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른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사적인 영어 공부
이지민 지음 / 탐탐일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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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영어 공부 비법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진실한 마음과 자신의 영어 공부 방법을 가식적이지 않고 성실하게 쓰고 있는 저자가 더 궁금해 지는 책이었다. 번역에 관심이 생겨 읽었는데 오히려 어떤 자세로 공부하고 살아야 하는지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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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려면 결국 문법이나 단어 등을 많이 외우기보다는 언어적 사고의 패턴을 내 머리 안에 들여놓은 다음 그 언어 특유의 문장 구조 골격을 파악하고 간단한 구조로 된 문장을 최대한 많이 써보며 단어의 질감을 익혀야 한다."

문법 공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익힌 뒤에는 실제로 자전거를 타면서 몸으로 익혀야 하듯, 문법이라는 규칙을 이해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런 식으로 문법을 공부합니다. 문장을 문법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그쳤던 교육의 병폐이죠.

법칙을 외우려 하기보다는 눈으로 귀로 다양한 문장을 소화해 영어의 결을 느껴야 합니다. 문법에 맞는 문장이 내 입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단계까지 거쳐야 문법을 제대로 소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문법이 존재합니다. 일종의 로컬 문법이죠. 조승연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어로 이런 로컬 문법은 수도 없이 많다. 표준 문법이라고 배운 것을 기준으로 정답과 오답을 가르면 이들의 영어가 ’틀린 것‘처럼 들려 이해하기만 어려워질 뿐이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할 때 지문이나 대화를 교과서로만 보면 안 된다. 영어로 생산되는 다양한 글, 노래, 영화, 비디오 등등을 접해 보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면, 마치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처럼 실제 상황의 다양함 앞에서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외국인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배운 문법을 기준으로 두면 그들이 사용하는 문장이 대부분 틀리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현상들을 아우르는 통칭적 용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현상들의 기저에는 서로 공유하는 일정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반에 자리 잡은 작동 원리를 끌어낸다면, 부정사, 동명사, 분사라는 각각의 현상들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문법책을 보는 과정이 전혀 없이 그냥 영어책을 읽음으로써 영어 문법 감각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이런 책의 도움을 받으면 보다 확실히 감이 옵니다. 또한 잘못 이해하고 넘어간 부분도 바로잡을 수 있지요. 따라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문법책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문법 공부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고유 명사를 제외하고 영어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국어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또한 한 단어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는데 사전의 앞부분에 나온 몇 가지 뜻만 암기하고 넘어가면 수많은 문맥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사례를 놓치고 넘어가게 되지요.

영어는 상당히 유동적인 언어라 전 세계 사용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생겨나고 또 사라집니다. 우버(uber)와 구글(google)이 존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I’ll be ubering home(우버 불러 타고 갈게).이라든지 I’ll google it(구글에서 찾아볼게).이라는 문장 역시 존재하지 않았죠. 현대는 잘 사용하지 않아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온 옛날 사람 같은 느낌을 풍기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단어공부에서 가장 지양해야 하는 방법은 영한식 공부법입니다.

"사전에는 한 단어에 10개 이상의 의미 풀이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한 단어가 갖는 뉘앙스나 느낌을 말로 다 담아낼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대략 7~10개 정도의 주관적 기준으로 의미를 잘라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지개에는 무한대의 색이 들어 있지만,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잘라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을 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배열되어 있는 단어의 의미를 그냥 외울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여보내 다시 합쳐서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원래의 몽실몽실할 느낌을 복원해 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단어가 가진 원래의 몽실몽실한 느낌을 ‘의미의 영역’이라 부릅니다. 한 단어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예를 많이 접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별도로 외우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죠. 하지만 다양한 의미도 사실은 같은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해석만 약간 달라질 뿐이지요. 단어를 번역하는 일은 번역가의 몫으로 남기고 우선은 두리뭉실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기 바랍니다.

