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니까(사실은 음치라고 생각해서)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렸을 때 일이 생각 난다. 내 여동생은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 애는 피아노로 한국일보 콩쿨에서 금상인가? 대상인가? 암튼 가장 높은 상을 받았었다.
또 노래도 잘 불러서 방송국 합창단에 들어갈 뻔도 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바빠서 뒷바라지해 줄 수 없다며 동생을 달래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피아노를 배울 때도 피아노를 사주지 않으시던 엄마가
여동생이 피아노를 배우자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으셨다.
스타인웨이처럼 좋은 건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영창이었다.
그 피아노는 거의 40년을 우리 집에 있다가
작년에 피아노 중고상 아저씨가 오셔서 인수해 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는 피아노가 있는 집이 별로 없었고,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던 때라 정말 엄마가 큰 맘을 먹으셨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심사가 뒤틀린 상태였어서 그랬는 지 그때부터 좋아하던 피아노도 치기 싫어졌다.
(물론 악보 보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렸기도,,)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는 앉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한심하고 유치찬란하고 그렇다.
피아노를 못 치는 이유는 그런 심리적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노래를 못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은 것 같다.
동생이 노래를 잘 부르니까 재미있어서 그랬던지
그 아이는 정말 많은 노래의 가사를 외웠다.
막내 남동생과 함께 그 아이는 정말 전투적으로 모든 노래의 가사를 외워 버릴 것처럼
열심히 가사를 적어서 늘 부르고 다녔다.
특히 변집섭이 한창 인기가 있을 무렵 여동생은 그의 모든 노래를 다 외우고 매일 불러댔다.
나는 정말 그 노래들이 미치도록 싫었다.
지금도 변진섭의 노래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내가 음치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교양 과목으로 성악과목을 선택해서 수업을 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수업과는 달리 그 수업은 완전 1대1 수업이었다.
교수님과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결정해서 열심히 교수가 반주해주는 대로 노래를 부르는 수업이었는데
거기서 그 교수가 내가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음치가 아니라고 말해줬다.
운이 좋게도 A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이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좋은 점수를 준 것도 같고,
아니면 처음 수업보다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고,,,
어쨌든 그분 덕분에 음치라는 생각은 많이 없어졌다.
지금은 악기로 연주되는 곡도 좋아하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내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Kings College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마음마저 촉촉이 젖어든다.

거의 한 달 전부터 장바구니에 넣었다 담기를 수십 번 한 책이 있다.
제목부터 가슴에 콕 박히는 놈을 달고 있는 그럴듯해 보이는 책이다.
결국, 음악이라는 책.
『결국, 음악』은 제목 그대로
우리네 삶이 ‘결국 음악’으로 귀결된다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건넨다.
이라는 소갯글은 "내가 생각한 대로야."를 부연설명 해 줄 뿐이다.
나 역시 음악에 대한 조예는 없지만 늘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

이렇듯 음악, 아니 대중음악은 단순히 유행의, 유행에 의한, 유행을 위한 노래의 지위를
벗어던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통해 시대를 조망했고,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청춘이나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중년이나,
지나온 세월을 흘러간 노래로 반추하는 나이 지긋한 노년이나,
누구나 ‘내 인생의 노래’가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중음악은 결국 삶의 한 부분이다.
내 동생은 옛날 얘기를(위에 내가 언급한) 하면 그랬느냐며 웃겠지만
변진섭이 그 아이의(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다.ㅎㅎ)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지는 않아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는 걸 안다.
또한, '선구자'나 '비목', '님이 오시는지' 등과 같은 가곡이 내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것을,
아버지가 술 한잔 삼키시곤 눈을 지그시 감고 '홍도야 울지마라'를
다른 사람 눈치도 안 보시고 부르시는 이유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온갖 잡스러운 얘길 하면서 Kings College의 'Pie Jesu and Agnus Dei'을 올려놓은 게
좀 코미디스럽긴 하지만 나 혼자 어울린다며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 ")

참! 그래서 『결국, 음악』이라는 책은 마침 알라딘에서 준 알사탕 4,000개로 지를까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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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ci 2011-09-1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음악!!! 이군요. 저한테 딱 맞는 책이에요.
나비님도 여러가지 의미로 해피 추석 보내신 것 같던데.^^ 이제 다시 일상이네요.

라로 2011-09-16 00:03   좋아요 0 | URL
한씨님~~~~.^^
제 서재에서 만나도 반갑군요!!^^
행복하기까지 한 추석은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보냈어요.^^;;
님의 추석은 어떠셨나요???
님의 댓글을 저 책의 제목처럼 하니'다시, 일상'이네요.ㅎㅎㅎ
저 책 읽어보셨어요????님이라면 읽어 보셨을듯??

