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감당안되는 홈에버는 삼성에게 팔아라.  

일랜드 그룹 - 이게 다 유지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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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핸드폰을 처음 갖게 된 것은 97년쯤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 때 일을 하느라 필요해서 017로 된 번호를 받았었는데 017 신규가입이 매우 저렴했었다. 그 핸드폰은 (벽돌수준이었지만)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쓰리를 맞고 말았지만, 이후로 계속해서 SK Telecom을 사용했었다. 2001년 핸드폰을 해지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2005년 귀국이후 계속해서 SKT를 사용하다가 지난 봄에 드디어 아이가 2005년도에 산 내 핸드폰을 여러모로 해 잡수시는 바람에 서비스를 받느니 새로 사라는 애니콜 엔니지어의 조언을 받들어, 기기변경을 하면서 나 역시 남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통신사 갈아타기를 시도했다. SKT에서 KTF로 변경을 하고 난 뒤,  

집에 와서 여기 저기 서비스 변경을 하던 중,  

SK에서는 가능하던 서비스가 안되는 사이트가 몇 개 있었으이,  

싸이월드와 멜론이었다.  

음악 MP3는 EBS 어학 패키지가 함께 적용되는 멜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멜론은 SKT의 자회사로 아예 따로 전화번호가 없을 정도로 SKT의 종속된 업체이다. (이번에 사업자가 바뀌었지만 지분은 여전하다)KTF로는 결제가 안된다나 뭐가 안된다나 하여튼 KTF번호로 바꾸는 데 약간의 애를 먹었다. 싸이월드에서 음원을 다운 받으려고 했더니 그 역시 KTF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 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정신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나는 SK왕국에 살고 있었다.  

SKT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음악은 SK가 주관하는 멜론에서 받았고 오랫동안 사용하던 싸이월드 역시 SK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간혹 들어갔던 엠파스 역시 SK에서 인수했다. 어헛...이것들이 제국을 세우고 있구나 하는 그 때쯤 일부의 서비스는 포기했고 KTF 식 인생에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2007년 이사 이후 보고 있는 하나TV가 SK로 인수합병되었다. -_-;  

SK Broad & 서비스로..나의 하나로 텔레콤은 SK Broad&인터넷, 전화,TV가 복합된 상품이 되었다. 고지서도 SK Broad& 으로 변경되어 도착했다.  

멜론은 로엔엔테테인먼트로 사업자가 변경되었으나 SK의 지분율이 60%, YBM 시사가 17%를 가지고 있다. 과거 울음반도 SK가 먹어버린 셈이다.  

SK는 전화, 인터넷, TV, 음반을 점령해 가고 있다. 앞으로 영화산업과 언론, 전기만 점령하면 될 듯 하다.--+ 너희 언제 이렇게 큰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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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재취업. 감을 잃은 모든 것들을 부여잡기 위해 경제경영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의 빈곤과 미래의 빈곤이라는 주제가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은 왜 소비하고 왜 늘 빈한한가. 돈을 벌기 시작하는 시점에 생각하기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고민들이었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빌려 읽었고, 읽고 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은 다시 구매했다. 2008년 1월은 구본형이 지배한 한 해의 시작이었다. 나는 뭔가 새로운 전환점을 찾고 있었다.

빈곤의 종말  제프리 D.삭스
자기 경영 노트  공병호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소비의 심리학  로버트 B. 세틀  파멜라 L. 알렉
어플루엔자 존 더 그라프, 데이비드 웬, 토머스 네일러
아빠를 팝니다 한스 위르겐 게에제
작심후 3일 김일희
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송승용 외
이코노믹 씽킹 로버트 프랭크
스타벅스 100호점의 숨겨진 비밀 맹명관
G마켓에서 10억 벌기  황윤정
한국의 귀족 마케팅 이성동
한국마케팅성공사례 2006 
낯선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2월   비슷한 생활이 이어졌고, 책에 쉽게 집중하지 못했다. 가사일과 육아, 그리고 사회생활을 동시에 진행하는데에 나는 숨가쁘게, 지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지냈다. 책은 조금 뒤로 미뤄놓기 시작했다.