단어의 모호함을 이해하면 문맥상의 의미를 대충 눈치챌 줄 아는 능력도 길러집니다. 원서를 읽을 때나 뉴스를 들을 때, 대화할 때 의미를 100퍼센트 파악하지는 못할지라도 대략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요령이 생기는 것이지요. 영어를 쓸 줄 안다는 건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단어 줍기’를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라도 사실은 제대로 알고 있던 게 아니기에 하루에 한 단어씩 골라서 영영사전의 의미를 파악하고 넘어가는 것이지요. take, have, get 같은 쉬운 단어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이러한 단어들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마무시한 뜻들이 있답니다.

반드시 사전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사전은 단어의 역사가 모두 담긴 소중한 기록이지만 우리는 사전을 그렇게 꼼꼼히 읽어보지 않습니다. 뜻을 알고 싶은 급한 마음에 영한사전의 맨 위에 나온 뜻 한, 두 개만 혹은 나에게 당장 필요한 뜻만 힐긋 본 뒤 넘어갑니다. 찾은 정성 때문이라도 꼼꼼히 보게 되는 종이사전과는 달리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영어 사전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사전만 꼼꼼히 봐도 해당 단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 필요한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초음파(ultrasound), 갑상선(thyroid) 같은 단어는 복잡하고 발음이 어려워 보이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 잡게 되므로 어려워 보인다고 섣불리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어 단어의 역사를 전해주는 책은 웬만하면 사보는 편입니다. 해당 단어의 깊숙한 어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서 이런 단어가 탄생했는지 그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납니다.

저는 우리말을 사랑하고 영어로는 쉽게 번역이 되지 않는 다양한 우리말 표현을 존경합니다. 특히 ‘파랗다’라는 한 가지 형용사에서 파생된 푸르딩딩하다, 푸르스름하다 등의 온갖 표현을 사랑하죠. 허나 영어문장 역시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추상적인 대상을 명사화한 영어 문장은 한국어 문장보다 임팩트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눈으로만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언어의 소리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 언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메시지이다."라며 "좋은 글은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온다."고 말합니다(《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중).

"On any person who desires such queer prizes, New York will bestow the gift of loneliness and the gift of privacy. It is this largess that accounts for the presence within the city’s walls of a considerable section of the population; for the residents of Manhattan are to a large extent strangers who have pulled up stakes somewhere and come to town, seeking sanctuary or fulfillment or some greater or lesser grail. The capacity to make such dubious gifts is a mysterious quality of New York. It can destroy an individual, or it can fulfill him, depending a good deal on luck. No one should come to New York to live unless he is willing to be lucky."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과목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라는 연장선상에서 이 언어의 아름다움을 만끽해야 하는 거죠.

영어를 식자재처럼 분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은 중급에서 고급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는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어의 특징을 보다 깊이 탐구해야 합니다. 더불어 영어로 사유하는 습관도 길들여야 하죠.

영어라는 언어의 문장구조나 단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이고도 편리한 수단은 소설입니다.

어떤 소설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소설이 원서 읽기의 마지막 단계라고 봅니다(시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시는 소설과는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원서 중에서도 소설이 가장 읽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공 서적 또한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어려울 수 있지만 보통 용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구문 자체는 어느 정도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소설을 원서로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영어 원서 읽기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요인은 단어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보았거나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우수수 내 눈 앞에 펼쳐지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죠. 구문 해석조차 안 되는데 감당이 안 되는 수많은 단어를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고 허둥지둥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만 책장을 덮어버리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다만 조동사의 다양한 활용처럼 소설에 자주 쓰이는 문법의 쓰임새를 몇 가지 익혀두면 소설을 비롯한 온갖 원서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소설에서는 문장의 재미를 위해 앞의 명사를 꾸미는 글을 뒤로 보내기도 하는 등 문법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는 편입니다. 계속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지만 처음에는 이러한 문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수 있죠. 이럴 때 문법책은 큰 도움이 됩니다.

