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고혜정 지음 / 함께(바소책)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헌책방에서 무슨 무슨 개론 따위의 오래된 책들을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다.

아이를 업고 헌책방을 나들이 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 헌책방에서 메인에 딱 올라와 있더라. 헌책방 사이트에서 메인에 올라와 있는 책은 정말 정말 깨끗한 책들이다. 이런 책을 헌 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거야? 하고 되물을 정도로.

친정엄마라는 제목에, 쪽진 머리 사진. 그야말로 말초신경을 살살 긁어 놓을만한 쉬운 에세이집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친정엄마라는 이름은 그렇게 짠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휘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그래 결심했어의 TV 인생극장과 금촌댁네 사람들을 썼던 방송작가 고혜정씨의 작품이다. 2004년도 발행인데, 요즘 같으면 좋은 사진 작가와 연합하여 엄마들의 사진을 싣고 글과 함께 실어 더 비싸고 좋은 책을 만들었겠지만, 이 책은 그저 작가가 블로그를 쓰듯이 이야기 한 책이다. 블로그보다는 조금 더 다듬어졌다고나 할까. 본업이 방송작가여서 그런지, 월간으로 나오는 사보나, 얇은 책자 같은 곳이 실렸을 것 같은 에세이들이 모여있다. 작가는 순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실었다. 시댁과의 갈등과 촌로인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조용한 전쟁까지, 이걸 출판하고도 괜찮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의 친정은 전라도 정읍이고, 그 정읍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건사하신 무학의 시골어머니에게 바치는 송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딸은 시집을 가야 딸 노릇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다던데, 나 역시도 그렇다.

아직도 돈 버느라 정신 없는 나의 친정엄마, 항상 어디서나 당당하고 잘나서 한없이 퍼주는 시골노인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결혼이라는 걸 하고 나니 내가 대신 엄마가 되어 이 반찬을 해서 엄마를 줘야겠다, 엄마 생일상을 차려줘야겠다. 엄마 뭐 사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엄마가 바쁜 가운데 짬을 내 우리 집에 들르면 손주를 보느라 황홀해 하는 사이 국을 끓여 밥상을 차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내 화장품 하나 살려다가 엄마꺼 먼저 사게 되는 것이, 그래도 나는 이 나이에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동안 끼친 염려와 엄마에게 줬던 상처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엄마와 고기를 먹으러 갔던 고기집에서 고기를 잘라주던 아줌마가 물었다.

손주를 안고 문가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구경시키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던 그녀가 나에게 시어머니냐고 물었고, 나는 친정엄마라고 대답했다. (희한하게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다닐 때는 친정엄마와 다니는 줄 알고 친정엄마와 다닐 때는 시어머니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조용히 고기를 잘라주며 잘하세요. 친정엄마 돌아가시면 갈 데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박혔다. 갈 데가 있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 그저 그런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골랐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사위들은 장모에게 잘하라. 당신들은 마누라가 친정엄마를 생각하면서 새벽에 몰래깨서 얼마나 우는 지 상상도 못할 것이야. 당신들도 곧 장인이 된다구요. 나는 장인이 되지 않을텐데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아버지도 못 되리라는 저주를 ~~~ 음하하하.  

 

2007. 4. 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