여 문정희의 '유방'을 놓고 이리가레이에의 생각을 읽을 때

 

남성의 사유는 낮이면 낮이고 밤이면 밤으로 이분법적이고 논리적으로 작동하지만, 여성의 감수성은 모든 시간이 어느 정도의 밝음과 어느 정도의 어둠이 공존하는 것으로 경험합니다. 이처럼 모순이란 바로 차이 혹은 타자와 공존하는 구체적인 삶의 현상에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삶의 중요한 대목은 대부분 논리적이기보다는 애매한 겁니다. 모순이 항상 곤존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차이의 포용 혹은 여성성의 문화', 79쪽)

 

 

타자라는 개념, 에 대하여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를 놓고 바흐친의 생각을 읽을 때

 

주체는 타자의 입장에서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내 자신이 타자의 타자라는 사실, 이로부터 바흐치는 우리 자신이 타자가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저 덮을 수밖에 없는 타자', 118쪽)

 

 

반항이라는 개념, 에 대하여 허연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놓고 카뮈를 이야기할 때

 

인간은 반항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는 카뮈의 통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와 '아니오'의 경계선, 그러니까 반항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느낀 것, 욕망하는 것, 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때만큼 우리가 자신에 대해 많이 의식하는 순간도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자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한 겁니다.

('자유와 한계의 변증법', 305쪽)

 

나는  그 개념을 사랑하게 된다. 품고 싶어지게 된다. 더불어 시인도, 철학자도 모두 사랑하게 된다.

 

글에서 말하듯 '사랑'이란 상대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 개념들에 대하여 알고 싶고, 시에 대하여 알고 싶고, 철학자에 대하여도 알고 싶다.

글에서는 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사랑도 없다고 했다.

다 알았다는 그 순간, 아마 아주 오랜 기간 그 순간은 올 수 없기에 세 가지를 불타게는 아니더라도 뜨뜨미지근하게는 꾸준히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에 왜 '괴로움'이라는 말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다. 읽으면서 괴로움 따위는 없었다. 개념 자체가 괴로워하는 경우는 종종 보았지만 내가 괴롭지는 않았다. '괴로움'이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괴로운 시'에 붙이면 모를까 부적절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