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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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를 [정신의 삶]으로 처음 만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삶은 이토록 우연적이다. 이 책의 물질적, 내용적 무게를 내가 다 견뎌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문장 하나라도 얻어가기를, 이해하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정독하지 못했다. 어떤 부분은 꼼꼼히 읽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통독(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했고 발췌독하기도 했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생각을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고 때로는 전체는 알겠는데 한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역자 해설에 보면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대중서로 쓴 모양인데 역자 왈 난해해서 그 부분은 실패했다고 해서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일단 이번엔 이렇게 읽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을 시작하면서 역자와 원 편집자의 글을 먼저 읽었는데 그들의 글에서 자긍심이 느껴졌다. 한나 아렌트 역시 이 책이 한 권으로 엮어진 것을 보았다면 무척 뭉클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사유와 의지 부분만 완성했고 판단 부분은 편집자에게 맡겨야 했다. 다른 책을 접하지 못했기에 그녀의 방대한 사유의 영역에 대해서 비교불가능하지만 '한나 아렌트 철학의 정수'라고 불릴 만 하다는 생각엔 왠지 모르게 동의하게 된다. '판단'의 미완성을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철학서들은 두껍든 얇든 기본적으로 패턴이 비슷하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이전의 이론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적절함 혹은 부적절함을 드러내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형식이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본 구조인데 덕분에 새삼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만나고, 칸트나 헤겔, 하이데거에 대한 궁금함을 갖게 되었다. 학창시절 가장 힘들어하던 내용이 서양철학이었는데 나이 마흔에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제목에 사유는 Tinking으로 표시되었고 내용 상 cogito라는 말을 썼다. 책을 읽으며'思惟'가 혹시'思'는아니었나 잠깐 머뭇거렸었다.생각의 깊이 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어야 사유가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 한나 아렌트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중요한 것은 이런 류의 생각들은 책을 읽으면서 간헐적으로 수시로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이런 쓸모없는 내용이었지만 한나 아렌트가 내 마음에 사유의 바람을 일으킨 것만큼은 분명하다. 닉네임으로 쓰고 있는'혜윰'이라는 말의 뜻이'생각'인 만큼 내게 이런 시간들은 분명 큰 자극이 되었다.현상세계를 살면서 어떤 경험의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는 사유의 시간은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살아가는 필수요소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빠르게 지나가는 예시이긴 했지만 사유하지 않은 오르페우스와, 사유한 페넬로페의 비교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바틀비는? 의지에 더 가깝겠지?


사유의 역사가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한 것과 달리 의지의 역사는 빨리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이지만 근대 헤겔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다루어졌다. 1권의 <사유>를 읽으며 소크라테스와 칸트에 관심이 생겼다면 2권 <의지>를 읽으면서 똑 부러지는 헤겔과 하이데거의 이론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아렌트의 힘인가 그들의 힘인가 모르겠다. 고대와 중세 시대에는 '신'이 인간 세계를 지배하였기에 '미래'에 대한 것 역시 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현재와 미래는 인간의 몫이 되었고 현재의 불안과 염려는 인간에게 의지를 선물했다.(고 나는 해석했다) 그리하여 현상 세계에서 잠깐 이탈하여 사유하고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시간을 넘어 미래를 생성하는 시간이 닥친 것이다.(고 역시 나는 해석했다.)대표적인 것이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철학자들은 때로는 '사랑'이라 말하고(아우구스티누스) 때로는 지성이라고 말하는(토마스 아퀴나스) 등 그 정의는 달랐지만 새롭게 등장한 개념인 의지는 분명 매력적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현대 인간의 가장 큰 욕구인 '자유'와 밀접한 개념이었을 테니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유나 의지나 판단이 모두 정신활동에 속한 수많은 영역 중의 하나이겠거니만 생각했지 세상에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개념들이라니 그것 하나 안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되는데 스스로를 '의지박약아'라 칭했던 나의 삶을 돌아았을 때 내가 사유는 안 하고 산 건 아니지만 참말로 의지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 다시 사유를 해 보기도 했다. 데카르트적으로는 살았는데 헤겔적으로 살지는 못한 것이고 그건 좀 전근대적인 인간 유형이구나 판단하기도(얼씨구나 책 좀 읽었다고 갖다 붙이긴 잘도 갖다 붙인다)하며 내가 삶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 판단까지 꺼내면서 주접을 떨었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밑줄도 많고 그것을 옮겨 쓴 노트도 몇 쪽이나 되고 정리한 노트도 네댓 쪽이 되지만 그것들은 산발적으로 널려있을 뿐 정리되지 않는다. 책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조금은 명료해짐을 느낀다. 책의 분량이 사유와 의지에 대부분 할애되어 있어 판단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매력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로서의 판단, 공통적 기준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만 남아 있을 뿐이라 아쉽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이렇게 허투루나마 읽게 된 것에 무척 자긍심을 느낀다. 책을 읽는다고 내가 사유하는 나가 되고 의지하는 나가 되고 판단하는 내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이렇게 말하고는 싶어진다. 나는 요즘 한나아렌트하고 있다고. 때로는 우연이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준다. 처음에 뜨악했던 두께의 무게는 희한하게도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마음이 가벼워지고 내 갈 길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을 만나게 해준 몽실북클럽과 푸른숲, 홍원표 역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의미 없는 삶은 사유하는 나에게는 살아 있는 죽음이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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