《영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영어문장에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올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다. 따라서 내용 파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르는 단어를 그냥 넘어가는 연습도 중요하며, 그냥 넘어가고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결국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몇 권 읽다 보면 감이 오기 마련이지만, 책을 쭉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가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자를 정리하고 후자는 슬쩍 넘어가야겠지요. 온갖 단어를 다 가져가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단어의 뜻을 모르더라도 문맥 내에서 그 뜻을 유추해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 역시 단어 공부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이 역시 원서를 여러 권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장되는 능력이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설 속 단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마세요. 책을 읽는 주체가 되어야지 단어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보다 큰 관점에서 책을 읽으세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영어 공부법에는 영시 읽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고전시를 접하면 그 난해함에 지레 겁부터 먹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밥 딜런의 가사집은 훌륭한 영어 교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노래를 통해 자유어를 마음껏 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밥 딜런은 "평면적 해석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언어실험을 통해 독특한 자기 문법을 창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The Way It is
William Stafford

There’s a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
People wonder about what you are pursuing.
You have to explain about the thread.
But it is hard for others to see.
While you hold it you can’t get lost.
Tragedies happen: people get hurt
or die; and you suffer and get old.
Nothing you do can stop time’s unfolding.
You don’t ever let go of the thread.

삶이란 어떤 거냐 하면
윌리엄 스테포드

내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단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하지만 그 실은 변치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잡고 있는 동안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도 고통받고 늙어간다.
내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지 말아라.

시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는 시란 문을 활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살짝 문을 열었다 닫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른의 영어 공부에서는 그저 단순히 언어를 공부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의식의 확장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의 궁금증이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하는 공부여야 하죠.

영어에서는 은유법을 많이 구사합니다. 한국인은 직유법을 많이 사용해 같은 문장이라도 한국어로는 ‘그녀는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고 말하지만 영어 문장으로는 ‘Her heart is an ocean(그녀의 마음은 바다다)’처럼 은유법으로 말하죠.

영시는 반드시 입으로 낭독하면서 익히기 바랍니다. 시 특유의 리듬감을 느끼고 더불어 그 의미까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봐야 합니다. 오디오북으로 공부할 때처럼 입으로 읽다 보면 어디에서 끊어야 할지 명확히 파악되며 문법적인 분석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번역에 욕심을 내곤 합니다. 어설픈 번역서를 지적해보기도 하고 나도 한 번쯤은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죠.

일단은 원서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때에는 굳이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용이나 원서의 리듬을 느끼는 데 집중합니다. 필립 로스처럼 장문을 즐기는 작가의 글은 특히나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다가는 그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문장을 마디마디마다 끊어서 분석해야 철저한 해석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장문의 경우 흐름을 타지 못하면 적절하지 못한 곳에서 끊는 바람에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될 때도 많습니다. 따라서 철저한 해석보다 문장의 흐름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번 읽은 뒤부터는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봅니다. 자신이 하루에 공부할 분량만큼만 다시 읽고 번역서까지 함께 읽어 비교해보는 거죠. 이때에는 뜻이 와 닿지 않거나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밑줄을 긋는 등 표시를 하면서 읽습니다.

뜻을 잘 모르겠는 문장에는 물음표도 달아보고 뜻은 알겠지만 번역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한 문장에는 별표도 쳐보고, 그렇게 문장을 뜯고 씹고 맛본 뒤 번역서를 펼쳐 듭니다. 이때가 가장 긴장되면서도 짜릿한 순간이죠. 정답표를 보는 것 마냥 떨리기도 합니다.

