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따온 거다.
주인공인 형 코이치가 친구들과 함께 기적이 일어나는 소원을 빌기 위해서
동생 류를 만나기로 한 날 학교에서 조퇴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빈혈인 척 하는
장면에서 읽었던 교과서에(학교에서 읽은 거니까 교과서겠지?) 실린 시의 한 구절이다.
"산다는 건 미니스커트" 말고도 몇 구절 인상 깊은 게 있었는데
그렇게 멋진 시가 나올 줄 모르고 적어 놓지 않았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아무튼 산다는 건 미니스커트나 밤하늘의 별, 또는 아까 아이들에게 해 준 떡볶이처럼
일상적이란 것이겠지.이 영화의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는 "기적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없다고 깨닫고 돌아오면서
일상이 기적임을 깨닫는 과정을 그렸다"고 하는데
감독의 말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다.
아직도 읽고 있는 책 [신화와 인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도와 함께 흔들리는 법을 배우라.
조이스의 말마따나
세상의 쓰레기 속에서도
'광휘를 발하는' 채로 남아 있으라.
[신화와 인생], 조셉 캡벨 지음, 다이앤 K. 오스본 역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p.272
조이스의 그 말은 곧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거기 들어가서 네 할 일을 하라.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슬픔을 본질이라고 인식하라.
시간이 있는 곳에는 슬픔도 있게 마련이니.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신화와 인생], 조셉 캡벨 지음, 다이앤 K. 오스본 역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p.278
내가 이렇게 길게 책의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명절을 보내면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기적이면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다.
남편과는 영화 [밀레니엄]을 보러 가서 화해했고,
남동생 때문에 속이 상하신 엄마에게(남동생의 결혼 문제로..)
내 나름대로 의견을 말씀 드렸는데 기적처럼 먹혔다.
다른 때 같았으면 헛소리하고 있다거나 매정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남편과 화해를 한 게 가장 큰 성과다.
우리는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남편이 양보해 주었다.
남편은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있는 내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단다.
나는 남편의 사진을 보는 대신 영화관에 가서 [밍크코트]를 봤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 자연스러웠지만, 그중에
딸 수진으로 나온 여배우의 모습과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도 어쩌면 기적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딸이 엄마의 안락사를 막고 나서는데 결국엔 자신의 딸을 살리는 길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기적은 일상적인 것이 모여 간절함과 함께 타이밍을 맞출 때 나타나는 건지도 모른다.
친정에 가면서 책 읽을 시간이 없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져간 책은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과 [문]이었는데 올라가는 차 안에서 그리모의 [특별 수업]을
1/5 정도 읽은 게 다다.
친정에 가서는 책을 만져보지도 못했다.ㅠㅠ
며느리가 없는 엄마를 위해서 연휴 내내 설거지했다.
칠순을 넘긴 노인네가 며느리도 없이 조상의 차례상을 차리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서글펐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제사는 누가 지낼까?
남동생이 둘이나 되지만 그 아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어떻게 될지 무척 걱정은 되지만
물만두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신 것처럼
지금 당신들은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하신 말씀 다시 깊이 새긴다.
아무튼, 그리모의 [특별 수업]은 그녀의 감성과 영성이 잘 느껴지는
책이다. [신화와 인생]을 읽으며 그녀의 책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이다.
지금까지 하던 일 그대로 열심히 하게 되기를 바라고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기를 소망해본다.
산다는 건 이렇게 조그만 소망들을 품고 온 정성을 쏟아서 기쁘게 참여하는 것이니까. 가끔 미니스커트도 입으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