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착하다는 말이 싫어 종종 위악을 떤다. 착하다는 것은 내가 당신의 마음에 드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딱 그만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A에게 착한 사람이 B에게는 착한 사람일 수도,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게다가 착하다는 칭찬은 참 무서운 말이고, 반복적으로 들으면 A부터 Z까지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게(혹은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칭찬에 취해 추는 춤이 끝나고 나면, 결국 관습과 사회가 공인하는 가치의 바깥쪽으로는 나갈 수 없는 갇힌 인간이 되어 있음을 깨닫고 몸서리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악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투쟁의 방식이다. 나는 착하기 싫어요. 나는 착하지 않을래요. 

            그렇지만, 열심히 발버둥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착함의 덫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 있을까?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게 다 지독한 욕심일까?

 

 

2.

            많이 읽고 배우고 깨닫는 과정은, 한번에 발견하면 왕창 놀라게 될 내 마음 밑바닥의 벗은 모습을, 한 구절 한 고비씩 천천히 나누어 알아가는 일이다. 충격적인 진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는 일이다. 충격을 정기구독하고 감정을 분할납부하는 일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길을 서서히 걸어가는 일이다. 서럽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다.

 

 

3.

 

   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_임솔아, <모래>

            시작이 그랬듯이, 우리는 떨어지며 끝날 것이므로 우리의 모든 대화는 떨어지라고 하는 응원이다. 알 방법이 없든, 알 가치가 없든, 결국 알 것이 없으므로 우리의 모든 병은 궁금증이다. 아픔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결국 모든 우리 사랑의 방향은 아픔을 향한다. 넘치는 것은 아픔 뿐이므로 결국 우리는 어떤 무엇인가가 어떤 무엇보다 부족하다. 어떤 말도 결국 혼자가 되므로, 어떤 말로도 결국 혼자가 된다. 모래는 무수해도 결국 혼자다.

 

 

4.

            이래저래 오늘은 꼭 울고 싶고, 울고 싶은 날이면 결국 울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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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7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한 사람‘은 순종적이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요. ‘착한‘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갇히게 됩니다.

yamoo 2017-06-1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에 울컥하곤 합니다. 경험상 착하다는 말은 ‘병신같은 짓을 잘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지라...
제일 많이 듣던 말이....‘착하게 생긴 오빠‘....@_@ 그냥 맥이 쭉~~~ 빠져버리죠. 아마도 ‘착하다‘는 거에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하한 때가 저 말을 듣기 시작한 때인듯합니다. --;;

syo 2017-06-17 17:14   좋아요 0 | URL
착하게 생겼다는 거 어쩐지 칭찬 아닌것 같아요.... 저만 그런가요.

또 봄. 2017-06-1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되는 시대가 어여 왔으면 좋겠어요.

syo 2017-06-17 17:12   좋아요 0 | URL
전 차라리 그런 말을 안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상황상황마다 걸맞는 칭찬이 다 있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