내가 잘못 해석한 경우든, 뜻을 파악 못 한 경우든, 꼼꼼히 짚고 넘어가는 과정이 번역으로 공부하기의 핵심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 이것저것 집어넣어야 하는 게 많은 다소 힘겨운 과정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내가 하루에 할 분량을 욕심내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책 한 권을 마치기도 전에 공부를 중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꼼꼼한 비교 분석을 거쳤다 할지라도 우리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며칠 뒤에 다시 읽어보며 되새김질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때에는 밑줄 친부분 위주로 읽으며 다시 한번 스스로 해석해 봐야 합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반드시 있겠죠. 그럼 다시 번역서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마친 뒤에는 며칠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뜻이 다 파악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처음 읽을 때보다는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았던 문장의 흐름도 음미할 수 있게 되고요. 여유가 있다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펼쳐 봐도 좋습니다. 오디오북을 활용해도 좋고요.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내 스스로 한 권이라도 마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향상된 실력은 과거 나 자신의 실력과만 비교하면 됩니다.

번역으로 공부를 할 때는 원서를 잘 골라야 합니다. 평소 경제, 경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나 《티핑포인트》 같은 유명한 책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소설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노트북》 같은 대중서는 쉬운 편에 속하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쉬운 대중서부터 시작해 보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과도한 욕심을 부리면 자칫 ‘번역으로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쉬운 번역서에서 시작한 뒤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면 됩니다. 이때에는 신중해야 하는데, 갑자기 난이도 상의 원서에 도전할 경우 자괴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실력을 갈고닦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인 것만 같아 속상해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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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3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저도 해보려고요. 이유는 자막 보는 것이 피곤해서요. 화이팅!
 

애정 결핍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누가 조금 관심만 보여도 허겁지겁 허둥지둥 있는 말 없는 말 다 쏟아 내는 것이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냉정하게.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그걸 덥석, 보따리째 내놓으면 안 된다. 허겁지겁 보따리를 풀어 놓아서는 안 된다. 고수들이 포커를 치듯, 연애를 하듯, 상대를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작가는 담담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처럼 해야 할 말만 해야 한다. 그렇게 독자를 궁금하게 하고, 궁금증이 다 풀리기 전에 한발 물러나야 한다. 다시 조금 더 궁금하게 하고, 그 궁금증이 다 풀리기 전에 또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작가가 주도권을 잡고 독자를 조금씩 이끌어 와야 한다.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독자가 애를 태우며 이야기를 따라와 인물과 함께 절정을 맞이해야 한다.

극적 질문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며 딱 필요한 만큼, 독자의 궁금증보다 조금 ‘덜’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렇다. 만나자마자 출생의 비밀부터 프로이트적 트라우마까지 다 털어놓는 사람은 부담스럽다.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상대의 사연이 딱하게 느껴진대도 그렇다. 아직 서로 익숙해지기도 전에 낯선 상대가 눈물부터 쏟는다면, 뜨악한 기분이 들 뿐이다. 다음에는 자리를 피하리라, 일단 번호부터 수신 거부 처리하리라 마음먹으며.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쏟아 내는 건 설레발밖에 안 된다. 다른 용어로는 주책바가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몸이 달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쉬울 게 뭐가 있는가(그런 척하자). 작가는 정말로 재미난 이야기를 다 알고 있지만, 독자님 하는 거 봐서 조금씩 들려주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극적 질문에 따른 사건 전개에만 충실하면 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필요에 따라 숨은 사연을 조금씩 이야기하는 거다. 들떠서 허겁지겁 다 털어놓다가는 장화 홍련 취급을 받게 된다.

슬픔의 절정은 그렇게 묘사되고 바로 장이 바뀐다. 독자에게 슬픔을 구구하게 떠벌리지 않는다. 같이 슬퍼해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하이디의 마음을 담담하게 서술한 뒤, 작가는 자리를 비켜 준다. 독자가 홀로 슬퍼할 수 있도록, 홀로 눈물 흘릴 수 있도록. 하이디와 둘이서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알고 있되, 필요한 만큼만 말해야 한다. 거대한 빙산을 창조하되, 그 가장 아름답고 날카로운 일각만 내보여야 한다.

이야기가 문체를 만들고 문장을 자아낸다.
이야기가 먼저, 문장 혹은 문체는 그 결과다.

