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결핍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누가 조금 관심만 보여도 허겁지겁 허둥지둥 있는 말 없는 말 다 쏟아 내는 것이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냉정하게.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그걸 덥석, 보따리째 내놓으면 안 된다. 허겁지겁 보따리를 풀어 놓아서는 안 된다. 고수들이 포커를 치듯, 연애를 하듯, 상대를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작가는 담담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처럼 해야 할 말만 해야 한다. 그렇게 독자를 궁금하게 하고, 궁금증이 다 풀리기 전에 한발 물러나야 한다. 다시 조금 더 궁금하게 하고, 그 궁금증이 다 풀리기 전에 또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작가가 주도권을 잡고 독자를 조금씩 이끌어 와야 한다.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독자가 애를 태우며 이야기를 따라와 인물과 함께 절정을 맞이해야 한다.

극적 질문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며 딱 필요한 만큼, 독자의 궁금증보다 조금 ‘덜’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렇다. 만나자마자 출생의 비밀부터 프로이트적 트라우마까지 다 털어놓는 사람은 부담스럽다.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상대의 사연이 딱하게 느껴진대도 그렇다. 아직 서로 익숙해지기도 전에 낯선 상대가 눈물부터 쏟는다면, 뜨악한 기분이 들 뿐이다. 다음에는 자리를 피하리라, 일단 번호부터 수신 거부 처리하리라 마음먹으며.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쏟아 내는 건 설레발밖에 안 된다. 다른 용어로는 주책바가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몸이 달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쉬울 게 뭐가 있는가(그런 척하자). 작가는 정말로 재미난 이야기를 다 알고 있지만, 독자님 하는 거 봐서 조금씩 들려주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극적 질문에 따른 사건 전개에만 충실하면 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필요에 따라 숨은 사연을 조금씩 이야기하는 거다. 들떠서 허겁지겁 다 털어놓다가는 장화 홍련 취급을 받게 된다.

슬픔의 절정은 그렇게 묘사되고 바로 장이 바뀐다. 독자에게 슬픔을 구구하게 떠벌리지 않는다. 같이 슬퍼해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하이디의 마음을 담담하게 서술한 뒤, 작가는 자리를 비켜 준다. 독자가 홀로 슬퍼할 수 있도록, 홀로 눈물 흘릴 수 있도록. 하이디와 둘이서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알고 있되, 필요한 만큼만 말해야 한다. 거대한 빙산을 창조하되, 그 가장 아름답고 날카로운 일각만 내보여야 한다.

이야기가 문체를 만들고 문장을 자아낸다.
이야기가 먼저, 문장 혹은 문체는 그 결과다.

문장은 이야기에 대한 장악력에서 나오고, 문체는 이야기에 대한 태도에서 나온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만큼 안정된 문장을 쓸 수 있다. 사람마다 문장력에 차이는 있다. 목표는 최고의 문장가가 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문장력을 구사하는 거다.

구구한 설명, 감정적인 호소, 기교를 부린 문장. 그건 허술한 이야기에 덧붙이는 눈속임이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작가가 인물의 진실을, 인물에게 일어난 일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물에게 일어난 일을 독자에게 전하는 일이다.
담담하게, 차분하게, 정중하게.

아이디어? 그거야말로 책 동네에서 만고에 쓸데없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사람의 영혼을 해칠 위험마저 있다. 나한테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있어…… 있어…….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헤매지 않은 적도, 힘들지 않은 적도 없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싶다.

어리지 않은 사람의 어리광은 꼴불견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생님, 아이들이 선생님을 너무너무 만나고 싶어 해요"라고 벅차게 말씀하시는 분에게 "강연료는 얼마인가요?"라고 그냥 묻는다. 그게 뭐 어떤가? 나는 노동의 대가를 원한다.
다만 노동의 대가를 원할 뿐, 일확천금 따위를 바란 적은 없다. 글쓰기는 정직한 노동이지, 사행성 투기가 아니다. 나는 사실 "대박"이라는 말이 아주아주 싫고, 책을 두고 그 말을 쓰는 건 더더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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