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은 무척 신중했지만 대담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수녀원과 고해성사가 있는 이 나라에서 ‘여자기숙학교’에 그렇게 젊은 남자가 뻔뻔스럽게 드나드는 것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어느정도는 음흉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유능한 태도와 숙련된 솜씨, 강인한 성격, 확고한 결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마음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젊거나 젊음 특유의 명랑한 우아함은 없어도 기분을 좋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지겹지 않았다. 그녀는 단조롭거나 무미건조하거나 흐리멍덩하거나 시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지 않은 머리카락과 온화한 푸른 눈과 싱싱한 과일빛을 띤 뺨, 이 모든 것이 적당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호감을 주었다.
그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긴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럴 뜻도 없으면서 장난으로 부추긴 것이라면 그는 아주 나쁜 사람임에 분명했다.
베끄 부인이 비록 열네살 정도 연상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늙지도 시들지도 쇠약해지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사이가 좋았다.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정말로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적어도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결말을 기다렸다.
정중한 인사였지만, 여전히 그는 원치 않는 관심을 너무 받아 지겹고 넌더리가 난 모양이었다.
땋은 밤색 머리 사이로 흰 머리카락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부르르 떨면서 흰머리를 뽑아냈다.
그렇다면, 젊음의 자태는 어디로 갔는가? 아, 부인! 현명한당신도 약점이 있으시군요
그녀에게는 사실 극복해야 할 정도로 강한 감정도, 비참하게 고통에 빠질 애정도 없었다.
길이 외지고 음침한 것이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오랫동안 이 길을 멀리했지만 사람들이 차츰 나와 내 습관에 대해, 그리고 내 고질적인 성격 중 특이하게 그늘진 구석?관심을 끌 만큼 두드러지거나 불쾌감을 줄 만큼 눈에 띄는 건 아니었으나, 타고난 나의 일부이며 나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서서히 이 좁은 오솔길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금욕적인 편이 나았다. 미래, 나의 미래와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이런 강직증과 마비된 무아의 상태에서 나는 내 본성 중 민감한 부분을 누르기 위해 애썼다.
그 당시 날 흥분시키는 것이 무엇이든, 예를 들면 날씨 같은 우연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깜깜하고 천둥소리가 노호하며 언어로는 결코 인간에게 전달되지 않는 송시가 울려퍼지는 광폭한 시간이 주는 기쁨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한 대로 갈망의 이마에 못을 박았다.8 그러나 갈망은 시스라처럼 죽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잠잠해졌다가 가끔씩 반항적으로 몸을 뒤틀며 못을 뽑아내려 했다. 그러면 관자놀이에서 피가 흐르고 골은 한가운데까지 흔들렸다.
나와 관련된 한 그의 푸른 눈은 결백했고, 하늘빛을 닮은 그의 눈은 하늘만큼이나 고요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종종 그들의 명랑함과 확신과 자기만족이 의심스러웠지만, 그들이 그다지도 확신에 차서 걷고 있는 길을 애써 올려다보거나 곁눈질하지 않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 볼 때, 그녀가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수상쩍은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움직이는 소리나 숨소리나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서가 아니었다. 완전히 ‘비어 있지’ 않고 ‘고독’이 감돌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아주 솜씨 좋게, 말끔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해냈다. 어떤 사람들의 동작은 서투르고 부정확해 짜증이 나지만 그녀의 동작은 깔끔해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눈을,그녀는 내 눈을 들여다보아야 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시는 함께 일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에 오도되어 벌이는 소동은 정말이지 우스웠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하자. 내가 해를 입은 것도 없는데 악의를 품을 이유는 없잖아?"
내가 그토록 묻고 싶은데도 용기와 재주가 없어 꺼내지 못한 말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먼 곳에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도달하는구나!
독자가 로진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사람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단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움켜쥐는 것이 수치라거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사를 붙잡고 까치처럼 재잘대는 것이 실례라는 걸 전혀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활기찬 사람들이 가득한 집에 살고 있었으며, 친구를 사귈 수도 있지만 스스로 고독을 택한 것이었다.
선생들은 모두 차례로 내게 특별한 친밀감을 표시했고 나도 그들 하나하나를 고려해보았다.
한 선생은 정직하지만 생각이 편협하고 감정이 조야한 이기주의자였다. 두번째 선생은 빠리 여자로 겉으로는 세련되었지만 속은 썩어빠졌고, 신념도 원칙도 감정도 없었다. 이 인물은 예절이라는 겉껍질을 뚫고 들어가보면 속에는 허물밖에 없었다. 그녀는 선물에 열광했다. 뚜렷한 개성도 없고 보잘것없는 세번째 선생도 선물에 열광한다는 점에서는 그녀와 똑같았다. 이 마지막 선생은 한가지 더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탐욕이었다.
그녀는 돈 자체에 대한 사랑이 제일 중요했다. 금붙이를 보기만 해도 그녀의 눈에는 괴상한 푸른빛이 감돌곤 했다.
그 빠리 여자는 늘 빚을 지고 있었다. 월급 때가 다가오면 옷만 사는 것이 아니라 향수와 화장품과 과자와 향료 등속까지 샀다. 얼마나 속속들이 냉담하고 무감각한 쾌락주의자인지!
일하기는 죽어라 싫어하고 자신이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랑했다. 그녀가 말하는 쾌락은 무미건조하고 열정도 없는 멍청한 시간낭비였다.
미친 듯이 몰입해보란 말이야! 생명과 영혼을 가지란 말이야!"
하루 종일 따뜻한 햇볕을 쬐고 나무 사이에서 쉬면서 나 자신의 생각을 벗 삼아 홀로 거닐거나 앉아 있었다.
‘적절함과 점잖음’이야말로 베끄 부인이 숭배하는 고요한 두 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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