문장은 이야기에 대한 장악력에서 나오고, 문체는 이야기에 대한 태도에서 나온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만큼 안정된 문장을 쓸 수 있다. 사람마다 문장력에 차이는 있다. 목표는 최고의 문장가가 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문장력을 구사하는 거다.

구구한 설명, 감정적인 호소, 기교를 부린 문장. 그건 허술한 이야기에 덧붙이는 눈속임이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작가가 인물의 진실을, 인물에게 일어난 일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물에게 일어난 일을 독자에게 전하는 일이다.
담담하게, 차분하게, 정중하게.

아이디어? 그거야말로 책 동네에서 만고에 쓸데없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사람의 영혼을 해칠 위험마저 있다. 나한테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있어…… 있어…….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헤매지 않은 적도, 힘들지 않은 적도 없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싶다.

어리지 않은 사람의 어리광은 꼴불견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생님, 아이들이 선생님을 너무너무 만나고 싶어 해요"라고 벅차게 말씀하시는 분에게 "강연료는 얼마인가요?"라고 그냥 묻는다. 그게 뭐 어떤가? 나는 노동의 대가를 원한다.
다만 노동의 대가를 원할 뿐, 일확천금 따위를 바란 적은 없다. 글쓰기는 정직한 노동이지, 사행성 투기가 아니다. 나는 사실 "대박"이라는 말이 아주아주 싫고, 책을 두고 그 말을 쓰는 건 더더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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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 중 음식만 한 것은 없다. 식사는 하루를 떠받치는 대들보다. 식사가 없으면 마치 블랙홀처럼 시간이 자기 위로 무너져 내리고 중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868년, 조지 풀먼이 처음으로 식당 칸을 만들었다. 그는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이름을 따서 식당 칸에 델모니코Delmonico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철학자는 모든 10대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정원과 철학은 서로 잘 어울린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총아였던 볼테르는 "우리는 반드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7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원사였던 존 에벌린 역시 이에 동의하며 "정원의 공기와 분위기"3는 "철학적 열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아야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응변할 수 있는 재치가 가장 훌륭한 안내자다.

여성의 삶은 가장 좋은 시절에도 힘겨웠다.

플라톤 아카데미는 더 불길한 글귀로 손님을 맞이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

에피쿠로스의 모토는라테 비오사스Lathe Biosas, 즉 ‘숨어 사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늘 의심받는다.

에피쿠로스는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를 가진 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신체에 최고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다.그리고 즐기라고. 그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인 쾌락을 옹호했다. 그리고 도발적으로 덧붙였다. "만약 내게서 맛의 쾌락을 빼앗는다면, 성적 쾌락을 빼앗는다면, 듣는 쾌락을 빼앗는다면, 아름다운 형태를 보았을 때 느끼는 달콤한 감정을 빼앗는다면, 선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스 맥주 미토스Mythos를 주문하고 에피쿠로스가 말한 여러 쾌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빵과 물을 먹고 살 때 몸이 쾌락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낀다. 내가 호화로운 삶이 주는 쾌락에 침을 뱉는 이유는 그러한 생활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에 으레 따라오는 불쾌함 때문이다."

자연이 당신을 돌봐줄 것이다. 자연은 반드시 필요한 욕망은 채우기 쉽게, 불필요한 욕망은 채우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평정심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화로운 상태이거나 평화롭지 못한 상태, 둘 중 하나다.

제퍼슨은 부처의 가르침을 잘 몰랐지만 에피쿠로스와 부처의 가르침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두 사람 다 욕망을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다. 두 사람 다 평정을 수행의 궁극적 목표로 보았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에피쿠로스에겐 정원이, 부처에겐 수행공동체인 승가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숫자 4를 좋아했던 것 같다. 부처에겐 사성제四聖諦가, 에피쿠로스에겐 네 가지 치료법이 있었다.

