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탄압받지는 않았지만, 차별은 받았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싶으면 소수자들은 스스로를 주장해야 한다. 자기주장 전략의 일부는 다수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루마니아인들보다 두 배 잘해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늘 내게 말했다. 만약 내가 루마 - P40

나의 장점은 인과관계를 누구보다도 더 잘 파악하는 데 있다. 내가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확신할 때, 나는 그 이해한 내용을 자신감을 가지고 분명하게구성할 수 있다. 또한 본질을 늘 인식하고자 했고, 실제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세부 사항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도 과학자로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열쇠였다고 생각한다. - P40

광학현미경은19세기에 이미 완전히 파헤쳐진 물리학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주제에서무언가 흥미로운 걸 끄집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여전히 무언가 대단히 흥미진진한 것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P41

언젠가부터 나는 당시에는 터무니없어보였던 이 생각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식했다. - P41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젊음의 열정이 넘쳤고, 열심히그리고 창의적으로 이 문제를 숙고한다면 그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 P41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독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었다. - P42

기발한 착상이 몇 번 떠오른 후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이건 아무도 모르는 내용이며,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어느 정도 냉철하게 이 아이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이틀동안 끊임없이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혹시 오류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했다.
나는 내적 모순을 찾지 못했고, 모든 것이 논리 정연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정리되었던 생각이 현실화되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경쟁자들의 질투를방어하는 일도 그 어려움에 한몫했다. 질투와 적의는 고통을 주지만, 나 같은사람에게도 분기를 일으킨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너희들은 이제 깜짝 놀라게될 거야!‘ - P43

나는 괴팅겐과 화해했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소의 소장직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과학 작업을 해도 된다고 사람들은 말해 주었다. 마치 낙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44

했다. 이런 일은 무엇보다도 질투에서 나온다. 누가 옳은지는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다.
121020년 - P45

노벨상 수상은 그렇게 오랫동안의 싸움 후에 얻은 보상을 의미했나?
우습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이론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실제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론이 효과가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와는상관없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다만 내가 처음이었다는 점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 P45

사람들은 언제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자연과학은 그 노력의 직접적인결과다. 그러므로 과학은 중단될 수 없다. 내가 어떤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되면,
나의 행동 영역은 확장되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당연히 오늘의 해답이내일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장점이 내일의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언제나 해답을 찾았다. 나는 앞으로 최소한 3~5세대까지는 계속 잘 나가기를 희망한다. - P45

당신은 자긍심을 어떻게 만끽하나?
나는 늘 자기비판적이었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사람으로, 흔히 말하는 자긍심이 없다. 한편으로 그런 점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해하기도 했다. 내가 어떤 훌륭한 것을 발견했을 때, 이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즉시보여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발견을 천천히 알렸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대단히 높은 요구가 있었다. 그 요구의 수준은 언제나 엄청나게 높았다. - P46

성공을 위한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맥스 플랑크연구소 소장이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하고, 그 일에서 성공을 원해야 한다. 당연히 무언가를 더잘할 수 있는 재능도 필요하다. 나는 한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더 자세히말하면, 그 일을 다루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이해했다고 믿을 때까지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현미경의 해상도 문제에만 집중했었다. - P46

마노학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도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중국은 이 점을 잘 이해했고, 낙관적인 분위기에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유감스럽게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낙관적 분위기가 사라졌다. - P47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도구가 없다면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아이디어들은 점점 더 빨리 세상에 퍼지고 있으며, 결국 그 아이디어의 열매를 손에 넣는 사람이 이긴다. - P47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핸들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서구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왜냐하면 문제 예방에는 다수가 확보되지 않기때문이다. 보통 처음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은 낙인이 찍힌다.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을 때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을 수 있다. 자연이나 사회에서 타당한 인과관계를 잘못 읽으면 언제나패배하게 된다. 자연은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그러나 이 인과관계를 제대로 인식하면 자연은 상상 이상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다. - P48

