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썩 많은 책을 읽었다는 정도의 자랑이라면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겠다. 이런 3자 대화를 종종 겪곤 한다. "얘는 책 진짜 많이 읽어!" "아, 진짜 많다 할 정도는 아니예요." "와, 어느 정돈데요? 일 년에 백 권 넘게 읽으세요?" "아, 네, 뭐." "이봐, 장난 아니지?"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좋은 책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안 그래도 요즘 책 좀 읽으려고 그러는 중이거든요." 꾸준히 읽고 쓰시는 알라딘의 이웃분들 역시 무시로 겪는 일일테지만, 쟁쟁한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책 추천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물며 서로를 뜨문뜨문 아는 와중에 대뜸 책 한권 골라 달라는 요청은 때로는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신을 모르면 당신이 읽을 책도 모릅니다. 당신을 읽지 못하면, 당신이 읽을 책이 무엇인지도 읽지 못합니다. 정말로 '책 읽으려는 마음'을 품었는데 갈 길을 모르시는 거라면, 먼저 당신을 조금 더 알려주세요.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당신은 지금 이렇게 말하신 거예요. 자, 이 글자는 '에이'라고 읽구요, 요건 '비'라고 읽으면 되구요. 그 다음 건 '씨'라고 읽으시면 돼요. 아시겠죠? 자 그럼, 이 단어 한 번 읽어보실까요? 'pneumonoultramircroscropicsilicovolcanoconiosis'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뜸' 책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syo는 두 부류의 책들을 떠올린다.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소호흡 하는 동물이었지, 하고 깨닫는 책과, 단 한 줄을 읽어 넘기는데 들숨과 날숨을, 심지어 때로는 한숨을 몇 번씩이나 빚어놓아야 겨우 발이 떨어지는 책.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하고 물으면 열 명 가운데 열두 명이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고른다. 그래서인가 어쩐지 후자를 고르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받을 것 같다. 밥 한끼 사먹이고 싶을 것도 같다. 그래서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만 있다. 마음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마음이 없어서 세상에 굶주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하여튼, 그래놓고서는 막상 syo 자신은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냐는 질문을 만나면 묵비권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 책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지금도 은근히 행복해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못 서는 책
syo가 최초로 경험한 '못 서는 책'은 『죄와 벌』이었다. 열린책들판이었고,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지는 편집이지만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앉기만 해도 천장에 머리가 닿는 복층 좁은 공간에 매트리스 하나 깔고 얹혀 살던 시절, 겨울이었다. 날이 밝아 올 때 읽기 시작했는데 두 권을 다 덮었을 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두 끼를 걸렀고, 정신을 차리고 나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팠으나 어쩐지 지금 당장 입으로 뭔가를 집어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지 않으면, 최소한 이 고양된 감정이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그 손을 놓친다면 평생 오늘을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팔을 뻗어 손끝으로 천장을 어루만졌다. 그 질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던, 그래서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것 같던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지금 사실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계속, 계속 생각했다.
무라카미는 '못 서는 책을 쓰는 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처음 무라카미를 손에 들었던 18살부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이십대 중반까지 무라카미는 syo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였다. sy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4人'이라는 내부문건을 작성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항상 유력 소설가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있다. 무라카미는 그 리스트에서 내려온지가 좀 되었는데도, 그런 것과 무관하게 여전히 가장 강력한 페이지터너다. 심지어 『1Q84』의 위력은 syo 혼자 검증한 것도 아니다. 보급이었는지, 아니면 개인이 가지고 들어온 건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튼 이 책이 유입되자 부대가 아주 난리가 났다. 몇몇 중요한(......새끼들.) 페이지는 소실되었다가 화장실 귀퉁이에서 꾸득꾸득 접힌 채 발견되질 않나, 책이 하도 서가에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빡친 말년 병장 하나가 누구 관물대에 짱박혀 있는지 찾아내겠다며 생활관을 지 맘대로 헤집어 놓다가 걸려서 말년 휴가 이틀이 짤리질 않나......