어쩌면 에피쿠로스가 부처의 가르침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에피쿠로스와 부처가 다른 길을 따라 결국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톰은 에피쿠로스의 원칙을 충실히 고수하는 특급 에피쿠로스주의자로, 에피쿠로스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캘리포니아 나파에 산다. 나파에서 에피쿠로스주의자란 곧 사치스러운 요리를 마음껏 먹는다는 뜻이다.

알고 보니 내 모든 질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제는 죽고 없는, 욕을 잘하고 침을 잘 뱉었던, 정원에 살며 극단적으로 단순한 삶을 설파한 그리스인이, 어떻게 오늘날의 복잡한 하이테크 세계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톰은 나파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사람들이 은근하게 우쭐대는 것과 아름다운 사람이 미어터지는 데에는 싫증이 났지만 말이다. 이곳은 기개랄 것이 전혀 없다.

"와인 마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일까요?" 내가 묻는다.
톰과 주문받는 여자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우리가 돌봐줘야 할 관광객이 한 명 있네요. 나파에는 와인 마시기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간은 없다.

톰은 스피노자와 칸트, 그 밖의 여러 철학자를 공부했지만 그가 매력을 느낀 건 쾌락에 집중한 에피쿠로스였다. "내가 보기에 쾌락은 모든 것을 다 아울러요. 행복보다 더요." 톰이 와인을 홀짝이며 말한다.

"고통 없는 순수한 쾌락은 극히 드물어요." 톰이 말한다. "그래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저한테 딱 맞는 거예요. 전 엄청 우유부단한 사람이거든요."

나 역시 선택 앞에서 당황한다. 이상하게도 나를 쩔쩔매게 하는 건 인생이 걸린 중요한 결정(어떤 커리어를 추구해야 할까?)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다. 과테말라 커피를 주문해야 하나, 수마트라 커피를 주문해야 하나? 내 우유부단함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최선이 아닌 그저 괜찮은 것을 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해줘요. 게다가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뭐든 충분하지 않을 걸요." 톰이 대화의 방향을 다시 에피쿠로스 쪽으로 돌린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이 별난 인간 본성은 왜 세 번째 크렘브륄레가 첫 번째나 두 번째 크렘브륄레만큼 맛있는 법이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시운전 때는 황홀했던 새 차가 길 위에서 한 달이 지나면 지루해지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우리는 새로운 쾌락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새로운 쾌락은 더 이상 새롭지도, 그리 즐겁지도 않은 것이 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예를 들면 돈과 명예,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많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갖게 되면 우리는 눈금을 재조정하고 생각한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우리는 얼마큼이어야 충분한지를 모른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이 인생의 커다란 쾌락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축복받은 삶에 이바지하는 여러 가지 중에 우정만큼 중요하고 유익한 것은 없다."

지금의 톰과 나처럼 친구는 식사의 필수 요소라고 덧붙였다. 친구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은 "사자와 늑대처럼 게걸스레 먹는 것"과 같다.

결국 진정한 우정은 자신의 쾌락보다 친구의 쾌락을 더 우선시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정은 고통을 완화하고 쾌락을 증진한다. 우정과 관련된 고통은 우정이 주는 쾌락으로 상쇄되고도 남는다.

행복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하면 행복은 사라진다.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톰에게 근처 카페를 추천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기대하는 곳은 헌신적인 바리스타가 한 잔 한 잔 애정을 담아 커피를 내리는 그런 독특한 곳, 특별한 곳이다.
"저기 길 아래편에 스타벅스가 있어요." 톰이 말한다.
실망스럽지만, 곧 스스로에게 묻는다. "에피쿠로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론 스타벅스에 갔겠지.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다.
독특하지 않다. 애정을 담아 커피를 내리는 직원도 없다.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좋다.
다른 말로, 완벽하다.

대기실. 기다림이라는 비활동에의 참여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지어진 공간. 발뒤꿈치를 까딱까딱해본다.

리턴 저니return journey. 미국식 표현인 ‘라운드 트립round-trip’보다 이 단어가 더 좋다. 라운드 트립은 아무 데도 찍지 않고 너무 뺑 도는 것처럼 들린다.