"우연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말은내삶의 모토와 같다.‘ - P51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모두 강한 여성이었고, 여성도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당신에게 알려 주었다. 당시 이런 가르침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맞다. 내가 어렸을 때 이혼한 부모는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할머니는 전쟁 동안 네명의 딸을 얻었고, 어머니는이혼 후 자식 셋을 혼자 키웠다. 그래서 나는 여성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우리는 어릴 때 꿈을 실현하라고, 그냥 자기 자신으로있을 용기를 가지라는 격려를 계속 받았다. 나는 해양 연구가라는 직업을 이미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희망했다. 무엇보다도 특히 어머니가 아주 일찍부터서를 가르쳐 준 영향이 컸다. 나는 밖에서 노는 걸 즐기는 아이가 아니었고, 사춘기 때는 정말 외톨이였다. 열네 살 때는 세계 문학 전집 절반을 읽었고, 특히바다나 항해와 관련된 책은 모두 읽었다. 또한 자크 쿠스토 Jacques Cousteau, 한스하스Hans Has, 로테 하스Lote Has 같은 사람이 진행했던 바다 연구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들도 즐겨 보았다. 이 프로그램들은 할아버지의 설명과 잘 연결되었다. 특이하게도 나는 청소년 시절에 이미 나는 아이가 없을 것이고, 한 공간에 뿌리를 내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 P52

PURE SH당신은 그곳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한 탐사 활동에서 한 남자를 만나 독일로 돌아왔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심해 연구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한 교수에게 자문을구했다. 그 교수가 생각하기에, 세계에서 심해저 미생물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방법은 독일 브레머하펜 해양미생물학자 카린 로체 Karin Lochte 밑에서 연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이 충고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2년 한 여행에서 갑판장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이 하필 브레머하펜 출신이었다.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면서 나는 미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 갑판장과 나는 오랫동안 함께 살았고, 여전히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 P53

과학 분야에서는 가끔 경쟁이 특별한 형태로 발생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경쟁을 경험했는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실제로 과학계에는경쟁보다 친교가 더 많다. 아이디어와 창조성을 둘러싸고 스포츠와 같은 경쟁을 하는 게 마음에 든다. 이런 경쟁은 즐겁고 나를 고무시킨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이 같은 주제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것은 상호 교류를 위한좋은 기초가 된다. 우리는 경쟁 관계에 있지만, 누군가 성공하게 되면 모두 함께 기뻐한다. 경쟁자로부터 내가 받고 내가 상대에게도 줄 수 있는 인정이 나를 자극한다. 나는 이미 일찍부터 나의 한계와 포기 지점을 깊이 생각했다. 항해를 통해 배웠던 이런 명료함을 일상에서도 활용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나의 위치를 더 잘 인정해 준다고 생각한다. - P55

곧 작은 부분에서의 충직한 근면성보다 거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학에서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이해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또 하 - P55

나도 이 발견에 정말 놀랐다. 유감스럽게도, 과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지구를 지켜낼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줄어든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짧은 시간안에 중단하지 못하면 약 2040년부터 빙하 없는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전복의 순간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 - P57

당신은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와도 싸우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나의 재앙이다. 북해에도, 심지어 북극해조차도, 해변에좌초된 큰돌고래들도, 죽은 바다표범과 바닷새들도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우리가 자연을 그렇게 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합리적 해결책은 분해되는 물질로만 폐기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바다에 머무는물질로 쓰레기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단순하고 신속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과학은 더 많이 직접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치 및 사회와 일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협력을 위한 플랫폼이 없다. - P58

당신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깨어 있기, 관찰하기, 생각과 행동을 조화롭게 하기. - P58

당신을 보면, 낙관주의가 당신을 덮고 있는 것 같다. 당신도 가끔 위기가 있었나?
느려터진 진행 과정 때문에, 혹은 끔찍한 어리석음과 증오 때문에 엄청나게 분노하는 상황은 끊임없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고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또 능동적이 되어야 - P58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고 위로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비관주의를 금지한다. - P59