결단 천천/쉬지엔
세종처럼 - 박현모
신영복의 강의 - 신영복
인터넷권력전쟁 - 잭 골드스미스/팀 우
슬럼 - 마이크 데이비스
1997년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김동춘
이 환장할 봄날에  박규리
미당문학상 수상집 
가난에 빠진 세계  이강국
창작과 비평 08년 봄호 백낙청외  

3월   -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에 다이어리에 3-4페이지를 적어가며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지만, 성과도 끝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산타페로 가는 사람 김승희
웹 2.0 기획과 디자인 
노동의 종말  제레미 러프킨
돈버는 감성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최효찬
아시아 6월호 
자본주의의 종말 엘마 알트파터
밝은방 롤랑 바르트
 

4월  - 나는 뭔가 꼬여있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에니어그램 전문강사 과정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육아, 가사, 공부, 그리고 노동. 미친듯이 나를 몰아쳐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나는 괜한 무의식만 불러일으켰다.


사진의 경쟁 박평종
동물로 산다는 것 존 쿳시
워렌버핏처럼 부자되고 반기문처럼 성공하라 서정명
편지 리처드 웹스터
서울의 밤문화 김명환/김중식
배려 한상복
영한사전비판 이재호
욕망이론 자크라캉
힐러리의 수퍼 리더십 김종현
심리학 개론 마이어스
영혼의 자유 애니어그램 - 앨렌 잭슨 베어
에니어그램 이해와 적용 - 윤운성 외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 존 브래드쇼 (함부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5월  - 무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와 나는 위로받고 싶어졌다. 여류작가들의 문체가 나를 조금은, 달래주었다.


4시간 티모시 페리스 지음
커뮤니케이션 불변의 법칙 강미은
해바라기 연대기- 윤예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다섯째아이 -도리스 레싱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 ..  도리스 레싱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6월  - 우울증에 돌입.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서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았다. 고전을 읽고 선인들의 지혜를 알면 뭔가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 매달리기 시작했다.


창작과 비평 08년 여름호 
현대문학상 2006년 정이현 정이현외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해냄 클래시커 - 세기의 커플 50 바르바라 지히터만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우리 아이 속마음 엘리자베스 와겔리
슈퍼기억력의 비밀 에란 카츠
빅 씽크 전략 번트H 슈미트
고양이는 부르지 않을 때 온다 전경린 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퀴즈쇼 - 김영하
문학동네 여름호 
아시아 여름호 
오이디푸스 - 소포클레스
캣츠 T.S.엘리엇
실낙원 - 밀턴
시경 
 

7월  - 정식으로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우울증에 깊이 빠져들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수없이 했다. 새벽에 일어나 산에 올라 108배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날만 더워져 갔다. 산부인과를 드나들며 큰 병이 될 뻔했던 세포에 대한 치료를 시작했다. 날은 덥고, 죽을 지경이었다.


놀이의 힘 데이빗 엘킨드
데카르트의 아기 폴 볼룸
부모역할훈련 - 토마스 고든
공중그네 
하이킹걸스 김혜정
분리된 평화 존 놀스
플라톤의 대화록 플라톤
 

8월  - 깊이 깊이 내면으로 빠져들기, 나는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고 스스로 뭔가 해답을 찾아보려고 NLP의 원리를 샅샅이 뜯어읽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식단을 바꾸고 생활패턴을 바꿔도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자아는 더욱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가 미친듯이 폭발하곤 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열기  로렌슬레이터
NLP의 원리  - 조셉 오코너 / 이안 맥더모트
상처없는 영혼 공지영
기차게 절하는 법  청견스님
농부의 밥상 안혜령
 

9월 - 가벼운 글들은 그냥 흩어져버렸고,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기억 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임락경
밥상이 약상이라 했지 홍쌍리
사람풍경 김형경
관계의 심리학 데이비드 웩슬러
창작과 비평 백낙청 외
만인보 고은
치유의 글쓰기 세퍼드 코미나스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제레미 테일러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문종원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논어  미야자키 이치사다
죄와 벌  - 도스트예프스키
 

10월 -  조금씩, 치유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 시작했다. 화가 나면 분노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형의 집/유령 H.입센
녹색평론 
부모와 아이사이  하임 G. 기네트
내가 사랑한 야곱 - 캐서린 페터슨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속죄 이언 맥큐언
아파트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분노의 기술 
가고일 앤드루 데이비드슨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  - 로리 애슈너/미치 메이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로버트 존슨
부모와 십대사이 하임 G. 기네트
영혼의 식사 위화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11월  - 우울증의 치료기간은 6개월. 6개월을 넘기면 우울증은 더이상 병이 아닌 패턴이 되어버리고 성격이 되어버린다.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미 6개월은 거의 다 채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바닥을 보고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은 없다. 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진정으로 나라는 존재의 바닥을 보았다. 완전한 바닥.  