못 가는 책
'道可道非常道' 라는 여섯 자가 인생의 화두였던 때가 있었다. 스물 갓 넘은 놈이 화두로 삼기에는 거대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다양한 책들이 보여주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니 아무리 미미한 syo라도 나 하나 기대고 살 조악한 해설 하나 덧붙이는 게 뭐 그리 큰 죄겠느냐며 마음 위에 놓고 며칠을 궁굴린 여섯 글자였다. 종이에 열심히 적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일주일이 더 걸렸다. 깨달은 것도 많고, 실질적으로 얻은 것도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제일 안 아픈 부위를 골라 한 번 새겨 볼까 하여, 저 여섯 자 가운데 두 번째 道 하나를 제외한 다섯 글자로 타투 디자인도 만들어 보았다. 그때 그때의 여친들이 모두 반대했고, 여친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도 반대표를 던졋기 때문에, 그 도안은 syo의 몸이 아닌 마음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
『섬』은 순수하게 그 문장에 반하여 얼굴을 붉히며 오래 머물렀던 책이다. 지금은 어쩐지 본문보다 카뮈의 서문이 더 유명해져 있지만, syo는 특이하게도 카뮈보다 그르니에를 먼저 알게 되었기에 오히려 더 좋았던 걸 수도. 학교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 정말 우연히 뽑아든 책이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섬』이었는데, 이런 건 운명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민음사판과 청하판은 역자가 다른데, 민음사판의 김화영 선생님의 불어 번역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만은, 청하판 함유선 선생님의 번역도 미려하기로 따지면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개인적으로 청하판 장 그르니에 전집은 정말 미친듯이 갖고 싶은 책들인데, 표지 디자인은 물론 수동 타자기로 때려넣은 것 같은 옛스러운 글자체 하며, 뭔가 그야말로 섬 같은 『섬』이 아닌가 싶다. 절판이고, 꼴랑 『섬』하나 가지고 있다. 복간되면 좋겠다. 민음사판은 선집이다.
syo의 인생책이라 항상 추천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리액션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운의 책. 경험적으로 보면 사실『월든』을 좋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로의 긴 문장을 천천히 읽기를 좋아해야 하고, 천천히 사는 소로의 삶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syo는 속독하는 편이지만, 월든만큼은 음독 이상의 빠르기로 읽지 않는다.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면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앉아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소리 내 이 책을 읽고 있다. 볕 들면 멈추고 바람 통하면 쉬어가는 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syo는 위의 3종을 가지고 있는데, 다 좋다. 막 좋다. 조금씩, 그러나 명확히 세 권은 다르다. 그래서 더욱 좋다.
syo가 톨스토이고 뭐고 모르겠고 난 그냥 무조건 도선생, 을 외치고 다닌 것은『죄와 벌』을 두 번째로 완독했을 때부터였다. 이 책은 syo에게 '못 서는 책'인 동시에 '못 가는 책'이다. 아직 다른 어떤 책도 syo에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천천히 읽느라 가다 서다 되돌아가다를 반복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멈추는 법을 알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중 무엇이 더 좋은 책인지, 혹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하는 물음은,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헤어 드라이어랑 미디움 웰던으로 구운 스테이크 중에 뭐가 더 패셔너블해요?" 하는 질문처럼. 그것은 '책의 기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지치기하는 하위분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평면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책은 멈추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선생이 아닌가 하는, 멈추지 않으면 읽을 수 없고, 읽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제발 좀 그만하고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접할 때마다 권하고 싶은, 아니, 아예 어디다 가둬 놓고 쑥과 마늘만 먹이면서 읽히고 싶기까지 한 책이 쉽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런 생각은 과정이 섞이긴 했어도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니, 이건 무슨 계급 높은 꼰대들이 사람들 앉혀놓고 농담이랍시고 꺼내는 음담패설 같기도 하고, 타이틀 걸지게 뽑아서 독자 낚으려는 전형적인 기레기 수법 같기도 하다. 중의적 효과를 노린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게 오히려 syo가 태생적으로 더러운 작자라는 증거인가 싶어 더 무섭다......으으.