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기쁨
금정연.정지돈 지음 / 루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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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 더 높은 산에 올라 다른 낮은 산을 바라보거나, 밤의 비내리는 숲이나 바람에 쓸리는 갈대밭의 울음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에 대해 쓰기 위해 기억을 되짚다가 만약 "공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면, 공허했노라고 기록해도 될까? 내가 그 단어를 부릴 수 있을까? 그 단어가 저를 모르는 내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까?

 

            그러니까, 무언가 마주쳤을 때 어떤 거대하고 추상적인 말이 떠올랐다면, 이를테면 공허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내게로 왔다고 하면, 아, 이것이 바로 공허한 정경이구나, 하고 단언하는 그 오만은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시, 내가 그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 그렇다면 내가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2.

 

            내게 내 글은 적확하지 않다. 무책임하다. 그 무책임이 의식되지 않는, 그러니까 내 글을 믿는 날들을 건강한 날이라고 불러보면, 나는 꽤 자주 앓는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 쓰기는 종종 무섭다. 그 누군가가 나 혼자라도 여전히 그렇다. 자신에게 비난받지 않는 글로 하루를 남기고 싶다. 몇 년을 품고 있는 작지만 큰 바람이다.

 

 

 

3.

 

            그렇다면, 읽어도 알 수 없는 타인의 글을 만났을 때 어떤 모호한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했다면,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4.

 

            누군가는 그들이 미래라 하고, 좀 더 매서운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현재라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는 과거가 된다. 원래 그렇다. 과거란, 특별히 지은 죄 없이 그저 우물쭈물하다가 되고 마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과거는 미래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미래를 겨냥한 과거의 모든 말은 실패한다. 과거에게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고,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중은 내게 오지 않은 것이고, 그들의 방식은 내게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역시 그들에 대해 쓰기를 실패한다. 

 

            끝내 그들은 내가 닿지 못할 미래로, 내게 오지 않는 현재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도 슬퍼하지 않고, 무엇도 알게 된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기쁨이 아닌 그들이더라도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겐 기쁨일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멀찍이 내 자리를 지키고 서서 그들과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추는 기쁨의 춤을 묵묵히 응시할 것이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떠나지 않았고, 아마 나는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5.

 

          이 글을 리뷰와 페이퍼 중 뭘로 쓸지 잠깐 고민해보았지만, 그냥 리뷰로 쓰기로 한다. 어차피 무언가 더 알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이보다 더 나은 리뷰를 쓸 깜냥이 나중에라도 생길 것 같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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