그리고 나는 치료되었다. 완전히 벗어났다. 내가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정답을 얻었다.


영미문학의 길잡이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이런 사랑 이언 맥큐언
젠틀러닝 L.루돌프 나갈리
내 인생 이정도면 괜찮아 양창순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
인간연습 - 조정래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하악하악 이외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다치바나 다카시
돼지꿈 - 오정희 소설집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 오진탁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임사체험 상.하. - 다치바나 다카시
  

12월  -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것이라던 니체의 말이 맞았다. 나의 30년 넘은 방황은 여기서 끝이 났다. 알콜의존증도, 소비중독도,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의 말처럼 헤라클레스의 외양간청소가 나에게도 왔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내 영혼의 힘에 대해서 감사하며. -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정말로 - 감사하다.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  - 지나 콜라타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목수정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공지영
2008년 제 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권여선 외
학교를 넘어서 이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잘찍은 사진 한 장 윤광준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로렌 슬레이터
불안 알랭 드 보통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앞으로 나는 절대로 우울증이나 정서장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존재를 위협하는 행위는 그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행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을 고즈넉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욱 더, 굳건해질 것이다.  

2009년도 그렇게 올 것이다.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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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2-3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대단하십니다.잘 견뎌내셨음에..그럼에도 열심히 책과 씨름하셨음에..그리고 성공적으로 감사하다고 마무리 하실수 있음에..

10월에 내가 나자신에게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는 글에 저도 백배공감해요..*^^*

새해엔 정말 환하게 웃을 일들이 더 많으시길.

연꽃언덕 2009-01-01 07:46   좋아요 0 | URL
따뜻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새해엔 왜 사냐건 웃지요 할 거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둘러보았으나, 버스 안엔 비슷하게 생긴 남자들이 몇 몇 있었고, 그 목소리는 30대를 넘긴 남자의 나즈막한 것이었다.

남자가 따라부르고 있는 노래는 이은미의 서른 즈음에였다.

나도 또 - 하루 멀어져간다. 부터 조용히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노래를 멈춘 다음에도 그 남자는 누구인지, 계속해서 노래를 조용히 따라부르고 있었다.

버스는 언덕을 올라 아직 남은 난곡의 판자촌을 내려다보고 바로 이어지는 국제산장아파트 단지 앞에서 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버스안에 있는 듯 했다. 삼성산 뜨란채 아파트 단지를 지나, 관악산 휴먼시아 1단지에서 나를 비롯한 예닐곱명의 남자들이 함께 내렸다.

남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색깔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같은 옷을 입은 비슷한 나이의 그 남자들 중 누군가가 서른 즈음에를 따라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지 못했다. 같은 색의 코트를 입고 밥벌이에서 돌아오는 남자들은 모두 다 다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2008. 12. 15.

Photo @여의도 환승센터 by 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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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의정부에 살았다.


시외버스터미널 종점 동네. 빨간 줄과 파란 줄이 그려진 영종여객 버스들이 그 곳에서 사람들을 실어가고 실어오곤 했다. 동네 어귀는 늘 북적거렸으나, 어느 역전이나 터미널 근처가 그렇듯이, 8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와 가난은 동네 귀퉁이를 조금씩 야금야금 발라내곤 했다. 해가 지면, 검은 개가 달을 토해내듯이, 그렇게 그 동네엔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것들이 떠돌곤 했다.

그 동네에 살 때 홍콩할매 귀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둑한 길들이 더없이 무서웠고, 빨간 마스크를 쓴 홍콩할매가 허물어져가는 기와집 문짝에서 툭 튀어나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 때의 나는 작았고, 그 앞집엔 미군아저씨가 한국여자와 살고 있었고, 그 옆집엔 커다란 기와집으로 된 여인숙이 있었다. 우리집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파는 성경서점이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엄마는 참으로 신실한 기독교도였다. 내가 소풍을 가는 날이면 이웃집의 미군아저씨는 피엑스에서 프링글러스와 코카콜라를 사다가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 두 사람은 자식이 없었고, 미군아저씨와 가끔 헬로우 – 정도는 나누는 우리 엄마 때문이었는지, 파란 눈에 커다란 키, 노란 머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 때문이었는지, 젊은 여자가 혼자 애 둘을 데리고 가게방을 꾸려가는 모양새가 기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보다 나이가 많던 그들은 내게 친절했다.