6분 남았다. 한숨을 쉰다. 이런 짧은 시간에는 무엇을 하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눈만 깜박거리며 기다리기엔 너무 길다.

속도는 조급함을 낳는다.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삶의 속도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인

조급함은 미래를 향한 탐욕이다. 인내는 시간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애슈포드는 기다림과 시간에 관해 깊이 생각한 철학자, 그리고 특히 철학자들에게 많이 닥치는 듯 보이는 슬픈 아이러니 중 하나로서, 스스로에게는 그 기다림과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던 철학자가 묻힌 곳이다.

철학은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다. 철학은 이의를 제기한다. 요구한다. 가장 훌륭한 철학자는 가장 요구가 많은 철학자다. 소크라테스는 추측에, 특히 자신의 추측에 의문을 품을 것을 요구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시몬 베유의 당부는 더 단순하지만 결코 더 쉽진 않다. 베유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베유는 큼직하고 밋밋한 옷을 입고 있다. 그녀가 평생 드러낸 패션에 관한 무관심을 잘 보여주는 옷차림이다. 베유는 늘 허름한 검은색 옷을 입었고 굽 없는 신발을 신었다. 한 친구는 이를 두고 "진정한 부랑자"라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중세의 은자"라고 했다.

보고 싶어 했으나 보이는 것은 원치 않았다.

베유는 1909년 파리에서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매우 지적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책에서 위안과 영감을 찾았다. 열네 살에는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대부분을 암기했다. 산스크리트어와 아시리아-바빌로니아 언어로 쓰인 책도 읽었다.(베유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쉬운 언어라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한 번에 며칠씩 보낼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받았지만 베유가 지식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 공부의 유일하게 진지한 목적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베유는 말했다. 관심이라는 짧은 단어가 베유를 사로잡았다. 관심은 제멋대로 퍼져 나간 베유의 철학과 삶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은 꼿꼿이 걷는 능력이나 피클병을 여는 능력과 더불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능력 중 하나다.

모든 눈부신 과학적 발견과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 모든 친절한 태도의 근원에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관심의 순간이 있다.

관심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3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것만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깊이 몰입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몰입할 자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없고 오로지 음악만이 존재한다. 무용수는 없고, 오로지 무용만 존재한다. 보트 타기에 열심인 한 사람은 몰입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 게임에서 중요치 않은 것은 전부 제쳐놓고, 오로지 바다 위 보트의 움직임, 보트 주변 바다의 움직임만이 보입니다."6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보트로 대서양을 항해하거나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베유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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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31 0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니까,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누구 차럼 **하는 법이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처럼 **할 수 있다면, 삶의 매듭이 있을까 생각도 하다가.. 좋은 책인데, 한국어만 알아서. 다 읽긴 했지만, 헷갈리는 부분이 좀 있어요.

라로 2022-05-31 15:03   좋아요 0 | URL
어느 부분이 헷갈리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이제 시몬 베유편을 읽고 있어요. 5월 안으로 다 읽을까? 아니면 6월까지 걸쳐서 읽을까? 그런 고민하고 있어요. 삶의 매듭은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다 다를 것 같아요. 메타포님 닉네임 멋지게 지셨다고 생각했어요.^^
 
[eBook] 동화 쓰는 법 - 이야기의 스텝을 제대로 밟기 위하여 땅콩문고 시리즈
이현 지음 / 유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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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추천하는 동화책 100권 다 읽고 다시 이 책을 정중하게 읽고 싶다. 아이들 어릴 때 말고 동화에 관심도 없고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글쓰는 법에 대한 책으로 이만큼 재밌고, 알차고, 정직하고, 단호하면서 다정한 책이 있을까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니 책이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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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5-31 0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죠???!!!!!

라로 2022-05-31 15:01   좋아요 2 | URL
너무요!!!!!!!

psyche 2022-06-04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꼭 읽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