당신의 성격을 세 단어로 묘사한다면?
영리함, 재빠름, 즐거움. - P59

젊은 사람들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이라는 직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식의 한계를 측정하고 이를극복하는 일로 구성된다. 영원한 어린아이로 머무는 일도 이 직업에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모든 어린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잘 짜인 뇌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 뇌는 충족되기를 원하고, 배우고 탐구하기를 원한다. 이런호기심과 바람을 과학자는 평생 유지할 수 있다. - P59

당신은 어릴 때 바이올린과 바순을 연주했다. 학교보다 음악을 통해 더 많은 것을배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늘 음악에 본능적으로 끌렸고 음악가가 정말 되고 싶었지만 충분한 재능이 없었다. 창조성은 오직 기술적 숙련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을 통해 배웠다. 이 원리는 과학에도 적용된다. 음악을 할 때 중요한 건 악기를 배우는 일이고,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연습을 의미한다. 나는 과학에서 물질을 배워야 하고, 엄청나게 많이 읽고,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 - P64

부로 여긴다. 노동은 종종 부정적 의미를 품고 있지만, 나의 자리를 여러 의미에서 하나의 선물로 느낀다. 나의 직업은 흥미로우며,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특별히 일을 많이 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 P65

일이 어렵다고 생이 문제는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은 정말로 자신을 제대로 잘 평가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문제에서 타고난 무능력자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면서 동료와 가족들의 피드백을받아야 한다. 이 피드백 없이는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또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시류의 영향을 사회로부터 받는다. 과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유행에 종속된다는점이다. 종종 모든 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하고 모두 같은 결과에도달한다. - P66

나는 운이 좋았다. 많은 이들은 결국 포기한다. 처음 나의 연구소를 이끌기 시작했을 때 나는 깊이 생각했다. ‘무언가 중요하고새로운 것을 발견할 기회가 실제 어디에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아직 건드리지않았지만, 인간의 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연구 영역은 어디일까?‘ 나는 이런 생각으로 오늘도 전진하고 있다. - P67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뿐만 아니라다른 사람이 찾아낸 것을 이해할 때도 엄청난 즐거움을 느낀다. 진정한 새로운통찰과 인식을 만났을 때 가장 기뻤다. - P70

당신 삶에서도 위기가 있었나?
어떤 과학적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대단히큰 좌절을 겪었다. 나보다 훨씬 적은 업적을 쌓은 것 같은 사람도 받는 인정을내가 오랫동안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도 좌절했었다. 나는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완전히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모든 심사 과정과 수상은 능력뿐 아니라 운과 약간의 정치에도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의 노벨상 수상도 행운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은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다른 사람이 받았어야 했다. - P71

과학적 진리는 궁극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진리가 어떻게 정의되든, 진리는 상대적인 게 아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진리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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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시절에 나는 일년에 두번 정도 브레턴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 집과 식구들이 특히 내 마음에 들었다. 평화롭고 커다란 방, 잘 정돈된 가구들, 깨끗하고 시원한 창문, 멋지고 고풍스러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밖의 발코니, 너무 고요하고 너무나 말끔해서 늘 일요일이나 공휴일 같은 거리. 이런 것들 때문에 그곳에 가면 늘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금상첨화로 어떤 재산보다 더 값진 결함 없는 건강과 건전하고 차분한 정신을 물려받았다.

나는 평화로운 걸 아주 좋아하는데다 자극을 찾는 편도 아니어서, 자극이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자 심란해졌으며 오히려 그런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홈 부인(홈이 그 친구의 이름인 듯했다)은 아주 예쁘지만 경박하고 조신하지 못한 여자여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실의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중 이름에 ‘드de’가 붙는 귀족도 두어 사람 된다고 했다.