엄마는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군들은 우리들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신앙으로 믿고 있었다. 엄마의 30대는 폭풍 속에서도 순진했다. 그 때 나는 10살.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겨우 두 살 더 많았다. 서른 여섯은 아직도 꿈꾸는 나이다.


그 집 옆엔 여인숙이 있었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정말 지쳐 보이는 한 여자가 여인숙을 꾸려가고 있었다. 손님들은 꾸준히 있었고, 순진하고 가난했던 나의 엄마는 그 주인여자와도 안면을 트고 지냈기에 나는 펌프가 있는 넓은 여인숙 마당에 드나들기도 했다. 무슨 일로 그곳에 드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어느 저녁이 오는 어스름에 남자가 여자와 함께 잠을 자기 위해서 돈을 치르기도 한다는 사실과, 선량하던 그 아줌마가 사람을 사고 파는 장사를 한다는 사실과, 가격을 흥정하려던 모자를 쓴 추레한 사내에게 제법 무서운 말투로 사람을 휘두를 줄도 안다는 사실도 알게 된 날이 있었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바느질을 하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캐묻지 않았고, 어른들의 세계는 그렇게 알 수 없는 거래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인숙 아줌마는 슬픈 사연을 지닌 여자였다. 오래 전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였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먹여 기르기 위해 다른 집의 아이를 봐주는 일을 했었다. 그 때 그녀가 등에 업고 봐주던 남의 아이는 갓난아이였고, 그녀의 아이는 신나게 뛰어 놀 줄 아는 사내아이였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남의 아이를 업고 자신의 아이가 길에서 노는 것을 보던 한 낮에, 커다란 덤프트럭이 길 위로 달려왔고, 그녀의 사내아이는 그 트럭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바퀴 사이에 끼어 10미터를 끌려갔다고 했다. 아이의 두부 같은 작은 뇌가 길바닥에 펼쳐졌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못 듣겠거니 생각했는지, 그녀의 그 찢어지는 사연을 종종 입에 올리곤 했다. 뇌는 꼭 두부 같더라고, 곱창 같더라고, 천엽 같더라고. 그 때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골목에 아직도 남아있었고, 그녀도 그 동네를 떠나지 않은 거라 했다.

남의 아이를 업어 키우느라 눈 앞에서 제 아들을 잃은 그 여자는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녀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뒤 여자를 파는 여인숙 주인이 되어 펌프 앞에서 야채를 손질하곤 했다. 나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지만, 어깨너머로 들었던 그 이야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늘 무겁고 어두워 보였다. 남의 아이를 업고 제 자식의 죽음을 목도한 것이 어떤 의미인 지 나는 그 때 알 지 못했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의 딱지를 모두 다 따버리고 더 이상 놀 거리가 없어졌을 때 뚝방에 앉아 혼자 해 지는 것을 보면서 그녀를 생각하고 죽은 아이를 상상해보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 업혀있던 그 아이는 얼마나 자랐을까 그 아이도 죽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골목엔 아이들이 많았다. 늘 딱지치기를 하고 담방구를 하며 뛰어다녔고, 아이가 없는 미군아저씨와 한국아줌마 부부는 대문앞에 서서 그런 우리들을 웃으며 바라보기도 했으나, 여인숙 여자는 아이들에게 싸늘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의 여인숙 안에 들어갔고, 그 이유를 지금은 기억할 수 없으나, 그녀는 나에게 웃음이 없는 안부들을 묻곤 했던 것 같다.

그녀가 아직도 여인숙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남의 아이를 업고 내 자식이 죽는 것을 보았던 그 불안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고스란히 체험해야 했다. 만약 내가 그 시절에 그녀를 모르고 살았다면, 지난 나의 1년 반의 불안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조화가 삶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한 해가 간다. 지난 봄 내내 나는 여인숙 여인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런 일은 그 어떤 어미에게도 일어나선 안 된다고, 어미가 된 나는 내 아이를 업고 콧물을 훌쩍이곤 하는 나이가 되었다.

200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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