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모든 죽음의 이야기는 삶의 이야기가 뒤돌아 선 모습이라고 생각해 본다.
2.
죽음에 대해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형식은 자살이었다.
그런 이미지는 오래 앓았던 중2병 때문에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중2가 지나고, 고2가 지나고, 대2가 지나고, 예비군2년차가 지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늘상 면도칼, 수면제, 한남대교 같은 이미지들이 따라 붙는다. 삶이 힘들었는가 하면 그럴 일도 별로 없었고, 부와 명예와 사랑을 모두 갖지 못했어도 그 중 하나는 꼭 쥐고 산다. 우는 일이 많지만 울고 나면 늘 웃고, 웃고 나면 우는 일이 두렵지 않다. 행복하냐고 물어오면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해 조금 더 소담한 말이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지만 아니라고 대답하지는 않는, 그런 삶을 조용히 살고 있다.
3.
『올리브 키터리지』에 실린 13개의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밀물」은 요약하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을 직접 목격한 이후 광기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며 조금씩 마모되던 케빈이 마침내 어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머니가 죽은 곳으로 찾아들었다가 그곳에서 7학년 때 수학을 배웠던 올리브를 만나 잠깐동안 죽음이 지연되던 중에, 폭풍처럼 몰아친 어떤 사건을 겪으며 단 한 순간에 다시금 삶을 부여잡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더 줄여보면, 느리고 길게 죽음의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순간 짠! 내가 사실은 삶이었어, 하며 뒤돌아 웃는 이야기이다.
4.
어쩌면 나의 죽음이 계속해서 자살로 그려지는 이유는 되려 죽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생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힘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면, 한 번의 기회에도, 하나의 희망에도 기꺼이 죽음을 포기하고 또 한 번 다시 살아가자고 마음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5.
소용돌이 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 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 86쪽
케빈이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서는 짧은 순간을 보면, 마치 그가 그런 순간을 기다려 오기라도 한 것처럼 삶이 내미는 손을 덥썩 움켜쥔다는 느낌이다. '널 놓지 않을게'는 '날 놓지 않을게'로 읽히고, 몇 분 전 버리려 했던 삶을 꼭 붙잡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그 마음이 바로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6.
삶이 무거워 슬쩍 놓친 듯 놓고 싶어질 때, 우리를 구원해주는 손길이 어디서부터 뻗어 나오는지 알려주는 밀물같은 이야기였다. 누군가 살라고 내밀어 주는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살리려 내미는 내 손에서 삶을 찾을 수 있고, 계기는 밖에서 찾아 올 수 있어도 씨앗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이야기. 어찌 보면 뻔하고 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에게 한 번 더, 딱 한 줌의 희망이 모자라 모든 불빛이 꺼져버린 세상을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 같은 날을 한 번 더 살아 지나가도 좋겠다는 희망을 건넨다. 건조하게 따뜻하고, 섬세하게 쓸쓸한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