2011-09-15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6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9-1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의 글을 읽어보니 문득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풍금'을 연주하는 선생님 앞에서 (내 차례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면서 겪어 봤던 '괴로움'이 떠오르네요. ㅎㅎ

어느새 성큼 가을이 오니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이 너무 '가슴을 뒤흔드는 것 같아' 그리 즐겁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가을엔 '결국 음악'에 더 귀기울일 수 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문세의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쯤이라도 한 곡 걸어 드렸으면 좋겠지만 바빠서 이만...)
* * *
음악은 순수한 즐거움 테크놀로지, 즉 우리가 대량의 즐거움 회로들을 일시에 자극하기 위해 귀로 섭취하는 기분 전환용 약물들의 칵테일일 것이다. (스티븐 핑커)

라로 2011-09-16 00:03   좋아요 0 | URL
저는 님의 댓글을 읽으니 초등학교 시절 피리라고 했던 지금이 리코더 불기 시험이 떠올라요.
친구들은 열심히 연습하는데 저는 정말 멍청한 아이였던지 연습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를 정도로 어벙벙해 있었던 기억이요. 리코더 시험을 보며 겪었던 '괴로움'이 떠올라요,ㅎㅎㅎㅎ

저도 오늘 6시에 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들려주던 가을 음악들이 좀 부담스럽더군요.
하지만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은 듣고 싶어요.
동생은 변진섭을 좋아했지만 저는 이문세 팬이었어요.
이문세, 산울림,,뭐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어요.ㅎㅎㅎ
하지만 말씀 만이라도 기쁘게 받습니다.^^
기분 전환용 칵테일을 자기 전에 섭취하고 자야겠어요.^^

비로그인 2011-09-15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고 댓글도 좋고 노래도 좋고.
귀 호강 시키고 갑니다 ㅎㅎ (엠피쓰리를 사야 되려나봐요. 칵테일 수시로 섭취하려면!!)

라로 2011-09-16 00:03   좋아요 0 | URL
어맛! 말없는수다쟁이님과 같이 글을 잘 쓰시는 분께 그런 칭찬을 듣다니!! 발그레~~~.^^;

비로그인 2011-09-16 01:38   좋아요 0 | URL
헉, 나비님 그런 말씀 마세요! 가독성이 높은 것 뿐입니다 ㅠㅠ
요즘에는 내가 쓰는 글과 실제의 내가 일치하는지 여부가 고민이에요. 글을 써놓고 보면 이게 진짜 내가 쓴 글인가 싶기도 하고, 그 둘이 일치해야만 진정한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은근 어려워요 힝..

라로 2011-09-17 01:27   좋아요 0 | URL
가독성이 높다는 말은 글을 잘쓴다는 말이기도 한거죠~~~. 겸손하시기는..^^
어제 올리신 페이퍼(라이너스의 담요 노래 올리신)를 읽으며
님에 대해 좀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1500원짜리 백반을 드시는 님,,,나이에 비해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깊이가 있는,,,그런게 다 글로 나오잖아요...^^;이미 진정한 글쓰기를 하고 계시다는 느낌요...
암튼 알라딘에 제 맘에 들게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오셔서 좋아요.^^

무스탕 2011-09-1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노래를 잘 부르는것도 잘 부르지 못하는것도 아닌 어정쩡 중간인듯 싶어요.
왜 그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본음이 무척 높아요. 그래서 평소 말하는 목소리보다 노래를 부르면 음이 무척 높아지고 목소리가 가늘고 날카로워져요 --;;;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나도 잘 부르지 않았을까 가끔 오해도 해보지만 역시 기본은 무시 못하는거고 이젠 듣는게 여러모로 이롭다는것도 깨쳤고요. ㅎㅎ

라로 2011-09-16 00:03   좋아요 0 | URL
전요 무스탕님의 목소리가 너무 이쁘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에서 본 무스탕님의 모습을 보면서 기대(?)했던 목소리와 달랐지만
무스탕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운전해면서 혼자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나요.^^
이제라도 늦지 않으셨으니 드럼 배우시는 김에 노래도 체계적으로 배워보심이??

치니 2011-09-15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 하나 죽이게 지었네요. 그래서 오히려 내용이 부실할까 봐 걱정스러운 책. ㅎㅎ 100비트 자주 읽는 편인데 나도원 씨가 거기 편집장이군요.오홍. 난 일단 언니가 읽어보고 좋다 하면 살래요. ㅋ

라로 2011-09-16 00:04   좋아요 0 | URL
그지!!! 저 제목 만으로도 지르고 싶어서 끙끙 앓았다는,,,ㅎㅎㅎㅎ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어. 살지 말지,,ㅠㅠ
하지만 내가 아는 분이 그 책을 구매한걸로 나오니까 함 여쭤볼게.
나와 취향이 비슷한 분이라고 생각하니까,,,,근데 내 생각엔 자기가 읽고 나한테 권해주면 더 좋을것 같아!!!!
자기처럼 대중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나는 잘 모르거든!!!!

프레이야 2011-09-1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음치라 하시는데 꼭 다음에 들어볼 기회를 만들어야겠어요. 불끈!! ㅎㅎ

라로 2011-09-16 00:04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저 정말 음치라니까요!!!제가 언제 없는 얘기 하던가요???저 늘 너무 솔직해서 탈이잖아요!!!ㅎㅎㅎㅎㅎ

2011-09-16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7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1-09-1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저는요. 저는요.

진짜 음치예요. 우엉. ㅠ_ㅠ(엎드려 울;;;;)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부러워요. 지금껏 살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던 남자들을 떠올려보면(먼 산;;) 단 하나의 공통점이 노래를 잘 한다는 거랍니다. 요즘도 후배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 가요방 같은 델 가면 이거 불러보라 저거 불러보라 신청해요. 내가 부르는 건 끔찍하고요. -_- 잘 하는 사람들 노래 듣는 건 너무 좋아요. ㅋㅋ^^

라로 2011-09-17 01:0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음치에요!!!!하지만 음치도 교정이 되는것 같아요. 저 그 수업듣고 정말 조금 교정이 된 듯한????( ")저도 저도 제 짝사랑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저도 잘하는 사람 노래 듣는 건 엄청 좋아해요. 그나저나 우리 둘이는 같이 노래방에 못 가겠어요.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