브레턴 부인은 누군가를 귀여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서도 다정다감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드물었고 종종 그 반대였다. 그러나 그 낯선 꼬마가 미소를 짓자 부인은 아이에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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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있을 때와 달리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게 지민의 성격이었다.

알든 모르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건 나의 성격이었다.

외삼촌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섞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보면 두꺼운 알이 하얗게 보이는 안경을 쓴 외삼촌이, 아직은 사십대였던 외삼촌이, 평생 책만 읽은 가난뱅이 책벌레 외삼촌이, 꼼꼼한 교열자로 유명했으나 인터넷과 검색기가 교열을 대체하면서 20세기와 함께 쓸모가 사라진 외삼촌이 자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군부가 판매금지를 시킬 때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요. 그게 독재정권이 하는 일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정권이 싫어하는 게 뭔지를. 그렇게 독재정권하의 사람들은 스스로 내적 검열관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저자인 김원씨는 자신을 농부라고 소개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인 투자자문 회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쉰 살이 되었을 때 뜻한 바가 있어 회사를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경상도 산골로 낙향했다. 그 뜻한 바란 이번 생에 깨닫고야 말겠다는 결심인데, 사십대에 접어든 뒤 나는 주변에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아마도 삶이 힘들고 이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도 어려운 나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낙향하고 보니 시골 생활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가져간 좋은 책들을 들춰볼 틈도 없이 삼 년이 지나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계속 지는 한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결국 돈을 따게 돼 있었다. 다만 판돈이 부족했을 뿐이다.

둘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한번 더 살 수 있기를. 다시 둘이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원래대로 시간이 흐르기를. 그리하여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그들은 그 순간을 한번 더 경험한다. 그리고 놀란다.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번째 삶이 시작된다.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한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그렇다면 제가 달라져야 이런 풍경이 바뀐다는 뜻인가요?"
"그게 내 앞의 세계를 바꾸는 방법이지요. 다른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평소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도 좋구요. 서핑을 배우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 결심만 해도 좋아요. 아무런 이유 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
진호씨가 말했다. 그건 무척이나 놀라운 말이었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시간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흐르든, 19세기로 흐르든 마찬가지예요.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지금 미래를 기억해, 엄마를 불행에 빠뜨린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세상이 내게는 가장 선명하다고.

대부분의 말은 듣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어떤 말들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순간을 참지 못했기에 그 여름, 우리의 일부는 언제나 맞닿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기를 결심했다면 나도 그녀를 따라갔을 것이다.

둘 중 하나를 계속 선택하는 도박에서는 지면 질수록 그다음에 이길 확률이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면서. 그 남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

메이저리그 투수가 한 말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이기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지기만 하는 인생도 나쁘지 않아요. 중간에 선택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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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레이먼드 카버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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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이 흥미롭고, 재밌고, 더러는 너무 사실적이라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작품이든 인간성에 대한 그의 통찰과 은유는 삶의 지평을 확장해 주며, 그의 유머 감각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는 전혀 다정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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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2-05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츤데레 같은 카버 ㅎㅎ 백자평 훌륭합니다^^
두려움을 슬며시 안겨주면서 역설적으로 위안을 주는 게 묘하게 매력있어요. 고급진 유머까지.

라로 2022-12-06 14: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츤데레 같은 카버!! 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살짝 아팠는데 그건 그의 인생을 이미 알아버려서 그런 것도 같아요.^^;; 카버의 글은 묘하게 매력있는 작가인데 인간으로도 그랬을지 좀 궁금하긴 했어요.
 

말춤이라서 말세인가?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다. 소설가로서 나는 예언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이 언어여야만 한다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예언가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뭔가를 봤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지식 수준에 맞춰 언어로 표현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모를까, 그걸 언어로 변환한 이상 그 진의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역까지 된다면 왜곡은 피할 길이 없다. 결국 예언은 그 형식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많은 셈이다.

그와 우리 사이에는 남들 눈에도 보이는 책을 읽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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